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 주문맞춤제작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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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주문맞춤제작 현장
  • 모토야
  • 승인 2012.05.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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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사한 조명과 은은한 가죽향기가 어울린 작업장. 금발 여성이 재봉틀로 능숙하게 두 개의 가죽을 꿰매 잇는다. 두 손으로 가죽을 가볍게 짚고서 재봉틀 쪽으로 조금씩 밀어내길 반복한다. 가죽의 움직임을 고정할 틀 같은 건 없다. 여공의 손이 머뭇거리거나 흔들리면, 바느질 자국은 곧장 트위스트를 출 기세다. 지켜보는 내가 더 조마조마하다.


콧수염 난 남성은 센터콘솔에 가죽을 당겨 씌우느라 거의 무아지경 상태다. 딱 맞는 크기로 자른 가죽을 본드만 쓱쓱 발라 붙이는 게 아니다. 빠듯한 여유를 남기고 재단된 가죽을 핸드드라이어로 늘려가며 밀착시키는 고난이도 작업이다. 남은 부위는 직접 잘라내야 한다. 재료와 도구만 제공되는 셈이다. 따라서 완성도는 전적으로 장인의 손맛에 좌우된다.


한쪽엔 소 한 마리 크기의 가죽이 스카프처럼 수북이 걸렸다. 필요할 때마다 레이저로 스캐닝한 뒤 정밀기계로 최소한의 자투리만 남기고 오린다. 가죽은 손톱만한 부품, 손닿기조차 어려운 부위까지 빈틈없이 씌울 수 있다. 기자가 찾은 곳은 가죽제품 공방이 아닌, 포르쉐 공장이다. ‘속도’와 ‘규격화’로 점철된 여느 자동차 공장과 동떨어진 풍경이다.



포르쉐의 가격은 ‘고무줄’과 같다. 옵션이 워낙 다양해서다. 심지어 바닥에 까는 매트조차 추가로 돈을 치르고 사야 한다. 그러다 보니 포르셰 한국 수입판매원인 스투트가르트 스포츠카는 ‘코리안 패키지’를 마련했다. 국내 소비자가 선호하는 옵션을 미리 조합한 ‘모범답안’이다. 선택의 고민도 줄여주고 예산에 맞는지 가늠해보기도 편하니 이래저래 반응이 좋다.


하지만 반대로, 그 많은 옵션 이외의 선택도 얼마든 가능하다. “룸미러 테두리랑 송풍구의 날개, 시트벨트 버클까지 가죽으로 씌워주세요. 시트는 빨간색 가죽에 노란색 실로 꿰매주시고요. 차체는 초록, 휠은 빨강입니다. 아, 제 이름 문턱에 애플고딕체로 새기는 거 잊지 마세요.” 포르쉐에선 이렇게 귀찮은 주문을 쏟아낸들 ‘진상’ 손님 취급받을 걱정이 없다.




포르쉐는 고객이 원하는 요구를 빠짐없이 반영해 세상에 한 대뿐인 스포츠카를 만들어 준다. 맞춤주문생산 프로그램인 ‘포르쉐 익스클루시브’을 갖춘 덕분이다. 시작은 포르쉐의 초창기인 1948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엔 생산대수가 적어 차라리 편했다. 오늘날엔 연간 10만 대 이상 찍어낸다. 그러나 포르쉐는 맞춤프로그램을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다.


맞춤프로그램에 힘입어 포르쉐는 ‘다품종 소량생산’ 전략을 더욱 강화시킬 수 있었다. 911이 대표적이다. 같은 엔진과 뼈대를 쓰지만 출력과 굴림방식 등에 따라 10가지 넘는 차종으로 나뉜다. 스페셜 버전 만들기도 한층 쉽다. 356대 한정판인 911 스피드스터가 좋은 예다. 익스클루시브 라인에서 지붕을 개조하고, 고객이 주문한 컬러의 인테리어로 완성한다.


포르쉐는 지난 1986년 맞춤프로그램을 체계화시켰다. ‘포르쉐 익스클루시브’란 타이틀도 붙였다. 한 부유한 중동 고객의 주문이 계기가 됐다. 그는 포르쉐 경주차를 일반도로에서 합법적으로 달릴 수 있게 개조해달라고 요청했다. 포르쉐는 고민 끝에 최정예 장인을 뽑아 제작팀을 꾸렸다. 아울러 기존 포르쉐 공장 옆에 별도의 작업장과 전시장을 마련했다.




올해로 ‘포르쉐 익스클루시브’가 출범한 지 25년째다. 이를 기념해 포르쉐는 전 세계의 언론을 주펜하우젠으로 초청했다. 지난 4월 27일,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포르쉐 익스클루시브’ 작업장을 찾았다. 누군가 틀어놓은 음악이 연신 쿵쿵대는 가운데, 흰머리 희끗한 직원들이 포르쉐 사이를 느릿느릿 오갔다. 길 건너의 일사 분란한 포르쉐 공장과 전연 딴판이다.


