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고도 뜨거운 심장, 엔진] 크라이슬러 헤미 엔진 최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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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갑고도 뜨거운 심장, 엔진] 크라이슬러 헤미 엔진 최종회
  • 박병하
  • 승인 2017.06.09 1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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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의 엔진은 두 가지의 상반된 속성을 가지고 있다. 한 가지는 차가움이고, 나머지 하나는 뜨거움이다. 이렇게 두 가지의 상반된 속성을 갖는 이유는 금속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증기기관으로부터 시작된 엔진의 역사이래, 인류는 항상 금속으로 엔진을 만들어 왔다. 최근에는 재료역학의 발달로 인해, 금속 외의 다른 합성 재료를 사용하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지만, 여전히 지구상의 모든 엔진의 주류는 금속이다. 강철과 알루미늄 등의 금속은 엔진이 잠에서 깨어난 시점부터 가동 시간 내내 발생하는 고열과 마찰 등의 모든 부담을 감당할 수 있으며, 대량생산에도 적합하기 때문이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차가우면서도 뜨거운 자동차의 심장, 엔진의 세계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본 기사에서 다룰 수많은 자동차의 엔진들 중 세 번째 이야기는 한 때 GM, 포드와 함께 미국의 빅3로 불렸었던 기업, 크라이슬러의 `헤미(HEMI)` 엔진의 마지막 이야기다.



지난 기사들에서는 크라이슬러 헤미 엔진의 탄생부터 황금기를 다뤘다. 특유의 반구형 연소실(Hemispherical combustion chamber)을 채용한 데서 그 이름을 가져온 헤미 엔진은 본래 크라이슬러가 항공분야에서 도입, 성능으로 우수함을 증명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버린 데다, 후일 전술기용 엔진들의 주류가 제트엔진으로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실용화되지 못했다. 이 기술은 자동차 분야로 이전되었고, 이를 통해 초대 크라이슬러 헤미 엔진이 탄생하게 된다.


초대 헤미 엔진은 당시 크라이슬러 산하에 있었던 수많은 제조사들에 걸쳐 널리 사용되었고, 60년대 등장한 2세대 헤미 엔진의 원류인 426 레이스 헤미(426 Race HEMI) 엔진은 당대의 미국 모터스포츠계를 주름잡았던 최강급 성능을 자랑했다. 이 엔진을 일반도로용으로 개량한 스트리트 헤미(Street HEMI) 엔진은 크라이슬러 계열 브랜드들의 머슬카들에 탑재되면서 명작으로 남는다.


크라이슬러 HEMI 엔진의 현주소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벌어진 두 차례의 석유 파동과 경제위기, 그리고 각종 환경 문제가 대두되면서 이러한 대배기량 다기통 엔진들은 그 입지가 나날이 줄어들고 있다. 특히, 오늘날 자동차 산업계에서는 연비와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대해 제조사별로 쿼터를 정해두고 이 쿼터를 초과할 때마다 막대한 벌금을 부과한다. 전세계 자동차 산업계를 강타한 다운사이징 열풍과 친환경차 개발붐이 일기 시작한 이면에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쿼터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 과거부터 6기통 엔진을 주력으로 삼았던 유럽계 고급브랜드들은 너나 할 것없이 4기통 터보 엔진으로 갈아 탔다. 심지어는 V8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포드를 필두로 강도 높은 다운사이징을 시도하고 있다. 특히, 포드의 경우는 `에코부스트(Ecoboost)` 엔진 라인업을 통해 V8 엔진 수요가 가장 큰 픽업트럭에까지 다운사이징 엔진을 채용하고 있다.



하지만 크라이슬러는 이러한 자동차 산업계의 상황에서도 여전히 헤미의 이름을 물려받은 대배기량의 V8 엔진들을 생산하고 있다. 현재 생산되고 있는 크라이슬러 헤미 엔진은 3세대에 해당하는 엔진으로, 여전히 고전적인 OHV(OverHead Valve) 방식으로 작동되지만, 그 외에는 각종 현대적인 기술을 접목한 점이 이전 시대의 것과는 다르다.



오늘날의 3세대 크라이슬러 헤미엔진은 2003년에 처음 등장했다. 71년, 스트리트 헤미의 단종 이래 32년만에 다시 등장한 헤미 엔진이다. 하지만 연소실의 내부는 트윈스파크플러그 채용 등으로 인해 반구형에 가까웠던 선조들과는 거리가 있다. 실린터 헤드는 알루미늄합금으로 만들어지지만, 블록은 주철 블록을 사용한다.



현재의 3세대 헤미 엔진은 선조들과 같이, 고전적인 푸시로드식 OHV 방식을 사용한다. 하지만 그 외에는 온갖 현대적인 기술들로 무장하고 있다. 시퀀셜 멀티포트 인젝션 연료분사 기구를 시작으로 가변밸브타이밍 기구(Variable valve Timing, 이하 VVT)를 기본 적용한다. 여기에 MDS(Multi-Displacement System)라는 이름의 실린더 컷 오프(Cylinder Cut-off) 기술도 적용되어 있다. 이 기술을 통해, 현대의 크라이슬러 헤미 V8 엔진들은 고속도로에서의 정속 주행 등, 적은 양의 동력만 필요한 상황에서 8기의 실린더 중 2기를 휴지(休止)상태로 만들어 연료의 낭비를 막는다.



