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의 無쓸모, 야마토급 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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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의 無쓸모, 야마토급 전함
  • 모토야편집부
  • 승인 2017.06.0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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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가장 큰 피해를 낸 전쟁인 제 2차 세계대전에는 온갖 종류의 무기들이 생산되고 사용되었다. 지상에서는 수많은 전차(戰車)가 등장하여 이름을 알렸고, 하늘에서는 항공기가, 그리고 바다에서는 크고 작은 군함들이 등장하여 그 이름을 남겼다. 특히, 태평양 전선에서는 해군의 역할이 굉장히 크게 작용했다. 사방이 바다와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었던 태평양 전선에서 군함은 곧 전력이었다. 

그 중에서도 태평양 전선에서의 일본 해군을 상징하면서 일본의 극우세력들에 의해 신격화까지 된 함선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야마토(大和)급 전함이다.

야마토급 전함은 구 일본 해군이 건조한 전함(전함(戰艦) Battleship)으로, 역사상 최대급의 크기와 최대의 배수량을 가진 수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이다. 수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은 대체로 거함거포주의에 입각하여, 거대한 함체에 대구경 주포를 다수 탑재하는 형태의 전함을 말한다. 그 중에서도 야마토급 전함은 2차 대전을 전후하여 등장한 다양한 수퍼 드레드노트급 전함들 중에서도 가장 크고 무거운 전함이었다.

일본이 이렇게 거대한 전함을 짓게 된 계기는 그 동안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1921~1922)과 런던 해군 군축 조약(1930)에 있었다. 이로 인해 일본은 영미권을 위시한 서구 열강들의 각종 규제로 인한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불이익을 견디다 못한 일본이 조약을 탈퇴하면서 규격 외의 초 거대전함을 본격적으로 구상하기 시작했는데, 이 때 야마토급 전함의 설계 안이 나오게 되었다. 일본은 이 전무후무한 거대 전함을 태평양 전쟁 개전 전인 1937년부터 짓기 시작했으며, 한 척만 짓지도 않았다. 야마토급 전함은 당초 8번함까지 계획되었으나, 설계 및 예산 상의 문제로 취소되었고, 실제로 건조된 함선은 네임 쉽(Name Ship)인 1번함 야마토(大和)와 2번함 무사시(武蔵), 그리고 후일 항공모함으로 개조된 3번함 시나노(信濃)의 세 척이었다.

함명인 야마토는 고대의 일본에 존재했다고 알려진 국가인 `야마토(大和)`로 이해하는 경우가 잦은 데, 이는 오류다. 일본군은 전통적으로 전함에는 일본의 번국(藩國: 제후국과 유사한 개념)들의 이름을 붙여 왔으며, 야마토의 어원 역시, 고대 국가 야마토가 아닌, 번국 중 하나였던 야마토노쿠니(大和国)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같은 원리로, 2번함인 무사시는 무사시노쿠니(武蔵国)에서, 3번함인 시나노는 시나노노쿠니(信濃国)에서 차용했다.

무시무시한 스펙

야마토급 전함은 설계 상 선체의 전장은 263m로, 아이오와급의 270m에 비해 7m 짧았으나, 전폭은 38.9m로 아이오와급 전함의 32.94m보다 6m가량 넓었다. 흘수선(선체가 물에 잠기는 높이)은 11m에 달했다. 함선의 무게하고 할 수 있는 배수량 역시 기준 배수량(만재 배수량에서 연료와 보일러용수를 뺀 배수량)만 6만 5,027톤에, 만재배수량은 7만 1,659톤에 달했다. 이 기록은 당대의 수퍼 드레드노트급 전함들 중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며, 전함의 시대가 끝나 버린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규모의 전함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거대한 몸집에 맞게, 410mm에 달하는 측면 장갑과 226.5mm의 갑판장갑, 함교는 500mm에 달하는 장갑을 둘렀다.

