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CC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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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바겐 CC 시승기
  • 김기범
  • 승인 2012.09.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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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바겐 CC가 신형으로 거듭났다. CC는 ‘컴포트 쿠페’의 약자다. 2008년 데뷔 이래 32만 대가 팔려나간 ‘4도어 쿠페’다. 이번 CC의 디자인을 지휘한 주인공은 클라우스 비숍이다. 그는 2007년 이후 폭스바겐 브랜드의 디자인을 총괄하고 있다. 이번 CC에 스민 변화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부터 알 필요가 있다.



지난해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녹화된 동영상 한 편이 화제를 모았다. 폭스바겐의 마틴 빈터콘 회장이 현대 부스를 찾아 i30을 살피는 내용이었다. 빈터콘 회장은 i30의 스티어링 휠 위치를 조절해 보다가 잡음이 전혀 나지 않자 부하를 불러 “우린 왜 이렇게 못하냐?”며 따졌다. 회장의 서슬 퍼런 질문에 조곤조곤 답하던 빼빼 아저씨가 바로 비숍이었다.


유년시절 클라우스 비숍의 의사소통 수단은 그림이었다. 그리고 또 그렸다. 집안엔 창의적 활동을 격려하는 분위기가 일찌감치 자리 잡았다. 건축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이었다. 그는 브라운슈바이크(Braunschweig) 대학에서 제품디자인을 전공했다. 이때 그는 이미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을 굳혔다. 그는 어려서부터 폭스바겐과 인연이 남달랐다. 

부모님의 차가 폭스바겐이었다. 그의 첫 차 역시 비틀이었다. 그가 다녔던 대학도 폭스바겐의 본고장인 볼프스부르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했다. 자연스레 그는 재학 시절부터 폭스바겐 인턴십을 노렸다. 그의 작전은 성공했다. 그의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 결과 폭스바겐 디자인실에 인턴으로 첫 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1989년 그는 폭스바겐 정식 직원으로 거듭났다. 그에게 주어진 첫 임무는 실내 디자인. 그의 오랜 염원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2007년, 폭스바겐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마틴 빈터콘이 폭스바겐 그룹 회장에 올랐다. 발터 드 실바는 폭스바겐 그룹 디자인 총괄로 합류했다. 이때 비숍도 실권을 거머쥐었다. 폭스바겐 브랜드 디자인의 보스로 승진했다.



그는 “제일 심플한 디자인의 수명이 가장 길다”고 믿는다. 심지어 그가 가장 싫어하는 단어는 ‘장식’(Decoration)이라고 알려졌다. 그는 디자인 과정에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묻는다고 한다. “정말 이게 꼭 필요한 걸까?” 그도 인정한다. 가장 기능적인 자동차 디자인은 네모반듯한 박스형태라는 사실을. 그러나 이처럼 기능만 앞세운 디자인엔 개성이 없다.


비숍은 “현실의 요구에 맞춰 반듯한 선을 적절히 휘는 게 디자이너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아울러 그는 “디자인의 시작은 비율(Proportion) 정하기”라고 강조한다. 비율이 헝클어지면 보다 많은 뒤처리가 필요한 까닭이다. 그의 설명을 듣고 나면 수트 차림처럼 반듯하고 똑 떨어지는 분위기로 거듭난 폭스바겐 신차 디자인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제 그가 디자인을 지휘했던 신차가 차례차례 선보이고 있다. 골프와 비틀, 제타, 업! 등이다. 하나같이 정갈하고 담백한 디자인을 뽐낸다. CC 역시 그의 믿음에 따라 신중하게 재해석되었다. 1세대 CC는 더없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어딘지 즉흥적인 느낌이 짙었다. 나머지 형제와 공통분모를 찾기 어려웠다. 그런데 CC뿐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당시 이오스와 골프, 파사트와 제타 등 각 모델의 디자인이 서로 동떨어졌다. 클라우스 비숍은 어지럽게 흩어진 디자인을 바로 세웠다. 폭스바겐 디자인의 패러다임 바꾸기에 나섰다. 이후 차체와 디테일엔 반듯한 선이 도드라졌다. 의미 없는 장식은 자취를 감췄다. 희미하게나마 권위도 살아났다. 단단하고 올곧은 과거 폭스바겐의 디자인으로 되돌아갔다.


CC의 디자인도 제 자리를 찾았다. 젊고 가벼워 보였던 과거를 등졌다. 적당한 연륜과 합당한 세련미 깃든 모습으로 거듭났다. 변화는 앞뒤에 집중됐다. 하지만 전체가 바뀐 듯 신선하다. 클라우스 비숍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가 뚜렷이 부각되었다. 바로 ‘존재감’이다. 보는 시각에 따라 ‘예쁘다’에서 ‘멋지다’식의 성 정체성 변화로 해석될 수 있을 정도다.