현재 크라이슬러 계열사 내에서 주류로 사용되고 있는 3세대 V8 엔진은 5.7리터 사양이다. 이 엔진은 크라이슬러 300 세단을 비롯하여 닷지 차저, 닷지 챌린저의 R/T(Road & Track) 모델, 닷지의 중형 SUV 듀랑고(Durango), 그리고 램트럭(RAM Trucks)의 각종 픽업트럭 모델들에 두루 사용되고 있다. 출시 초기에는 모델에 따라 340~345마력 사양으로 생산되었으나, 최근에는 모델에 따라 357~395마력 사양으로 생산되고 있다. 이 엔진은 2003년과 2007년, 그리고 2009년에 워즈오토(Ward’s Auto) 선정 세계 10대 엔진에 이름을 올렸다.



이 외에는 크라이슬러의 고성능 디비전, `SRT` 모델들을 위한 고성능 헤미 엔진들이 있다. 가장 먼저 시장에 등장한 것은 2005년 선보인 6.1리터 헤미 엔진으로, 425마력/6,200rpm의 최고출력과 58.0kg.m/4,800rpm의 최대토크를 발휘했다. 이 엔진은 단조 크랭크샤프트와 경량 피스톤, 강화 커넥팅 로드 등이 적용되었으며, 고회전형으로 설계된 주조 알루미늄 흡기 매니폴드를 적용했다. 이 엔진은 2005년 선보인 크라이슬러 300C SRT-8과 닷지 매그넘 SRT-8을 통해 처음 공개되었고, 이후 닷지 차저 SRT-8과 지프 그랜드 체로키 SRT-8, 그리고 닷지 챌린저 SRT-8 순으로 탑재되었다. 3세대 헤미 엔진의 특징 중 하나인 MDS는 적용되지 않는다.



2011년에는 6.4리터 헤미, 이른바 `392헤미(392HEMI)`엔진이 등장하여, 6.1리터 헤미 엔진을 대체했다. 숫자 `392`는 이 엔진의 배기량이 `392입방인치`임을 말한다. 6.1리터와 같은 자연흡배기 엔진이며, `아파치(Apache)`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최고출력은 출시 초기에는 최고출력 470마력, 최대토크 64.9kg.m 사양이었으나, 2015년형부터는 최고출력 485마력, 최대토크 65.6kg.m로 성능이 향상되었다. 자동변속기 사양에 한하여 MDS를 지원한다는 점도 특징이다.



이 엔진은 현재 닷지 차저와 닷지 챌린저의 R/T Scat Pack 모델과 닷지 차저 SRT 392, 닷지 챌린저 SRT 392, 지프 그랜드 체로키 SRT, 크라이슬러 300 SRT 등에 사용하고 있다. 또한, 보다 큰 출력과 토크를 필요로 하는 램트럭의 헤비듀티급 픽업트럭인 RAM 2500과 RAM 3500 등에 이 엔진의 변형이 사용된다.



가장 최근의 양산 헤미 엔진으로는 6.2리터 헤미 헬캣(Hellcat) 엔진이 있다. 이름은 태평양전쟁 시절, 구 일본군의 수많은 제로 전투기들을 격추시킨 `제로기의 천적`이자 `지옥에서 올라온 고양이`로 불리는 그루먼 사의 `F6F 헬캣` 전투기에서 그 이름을 가져왔다. 이 엔진은 6.4리터 헤미 엔진과 동일한 103.9mm의 보어(실린더 내경)와 5.7리터 헤미 엔진과 동일한 90.9mm의 스트로크(행정 길이)를 가진 숏 스트로크 엔진이다. 작동은 여전히 푸시로드식 OHV를 사용하고 있으며, 연료분사도 시퀀셜 멀티포트 분사방식을 쓰고 있다.



배기량은 앞선 6.4리터 보다 다소 적지만, 성능의 차이는 판이하다. 이 엔진에는 다른 헤미 엔진들과는 달리, 수퍼차저가 탑재되어 있다. 이 수퍼차저에 힘입어, 6.2리터 헤미 헬캣 엔진은 최고 707마력의 괴물같은 출력을 자랑한다. 이는 현재 8.4리터 V10 엔진을 사용하는 SRT 바이퍼 GTS보다도 높은 수치다. 최대토크는 89.8kg.m에 달하는데, 이마저도 변속기의 보호를 위해 성능을 억제시킨 것이다. 이 엔진을 탑재하는 차는 닷지 차저 SRT 헬캣과 닷지 챌린저 SRT 헬캣의 2종이다. 이 엔진을 얹은 두 머슬카 중 차저 헬캣은 2톤 남짓한 공차중량을 갖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0-60mph(약 97km/h) 가속에 단 3초에 끊어버리고, 단 11초만에 쿼터마일(1/4마일, 약 404m)을 주파는 드래그 머신급 가속력을 자랑한다. SRT는 트랙에서 측정한 닷지 차저 SRT 헬캣의 최고속도는 204mph(약 328km/h)에 달한다고 주장한다.



크라이슬러 헤미 엔진은 크라이슬러와 역사를 함께 해 온 엔진이다. 대배기량 엔진에 대한 대접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는 오늘이지만, 여전히 강력한 동력과 신뢰도를 가진 대배기량 엔진의 수요는 존재한다. 헤미 엔진은 앞으로도 대형 엔진의 수요가 높은 미국에서 크라이슬러를 지탱해 줄 핵심 엔진 중 하나로서 지속적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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