그런데 희한한 점은 이 무지막지하게 거대한 전함이 사실은 `소형화`의 개념을 일부 적용하고 있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18.1인치라는 거대한 구경의 주포를 사용하면서도 함체를 당대의 16인치급 함포를 사용하는 전함들의 체적보다 조금 더 큰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설계는 과도한 자재의 자재의 소모와 공기(工期)를 지연을 막고자 함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후소급 전함을 필두로 순수 일본산 전함들의 상징이자 고질병이었던 거대한 높이의 함교를 대폭 낮추는 데 성공했다. 또한, 일본군 전함들 중 최초로 배가 파도를 생성시켜 받는 저항을 줄여주는 구상선수(Bulbows Bow)를 처음으로 도입하기도 하는 등, 여러모로 일본군의 군함으로서는 선진적인 설계가 돋보였다. 

무장도 어마어마했다. 야마토급의 가장 큰 자랑거리인 주포는 전함의 주포로서는 세계 최대 구경을 자랑하는 18.1인치, 정확히는 46cm(!)에 달하는 45구경장 함포였다. 이 무지막지한 거포는 함선에 탑재된 대포 중 가장 거대한 대포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까지 했다. 그리고 야마토급 전함은 이 거포를 각 3문씩 총 3기의 주포탑에 장착하여 전방 2기, 후방 1기의 총 9문을 탑재했다. 이 때문에 야마토급 전함은 일본 해군 최초의 3연장 주포탑을 탑재한 전함이기도 하다. 그 동안 다른 일본의 전함들이 기술력의 한계로 말미암아 2연장 주포탑을 4~6기씩 배치하는 과무장으로 오만 가지 트러블을 일으켰던 후소급, 이세급, 나가토급에 비하면 꽤나 진보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이 거포들은 전면 660mm의 두터운 장갑을 자랑하는 포탑에 의해 방어되었다. 46cm 구경의 함포 3기를 장착한 포탑은 1기 당 중량이 무려 2,760톤에 달했다. 이는 일본의 최후기형 구축함인 아키즈키급의 기준배수량(2,700톤)보다도 더 무거운 정도였다.

또한, 그 동안 일본군이 줄곧 사용해 왔던 구시대적이고 위험한 포곽식 부포를 사용하지 않았다. 포곽식 부포는 대포의 각도조절이 크게 제한을 받는데다, 포의 후방을 모든 부포들이 공유하는 구조, 그러니까 범선시대의 포갑판과 유사했기 때문에 유폭의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음은 물론, 방어력도 크게 떨어졌다. 그래서 야마토급 전함은 일본군의 전함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부포 전량을 회전 포탑에 실었다. 야마토급에 사용된 부포는 모가미급 중순양함의 15.5cm 60구경장 함포를 가져왔으며, 총 12문을 각 3문씩 4기의 회전식 포탑에 장착하여 탑재했다. 적 함재기의 공격으로부터 함선을 방어하기 위한 대공포는 12.7cm 40구경장 2연장 대공포를 6기의 포탑에 총 12문을 실었고, 25mm 3연장 기관포좌 8기와 13.2mm 2연장 기관총좌 2기로 이를 보조했다. 

이 거대한 배를 움직이게 하는 데에는 정규 인원만 2,500명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 2,500명의 장병들 모두에게 일본군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선실(!)과 침대(!!)라는 어마어마한 특전이 제공되었다. 옛부터 일본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던 군축 조약 탓에, 개함우월주의(個艦優越主義)에 지나치게 몰입한 나머지, 지나친 과무장으로 군함의 거주성을 엉망으로 만들어 왔던 일본군의 다른 모든 군함들과는 격이 달랐다.

이렇게 야마토급 전함은 실로 대단하기 그지 없는 사양을 자랑하며, 가장 진보된 설계가 투입되어, 일본 해군의 자랑으로 통할 만 했다. 하지만 야마토급 전함은 일본군이 만들어 썼던 무기체계들이 다들 그렇듯,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러나...

일단 건조하고 유지하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들었다. 야마토급 전함 한 척의 건함(建艦) 예산은 당시 기준으로 무려 1억엔을 상회했다. 지금의 가치로만 해도 한화로 약 10조원을 우습게 넘는 금액이며, 당시 일본 국가 예산의 1%(!)에 해당하는 황당무계한 금액이었다. 그 만큼 유지비도 어마어마하게 소모했다. 우선, 야마토급 전함은 항속거리가 대단히 짧았다. 즉, 연비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다. 항속거리가 짧으면 작전 반경 또한 짧아진다. 승조원도 많았으므로, 필요한 보급 물자를 확보하는 데에도 많은 비용이 들었다.

