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시로코 R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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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바겐 시로코 R 시승기
  • 류민
  • 승인 2013.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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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코는 폭스바겐의 ‘스포츠쿠페’다. 뼈대 및 파워트레인은 골프와 나눠쓴다. 하지만 성격은 확연하게 다르다. 승하차 편의성이나 실내 공간크기 등에 얽매이지 않았다. 오직 스타일과 운전 재미에만 초점을 맞췄다. 시승차는 시로코 R. 시로코 중 가장 화끈한 성능을 뽐낸다. 특히 몸놀림은 ‘전륜구동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빠릿빠릿하다. 시로코 R이라면 스포츠쿠페가 아닌, 스포츠카라고 불러도 되겠다. 



R은 폭스바겐의 고성능 모델을 뜻한다. 벤츠 AMG, BMW M 등과 맥락이 같다. 성능은 그동안 폭스바겐의 스포티한 이미지를 책임져 온 GTI를 웃돈다. 개발은 ‘고성능 전담팀’인 폭스바겐 R GmbH가 책임진다. 폭스바겐은 2002년 4세대 골프의 고성능 모델인 R32 등을 출시하며 시장 반응을 살핀 후, 2010년 이 회사를 설립했다. 현재, 시로코 R과 골프 R을 생산한다.


이 고성능 전담팀은 경주차도 만든다. 2013년, WRC(World Rally Championship, 세계랠리선수권)에 데뷔한 폴로 R WRC가 이들의 작품이다. 아울러 ‘R-라인’도 개발한다. R-라인은 안팎을 R처럼 꾸민 모델이다. 성능은 일반 모델과 같다. 골프, 티구안, 폴로, CC 등 대부분의 폭스바겐 핵심 차종에 이 패키지가 준비된다. 물론, 시로코에도 R-라인 모델이 있다.



국내에 수입되는 시로코는 두 가지로, 2.0 TDI 엔진의 ‘시로코 R-라인’과 고성능 모델인 ‘시로코 R’로 나뉜다. 두 모델의 겉모습은 비슷하다. R-라인이 ‘R 스타일 패키지’를 단 모델이니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역시 ‘진짜’는 조금 다르다. 두 대를 나란히 두고 살펴보면, 시로코 R이 한결 박력 있다.


이런 차이는 특히 앞모습에서 두드러진다. 범퍼 디자인이 한층 더 과격하다. 그릴 안쪽엔 ‘R’ 엠블럼을, 공기흡입구 한편 안쪽에는 오일 쿨러를 심었다. 머플러도 다르다. R-라인은 팁 두 개짜리 머플러 한 개를 범퍼 한쪽에 다는 반면, R은 팁 한 개짜리 머플러 두 개를 범퍼 양쪽에 나눠 단다.



국내에는 날카로운 이미지를 유독 강조한 시로코 R-라인과 시로코 R만 팔지만, 시로코는 원래 스포티한 차다. 골프와 DNA를 나눴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 정도다. 머리 위 공간, 짐 공간 크기 등에 개의치 않는다는 듯, 납작 누른 지붕과 잔뜩 부풀린 휠 하우스를 어울렸다. 이는 폭스바겐이 3도어 골프를 두고 시로코를 만든 가장 큰 이유다. 시로코는 골프와 역할이 달라야 한다는 것. 실용성에 목멘 골프와는 달리, 시로코는 감성을 자극하는 모델이다.


시로코의 이런 특성은 실내에 들어설 때부터 피부에 와 닿는다. 문짝이 유난히 긴 까닭에 어느 정도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그런데 시로코 R의 경우 다른 고민이 뒤따른다. 모서리를 바짝 세운 버킷시트가 탑승자를 맞이하기 때문. 고개를 숙이고 몸을 비틀어 엉덩이를 들이 미는 수고가 필요하다. 꽤나 불편하지만, 스포츠카에 오른다는 관점에선 기분 좋은 과정이다. 




하지만 시트에 몸을 포개고 나면 편안하다. 몸을 바짝 붙들어 주니 심리적 안정감이 크다. 무릎 공간과 머리 위 공간도 짐작보다 넉넉하다. 무엇보다 운전 자세가 매우 근사하다. 앞쪽이 번쩍 들린 방석 덕분에 운전대 쪽으로 바짝 당겨 앉아도 다리 움직임에 제약이 없다. 스티어링 휠도 아래쪽을 판판하게 다진 ‘바텀 플렛’ 타입이다.


실내 구성은 골프의 형제인 EOS와 같다. 대시보드와 센터페시아, 센터콘솔 등이 판박이다. 파란색 바늘을 품은 계기판 정도가 시로코 R의 특징이다. 그런데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납작한 지붕과 얄따란 창문은 스포츠카답게 풍경을 빠듯하게 담는다. 몸을 압박하는 시트까지 더해져 제법 서늘한 긴장감이 맴돈다.


