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 카이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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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카이엔
  • 모토야
  • 승인 2013.0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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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카이엔 S 하이브리드는 V6 3.0L 수퍼차저 333마력 엔진과 자동 8단 변속기와 통합된 47마력짜리 전기 모터를 얹는다. 0→시속 100㎞ 6.5초의 가속과 민첩한 몸놀림은 전형적인 포르쉐다. 하지만 시속 60㎞까진 고양이처럼 숨죽여 모터만으로 달린다.




카이엔 S 하이브리드의 외모는 일반 카이엔과 같다. ‘하이브리드’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반짝이 장식이나 푸르스름한 엠블럼 따윈 없다. 타이어도 카이엔답게 두툼하다. 꽁무니의 차 이름을 보기 전엔 하이브리드란 사실을 눈치 채기 어렵다. 카이엔은 지난해 2세대로 진화했다. 2002년 데뷔 이후 2007년 마이너체인지를 거친 데 이은, 두 번째 변화였다.

1세대가 너무 온순해 보인다는 평이라도 들었는지, 포르쉐는 카이엔을 마이너체인지를 하면서 눈매를 잔뜩 찡그려 놨다. 짜증이 잔뜩 밴 표정이었다. 이번엔 눈매의 끝자락을 잡아 올렸다. 그런데 날렵할지언정 딱히 사나워 보이진 않는다. 사실 이번 카이엔은 귀여워서 탈이다. 디자인을 공들여 빚으면서 몸매가 더욱 둥글어졌다. 테일램프도 깜찍하기 짝이 없다.

도어를 열면 낯익은 광경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눈높이가 다를 뿐 파나메라를 쏙 빼닮았다. 밋밋했던 카이엔의 인테리어에 입체감이 오롯이 살아났다. 질감은 한층 생생해졌고 굴곡이 더욱 도드라졌다. 파나메라를 닮은 건 디자인뿐만이 아니다. 소재가 한층 고급스러워졌다. 1세대 카이엔 V6의 코끼리 피부 같은 대시보드의 악몽을 지워내기에 충분하다. 




카이엔 S 하이브리드의 심장은 V6 3.0L 수퍼차저 333마력이다. 카이엔 V6와 또 다른 엔진이다. 여기에 8단 자동변속기에 통합된 47마력짜리 전기 모터를 물렸다. 엔진과 모터가 어울린 시스템 총 출력은 380마력. 카이엔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스트롱(strong)’ 방식. 전기 모터의 파워가 충분해서 혼자서도 우람한 덩치를 거뜬히 끌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토요타 같은 직병렬식이 아닌 병렬식이다. 원반처럼 둥글고 납작한 전기모터가 엔진과 변속기의 사이에 떡 버티고 있다. 여전히 굳건한 토요타의 특허 장벽과 부딪히지 않을 묘안이었다. 현대 쏘나타를 비롯해 최근 나온 하이브리드카는 대개 이 방식을 쓴다. 포르쉐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폭스바겐과 공유한다.

그래서 카이엔과 투아렉 하이브리드 버전은 파워트레인까지 같은 이란성쌍둥이다. 카이엔의 시스템은 토요타보다 간단하고 이해가 쉽다. 토요타는 엔진과 모터가 하나의 행성기어 세트에 연결돼 있다. 행성기어는 모터와 변속기를 거쳐 바퀴에 구동력을 전한다. 엔진만으로 달리던, 모터만으로 달리던 행성기어는 쉴 새 없이 돈다. 움직인다는 건 저항을 뜻한다.

반면 카이엔은 엔진과 클러치, 모터, 그리고 변속기를 하나의 축으로 연결했다. 엔진의 힘을 전할 땐 클러치가 붙어서 전체가 한 덩어리로 회전한다. 그러나 모터만으로 달릴 땐 클러치를 끊어 엔진은 방관자로 전락한다. 나아가 강한 추진력이 필요할 땐 엔진의 회전력에 모터가 힘을 보탠다. 하나의 축을 두 손으로 비트는 셈이니 효과가 클 수밖에 없다.