속도도 문제였다. 추진력에 비해, 기관부의 용적이 지나치게 크고, 성능도 비교적 좋지 못했다. 자동차로 치면, 배기량에 비해 출력이 나빴다는 이야기다. 야마토급 전함은 로호 함본식 보일러 12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증기 압력으로 4축 4기의 함본식 증기터빈을 구동하는데, 출력이 15만 축 마력(shp, Shaft Horsepower)이었다. 속도는 최고 27노트(약 50km/h), 과부하 시 제원 상 29노트(약 53.7km/h)에 불과했다. 야마토보다 이른 시기에 건조된 프랑스 해군의 4만톤급 전함인 리슐리외급 전함이 야마토의 절반인 6기의 보일러로 동일한 출력을 내고 있었다는 사실은 야마토의 기관부 성능이 나빴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리슐리외의 경우에는 최대속도도 전함으로서는 비교적 빠른 속도였던 30노트를 기록하여, 야마토급 전함의 27노트보다 월등했다 태평양전쟁 개전 이후, 전함들이 항공모함, 순양함 등의 고속 함선들과 합동으로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하면서, 전함들의 트렌드가 30노트 이상의 `고속전함`으로 넘어간 지 오래인데도 불구하고, 야마토는 이에 역행하는 결과물로 만들어졌던 것이다. 이 느린 속도는 전쟁 내내 야마토급 전함의 발목을 붙잡는 구실이 된다.

자재도 부족했다. 당시 서구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약한 공업 능력을 가졌던 일본으로서는 야마토급 전함에 올라갈 함포를 비롯한 제반 자재를 충분히 생산하지도 못했다. 일본이 종전 때까지 제작했던 야마토급 전함용 46cm 함포의 총 개수는 27문이었고, 이 중 1문은 시험 사격에 사용하느라 함선에 싣지 못했다. 이는 큰 문제다. 전함의 대구경 함포는 지속적인 교체가 필요한 품목이고, 대구경 함포일수록 포신에 가해지는 부담이 급격하게 커지기 때문에 대체로 수명이 짧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야마토급의 함포는 일본이 가지고 있었던 제철 기술의 한계 때문에 그 수명이 더욱 짧았다. 이런 상황에서 예비부품이 불충분하다는 이야기는 전선에서 활동을 제한되게 만들었다.

전투를 지원하기 위한 시설도 부족했다. 레이더가 설치되어 있기는 했지만, 대공 사격 통제는 고사하고 수상함 타격만을 주포와 부포의 사격 통제만을 지원할 수 있었다. 구상선수 내부에는 잠수함을 탐지할 수 있는 수중 음파 탐지기를 설치했지만, 이마저도 기술력이 뒤떨어져서 수시로 오작동을 일으키는 바람에, 쓸모가 없었다.

대공포의 경우는 더욱 심각했다. 대부분의 대공포좌가 노천식인데다, 제대로 된 포 방패도 준비되어 있지 않아, 적 함재기의 기총소사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앞서 언급한 레이더 탓에, 제대로 된 사격통제가 불가능하여, 대공포 조작요원들이 `알아서` 대응해야만 했으며, 대공포 자체도 명중률과 신뢰도를 비롯하여, 제반 성능이 크게 떨어졌기에, 대공능력이 타국의 함선에 비해 한참 모자랄 수밖에 없었다.

또 한가지의 심각한 문제점으로는 부포탑의 방어력과 그로 인한 구조 상의 위험성이었다. 전술했다시피, 야마토급의 부포는 모가미급 중순양함의 15.5cm 60구경장 함포를 사용했고, 모가미급과 같이, 3연장 포탑에 장착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 포탑의 빈약한 방어력에 있었다. 야마토급의 부포탑에 적용된 장갑은 고작 25mm에 불과했다. 이 정도로 빈약한 장갑은 전함의 부포가 상대해야 할 순양함은 물론, 심지어 구축함의 5인치급 포탄에도 파괴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설상가상으로, 설계 상 주포와 부포의 탄약고가 서로 인접해 있다는 점은 실로 위험천만한 요소였다. 이렇게 되면 상대적으로 빈약한 부포가 파괴되거나 화재가 발생하는 경우, 부포에서 발생한 화재가 주포 화약고에 옮겨 붙거나, 부포 화약고의 폭발로 주포 화약고가 유폭을 일으킬 가능성이 농후해진다.

