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틀리 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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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틀리 뮬산
  • 류민
  • 승인 2012.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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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틀리는 1919년 영국에서 태어난 고급차 메이커다. 프랑스 DFP(Doriot, Flandrin Parant)사의 자동차를 개조해, 경주에 참여하던 월터 오웬 벤틀리가 설립했다. 자동차 경주 마니아가 차린 회사인 만큼 벤틀리는 고성능을 지향했다. 첫 모델인 1921년 ‘3리터’에도 이런 성향이 담겨있었다. 3리터는 높은 성능으로 1924년과 1927년, 르망24시 경주에서 우승을 차지해 벤틀리의 명성을 높였다.



좌 벤틀리 창업자 월터 오웬 벤틀리, 우 1921년 벤틀리 ´3리터´


이후 벤틀리는 ‘4½리터’와 ‘6½리터’ 등의 모델을 선보이며 고성능 차 메이커의 입지를 다져나갔다. 1928년부터 1230년까지 르망24시 경주를 휩쓸었다. 그러나 벤틀리의 전성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벤틀리는 1929년 시작된 대공황으로 인해 흔들렸고 1931년 롤스로이스에게 인수됐다. 그 후 벤틀리는 롤스로이스의 우산 아래서 약 67년 동안 롤스로이스 스포츠모델로 여겨져 왔다. 롤스로이스의 최고급차 유전자는 흡수했을지언정 자신의 특색을 살린 고유모델은 개발하지 못했다. 하지만 1997년 재도약의 기회가 찾아왔다. 롤스로이스의 소유주였던 비커스 그룹이 ‘롤스로이스 자동차’의 판매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좌 1998년 롤스로이스 실버 세라프, 우 1998년 벤틀리 아나르지


기회를 노리던 BMW그룹과 폭스바겐그룹이 인수전쟁에 뛰어들었다. 롤스로이스에 V12 엔진을 공급하던 BMW는 “우리와 계약 하지 않으면 엔진공급을 중단하겠다.”라고 으름장도 놨다. 치열한 협상 끝에 BMW그룹은 롤스로이스의 소유권을, 폭스바겐그룹은 벤틀리 소유권과 롤스로이스의 크루 공장을 거머쥐었다. 벤틀리를 품에 안은 폭스바겐그룹은 자사의 기술력을 총 동원해 새 모델을 개발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모델이 2003년 컨티넨탈 GT였다. 컨티넨탈 GT는 많은 인기를 누렸다. 컨티넨탈 GT엔 폭스바겐그룹의 첨단 기술과 벤틀리의 오랜 역사가 담겨있었다. 롤스로이스의 노하우가 녹아있는 크루 공장 덕분에 높은 완성도도 뽐냈다. 게다가 폭스바겐그룹은 알뜰살뜰 원가절감의 도사. 고급스러움은 유지하되 주요부품 공유를 통해 컨티넨탈 GT의 가격을 낮췄다. 비교적 낮은 가격 역시 높은 인기의 비결 중 하나였다.



위 2003년 컨티넨탈 GT, 아래 2005년 플라잉스퍼


2005년엔 컨티넨탈 GT를 기반으로 만든 길이 5.29m의 대형세단, 플라잉스퍼를 출시했다. 플라잉스퍼 역시 많은 인기를 누렸다. 출시와 더불어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벤틀리의 완벽한 부활을 이뤄낸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일부에서 비난 섞인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플라잉스퍼는 무늬만 벤틀리지 사실 폭스바겐·아우디의 대형 세단과 다를 바 없다. 롤스로이스 시절에 발표한 아르나지와 그의 파생모델 브룩렌즈가 진짜 벤틀리다.”라고. 이런 비난은 원가절감에서 비롯된 것 이었다. 사실, 컨티넨탈 GT와 플라잉스퍼는 폭스바겐그룹의 D플렛폼을 밑바탕 삼는다. 폭스바겐 페이튼과 아우디 A8이 사용하는 플렛폼이다. 터보차저를 달아 출력을 높이긴 했지만, 동력계통의 주요 부품도 공유했다. 물론 차체 안팎에서 이들과의 공통점은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플라잉스퍼에선 롤스로이스 유전자가 섞인, 벤틀리 고유 느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기반의 태생에서 나온 비례가 문제였다.