배터리는 모터와 연결됐다. 동력의 전달과정은 짧고 간결하다. 부품 수도 적다. 따라서 원가도 상대적으로 적게 든다. 포르쉐와 폭스바겐은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여러 파트너와 손잡고 개발했다. 288볼트의 니켈 메탈 하이드라이드(NiMh) 배터리는 산요, 자동 8단 변속기는 토요타의 계열사인 아이신, 핵심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보쉬에서 공급받는다. 




시간에 쫓겨 시승차를 받자마자 정신없이 내뺐다. 높은 시야, 우람한 덩치와 어울린 ‘제로백’ 6.5초의 가속은 충분히 가슴 서늘했다. 속도계 바늘은 성능제원의 최고시속 242㎞ 언저리에 이르도록 고개를 빳빳이 쳐들었다. 추월 때도 쭈뼛거리는 기색이 없다. 시스템이 최대토크 59.1㎏·m를 불과 1,000rpm에서 토해내기 때문이다. 전원 스위치를 켜듯, 드로틀만 열면 카이엔 S 하이브리드는 커다란 얼굴로 공기의 벽을 꿰뚫으며 무서운 기세로 뛰쳐나갔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대개 친환경성과 짝지어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일정 엔진회전수에 도달해야 제대로 파워가 농익는 내연기관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기술이다. 켜지는 순간 최대토크를 내는 전기 모터 덕분이다. 고회전에서 효율이 떨어지는 등 풀어야할 기술적 숙제가 많지만, 최고속차의 영예는 앞으로 전기차의 몫이 될 가능성이 높다.

카이엔 S 하이브리드에 드리운 의문은 과연 포르쉐다운지였다. 시승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인은 하나 같이 그 점을 캐물었다. 사실 카이엔 디젤 역시 같은 의혹을 받았다. 그런데 독일에서 타보곤 걱정을 딱 접었다. 가속과 몸놀림 모두 휘발유 카이엔 버금갔다. 공회전 때 차 바깥으로 잔잔히 너울대는 소음과 기름진 배기음이 없는 점이 거의 유일한 차이였다.




본의 아니게 카이엔 S 하이브리드를 받자마자 ‘조졌다’. 핸들링과 몸놀림 모두 포르쉐답게 정밀하고 민첩했다. 고성능 SUV 누구와도 구분되는, 카이엔만의 정교한 맛이 살아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난 어느새 이 차가 하이브리드카란 사실을 까맣게 잊었다. 걱정과 달리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카이엔의 본질을 흐리지 않았다. 적어도 마음껏 달릴 땐 그랬다.

숨을 고르고 도심을 배회하면서, 하이브리드카를 타고 있다는 사실이 서서히 와 닿았다. 카이엔 S 하이브리드는 센터페시아나 계기판의 정보창을 통해 파워가 어디에서 나와 어디로 흐르는지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저속에선 파워가 엔진 바로 뒤의 모터에서 시작돼 네 바퀴로 흐른다. 카이엔 S 하이브리드는 시속 60㎞를 넘도록 전기 모터만으로 움직였다.

렉서스 RX450h를 몰 땐 액셀을 보물단지처럼 쓰다듬어도 어지간해선 모터만으로 시속 40㎞를 넘기 어려웠다. 반면 카이엔은 시속 70㎞에 다다라서야 엔진이 슬그머니 깨어난다. 시속 156㎞까진 추가 가속이 필요 없으면 거리낌 없이 엔진의 숨통을 끊었다. 엔진과 머플러가 꿀 먹은 벙어리로 변할 때마다, 스티어링 휠의 포르쉐 엠블럼이 지독히 낯설었다.

카이엔 S 하이브리드의 유럽 기준 공인연비는 12.1㎞/L. 카이엔 디젤의 국내 공인연비보다 좋다. 전기 모드 때만 아니면 운전감각도 자연스럽다. 짐 공간도 손해 보지 않는 데다, 딱히 무거운 느낌도 없다. 오히려 모터의 지원사격 덕분에 가속과 추월이 시종일관 후련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기왕 포르쉐를 탄다면, 가슴 저미는 사운드를 쫓아 카이엔 S를 고를 거다. 지구온난화가 걱정돼 잠을 설치고 연료비가 아까워 손이 떨린다면, 그냥 프리우스나 인사이트를 타면 된다.


글 김기범|사진 포르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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