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조 208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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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조 208 시승기
  • 류민
  • 승인 2013.0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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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제네레이션(Re-Generation). 푸조가 208에 덧붙인 단어다. 개혁, 쇄신이란 뜻을 갖고 있다. 제조사는 제품에 말 붙이기를 즐겨한다. 하나의 단어 또는 문구가 제품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푸조의 의도는 간단해 보인다. 208은 이전 모델과는 전혀 다른, 혁신적인 모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푸조가 ‘다시’를 의미하는 Re와 ‘세대’를 의미하는 Generation 사이에 의도적으로 ‘-’를 집어넣었다는 사실이다. 이럴 경우 리제네레이션의 또 다른 뜻인 재건, 부흥이라는 의미가 강조된다. 


푸조는 프랑스에서 싹틔운 회사다. 역사는 200년이 넘는다. 장 프레드릭 푸조와 장 피에르 푸조 형제가 1810년 설립했다. 시작은 철강회사였다. 각종 톱날과 시계용 스프링, 우산살 등을 만들었다. 이후 커피 및 후추 분쇄기와 믹서기, 재봉틀 등도 제조했다. 몇몇의 생활용품은 아직도 생산한다. 특히 분쇄기가 유명하다. 1889년부터 이어온 모터사이클 사업도 건재하다. 현재는 금융, 물류 등의 사업에도 진출했다.

자동차 제조사로서의 역사도 만만치 않다. 푸조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자동차 제조사다. 자동차 제작은 1889년, 창업자의 손자인 아르망 푸조가 주도했다. 첫 차는 증기기관을 얹은 ‘타입1’이었다. 자동차 제조사로 첫 발을 내딛은 야심작이었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타입1은 지나치게 시끄럽고 진동도 심했다. 그러나 다음해 출시한 ‘타입2’는 달랐다. 독일 다임러의 가솔린 엔진을 얹어 한층 더 안정적이었다.


 <타입2>

아르망 푸조는 타입2의 성능과 내구성을 자부했다. 그래서 프랑스 발렌티니부터 브레스트까지 2200㎞가 넘는 거리를 왕복하는 이벤트를 열었다. 타입2는 아르망 푸조의 기대에 부응했다. 가볍게 완주에 성공해 푸조의 기술력을 입증했다. 푸조는 1894년에 프랑스에서 열린 세계최초의 자동차 경주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이 경주를 계기로 푸조는 이름을 널리 알렸고 자연스레 주문도 쇄도했다.

1896년, 아르망 푸조는 본격적인 자동차 생산을 위해 ‘푸조 자동차’를 정식으로 설립했다. 다임러와의 인연을 끊고 엔진 개발에도 나섰다. 이후 푸조는 자동차 경주를 통해 성장했다. 그런데 푸조의 전략은 조금 독특했다. 경주에서 명성을 얻은 다른 회사는 소수를 위한 고급 차를 생산했던 반면 푸조는 대중을 위한 작은 차를 생산하는데 주력했다. 서민을 위한 생활용품 등을 만들며 성장한 푸조다운 행보였다.


<Bebe>

1905년엔 이름마저 아기라는 뜻의 ‘베베(Bebe)’라는 모델을 출시했다. 설계는 부가티의 창업자, 에토레 부가티가 맡았다. 길이 2.7m, 무게 350㎏의 아담한 베베는 성능도, 인기도 높았다. 각종 자동차 경주를 석권하며 푸조의 명성을 더욱 높였고 세계 1차 대전 중에도 팔려나갔다. 베베는 전쟁으로 인해 긴박해진 경제상황 속에서 푸조를 구해낸 주인공이었다.

이런 푸조의 전략은 베베의 후속 모델인 201로 이어진다. 1929년 데뷔한 201은 208의 선대 모델이자 푸조 2시리즈의 시작점이며 앞쪽에 독립식 서스펜션을 세계 최초로 도입한 모델이기도 하다. 베베가 그랬듯, 201 역시 푸조를 위기에서 구해낸다. 푸조는 뉴욕 발 경제 대공황으로 인해 유럽 경제가 박살났을 때도 201이란 효자 모델 덕에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위-201과 202, 아래-203과 204>

201의 후속모델인 202는 라디에이터 그릴 안에 헤드램프를 집어넣은 파격적인 모델이었다. 하지만 세계 2차 대전으로 인해 큰 빛을 보지 못했다. 이어 등장한 203은 높은 인기로 전후 푸조의 부활을 견인했다. 푸조 최초로 전륜구동 방식을 도입해 실용성을 한층 끌어올린 204 역시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83년엔 푸조와 2시리즈 역사에 획을 긋는 205가 등장한다. 보수적인 스타일을 버리고 탄탄한 성능과 핸들링을 최대 장점으로 내세웠다. 205는 기본기가 워낙 좋았던 탓에 ‘GTI’라는 고성능 모델로도, 랠리 경주 참가 승인을 위한 200대 한정 ‘205 T16’이라는 경주용 모델로도 가지를 쳤다.