폭스바겐그룹은 이런 볼멘소리를 예상했었다는 듯, 2009년 뮬산을 내 놓는다. 뮬산은 길이 5.58m의 최고급 대형 세단. 아르나지의 뒤를 잇는 벤틀리의 기함이다. 뮬산은 앞선 플라잉스퍼와는 달랐다. 뮬산엔 롤스로이스 시절의 벤틀리 고유 자태가 그대로 녹아있다. 바짝 세운 라디에이터 그릴과 헤드램프, 탄탄하게 부풀린 모서리 등으로 연출한 웅장한 앞모습만 봐도 그 차이를 쉽게 알 수 있다. 옆모습에도 벤틀리 고유의 느낌이 강하게 너울져있다. 꽁무니로 갈수록 쳐진 어깨선과 완만히 누운 C필러, 곡선을 아로새긴 뒤 펜더 등이 우아한 느낌을 낸다. 긴 보닛과 비교적 짧은 앞 오버행, 차체 뒤쪽으로 밀어낸 A필러 등으로 이뤄진 FR 특유 비례 역시 뮬산을 더욱 벤틀리답게 만든다. 뒷모습 역시 벤틀리의 고유 디자인을 따랐다. 비스듬히 깎아 내린 트렁크와 뒤 범퍼, 아담한 크기의 테일램프 등이 아르나지의 느낌을 그대로 풍긴다.



실내 역시 아르나지의 레이아웃을 물려받았다. 두 개의 핀이 가로지른 원형 송풍구도 여전하다. 하지만 대시보드와 센터페시아, 도어트림 등에 붙는 우드패널의 면적을 늘려 화려함의 수위를 높였다. 실내 곳곳을 수놓은 바느질의 양도 늘려 고급스러운 느낌을 한층 더 강조했다. 특히 센터페시아 부분에서 높은 완성도를 느낄 수 있다. 아르나지는 우드패널로만 마감했던 반면 뮬산은 금속 재질을 우드패널과 정밀하게 조합했기 때문이다.벤틀리는 뮬산에 터보차저 두 개를 짝지은 V8 6.75L 엔진을 얹는다. 폭스바겐그룹의 다른 모델에선 볼 수 없는, 오직 벤틀리만을 위한 엔진이다. 엔진이 쏟아내는 최고출력 512마력, 최대토크 104㎏·m의 힘은 8단 자동변속기를 통해 뒷바퀴로 전달된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가속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5.3초, 최고속도는 시속 296㎞다. 1L의 연료로는 5㎞를 달릴 수 있다.



벤틀리는 뮬산을 ‘롤스로이스 자동차’의 본거지였던 영국 크루 공장에서 생산한다. BMW그룹의 품으로 간 롤스로이스는 영국 굿우드에 새살림을 차렸다. 뮬산은 차를 주문하고 인도받기까지 6개월의 시간이 걸린다. 롤스로이스 시절부터 이어온 전통 생산방식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벤틀리의 생산 공정엔 일일이 손으로 제작하고 조립하는 수작업 방식이 많다. 가령 실내에 쓰이는 가죽과 우드패널 제작·조립 공정이 좋은 예다. 벤틀리에 쓰이는 가죽은 북유럽에서 방목한 황소에게서 얻는다. 모기 물린 자국이나 울타리에 긁힌 상처가 없어 표면이 고르기 때문이다. 뮬산의 실내에는 황소 16~17마리 분의 가죽이 쓰인다. 시트와 도어트림 등에 쓰이는 가죽의 바느질 작업은 약 37시간, 스티어링 휠에 가죽을 엮는 작업엔 약 15시간이 걸린다.



우드패널 만드는 과정은 더 복잡하다. 나무 한 그루의 상태 좋은 부위를 얇게 썰어 약 3주간 말린다. 이후 0.6㎜의 두께로 썰어 패널 형태를 만든다. 이렇게 만든 패널은 염색이나 탈색과정 없이 8겹의 코팅과 마무리 손질을 거쳐 완성한다. 나무 고유의 무늬와 색을 재현하기 위해서다. 기계의 힘은 나무를 알맞은 크기로 자를 때와 광을 낼 때만 빌린다. 뮬산의 차체색상은 114종류가 준비된다. 실내에 사용하는 가죽 색상은 24종류, 우드패널 색상은 9종류가 준비된다. 실내 바닥에 쓰이는 카펫은 재질과 색상에 따라 21종류로 나뉜다. 하지만 고객의 입맛에 따라 재질 및 색상을 지정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선택사양은 무한대에 이른다. 장인정신에 입각한 생산과정 때문에 뮬산의 생산량은 하루 2~3대 정도에 그친다.


폭스바겐그룹은 컨티넨탈 GT와 플라잉스퍼로 벤틀리의 입지를 다진 후, 최고급 모델인 뮬산을 내놓는 전략을 펼쳤다. BMW그룹과는 상반된 전략이었다. 롤스로이스는 위급인 펜텀을 먼저 선보이고 아래급인 고스트를 발표했다. 폭스바겐그룹 전략의 절반은 성공했다. 최근, 벤틀리는 제2 전성기라고 해도 좋을 만큼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컨티넨탈 GT와 플라잉스퍼가 이룩한 성과다. 뮬산은 마이바흐 57, 롤스로이스 고스트 등의 최고급 대형 세단과 경쟁한다. 때문에 벤틀리 고유의 고급스러움을 한층 더 강조했고 그 결과 뮬산은 역사상 가장 화려한 벤틀리로 태어났다. 나머지 절반의 성패는 뮬산에게 달려있다.


글 류민 기자 | 사진 벤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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