실내 디자인은 큰 틀을 유지했다. 대신 꼼꼼히 개선했다. 송풍구 주위는 크롬 띠로 둘렀다. 센터페시아 위쪽엔 서랍을 없애고 아날로그시계를 심었다. 공조장치는 로터리 스위치를 두 개에서 세 개로 늘렸다. 모니터 보지 않고도 온도 확인할 수 있게 LCD 창도 따로 달았다. 램프 스위치 옆에 있던 전자식 주차브레이크 스위치는 이제 변속기 옆으로 옮겼다.


변속레버는 골프처럼 손에 쥘 부위를 ‘공’처럼 다듬었다. 시트는 변함없다. 모서리를 바짝 세웠다. 몸 닿는 부위엔 이랑을 팠다. 윈드실드는 총 4㎜ 두께의 기능성 제품. 유리 두 장 사이에 4겹의 필름 및 코팅을 씌웠다. 흡·차음재도 차체 곳곳에 심었다. 그 결과 소음이 전보다 줄었다. 후진 기어를 넣으면 꽁무니의 엠블럼이 살짝 불거지며 카메라가 튀어나온다.



시승차는 2.0 TSI다. 엔진은 직렬 4기통 2.0L 가솔린 터보 직분사로 200마력을 낸다. 여기에 6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DSG)를 얹고 앞바퀴를 굴린다. 0→시속 100㎞ 가속은 7.8초에 마친다. 최고속도는 시속 210㎞에 제한된다. 승차정원을 태울 경우 가슴 벅찰 가속까진 아니다. 그러나 도로 위 교통흐름을 주도적으로 이끌기엔 충분하다.


아이들링 땐 차 밖으로 직분사 엔진 특유의 분사음이 두드러진다. 이 때문에 종종 디젤로 오해받기도 한다. 그러나 차체를 움직이는 순간 디젤과의 차이는 뚜렷이 와 닿는다. TDI의 경제성과 견줄 TSI의 매력은 ‘부드러움’과 ‘자극’. 회전수가 한층 매끄럽게 치솟고 사운드도 보다 스포티하다. 회전수를 까마득히 높여 토크를 화끈하게 불사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디젤 엔진을 얹은 신형 CC는 앞 차축에 가로축 전자식 차동제한장치(XDS)를 얹는다. ESP에 포함된 전자식 차종제한장치(EDL)의 기능을 확장한 장비다. 언더스티어를 잡기 위해 고안되었다. EDL 센서는 좌우 휠의 속도를 감시한다. 둘 사이에 차이가 나면 더 많이 도는 쪽을 브레이크로 다독인다. 한쪽 바퀴만 미끄러운 노면에 걸쳐 있을 때 약발이 탁월하다.


반면 XDS는 보다 영리하다. 휠 스피드뿐 아니라 스티어링 휠을 꺾는 속도와 각도까지 감지한다. 센서들이 언더스티어를 감지하면 코너 안쪽 앞바퀴에 제동을 걸어 자세를 바로잡는다. 이때 ABS와 비슷한 소리와 진동이 생긴다. 그러나 의식 못하는 경우가 많다. 찰나인데다 워낙 동작이 빨라서다. 대개 격한 반응이 있기 전 언더스티어를 미리 예방한다.


그 결과 코너링이 한층 부드럽고 매끄럽다. 운전 실력이 부쩍 향상된 것 같은 만족감을 준다. 하지만 XDS 없는 가솔린 CC도 상식을 벗어나게 몰아붙이지 않는 한 만족스러운 코너링 실력을 뽐낸다. 그 밖에 신형 CC엔 차선이탈경고와 사각지대 경보장치, 교통표지판 인식 기능, 발차기 시늉만으로 열리는 트렁크 등의 옵션을 더했다. 하지만 국내 수입 모델에선 뺐다. 아마도 가격 때문일 것이다.


CC는 신형으로 진화하면서 지난 4년간 접수한 피드백을 바탕으로 꼼꼼한 개선을 거쳤다. 가령 특수 유리와 각종 패드로 정숙성을 높였다. XDS로 언더스티어를 줄였다. 자잘한 변화가 쌓여 상품성을 성큼 끌어올렸다. 그럼에도 이번 CC를 기존 오너가 다시 살 당위성까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CC를 호시탐탐 노렸던 이에겐 절호의 찬스가 왔다.

글 김기범|사진 최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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