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RAC' 네이밍 공유는 무엇을 위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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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RAC' 네이밍 공유는 무엇을 위함인가
  • 윤현수
  • 승인 2018.03.05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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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중형 SUV 시장의 터줏대감, 싼타페가 4세대 모델로 거듭났다. 특히 역대 최고 수준의 사전계약 대수 기록을 자랑하며 올해 내수 시장 최고의 기대주로 자리매김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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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네임 'TM'으로 개발된 신형 싼타페는 현대차의 최신예 모델답게 캐스캐이딩 그릴을 멋스럽게 입었고, 코나에서 처음 선보인 분리형 헤드램프 디자인을 적용해 파격적인 변화를 보였다. 여기에 종전에 없던 ADAS 시스템을 풍부하게 담고 크기도 키워 상품성을 극대화했다. 볼륨 모델답게 여기저기 신경 쓴 부분들이 많았다.

이런 와중에 눈에 띄는 대목은 현대차가 브랜드 라인업 최초로 'HTRAC' AWD 시스템을 장착했다고 자랑스레 이야기하는 부분이었다. 일반 전자식 사륜구동 방식과는 달리, 주행 모드에 따라 구동력 제어와 배분을 가변적으로 다루는 능동형 사륜구동 시스템이 적용된 것. 이를 통해 사륜구동 특유의 텁텁한 핸들링 감각을 상쇄시키겠다는 의도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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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RAC'은 현대차그룹의 AWD 시스템 브랜드명으로, 종전까지는 당사의 고급 브랜드인 '제네시스'에만 사용하던 명칭이었다. 그러나 '현대' 브랜드의 핵심 모델인 싼타페가 'HTRAC' 네이밍을 부여받으며, 해당 명칭은 제네시스 브랜드와 더불어 현대 브랜드 모델들 전반에도 두루 쓰이게 되었다.