뒷좌석도 막상 앉으면 편하다. 머리 위 공간이 조금 빠듯할 뿐이다. 그런데 드나들기가 매우 힘들다. 등받이가 잘 젖혀지지 않는 앞 시트가 문제다. 짐 공간의 크기는 312L. 6세대 골프보다 38L 작다. 뒷모습의 2/3를 차지하는 뒤 범퍼 때문에 짐 싣고 내리기도 꽤 까다롭다. 뒷좌석과 짐 공간은 ‘비상용’으로는 아주 훌륭하지만, ‘일상용’으로는 다소 불편하다.



이런 아쉬움은 남다른 성능에서 만회가 된다. 시로코 R은 최고 265마력, 35.7㎏․m의 힘을 내는 직렬 4기통 터보 엔진과 6단 듀얼클러치 변속기(DSG)로 ‘제로백’을 5.8초 만에 끊는다. 시로코 R-라인은 물론, 골프 GTI보다도 최고 54마력, 7.1㎏․m 높고 1.1초 빠르다. 동급에선 찾아보기 힘든 성능이다. 이정도면 어디 가서 가속 성능으로 주눅들 일은 없겠다.


가속 감각은 수치보다 극적이다. 초반에 뜸들이다 힘을 와장창 쏟아내는 터보 엔진 특성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회전에 살을 붙여 토크 밴드에 올라타는 순간, 등을 사정없이 떠민다. 그런데 이 ‘터보렉’이 꽤 중독성이 강하다. 게다가 회전 한계에서 기어를 윗 단으로 바꿔 탈 땐 머플러에서 “펑펑”소리도 낸다. 때문에 자꾸 엔진이 빨갛게 무르익는 회전수에 맞추게 된다.



정지 상태에서도 짜릿한 가속을 맛볼 수 있다. ESC 버튼을 끄고 변속 레버를 S에 둔 후, 브레이크 페달과 가속 페달을 바닥에 짓이기면 ‘론치 콘트롤’이 작동한다. 그 상태에서 브레이크 페달을 놓으면 차는 쏜살같이 튀어 나간다. 물론, 토크스티어는 찾아 볼 수 없다. 속도계 바늘이 치솟는 순간에도 운전대는 반듯한 자세를 유지한다.


그런데 시로코 R의 진가는 가속 성능이 아닌 몸놀림에 담겨있다. 서스펜션 구성은 앞 맥퍼슨 스트럿, 뒤 멀티링크로 골프와 같다. 하지만 댐퍼와 스프링, 스테빌라이저의 강성을 키우는 한편, 뒤쪽 너클 등의 부품을 알루미늄 소재로 바꿔 무게를 덜었다. 아울러 시로코 R은 한층 더 단단한 스포츠 서스펜션과 235-35 사이즈의 19인치 타이어로 무장했다.



골프와의 차이는 손끝과 허리를 통해 단박에 느껴졌다. 시로코 R의 움직임은 동급 경쟁자는 물론, 그 어떤 폭스바겐보다도 민첩했다. 스티어링 휠을 꺾는 손끝을 따라 앞머리를 잽싸게 비틀었다. 꽁무니의 움직임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섀시는 화끈한 엔진과 단단히 응어리진 관절을 리드하며 타이어를 연신 노면에 짓눌렀다. 골프 섀시의 높은 완성도를 새삼 깨닫게 될 정도였다.


특히 굽이진 길에서는 전륜구동이라고 믿기 힘들만큼 빨랐다. 전자식 차동제한장치(XDS) 덕분에 언더스티어 현상에서 자유로웠다. 궤적이 커질 것 같아도 가속 페달만 밟으면 의도대로 코너를 돌아나갔다. 사실 XDS는 ‘반칙 아이템’에 가깝다. 상식 이상의 속도로 코너를 진입하는 얼간이만 아니라면 누구나 ‘레이서’처럼 달릴 수 있어서다. XDS는 스티어링 휠 꺾는 속도와 좌우 휠 속도까지 감지해 차의 움직임을 예리하게 다잡는다.



시로코를 타본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이전 시승차는 골프 GTD와 같은 성능의 시로코 R-라인이었다. 그 때는 골프를 두고 시로코를 사야 할 당위성을 찾지 못했었다. 그저 스타일과 맞바꾸기엔 골프에 담긴 실용성이 너무 컸다. 하지만 이번에 시로코 R을 타보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화끈한 연애 상대라면 시시한 골프보단 시로코 R이 제격이라고.


글 류민 기자 | 사진 한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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