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조는 과연 SUV만 옳을까? - 308 GT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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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조는 과연 SUV만 옳을까? - 308 GT 시승기
  • 윤현수
  • 승인 2018.04.02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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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조 SUV는 언제나 옳다’. PSA가 한국 시장에서 푸조를 다룰 때 내세우는 캐치프레이즈다. 푸조는 이처럼 SUV 훈풍을 타고 빚어진 자사 SUV 라인업을 적극적으로 밀고 있는 와중이다. 선대 3008과 5008이 모두 MPV였음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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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롯이 스포트라이트가 SUV에만 집중되고 있는 건 아쉽다. 물론 수요에 따른 마케팅 전략임에 수긍이 가지만, 푸조의 ‘정수’가 담겨있는 제품은 아주 오래전부터 해치백이었다. 시장 분위기 탓에 208 / 308 해치백 듀오가 평가절하되고 있는 게 조금 안타깝다.
 
자동차 시장에 SUV 바이러스가 만연한 현시점에서 308은 비교적 조용하게 페이스리프트를 거쳤다. ‘유럽 올해의 차’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던 웰메이드 해치백은 4년 만에 얼굴을 고치고 ADAS 기술을 추가로 받아들였다. 소개할 모델은 2리터 디젤 유닛을 품고 안팎을 스포티하게 다듬은 ‘GT’로, 푸조는 정말 SUV만 옳은 것인지 파헤치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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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활해 보였던 얼굴은 새로운 디자인 테마를 받아들였다. 뉘앙스는 유사한 맥락, 그러나 디테일은 사뭇 다르다. 보닛에 얹혀있던 사자 엠블럼은 정면을 바라보도록 그릴로 자리를 옮겼고, 그릴의 그래픽도 최신 스타일로 꾸몄다. 한층 공격적으로 변모한 프런트 범퍼에는 푸조의 기세가 담겨있다.
 
부드러우면서 견고한 느낌이 공존하는 308의 실루엣은 여전하다. 그러면서 스포티한 감성을 강조한 GT 모델의 특징으로 그릴 상단의 푸조 레터링을 붉게 물들였고, ‘GT’ 엠블럼을 프런트 펜더나 테일게이트 등에 부착해 제법 화끈한 모델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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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적 혁신들을 품은 ‘아이-콕핏(i-Cockpit)’ 컨셉트 인테리어도 여전했다. 극도로 단순화되고 운전자 중심으로 구성된 여러 요소들은 심미성 측면에서 나무랄 데가 없다. 자그마한 스티어링 휠 위로 자리한 헤드-업 클러스터도 이제는 익숙하다.
 
각 소재의 재봉선에는 모두 빨간색 실밥을 사용하고 레드 & 블랙 테마를 통해 일말의 자극을 선사했다. 시트에는 가죽과 알칸타라 소재를 혼재하여 시각과 촉각 모두를 황홀케 한다. 다만 C세그먼트급 모델로선 의외였던 마사지 기능이 있는데도, 시트 조절 방식이 수동이라는 건 의외였다. 유럽인들의 편의장비에 대한 우선순위가 우리와는 다르다는 걸 깨닫는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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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중에 최신 푸조 인테리어에 대한 아쉬운 점을 꼽으라면 극도로 단순화된 조작 인터페이스가 아닐까 한다. 공조장치 조작을 위해선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거쳐야만 하는 부분은 실제 오너의 입장이라면 꽤 불편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센터페시아가 공허할 정도로 깔끔해진 터라, 단순화의 도가 지나쳤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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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국민 내비게이션 브랜드인 티-맵과 협력하여 제작된 ‘맵진 에어바이 티맵’ 내비게이션을 새로이 탑재한 것은 만족스러운 부분이다. 아울러 푸조 모델들의 전매특허인 개방감을 위한 ‘파노라믹 글래스 루프’와 스마트빔 어시스트, 차선이탈 방지시스템 등으로 구성된 ADAS 패키지를 담아 사용 편의성과 안전성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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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열 시트를 모두 접거나 일부만 접어 다양한 방법으로 적재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건, 꼬리 잘린 해치백의 진가 중 하나다. 그러나 뒷좌석 공간에는 여유가 부족한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 차량 구매에 거주성을 중점에 둔 소비자에겐 크게 어필하지 못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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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대 푸조 완성의 과도기에 있던 제품이기에 단점들이 희미하게 드러나긴 해도, 308은 탄생 직후 유럽 최고의 해치백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맹주의 주역이었기에, 기대감을 품은 채 스티어링 휠을 손에 쥐었다.
 