그런데, 제조사는 타겟 소비자층이 상이한 매스 브랜드와 프리미엄 브랜드 간의 접점을 지우고자 애쓴다. 최근 현대차그룹이 제네시스 브랜드만의 독립 쇼룸을 마련한 것도 이와 같은 이유다. 다른 타겟, 다른 상품 구성, 다른 가격대를 버무리기 위해선 기업 입장에서 꼭 필요한 작업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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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토요타와 렉서스는 각자 다른 디자인 코드를 내세우고, 혼다가 날렵하고 멋들어진 자동차를 빚을 때, 어큐라는 브랜드 아이덴티티인 다이아몬드 그릴을 악평의 속출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새겨 넣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자동차는 대중차 브랜드인 '현대'와 프리미엄 브랜드인 '제네시스'의 접점을 형성했다. 이것은 누군가에게 득이 되지만, 누군가에겐 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일단 이러한 전례는 가까운 아시아 브랜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시아 프리미엄 브랜드 중 가장 먼저 발을 내민 '어큐라'가 주인공이다. 혼다가 자랑하는 'SH-AWD' 시스템은 앞서 언급한 싼타페의 새로운 AWD 시스템과 같이 상황에 따라 능동적으로 구동력을 배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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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AWD 네이밍을 공유하는 것은 현대 - 제네시스의 관계와 동일하지만 선대 레전드가 사용한 SH-AWD와 어큐라의 SH-AWD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기술이었다. 전륜 구동 기반의 싼타페 'HTRAC'과 후륜 구동을 기반으로 다져진 제네시스의 'HTRAC'의 특성이 상이한 것과는 다른 내용이라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혼다는 브랜드 플래그십인 레전드에만 한정적으로 SH-AWD를 장착했다. 그것도 뱃지 엔지니어링 모델이라 할 수 있는 제품이 판매되지 않는 곳에서만 SH-AWD를 탑재한 레전드를 팔았다. 브랜드 간의 기술적 이미지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정리하자면, 혼다가 매스 브랜드와 프리미엄 브랜드 모두에 동일한 AWD 브랜드를 사용한 것은 맞지만, HTRAC의 사례와는 달리 소비자들의 브랜드 인식을 깰만한 시장 전략은 실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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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현대차가 제네시스 브랜드를 런칭한 이유는 전 세계적으로 뻗어나간 현대차의 '가격 대비 가치가 높은 차'의 꼬리표를 던지고 더욱 높은 시장에 도전해 새로운 가치를 인정받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흔적이 남아있는 현대 브랜드와 명확한 접점이 생기는 건,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제네시스 브랜드 입장에서 크게 달갑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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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현대차는 이러한 'HTRAC' 브랜드의 충돌을 감안하지 않은 것일까? 제네시스 브랜드를 소유한 소비자 입장에서도 현대차와 AWD 네이밍을 공유하는 걸 반가워하진 않을 거다. 제네시스를 선택한 소비자의 심리는 대중 브랜드와 명확히 '다른' 제품을 구매한다는 자부심이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사치재에 속하는 프리미엄 브랜드 제품에 굳이 더 많은 돈을 주고 선택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현대차그룹이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건, 현대와 제네시스 브랜드도 고유의 'AWD' 브랜드가 있다는 걸 인지시키려는 의도일지도 모르겠다. 대중 브랜드가 적극적으로 고유의 AWD 브랜드를 내세우는 전례가 많진 않아도, 현대차는 일단 제네시스를 필두로 삼았던 'HTRAC' 브랜드를 널리 알리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이는 아직 브랜드 간의 이미지적 분리가 완전히 이뤄지지 못했기에 가능한 전략으로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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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제네시스가 바라보는 프리미엄 브랜드 세계에서 AWD 시스템의 상징성은 대단히 중요하다. 특히 브랜드 개성 표출이 주요한 이 세계에 있어 AWD 시스템의 완성도나 차별성도 아이덴티티 확립에 기여하기 때문. 그래서 유럽 프리미엄 브랜드를 중심으로 AWD 시스템의 브랜드화가 이뤄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아우디의 '콰트로'는 물론, BMW가 'xDrive'를, 메르세데스-벤츠가 '4 MATIC' 브랜드를 줄곧 내세우며 제각각의 AWD 만들기 철학을 담아내듯 말이다. 현대차도 'HTRAC'이란 별도의 네이밍을 사용해가면서 AWD 시스템을 강조한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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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HTRAC'이란 네이밍에는 '현대(Hyundai)'의 이니셜이 담겨있다. 제네시스 브랜드에는 아직 '현대'의 이미지가 스며들어 있음을 의미한다. 현대 이미지를 지우고 더 높은 가치를 이룩하겠다는 제네시스의 런칭 이념과는 어울리지 않는 네이밍이었다. 사치재에 속하는 프리미엄 브랜드 세계에서 '가격대비 가치'가 높다는 현대 브랜드의 꼬리표가 긍정적으로만 다가올 리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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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이지만 2세대 현대 제네시스(G80)는 현재의 '크레스트' 그릴이 아닌 '헥사고널' 그릴을 달고 있었다. 당시엔 명백히 현대 브랜드의 일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브랜드 독립 이후 마케팅적 일환으로 2세대 제네시스의 헥사고널 그릴은 크레스트 그릴로 개명했고, 현대차도 제네시스와의 단절을 위해 헥사고널 그릴을 캐스캐이딩 그릴로 진화시키기에 이르렀다.

이는 여전히 두 브랜드의 결별이 과도기에 있음을 이야기하는 대목이다. 렉서스도 브랜드 런칭 초기엔 토요타 색깔이 많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렉서스와 토요타는 접점을 하나둘 지우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소비자에게 별개의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다. 그만큼 이를 위해 토요타가 많은 공을 들였다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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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제네시스는 여전히 유년기에 있는 브랜드다. 이러한 과도기를 지나, 수직 관계가 뚜렷한 매스 브랜드와 프리미엄 브랜드 간의 접점을 지우는 것이 제대로 된 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는 단계일 것이다. 따라서 현대의 이니셜이 담긴 'HTRAC' 네이밍은 시간의 흐르며 자연스레 '현대' 브랜드에게 넘겨주고, '제네시스'는 새로운 AWD 브랜드를 간직하는 게 올바른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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