일본 해군, 야마토급 최대의 주적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고질적인 문제는 바로 야마토급의 제작 및 사용 주체인 일본 해군이었다. 애당초 야마토급 전함은 `함대결전사상`에 의거하여 지어진 배였다. 함대결전사상이란, 양측의 함대가 해상에 모여서 함대 간의 회전(會戰)을 벌이는 개념의 전근대적인 개념으로, 이미 유틀란트 해전 이후로 해상전이 이러한 양상으로 흘러가는 일이 없었다. 애초에 장기적인 계획과 안목도 없었으면서도 경직되기까지 했던 일본군은 정작 진짜로 전함이 필요한 임무에는 좀체 내보내지 않았으며, 온갖 이유를 들어, 야마토의 기동을 제한했다. `해군의 상징` 운운하는 상층부의 작태는 덤이었다. 이 때문에 야마토급 전함들은 기지에서 대기하는 일이 일상이었고, 이 때문에 1번함 야마토는 `야마토 호텔`로, 2번함 무사시는 `무사시 여관`이라며 전쟁 내내 조롱 받았다.

그리고 일본군이 마지막으로 총력을 기울인 레이테 만 해전에서 일본군은 두 거함을 드디어 전장에 내보낸다. 일본군은 전투 초기인 시부얀 해전에서 야마토급 2번함 무사시를 미끼로 사용했다. 무사시는 이 임무를 위해 보다 밝은 색의 도장을 하고 있었으며, 이 때문에 수많은 미군 함재기들의 집중공격을 받았다. 무사시는 그 거대한 주포를 이용하여 `3식 통상탄`이라는, 일종의 유산탄(榴散彈)을 발사, 대공 화망을 구축하려 했으나, 주포 발사의 충격이 지나치게 커서 대공포들이 무너지기에 이른다. 이 때문에 가뜩이나 모자란 성능의 대공포들이 손실을 입는 바람에, 미군 함재기의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리고 무사시는 미 해군의 함재기들에게 수 십 발의 항공 폭탄과 어뢰를 얻어맞고 격침되었다.

1번함 야마토는 사마르 해전에서 미 해군의 호위항모전단 태피 3(TAFFY 3) 소속이었던 플래처급 구축함 USS 히어만(DD-532)이 투발한 어뢰들에 쫓겨 도망쳤다. 이 어뢰들은 본래 동행하던 공고급 순양전함 `하루나`를 노린 어뢰였으나, 하루나는 이 어뢰들을 회피하는 데 성공했고, 바로 뒤에 있던 야마토에게 넘어 간 것. 야마토는 그 거대한 함체를 비틀어 어뢰를 회피하려다 침로를 잘못 잡는 바람에 어뢰의 항주 경로에 걸려들게 되었고, 이후 장장 16km를 어뢰의 연료가 떨어질때까지 도주하게 되었다. 참고로 저 플래처급 구축함은 만재배수량이 2,500톤에 불과하다. 그렇다. 야마토의 주포탑 하나보다도 가벼운 구축함이다! 세계 최대의 거함이 고작 자기 주포탑 하나보다도 가벼운 구축함한테 쫓겨난 꼴이었다!

이 거함, 그리고 무시무시한 전함들을 상대로 용전을 펼친 태피 3는 6척의 호위항공모함과 3척의 구축함, 그리고 4척의 호위함으로 구성된 소규모 함대로, 이들이 조우한 일본군의 주력 함대화는 전면전으로는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들이 마주한 일본군의 주력함대에는 야마토를 비롯하여 야마토의 취역 이전부터 총 기함이었던 나가토(長門), 공고급 순양전함 1번함 공고와 3번함 하루나 등, 전함 4척을 총 8척의 순양함과 11척의 구축함이 호위하고 있었던 대규모 부대였기 때문이다. 태피 3의 총 배수량은 야마토 한 척과 비슷한 정도였다. 그리고 태피 3의 구축함대 소속 USS 존스턴(DD-557)과 히어만 등의 구축함들이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가 어뢰를 투사함으로써 이 거함의 무리들을 쫓아내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그리고 결국 일본 해군은 레이테 만 해전을 끝으로 대부분의 전력을 상실한다.