스포크 하단에는 ‘GT’ 엠블럼이 박혀있고, 좌우 스포크 일부 반경에는 타공 가죽에 패들시프트까지 품은 자그마한 스티어링 휠은 파지하는 순간부터 느낌이 남다르다. 그 너머로 보이는 계기판은 모양새는 제법 스포티하나 숫자 크기가 작아 시인성은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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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막한 후드 아래에 담긴 건 308이 속해있는 세그먼트를 감안하면 과분한 2리터 HDi 엔진. 최고출력 180마력에 최대토크 40.8kg.m의 성능 수치만 봐도 4.2미터 남짓한 컴팩트 해치백이 이리저리 날뛸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한때 수입차 시장을 뜨겁게 했던 디젤 핫해치, ‘골프 GTD’가 뇌리를 스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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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풍부한 중저속 토크와 더불어 동일한 엔진을 장착한 3008보다 170kg 가량 가볍기에 가속은 초반부터 그 기세가 남다르다. 2리터 HDi 엔진은 속도 영역을 불문하고 재가속시에도 만족스러운 가속 성능을 선사했다.

이윽고 거창하게 따로 구비한 스포츠 버튼을 눌렀다. 헤드업 클러스터는 빨갛게 물들고 가상 사운드 시스템이 실내를 기분 좋은 노이즈로 가득 채운다. 그리고 엔진 회전수를 바짝 높게 쓰며 가속감도 한층 두툼해진다. 오버한 듯한 엔진음이 뿜어져 조금 부담스럽긴 해도, 운전자의 감성을 어루만져 주는 터라 꽤 재밌는 ‘요술 버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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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전륜 모델에도 8단, 심지어 9단 변속기가 난무하는 다단화 시대에 고작 6단에 불과한 변속기는 조금 아쉽다. 물론 아이신의 솜씨를 탓하는 건 아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기어를 부드럽고 능숙하게 넘기고 2리터 HDi 디젤 유닛과 함께 제법 훌륭한 연비를 자아낸다. 공인 연비는 복합기준 13.3km/l 이지만 실제 주행에서도 이 수치를 뽑아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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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3008이나 5008 시승 당시에도 밝혔던 것처럼 항속 기어의 부족은 물론, ‘GT’ 엠블럼을 달고 있는데도 신속함과는 거리가 먼 변속 로직에는 아쉬운 구석이 있다. 더군다나 유럽 시장에 판매되는 가솔린 GT 모델에는 기어 8개짜리 제품이 장착된다는 소식을 접하니 아쉬움은 증폭됐다.
 
여기까지만 이야기하면, 본격 디젤 핫해치를 지향했던 골프 GTD와 상당히 유사한 면들이 많다고 생각된다. 자그마한 컴팩트 해치백 차체에 꽤 강력한 디젤 파워트레인을 얹어 풍부한 성능을 내는 구성 말이다. 그러나 운전대를 돌려보기 시작하면 브랜드 특색이 얼마나 다른지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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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그 명성이 여전히 드높은 푸조의 핸들링 실력은 가히 눈부실 지경. 나아가고자 하는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는 눈치 빠른 몸놀림에는 재미가 가득 들어차있다. 특히 하체 완성도에 대해 다시금 감탄을 금할 수 밖에 없었다.
 
스트로크가 제법 긴 서스펜션을 품은 하체는 요철을 넘실넘실 넘어간다. 그러면서도 무게중심이 좌우로 쏠리는 순간에는 차체를 단숨에 바로잡으며, 빠른 속도로 고속도로에 올라도 뛰어난 안정감을 선사한다. 이렇게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부분들을 모조리 만족시키는 게 요새 푸조의 솜씨다. 물론 바퀴에 신긴 미쉐린제 ‘파일럿 스포트3’ 타이어도 크게 일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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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몸놀림에 불만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서스펜션 스트로크가 긴 탓에 급가속 시 차체 앞머리가 살짝 들리는 스쿼트 현상이나 제동 시 앞으로 쏠리는 노즈다이브 현상은 거슬린다. 또한 브레이크 페달은 유럽식 세팅과는 거리가 멀어 반응이 민감하다. 물론 제동력에는 하등 불만이 없었다.
 
시승한 308 GT의 가격표에는 3,990만 원이 적혀있다. 엔트리 트림은 Allure 모델보다 800만 원이나 비싸고, 주력 모델인 GT Line 모델보다는 540만 원이 비싸다. 부분변경과 함께 GT 모델 가격이 인하되며 격차가 조금 줄어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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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디젤 해치백의 선택지가 바닥나버린 상황에서, 사실상 308 GT의 경쟁 모델은 하위 트림들이다. 가격 격차에 따른 가치를 소비자가 수긍하냐에 따라 선택의 기로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GT 모델에만 탑재되는 내비게이션이나 한층 여유로운 파워트레인 성능, 스포티한 각종 구성요소들에 흥미가 있는 소비자들이라면 과감히 선택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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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붙어있는 ‘GT’ 엠블럼과 스포티하게 꾸며낸 인테리어 탓에 ‘GTD’와 같은 성격을 보일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예측이 보기 좋게 빗나가버렸다. 똑같은 재료를 써도, 셰프의 솜씨에 따라 결과물이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만큼 푸조의 차 만들기 철학에는 숨은 맛집의 이색 별미같은 매력이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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