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했던차]기아자동차 봉고

기사입력 2018.02.13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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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승합자동차 내지는 1박스형의 밴(유개화물차)을 모두 일컫는 말이 있다. 바로 ‘봉고차’다. ‘봉고차’라는 말은 ‘찦차’와 같이, 고유명사에서 비롯되어 보통명사로 쓰이는 말의 예시 중 하나다. 봉고차는 1980년대 초 기아자동차(이하 기아차, 당시 기아산업)에서 만들어진 봉고(Bongo)에서 유래되었다. 봉고는 소형 상용차로, 밴, 승합, 1톤 트럭의 형태로 생산되었다. 그리고 현재도 기아자동차의 1톤 트럭으로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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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자동차 산업의 암흑기

기아차가 봉고를 만들게 된 까닭에는 ‘자동차공업 통합조치’가 있었다. 자동차공업 통합조치는 신군부 정권의 국보위가 내린 조치로, 1980년 8월 20일 발표한 ‘중화학 분야 투자조정 조치’의 일환으로 발표되었다. 명목 상으로는 국가가 나서서 국내의 자동차 산업에 대한 일종의 ‘구조조정’을 가한다는 것이었다. 이 조치는 두 번의 조정을 거쳐 1982년에 시행되었으며, 1989년에 최종 해제되었다. 전두환 정권의 자동차공업 통합조치는 국내 자동차 제조사 간의 시장 경쟁 구도를 무너뜨리고 국내 자동차 산업의 질적 수준을 크게 후퇴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여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사의 ‘암흑기’로 일컬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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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공업 통합조치가 말하는 ‘구조조정’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현대차에 승용차를 전담시키고 기아차에 5톤 미만 소형 상용차를 전담시키며 이륜차는 대림산업에게 전담시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5톤 이상 버스 및 상용차는 업체 간 자유경쟁에 맡겼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전두환 정권은 현대차가 대우 산하인 새한자동차를 합병하고, 그 대신 대우에게 현대양행(현 두산중공업)을 넘길 것을 요구했으며 기아산업에는 이륜차 사업부를 대림산업에 넘기고 승용차의 생산에서 손을 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는 당초 계획대로 실행되지 못했다. 당시 새한자동차 지분의 절반을 가지고 있었던 미국 GM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GM은 새한자동차의 지분은 곧 한국 내 자동차 사업권에 대한 지분이라 주장하면서 통합 후에도 50%의 지분과 경영권을 요구했다. 그리하여 현대차와 새한자동차의 통합은 무위로 돌아갔다.


하지만 국보위는 1981년, 이를 조정한 대안을 발표한다. 그것이 바로 ‘자동차공업 합리화 조치’다. 자동차공업 합리화 조치는 승용차의 생산을 현대차와 새한으로 이원화하는 대신, 기아산업과 동아자동차(現 쌍용자동차)를 통합하고 기아기연 이륜차 부문을 대림산업에 인계한다는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 역시 뜻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기아산업의 반발이 거셌기 때문이다. 기아산업과 동아자동차는 서로의 성격과 방향성, 그리고 전략도 전혀 다르고 규모도 달랐다. 또한 기아산업이 아시아자동차를 인수하면서 누적된 부채 때문에 동아자동차 측에서도 두 기업의 합병을 꺼렸다.


그리하여 1982년 발표된 최종안에서는 이 조항을 백지화한 채 실행에 들어갔다. 기아산업은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던 이륜차 부문을 떼어낼 수 있게 되었지만 수익성이 높은 승용차 사업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이제 막 종합 자동차기업으로 성장하려는 도상에 있었던 기아는 이로 인해 성장의 동력을 잃어버린 상황이었다.


암흑기를 헤쳐 나갈 새로운 성장동력, ‘생계형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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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기아차는 자동차공업 합리화 조치가 시행되면서 승용차 시장에서 손을 놓아야 했지만 중/소형 상용차를 독점적으로 시장에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시장은 본래 현대차가 그레이스의 전신이 되는 ‘현대 HD1000 미니버스’를 통해 1977년부터 진출해 있었다. 하지만 조치가 시행되면서 현대차는 더 이상 HD1000 미니버스를 생산할 수 없게 되었다. 소형 트럭이었던 포터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기아차에게는 경쟁할 차종이 사라진 셈이었다. 1980년에는 기아차도 이러한 성격의 차종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봉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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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고’는 기아차와 기술제휴 관계에 있었던 일본의 `마쯔다(マツダ, Mazda)`가 제작했던 동명의 상용차, `마쯔다 봉고`를 라이센스 생산한 차종이다. 차명인 봉고는 한 때, 대한민국과 처음으로 수교한 아프리카 국가인 가봉의 전직 대통령, `오마르 봉고(El Hadj Omar Bongo Ondimba)`에서 따왔다는 속설이 있었으나, 실상은 단순히 마쯔다 봉고의 라이센스 생산품이기 때문에 그 이름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것에 불과했다. 마쯔다의 봉고는 아프리카산림영양(Tragelaphus eurycerus)의 영문 이름(Bongo)에서 가져온 것이다.