레이테 만에서 궤멸적으로 패배한 일본 해군은 야마토를 오키나와로 상륙해 오는 미군을 막기 위한 작전에 투입했다. 그런데 이 작전의 내용이 가관인 것이, 편도 연료로 오키나와 해안에 도달하여 그 상태로 해안 모래밭에 좌초시켜서 고정 포대로 만들어, 다가오는 미국의 함대를 막으라는, 실로 어처구니가 없는 작전이었다. 이들이 이러한 작전을 세운 배경에는 일본 해군을 상징하는 존재이자, 당시 일본 해군이 가진 최대의 전력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패전을 목전에 둔 때였고, 해군이 `열심히 싸웠다`는 변명을 하기 위해 야마토를 가라앉힌다는 정신 나간 작전이었다. 일본은 마지막까지 자신들의 상징이라 칭했던 거대 전함을 무의미하게 소모하는 작태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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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마토급 전함 1번함 야마토(大和)(출처:Wikipedia)

야마토는 이 작전에서 이동 중 100기가 넘는 미군 항공기의 공격을 받았다. 미 해군 항공대는 배의 좌현에 집중적으로 공격을 가하여 선체가 기울어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기울어진 야마토는 급기야 주포 탄약고에 있던 탄약들이 선저로 쏟아지면서 충돌했고, 이는 탄약고 유폭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함내에 실었던 무려 1천여발의 포탄들이 한꺼번에 유폭되면서 버섯구름을 일으키며 폭침했다. 

이렇게 비상식적이기 이를 데 없는 함선의 제작/사용 주체 때문에, 전함다운 활약도 해보지 못한 채 허망하게 최후를 맞이했다. 그들이 그토록 자랑해 마지 않던 46cm 주포는 단 한 척의 적함도 격침시킨 적이 없었으며, 함대결전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본군의 경직성과 비상식적인 운용으로 인한 초라하기 짝이 없는 결말을 맺었다. 그리고 야마토급 전함들 침몰은 곧 거함거포주의의 완전한 종식을 알리는 효시로 작용했다.

해군의 상징?

또한, 야마토급 전함의 상징성이라는 것도 실상은 일본 해군 자신들에게만 국한되어 있었다. 일본군은 대전 중 야마토급 전함들에 대해 해군 관계자가 아닌 이상, 설사 그게 자국민일지라도, 누구도 알지 못하게 기밀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관함식 등의 행사에서 일반에 공개하지 않았음은 물론, 관련 사진이나 언론 보도 역시 철저하게 통제했다.

그래서 정작 당시의 일본 국민들에게 자국 해군의 자랑으로 알려진 배는 따로 있었다. 일본 최초의 16인치급 주포를 탑재한 수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이자, 야마토급 전함의 취역 직전까지 20여년 간 총 기함 노릇을 했던 나가토급 전함 1번함 `나가토(長門)`였다. 야마토급 전함에 대한 정보가 공개되기 시작한 것은 일본의 패전과 함께 미국이 관련 자료를 공개하면서부터였다. 극우세력들이 야마토급 전함의 신성화 작업을 시작한 것도 이 때를 전후해서였다. 야마토급 전함의 신성화 작업은 언론과 매체를 통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지금도 양산되고 있는 수많은 가공전기와 극우미디어물 등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전과는? 없다시피 했다. 미군의 항공기 몇 기를 격추한 전과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전함의 전과라고 하기에는 새 발의 피 조차도 되지 못하는 수준이다. 속된 말로 `먹튀(먹고 튀다)`로 봐도 무방한 군함이 바로 야마토급 전함이다. 그러므로 야마토급 전함의 실상과 운용을 살펴 보면, 야마토급 전함을 신성시하는 행위가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 행위인가를 알 수 있다. 야마토급 전함은 전근대적인 함대결전사상을 바탕으로 수준 미달의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불안정한 완성도, 무능하기 이루 말할 데 없는 제작 및 사용 주체 등의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뒤섞인 결과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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