 <위-시판용 205 T16, 아래-그룹B 경주용 205 T16> 

랠리 경주를 위해 태어난 205 T16은 일반 모델과는 많은 부분이 달랐다. 엔진을 차체 가운데 얹고 네 바퀴를 굴렸다. 차체도, 바퀴간 거리도 넓었다. 205 T16은 그룹B 클래스에 참가해 아우디, 란치아 등의 쟁쟁한 경쟁자를 물리치며 단숨에 우승을 차지한다. 그룹B는 랠리 역사상 가장 경쟁이 치열했던 클래스였기에 그 활약 역시 높이 평가 받고 있다.

205는 이후 14년간 520만대가 넘게 팔리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 후속모델인 206은 전작의 인기를 등에 업고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하지만 205를 넘어서는 매력은 없었다. 그 뒤를 이은 207도 마찬가지였다. 207은 실용성을 위해 몸집을 부풀렸었다. 스타일도 화려했다. 하지만 주행감각이 문제였다. 207을 두고 사람들은 205의 특유의 주행감각을 언급했다.


그러나 2012년 등장한 208은 207과 다르다. 208은 이전에 비해 7㎝ 짧아졌다. 너비와 높이도 조금 줄었다. 치열한 다이어트도 감행했다. 차체 앞 쪽엔 알루미늄 범퍼레일을 달고 하체와 내장재 등에서도 무게를 그램 단위로 짜냈다. 차체 곳곳을 레이저로 여민 것도 무게 감량에 한 몫 했다. 그 결과 208은 이전에 비해 최대 173㎏ 가벼워졌다.

208이 소형차임을 감안하면 대단한 성과다. 무게 100㎏의 사람이 10㎏ 감량하는 것과 50㎏의 사람이 10㎏ 감량하는 것을 비교해서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덩치와 무게가 주행감각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 205의 주행감각을 살려내 2시리즈의 인기를 되찾으려 하는 푸조가 2시리즈의 차체를 줄이고 무게를 덜어낸 이유다. 푸조가 208에 리제네레이션이란 단어를 붙이고 재건, 부흥이란 의미를 강조한 의도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재건, 부흥은 주행감각까지다. 그 외 부분은 전부 개혁, 쇄신에 해당한다. 208에선 이전 모델과의 연관성을 찾아 볼 수 없다. 안팎에서 소위 ‘좋았던 시절’에 대한 향수가 묻어나올 법한데, 푸조는 그런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고양이를 주제 삼는 겉모습은 여전하다. 그러나 인상은 크게 다르다. 207에 비해 힘을 뺀 것이 특징이다. ‘사납다’에서 ‘귀엽다’라는 식의 정체성 변화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디테일도 눈에 띄게 높아졌다. 헤드램프 윗변엔 하얀 불빛 밝히는 LED를 가지런히 심었다. 크롬재질로 마감한 라디에이터 그릴과 안개등은 고급스러운 느낌을 낸다. 사이드 미러 아래쪽에 엉성하게 붙어 있던 방향 지시등도 위쪽으로 옮겼다. 앞 문짝 앞쪽에서 아랫변을 비튼 창문라인과 16인치 휠을 빠듯하게 품은 앞뒤 펜더, 길이를 확연하게 줄인 앞 오버행은 스포티한 느낌을 물씬 낸다.  


실내는 유난히 화려하고, 독특하다. 앞창과 대시보드가 만나는 지점까지 껑충 올라앉은 계기판과 크기가 유난히 작은 스티어링 휠이 이런 느낌을 낸다. 계기판을 올려붙이면 헤드업 디스플레이 효과를 내 시선 분산을 막는다. 운전대의 크기를 줄인 것도 계기판으로 가는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다. 도로와 주행에 관한 각종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으니 안전 운전에도 도움 된다. 다양한 장비로 폭리를 취할 수 없는 대중 브랜드, 푸조다운 묘안인 셈이다.

