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의 틈새 비집기, 'BMW 스포츠 액티비티 쿠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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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의 틈새 비집기, 'BMW 스포츠 액티비티 쿠페'
  • 윤현수
  • 승인 2017.11.17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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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말, 밀라노 거리에 위장막을 뒤집어쓴 자동차가 나타났다. BMW X2가 베일을 벗기 직전, 밀라노 패션 위크 기간 동안 밀라노 도로를 활보한 것이다. 예술과 패션의 도시를 휘젓고 다닐 정도로 X2가 맵시가 뛰어난 자동차인지는 의문이었으나, 적어도 X2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데는 제법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X2는 BMW 짝수형 SUV 라인업, 그러니까 BMW가 'SAC(Sports Activity Coupe)'라고 칭하던 SUV, 혹은 크로스오버 라인업의 막내다. 2007년, 해당 개념을 처음으로 정의하며 탄생했던 초대 X6 탄생 이후 딱 10년 만이다. X6의 탄생은 그야말로 단발성 이벤트가 아닌, BMW 짝수 라인업 완성의 시발점이었다.

SAC는 BMW가 자사의 최초 SUV인 X5를 만들며 내세웠던 'SAV(Sports Activity Vehicle)'의 파생 개념이다. 본래 자사의 SUV는 다른 제품들보다 스포티하다는 개별 용어에 '쿠페'라는 단어를 더해 스포티함을 극대화했다는 의미였다.

SAC 패밀리의 첫 주자, X6는 X5를 기반으로 빚어졌다. X5보다 살짝 넓고 길면서 낮은 차체로 설계하고 쿠페를 연상시키듯 루프라인을 완만하게 다듬고 엉덩이는 바짝 솟았다. 'SAC' 개념에 알맞은 재구성이었다. 낮아진 루프 덕에 2열 거주성은 떨어졌으나 그럼에도 쿠페 같은 SUV를 반기는 사람은 제법 많았다.

X6는 2008년 본격적인 판매가 시작된 이후 연간 평균 4만 대가량을 팔아 치워왔다. 주력 모델인 X5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성적이지만 그럼에도 틈새 모델로서 상당히 선방한 수치였다.

X6의 제법 훌륭한 흥행은 프리미엄 브랜드 업계로 하여금 쿠페형 SUV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하나둘 심어주기 시작했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모델명 체계를 개편함과 동시에 GLE 쿠페를 내세우며 쿠페형 SUV 세계에 발을 들였다. 여기에 한번 꽂히면 사정없이 몰아치는 메르세데스-벤츠답게 GLC 쿠페도 빠른 속도로 추가되며 쿠페형 SUV들의 영향력을 넓혀나가고 있다.

이후 2014년, X3의 파생형 모델로 등장한 X4는 큰 차를 선호하는 미국에선 X6만큼의 인기를 끌진 못해도, 유럽에선 연간 2만 4천 대 수준을 기록했다. X6는 반면 유럽에서 X4의 절반 정도밖에 팔리지 않았다. 시장에 따라 두 SAC는 번갈아가며 울고 웃은 셈이다.

메인스트림 모델인 X5만큼은 아니어도 X6는 주요 시장인 북미를 비롯하여 글로벌 시장에서 지속적인 판매고를 올려왔고, 2014년에는 2세대 모델 출시도 원만히 이뤄졌다. 출시 시기만 X5와 1년 차이가 날뿐 모델 체인지 주기는 사실상 동일했다. 그리고 뒤이어 등장한 X4는 X6 출시 이후 7년 만에 등장했고, X2는 X4 탄생 이후 4년 만에 처음 시장에 발을 들이밀 예정이다.

특히 이 SAC의 신 모델 출시 주기가 짧아졌다는 것은 쿠페형 SUV와 같은 크로스오버 모델들의 소비자 선호도가 상당히 높아졌다는 것을 방증하기도 한다. 처음 X6가 시장에 등장할 때만 해도 해외 전문매체에선 괴상한 니치(Niche, 틈새) 모델이 등장했다며 혹평을 일삼기도 했었다.

크로스오버의 광풍으로 최근 탄생을 이룬 X2는 역대 SAC 패밀리 중 가장 색다른 면모를 지닌 일원이다. 여태껏 SAC들은 죄다 기반이 되는 SAV들 (X5, X3)보다 차체가 길게 설계되었다. 그러나 X2는 X1보다 전장이 짧고, 전고가 낮아 스포티한 면모가 극대화되었다.

그러나 출시 시기의 차이 때문인 건지 X2는 X1과 디자인 큐가 제법 다르다. 색다른 모양새의 키드니 그릴과 더불어 헤드램프는 물론, 범퍼 스타일은 판이한 차이를 보인다. 개별 모델이라는 느낌이 더욱 선명하다.

다만, 반대로 여태껏 SAC 모델들이 보여줬던 '쿠페스러운' 루프라인은 부각되지 않았다. 리어 오버행을 크게 줄여 스포티한 해치백 같은 느낌을 줄 뿐, BMW가 이야기하는 전형적인 SAC 디자인과는 거리가 멀다. 클래식 BMW 쿠페들처럼 C 필러에 BMW 엠블럼을 다는 기행을 선보이긴 했어도 SAC가 강조하는 쿠페의 느낌은 옅다.

그러나 X2가 발을 대고 서있는 세그먼트를 파악하면 쿠페 같은 루프라인을 강조하지 않은 이유는 제법 쉽게 알 수 있었다. X1보다 80mm가 짧아 4.4미터도 채 되지 않게 작아진 크기에, 루프라인마저 X4나 X6처럼 다듬었으면 2열 승객들은 고개를 빳빳이 들 수 없었을 거다. 틈새 모델 개발에 대한 BMW 엔지니어들의 고뇌가 느껴지는 부분.

대신 다른 부분에서 스포티한 감성을 자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C 필러에 자랑스레 붙인 BMW 엠블럼이나 측면부에서 그린하우스 비율을 줄이고 전장을 줄여 오버행을 짧게 하는 등의 설계로 'SAC' 개념이 이야기하는 스포티한 감성은 어느 정도 재현했다.

BMW가 이야기하는 SAC 모델들은 사실 볼륨모델로 취급하긴 대중성 측면에서 살짝 멀어 보이는 요소들이 있다. 다만 한국 시장에선 여전히 수입차 시장의 특수성이 남아있어 SAC 모델들의 판매량이 SAV 모델에 필적할 정도로 인기를 끄는 기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프리미엄 SUV 시장의 격전지라 볼 수 있는 미 대륙에서는 `SAC`는 틈새 모델로서 활약할 뿐, 판매량 차트 하위권에 단골로 기록된다.

그런데도, BMW가 'SAC' 개념을 통해 제안한 쿠페 스타일 SUV 시장은 어느덧 그 가치와 상품성을 인정받아 파이를 키워가며 프리미엄 브랜드들의 격전지가 되어가고 있다. 틈새 브랜드인 랜드로버마저 자사의 플래그십 모델인 레인지로버 네이밍으로 '벨라'라는 걸출한 스타일리시 SUV를 내놓기도 했으며, 아우디 역시 짝수 숫자 SUV를 내놓으며 크로스오버 판 키우기를 기획 중에 있다.

프리미엄 브랜드들은 이렇게 시장의 틈새를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틈새 모델을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제안한다. '이런 거 만들어봤는데 어때?'라고 말이다. 이게 바로 소비자 충성도 높은 프리미엄 브랜드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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