‘포르쉐 익스클루시브’ 작업장에선 총 16명의 직원이 2교대로 작업한다. 라인은 작업속도에 따라 3가지로 나뉜다. 가장 느린 라인의 차는 아예 움직일 생각을 앉고 부품을 한 가득 부려 놨다. 이곳에선 하루 30~35대의 차가 맞춤 제작된다. 한 대 당 평균 3시간 30분이 걸린다. 그러나 별 의미 없는 통계다. 한 대에 20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차체와 휠 도색은 길 건너 공장에서 소화한다. 이 두 가지 컬러의 조합만 800가지 가까이 된다. 즐겨 매는 넥타이나 좋아하는 매니큐어 컬러도 원하면 색을 조합해 맞춰준다. 가죽 인테리어 작업은 글머리에 소개한 별도의 작업장에서 진행된다. 맞춤컬러 인테리어의 조합 역시 거의 무한대다. 포르쉐가 가죽의 가공 및 염색까지 해치우는 까닭이다.




전 세계 자동차 업체 가운데 가죽을 직접 가공하는 업체는 포르쉐뿐이다. 가죽은 최상급만 고집한다. 알프스 목초지에서 방목해 키운 오스트리아산 쇠가죽을 쓴다. 공간이 빠듯한 사육장에서 키운 육우(肉牛)는 가죽에 상처가 많기 때문이다. 가죽은 소 한 마리에서 벗겨낸 모양 그대로 염색을 해서 가져 온다. 가죽은 한 장 한 장 품질검사를 거친다.


경험 많은 장인이 육안(肉眼)으로 흠집을 가려낸다. 이 과정에서 절반 정도를 걸러낸다. 여기서 불합격된 가죽과 자르고 남은 자투리는 명품 브랜드에 판다. 키홀더나 핸드백의 테두리처럼 오밀조밀한 부위를 만들 때 쓴다. 가죽을 다루는 도구는 평범하다. 커터와 가위 정도다. 그러나 장인의 손길을 거치면서, 넓적한 가죽은 포르쉐의 미끈한 속살로 거듭난다.



‘포르쉐 익스클루시브’ 전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전문 컨설턴트가 고객과 상담을 통해 주문을 완성하고, 또 제작이 끝난 차를 고객에게 넘겨주는 곳이다. ‘포르셰 익스클루시브’의 시작점이자 종착역인 셈이다. 맞춤 제작된 포르쉐를 한 눈에 둘러볼 수 있는 기회였다. 범상치 않으려니 짐작은 했다. 그런데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전시장 한 복판에 선 911 카레라 카브리올레의 컬러가 딱 연분홍빛 소시지였다. 지붕엔 자주색 하드톱을 씌웠다. 실내는 하드톱의 색깔과 꼭 맞춘 가죽으로 도배했다. 멀리서 보면 서로 다른 종류의 햄을 층층이 쌓은 분위기다. 또 한 대의 911은 쪽빛 차체에 눈부시게 흰 인테리어를 짝지었다. 그리스 크레타섬의 풍경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했다.


“이 정도로 놀라실 것 없어요. 심지어 고객의 요청에 따라 국기 색깔로 인테리어를 꾸며드린 적도 있어요. 빨강과 녹색, 흰색이 부위별로 어우러졌죠. 공장과 밀접하게 연계해 작업해야하는 까닭에 여기에서 먼 라이프치히 공장에서 만드는 카이엔과 파나메라엔 제한적으로 적용되지요.” 20년 경력의 ‘포르쉐 익스클루시브’ 컨설턴트 미하엘 씨의 설명이었다.


아울러 그는 “포르쉐 본사에서 익스클루시브 관련 부품을 개발하고 테스트하는 연구원만 50~60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비용은 의외로 터무니없지 않다. 실내 가죽을 취향대로 조합하는 작업이 6천 유로, 새로운 색을 조합해 차체에 칠하는 비용이 1천 유로다. 왕족이나 스타뿐 아니라 ‘평범한’ 포르쉐 오너에게도 이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이유다.




주문 과정은 디지털화되어 있다. ‘카 컨피규레이터’라는 프로그램을 쓴다. 대형화면에 다양한 조합을 가상으로 띄워 미리 살펴볼 수 있다. 가죽과 목재, 실밥은 실물로 보고 만져볼 수 있다. 컨설턴트는 고객의 흐릿한 꿈을 또렷한 현실로 바꿀 수 있도록 돕는다. 고객의 요구에 무조건 맞장구만 쳐주는 건 아니다. 경험을 토대로 더 나은 제안도 서슴지 않는다.


전시장 건너편의 포르쉐 뮤지엄에서는 ‘포르쉐 익스클루시브’ 25주년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꼭대기 층의 특설무대에서, 카타르 왕족이 주문했다는 황금색 포르쉐 959가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그가 주문한 5대 가운데 한 대였다. ‘포르쉐 익스클루시브’ 전시장은 전 세계에 16곳 있다. 그 중 하나가 한국에 있다. 서울 인근에 자리한 ‘포르쉐 센터 분당’이다.


글 김기범|사진 포르쉐





글 김기범|사진 포르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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