기아차의 초대 봉고는 마쯔다 봉고의 2세대 모델을 바탕으로 했다. 마쯔다의 2세대 봉고는 1970년대 후반부터 생산되기 시작했다. 마쯔다 봉고는 트럭 모델과 밴 모델의 두 가지 형태로 나뉘어서 생산되었으며, 당시 당시 경영 부진에 허덕이고 있었던 마쯔다의 살림을 받쳐주는 기둥이었다. 그리고 그 방계혈통인 기아 봉고 역시 승용차 라인을 잃고 위기에 빠진 기아의 살림을 책임진 모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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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봉고는 본가와 같이, 트럭 형태와 승합차 형태 모두가 생산되었다. 트럭 모델은 1980년부터 생산을 시작했고 ‘봉고차’의 유래가 되는 승합(미니버스) 모델은 1981년부터 생산 및 출시되었다.


그러나 봉고는 당시 위기에 빠진 기아차를 되살릴 수 있는 카드로 여겨지지 못했다. 예나 지금이나 중소형 상용차는 판매량 면에서 승용차 전체를 앞설 수 없었고 그만큼 기대되는 이익도 적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중소형 상용차의 시장성에 대한 회의론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10명 내외의 인원, 최대 1톤 남짓의 제한적인 수송량 때문이었다. 봉고가 성공하지 못한다면 당시 승용차 라인의 정리와 대규모 감원 등을 앞두고 있었던 기아산업이 한 순간에 몰락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막상 봉고가 출시되자, 봉고는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렸다. 봉고는 출시와 함께 80년대 전국의 자영업자들과 농/축/수산업 종사자들, 그리고 소규모 제조업 회사 등, ‘생계형 자동차’를 원했던 소비자들에게 날개 돋힌 듯 팔려 나갔다. 봉고는 종래의 상용차량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고 운용 상의 편리함으로 인해 높은 인기를 누렸다.


생계형을 넘어선, 국내 승용밴 시장의 대부

기아 봉고는 1톤급 소형 화물차 및 승합차의 역사를 써 내려갔다. 대한민국 승합차의 역사에 최초로 이름을 올린 차종은 현대 HD1000 미니버스지만 3년도 못 가서 강제로 물러나야 했기 때문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봉고차의 유래가 된 봉고 미니버스는 소위 ‘RV’로 표현되는 승용밴 시장을 개척한 모델이기도 하다. 오늘날에는 승용차로서의 미니밴(혹은 MPV)과 상용 승합차의 개념이 분리되어 있지만 당시 하나의 차에 여러 사람을 태울 수 있는 자동차는 봉고 미니버스가 유일했다. 여기에 당시 국내 자동차 산업의 수준에서는 일반적인 승용차와 상용차 간의 승차감이나 편의성 차이가 그리 크지 않았던 것도 봉고를 승용으로 사용하게 된 원인 중 하나였다.


또한 당시 대한민국의 가족 구성도 봉고 미니버스의 인기 요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21세기인 지금에는 핵가족이 일반화가 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핵가족화가 막 진행되기 시작한 시점이었기 때문에 3~4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이 결코 적지 않았다. 이러한 구성을 가진 가정에서 10명 내외의 인원을 한 차에 수용할 수 있는 봉고 미니버스는 매우 요긴했다. 또한 기아산업은 승용차를 만들어 팔 수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점을 강조하여 봉고를 자가용으로도 판매했다. 1984년도에는 주문진 등지에 봉고를 위한 전용 캠핑장까지 조성하는 등, 레저용도로서도 어필했다.


봉고 미니버스로 분류되는 승합 모델은 총 4열의 좌석을 갖춘 12인승 사양과 총 3열의 좌석을 갖춘 9인승 사양으로 만들어졌다. 12인승 사양은 ‘봉고 코치’, 9인승은 각각 ‘봉고 나인’과 ‘봉고 타운’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다. 1981년부터 생산을 개시한 봉고 미니버스는 1986년 후속 모델인 베스타(Besta)에 자리를 넘겨주고 단종될 때까지 약 9만(89,569)대 가까이 생산되며 기아의 살림을 책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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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봉고 미니버스의 직계 후손들은 보통명사가 되어버린 선조를 뛰어 넘는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봉고의 후속작인 베스타는 디젤 엔진의 결함 문제에 시달리면서 뒤늦게 등장한 현대 그레이스와 쌍용 이스타나를 판매량에서 앞서지 못했다. 그 후속작인 프레지오는 기아자동차의 독자개발 플랫폼과  독자개발 J2 디젤 엔진을 얹고 1995년 등장했으나 그마저도 그레이스와 이스타나를 앞서지 못했다. 프레지오는 2004년부터 커먼레일 디젤 엔진을 얹은 최신형의 봉고3 트럭 출시와 함께 ‘봉고 3 코치’라는 이름으로 페이스리프트 되었으나 내구성 문제로 인해 그리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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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봉고의 트럭 라인업은 기아가 현대자동차에 인수된 뒤에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으며 기아차의 살림을 거들고 있다. 특히 4륜구동 사양이나 1.2~1.5톤 사양 등 다수의 가지치기 모델을 두고 있어 선택의 폭이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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