[특별했던차]현대자동차 스텔라

기사입력 2018.02.07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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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승용차 시장에서 전통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차종은 세단이다. 그 중에서도 중형세단과 준중형 세단은 중~소형 SUV가 맹위를 떨치기 이전까지 국내 승용차 시장을 틀어 쥐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준중형 세단은 ‘소형차’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중형차로 넘어가기에는 경제적 부담이 컸던 계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대한민국 자동차 시장의 양적 성장을 견인해 왔다.


현재 국내에서 중형세단의 대명사로 통하는 차종은 현대자동차의 ‘쏘나타’다. 준중형세단의 대명사로 통하는 차종은 동사의 ‘아반떼’다. 1985년 등장한 초대 쏘나타는 시장에서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2세대(Y2) 모델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국민차로 자리 잡아, 오늘의 현대자동차를 일궈냈다. 1995년에 처음 등장한 아반떼는 초대 모델부터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지금까지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베스트셀러다. 쏘나타와 아반떼는 자동차 기업으로서의 현대자동차를 상징하는 차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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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러한 성공작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쏘나타와 아반떼가 이루어 낸 성취는 그 선조들이 거쳐야 했던 갖가지 시행착오와 그것을 고치고 다듬는 과정에서 축적된 경험들이 없이는 불가능했다. 특히 현대자동차가 1983년 내놓은 ‘스텔라(Stella)’는 지금의 쏘나타와 아반떼를 존재하게 할 수 있었던 시금석과도 같은 차다.


올림픽을 앞두고 태어난 현대자동차의 두 번째 독자 모델

스텔라는 현대자동차의 중형 세단으로, 창립 초기부터 포드와의 제휴 아래 생산했던 포드 코티나(Ford Cortina) 마크V의 후속차종으로서 개발되었다. 프로젝트명 ‘Y카’로 지칭되었던 스텔라는 현대자동차가 1978년을 시작으로 4년여에 걸쳐 27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투입하며 개발을 진행했다. 차명인 스텔라는 ‘별’을 의미하는 라틴어 ‘STELLARIS’에서 유래했다. 스텔라는 포니 이래 두 번째로 만들어진 현대자동차의 독자모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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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의 두 번째 독자 모델, 스텔라가 등장하게 된 데에는 현대자동차가 포드와의 기술제휴로 코티나를 생산하던 시절의 기억 때문이다. 라이센스 생산 체제 하에서는 기술 제공사인 포드의 요구에 그저 수동적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시장의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기술 제공사인 포드의 태도 변화에 따라 회사가 한 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었다. 이것이 현실화된 것은 70년대 중후반의 신진자동차였다. 중국 진출을 노리고 있었던 토요타의 일방적인 관계 청산으로 인해 국내 최대규모를 이루고 있었던 자동차기업 신진자동차는 삽시간에 몰락하여 새한자동차와 거화자동차로 찢어지고 최종적으로 대우그룹과 쌍용그룹에 매각되었다. 현대자동차는 이 과정을 눈앞에서 목격하며 독자모델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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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86년도 아시안 게임과 88년도 서울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정부가 추진한 택시의 중형화 정책이 현대자동차로 하여금 스텔라의 개발을 서두르게 만든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1981년, 대한민국은 그 해 11월에 열린 아시안 게임 총회에서 1986년 대회의 개최지로 확정되었다. 그리고 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이끌었던 올림픽게임 유치단이 88년도 서울 올림픽 유치에 성공하며 대한민국은 두 번의 큰 경사를 맞이한다.


대한민국은 국내를 찾을 수많은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대대적인 체질개선에 나서야 했다. 그 중에서도 교통 분야에서의 체질개선은 대회의 성공적인 개최 및 진행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과제였다. 당시 정부가 추진한 택시의 중형화 정책 역시 이러한 흐름과 맥을 같이 하고 있었다. 1982년 11월 당시 국내의 중형급 택시는 총 201대에 불과했다. 당시 대한민국의 택시는 현대 포니나 기아 브리사 등의 소형 택시가 주류였다.


스텔라의 하부 등, 기본적인 설계는 포드 코티나 Mk.V의 것을 바탕으로 했다. 하지만 차체는 현대자동차에서 직접 개발했으며 스타일링은 이탈디자인 주지아로에 의뢰하여 완성했다. 그래서 스텔라의 외관 디자인은 직선적인 조형이 중심이 되는 당시 주지아로 스타일의 전형을 보여준다.


스텔라는 후륜구동 세단인 포드 코티나의 설계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전방엔진-후륜구동계를 갖추고 있었다. 엔진은 미쓰비시의 1.4리터/1.6리터 새턴 엔진을 도입하여 사용했다. 차체는 세단형과 왜건형의 두 가지가 마련되어 있었다. 세단형은 자가용, 영업용(택시 등)으로 판매되었고 스테이션 왜건형은 경찰 순찰차용으로만 판매되었다.


1982년 출시된 스텔라는 기존의 승용차에 비해 큰 차체와 넓은 실내공간을 가졌으며 높은 국산화율과 그에 따른 가격 경쟁력까지 확보했다. 스텔라는 출시 3개월 만에 1만대 이상의 계약을 따내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스텔라의 인기는 당시 국내 자동차 시장의 규모를 감안하면 가히 폭발적인 것이었다. 밀려드는 주문량을 생산이 따라가지 못할 지경이었다.


