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했던차]피아트 124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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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했던차]피아트 124 편
  • 박병하
  • 승인 2018.01.29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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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세워진 이탈리아의 피아트(FIAT)는 120년에 가까운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자동차 기업으로, 마세라티, 알파로메오, 란치아 등의 브랜드를 거느린 이탈리아 최대의 자동차 제조사이기도 하다. 오늘날에는 미국의 빅3 중 하나였던 크라이슬러와 예하 계열사를 인수 합병하여 `FCA(Fiat-Chrysler Automobiles)`라는 기업집단을 형성,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거대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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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트가 이러한 성장을 거듭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창업 초기부터 대중을 위한 자동차의 개발을 중시하면서 탄탄하게 축적해 온 소형차 개발 역량에 있다. 창업주인 `지오반니 아녤리(Giovanni Agnelli, 1866~1945)`는 ``자동차는 결코 부자들의 전유물이거나 레이스를 위한 존재가 되어선 안된다``며, ``대중을 위한, 저렴하면서도 우수한 성능을 내는 자동차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의 이러한 신념 하에서 나온 첫번째 대중차가 바로 1908년 등장한 피아트 티포(Tipo)다. 피아트 티포는 자동차를 원하는 대중에 큰 인기를 끌며 피아트의 급속한 성장의 밑바탕이 된다. 대중을 위한 소형차의 개발을 중시하는 피아트의 철학은 지속적으로 유지되며, 피아트가 직면했던 여러 위기들을 극복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피아트 티포로부터 시작된 피아트의 명작 소형차 계보는 1차 대전 후 전간기(제 1차 세계대전부터 제 2차세계대전 사이의 기간)인 1936년에 등장한 피아트500 토폴리노(Topolino)로 이어졌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승용차의 수요가 급감하여 위기를 맞았으나, 1957년에 등장한 피아트 500의 상업적 성공으로 위기를 넘겼다. 그리고, 60년대 들어 또 하나의 명작 소형차를 만들어 내며, 오늘날의 거대기업 피아트를 만든 일등공신이 태어난다. 그 차가 바로 본 기사의 주인공, `피아트 124`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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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트 124는 1966년 처음 선보인 60~70년대 피아트의 전성시대를 상징하는 걸작 후륜구동 소형차다. 피아트 124는 세련된 디자인과 우수한 성능 및 실용성, 그리고 저렴한 가격으로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피아트 124는 피아트의 이후 제품개발에 있어서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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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트 124는 4도어 세단 형태를 기본으로, 왜건형 모델인 파밀리아레(Familiare), 2인승 로드스터 모델인 124 스포트 스파이더(124 Sport Spider), 2도어 쿠페형 모델인 124 쿠페 등에 이르는 파생 모델이 만들어졌다. 그 중에서도 피아트 124 스포트 스파이더는 최근 일본 마쯔다와의 기술제휴를 통해, 마쯔다 MX-5(로드스터)의 플랫폼을 바탕으로 부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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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트 124의 인기는 이탈리아 본토는 물론, 소련, 인도, 스페인, 터키 등 여러 나라에서 라이센스 생산되었다. 그리고 대한민국도 이 차를 정식으로 라이센스 생산한 국가 중 하나다. 이 덕분에 피아트 124는 라이센스 생산분을 합치면 폭스바겐 비틀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된 자동차이기도 하다. 생산은 舊 아시아자동차공업(이하 아시아자동차)에서 맡았으며, 4도어 세단 형태만 생산되어 1970년도부터 내수 시장에 판매되었다.

아시아자동차가 생산한 피아트 124는 원판인 피아트 124와 다름 없는 우수한 성능을 뽐내며 한국의 자동차 시장에서 높은 인기를 끌었다. 당시 소형차의 기준으로서는 유례 없는 코일스프링과 디스크 브레이크를 적용하는 등, 선진적인 설계를 도입한 점이 주목받았으며, 당시 기준으로 고성능의 엔진과 탄탄한 기본 성능 덕에 오너드라이버들이 선호하는 차종이기도 했다. 수냉식 엔진을 사용했음에도 공냉식 엔진 특유의 소음을 냈고, 냉각 성능이 우수하여 장시간의 고속 주행에도 견딜 수 있었다. 훗날 아시아자동차를 인수한 기아자동차가 피아트 124의 후속 모델이라 할 수 있는 피아트 132의 라이센스 생산을 하기 시작한 배경에는 피아트 124가 보여주었던 우수한 품질과 신뢰도가 바탕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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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자동차가 생산한 피아트 124는 1971년을 기점으로 전기형과 후기형이 나뉜다. 전기형은 원본과 같은 좌우 1개의 원형 헤드램프를 사용하지만 후기형은 2연장 헤드램프와 함께 좁아진 라디에이터 그릴로 구분된다. 아시아자동차는 전기형과 후기형을 합쳐, 총 6,800여대의 피아트 124를 생산/판매하였다.

아시아자동차의 피아트 124는 상기한 대로, 시장에서는 꾸준히 판매고를 올릴 만큼 시장에 안착해 갔다. 또한, 당시 아시아자동차는 피아트 124의 상업적 흥행에 힘입어 신진자동차, 현대자동차와 함께 대한민국 자동차 시장의 3강의 위치에까지 올라 섰다. 하지만 이러한 시간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아시아자동차가 피아트 124를 생산한 시간은 1970년에서 1973년까지의 3년여에 불과했다.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생산된 원인에는 피아트와의 라이센스 계약이 중단되어버린 데 있었다. 이후, 아시아자동차는 트럭, 버스 등의 상용차 생산에 주력하게 되었으나, 기아산업에 인수된 후에 피아트 132의 라이센스 생산을 맡으면서 다시금 피아트와 연을 맺게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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