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백조'에 V8 엔진 쑤셔 넣은 애스턴 마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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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백조'에 V8 엔진 쑤셔 넣은 애스턴 마틴
  • 윤현수
  • 승인 2018.07.16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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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세계의 명차들이 한자리에 모여 자동차 매니아들을 설레게 하는 '2018 굿우드 페스티벌 오브 스피드(The Goodwood Festival of Speed)'에 생각지도 못했던 참가자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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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역시 메인 이벤트인 굿우드 힐클라임에서는 보기만 해도 입이 떡 벌어지는 도로의 주인공들이 등장했다. 각종 투어링 레이스 카나 고성능 슈퍼카와 시대를 풍미했던 올드카들은 물론, 포뮬러 카까지 등장하며 이벤트 코스에 들어선 관중들의 귀와 눈을 황홀케 했다.

그런데 애스턴마틴이 종전에 내놓았다가 시원하게 망한 시티카, '시그넷'이 별안간 메인 이벤트인 굿우드 힐클라임을 맹렬하게 달렸다. 물론 애스턴 마틴은 별 볼 일 없었던 새끼 백조(Cygnet)를 아무 대책 없이 내세운 건 아니었다. 명분이 있었다. 그 짤막한 보닛 아래, V8 4.7리터 엔진을 담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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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시무시한 변종은 애스턴 마틴의 고객 중 한 명의 요청에 따라 제작된 제품이다. 선대 밴티지에 장착되었던 V8 유닛을 품은 슈퍼 시그넷은 최고출력 430마력에 최대토크 49.9kg.m를 내뿜는다. 최고속도는 무려 270km를 상회하며 시티카의 한계를 훌쩍 넘어선다. 참고로 이는 2011년 처음 공개되었던 시그넷보다 무려 97km 정도가 빠른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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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강력한 파워트레인만 갖췄다고 해서 다가 아니다. 차는 모름지기 잘 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돌고 잘 서는 게 더욱 중요하기 때문, 사실 토요타 iQ 섀시가 미니카치곤 견고하긴 해도, 구식 자연흡기 V8 엔진의 강력한 파워를 받아들이기엔 역부족인 것이 사실. 애스턴 마틴은 차체 보강을 위해 시그넷에 롤케이지를 심었고, 변속기 구조도 변경하여 최적의 퍼포먼스를 내도록 매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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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시그넷 V8은 선대 밴티지의 7단 변속기와 브레이크, 냉각 계통 등을 수혈받았고, 서브 프레임과 서스펜션도 그대로 전수받아 한층 탄탄한 주행 성능을 구비했다. 깜찍하기 그지없는 시티카에 제대로 레이스를 즐기기 위한 4점식 레카로 버킷시트와 알칸타라 스티어링 휠을 구비한 것도 놀라운 사실 중 하나.

그리고 iQ, 혹은 시그넷은 시티카 치곤 제법 우람한 어깨를 지녔음에도 430마력의 출력을 온전히 노면에 쏟아부으려면 더욱 넓은 트랙을 갖춰야 했다. 애스턴 마틴은 펜더를 확장하고 트랙을 넓혀 코너링 안정성을 크게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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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시그넷은 그야말로 V8 / V12 엔진들로 가득한 애스턴 마틴의 기업 평균 연비를 줄이기 위한 일종의 '편법'으로 탄생한 '미운 오리 새끼'였다. 보기만 해도 황홀한 애스턴 마틴의 날개 엠블럼을 달아봤자, 속내는 그저 잘 만든 토요타제 시티카일 뿐이었다. 판매량 목표를 4천대로 잡았던 애스턴 마틴의 예상과는 달리 시그넷은 300대 정도 밖에 팔리지 않았고, 심지어 홈그라운드인 영국에서 조차 150대 판매에 그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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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저 웃음거리였던 새끼 백조는 한 고객의 요청으로 V8 엔진을 품으며 비로소 슈퍼카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깜찍한 얼굴을 하고 우렁찬 울음소리를 내며, 힐 클라임 코스를 맹렬히 달리는 이 포켓 로켓의 모습에 관중들은 미소를 머금었다. 골리앗들 사이에서 단연 빛나는 다윗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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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넷은 모기업의 편법으로 태어난 통에 무늬만 애스턴 마틴이라는 소리가 죽도록 싫었을 터이다. 그러나 시그넷은 오랜 기다림 끝에 영국 스포츠카의 상징과도 같은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 컬러 페인트를 입고, 꿈에 그리던 순수혈통의 V8 엔진을 수혈받았다. 이윽고, 끊임없이 손가락질 받던 미운 오리 새끼는 마침내 '백조'로 거듭나며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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