품질로 쓰러지고 품질로 일어서다

그러나 좋은 소식도 잠시. 스텔라는 초기형부터 품질 불량에 시달렸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의 이유가 있었다. 예상 밖의 폭발적인 인기로 인해 급박하게 돌아가는 생산 일정에 맞추는 과정에서 품질 관리가 소홀해진 것, 그리고 당시 현대차가 생산하던 코티나의 라이센스가 1983년부터 만료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양산을 지나치게 서둘렀던 것이다. 이 때문에 스텔라는 양산 전에 충분한 수준의 완성도를 확보하지 못했고 품질을 우선시하는 중형차 시장에서 나쁜 이미지를 심어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출시 초기에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스텔라는 전기 배선 문제로 인해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하는 등의 사례가 보고되었다. 현대차는 화재가 일어난 차량을 정밀 조사하여 이 문제를 파악했으며, 1983년 겨울부터 약 1만 5천대에 달하는 스텔라에 대규모 리콜을 실시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결함은 시정되었지만, 이미 떨어져 버린 신뢰도는 회복할 수 없었다. 그리고 1984년, 스텔라는 출시 석 달만에 1만대 판매를 넘나들었던 초기와는 달리, 월 평균 1,300대 수준의 판매를 간신히 유지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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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스텔라가 현대차에게 있어 상처만 남기지는 않았다. 현대차는 스텔라의 초기 불량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품질 관리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스텔라의 품질을 높이는 데 힘썼다. 그리하여 1985년, 현대차는 배기량 1.5리터의 신형 엔진에 더하여 품질을 대대적으로 개선한 스텔라를 내놓았다. 1985년형 스텔라는 저렴한 가격과 우수한 상품성, 향상된 품질을 내세워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텔라는 그 해 국내 중형차 시장을 50%이상 점유하며 시장을 주름잡는 강자로 우뚝 서게 된다. 물론 스텔라에게는 대우자동차의 로얄 XQ, 로얄 듀크 등의 라이벌이 등장하였지만 스텔라를 압도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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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향상된 품질을 통하여 1985년도에는 캐나다에, 다음 해인 1986년부터는 미국 시장으로의 수출까지 성사되기에 이른다. 현대차는 이를 기념하여 85년도에는 ‘스텔라 CXL’, 86년도에는 ‘스텔라 APEX’모델을 각각 내놓았다. 또한 스텔라는 88년도 서울 올림픽의 공식 차량으로 쓰이게 되었다. 품질 개선 이후의 스텔라는 쏘나타와 엘란트라가 등장한 이후인 1992년까지 생산되었으며, 영업용 차량은 가격 경쟁력에 기인한 꾸준한 수요로 인하여 97년까지 명맥을 이어갔다.


오늘의 현대자동차를 만든, 쏘나타와 아반떼의 선조

스텔라의 판매가 호전되면서 자신감을 회복한 현대자동차는 아예 스텔라의 고급 모델을 내놓는다는 발상을 하게 된다. 이에 스텔라에 1.8리터급 엔진과 2.0리터급 엔진을 탑재하고 내/외장 사양을 한층 화려하게 꾸민 고급 세단을 선보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초대 쏘나타(Y1)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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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쏘나타는 1.8~2.0리터급 중형세단 시장에서는 이미 굳건한 아성을 구축하고 있었던 대우자동차의 로얄 시리즈를 대적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기본적으로 로얄시리즈보다 한 체급 아래로 취급되었던 스텔라를 바탕으로 했던 것이 그 이유였다. 또한 크롬 외장이나 편의사양 일부를 제외하면 기존 스텔라와 크게 차별화되는 요소가 없었다는 점도 쏘나타의 패인(敗因) 중 하나였다. 여기에 스텔라에 비해 지나치게 비싼 가격 역시 쏘나타의 걸림돌이 되었다. 하지만 스텔라 기반의 초대 쏘나타로 시행착오를 겪은 현대자동차는 그랜저의 플랫폼을 바탕으로 개발한 2세대 쏘나타를 통해 국내 중형 세단 시장을 사로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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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리터 엔진을 탑재한 현대 스텔라는 대우 로얄XQ, 기아 캐피탈과 함께 국내 준중형차의 ‘1세대’라고 할 수 있다. 기반부터 중형차로 설계되어 중형차와 동등한 체적을 지니면서도 1,500cc 미만의 엔진을 탑재하여 가격 및 세제 상의 부담을 억제한 것이다. 크기와 공간은 중형차에 ‘준’하면서도 세제 상으로는 소형차인 ‘준중형차’는 80년대의 호황에 따라 소형차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본격적인 중형차는 아직도 부담이 컸던 당시 소비자들의 심리를 정확하게 파고 들었다. 물론 동력성능에 비해 지나치게 크고 무거운 차체를 감당해야 했기 때문에 ‘국산차는 성능이 부족하다’는 선입견을 만드는 데에도 일조한 바 있지만 준중형차는 대한민국의 자동차 시장을 성장시키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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