센터페시아 위쪽에 턱 올려놓은 모니터도 특이하다. ‘터치’로 작동하는 이 장비는 차에 대한 각종 설정과 멀티미디어 기능을 품은 인포테인먼트 역할을 한다. ‘피아노 블랙’으로 마감한 패널들에 구석구석 더해진 금속성 부품들은 고급스러운 느낌을 낸다. 테두리에 파란색 조명을 머금은 파노라마 루프 역시 이런 느낌을 부채질한다. 높직한 시트 덕분에 시야도 좋다. 여성운전자에게 환영받을 만하다. 모서리를 두툼하게 부풀린 등받이와 방석은 몸을 꽉 잡아준다. 그러나 위치가 애매한 까닭에 작은 컵만 거두는 컵홀더는 꽤나 불편했다.


차체 크기는 줄었지만 실내 공간 크기를 결정짓는 휠 베이스는 유지했다. 시트를 한층 더 얇게 빚는 등 구석구석 숨은 공간도 최대한 활용했다. 실내가 이전에 비해 한층 더 쾌적해진 이유다. 뒷좌석 무릎 공간은 50㎜나 늘었다. 하지만 성인이 뒷좌석에 앉아 먼 거리를 떠나기엔 여전히 부담된다. 짐 공간은 평소 285L. 6:4로 나뉘어 접히는 뒷좌석 등받이를 모두 접을 경우 1,076L로 늘어난다.

시승차는 208 1.6 e-HDi Feline다. 이름 그대로 최대 92마력, 23.5㎏․m의 힘을 내는 직렬 4기통 1.6L 디젤 엔진을 얹는다. 1톤 남짓한 차체에 높은 토크가 어울리니 가속감이 꽤나 거칠다. 이정도면 웬만한 스포츠 모델 안 부럽겠다. 수동 기반의 자동 6단변속기, MCP도 높은 ‘직결감’으로 터프한 느낌에 살을 보탠다.


그러나 이런 박력은 기어가 딱 맞물려 있을 때만 느껴진다. MCP는 여전히 변속시간이 길다. MCP를 단 푸조 모델들의 ‘제로백’이 유난히 더딘 결정적인 이유다. 그런데 문제는 가속시간이 아니다. 기어를 바꾸기 위해 연료를 차단하는 순간, 운전자의 의지가 동시에 꺾인다는 것이 문제다. 클리핑이 없는 것도, 클러치가 붙는 순간 가끔씩 생기는 잔 진동도 조금 불편한 요소다.

이런 증상은 시프트 패들 또는 변속레버를 사용해 직접 기어를 바꾸면 어느정도 해결된다. 기어 바뀌는 시점에 가속페달을 다독이는 것도 해결책 중 하나인데, 수동변속기에 익숙하거나 MCP 자체에 익숙해진 운전자라면 보다 능숙하게 다룰 수 있다. MCP는 단점이 꽤 있는 변속기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효율이 좋다. 고유가 시대에 높은 효율은 큰 장점이다. 푸조가 MCP를 고집하는 이유다. 시승차 역시 18.8㎞/L(신 연비)의 높은 연비를 낸다. 


몸놀림은 역시 푸조답다. 이전보다 한층 더 매끈하고 탄탄해졌다. 핸들링 또한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다. 208은 운전대를 잡은 손끝의 궤적을 따라 온몸을 잽싸게 비틀었다. 댐퍼의 수축, 이완 과정이 깃털처럼 활기찼고 경주차 마냥 작은 스티어링 휠은 감칠맛을 더했다. 솔직한 거동도 큰 장점이었다. 꽁꽁 얼어붙은 노면에서 언더 스티어를 예측하고 즐길 수 있을 정도였다.


푸조는 208을 두고 단언했다. 208은 205와 207의 장점을 한데 묶은 모델이라고. 그들의 주장은 거짓이 아니었다. 208은 스타일과 실용성은 물론, 운동성도 이전보다 개선된 모델이었다. 글로벌 경기가 꽁꽁 얼어붙은, 특히 유럽 경기가 엉망인 현 상황에서 등장한 208. 그래서인지 리제네레이션이라는 단어가 더욱 뜻 깊어 보인다. 2시리즈가 또 한 번 푸조의 구원투수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그 결과가 기대된다.

글 류민 | 사진 한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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