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냉정 사이를 넘나드는 스포츠 쿠페 - 시로코 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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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과 냉정 사이를 넘나드는 스포츠 쿠페 - 시로코 R
  • 박병하
  • 승인 2014.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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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에 선보인 초대 시로코는 당초에는 골프의 고성능 모델로서 기획되었다. 날렵한 형상의 패스트백 쿠페 디자인은 1세대 골프의 스타일링을 맡았던 주지아로의 작품이었다. 1981년 등장한 2세대 모델은 1992년까지 생산되다가 그 뒤를 좀 더 현대적인 신형 쿠페인 코라도에게 넘겨주게 된다. 이로써 시로코는 시장에서 조용히 사라지는 듯싶었다.



그러나 폭스바겐은 2006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시로코의 부활을 암시하는 듯한 IROC 콘셉트를 선보였다. IROC 콘셉트의 반응은 호의적이었고, 이 차의 차명이 코라도가 아닌, 시로코가 될 것이라는 루머가 돌았다. 시로코(Scirocco)의 철자에서 가운데 있는 4개의 철자가 IROC였던 것이 이유였다. 이후 IROC 콘셉트는 양산 및 판매를 위한 몇 가지 손질을 거쳐 2008년도부터 정식으로 ´시로코´로 시장에 출시하게 되었다. 2세대 모델이 단종된 지 16년 만의 일이었다. 한국에는 유럽 시장 출시 4년 만인 2012년부터 선보였다. 라인업은 시로코 2.0 TDI R-Line과 R의 두 가지로 운용되었다. 현재는 R이 절판되었고, 2.0 TDI R-Line의 한 가지 모델만 남게 되었다.



시로코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 밑바탕이 되는 골프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초대 시로코부터가 골프의 가지치기 모델로서 출시되었음은 물론, 현재도 시로코의 근간을 이루는 기본 구조는 골프의 것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초가 탄탄한 골프의 플랫폼은 지금도 수많은 폭스바겐 AG의 중소형 파생 모델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시로코도 그 수많은 파생 모델들 중 하나다. 폭스바겐 시로코, 그 중에서도 최강으로 통하는 R을 시승했다.





시로코R을 처음 대면했을 때, 통상적인 R-라인 모델과는 사뭇 다른 인상을 보인다. 낮게 깔린 범퍼와 큼지막한 에어 인테이크 등에서 공격적이고 도전적인 이미지가 두드러진다. 블랙 하이글로스 페인팅으로 마감된 도어 미러, 직경 19인치에 달하는 알로이 휠, 범퍼 하단과 같은 선상에서 이어지는 사이드 스커트, 듀얼 테일 파이프 또한 시로코 R의 도전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주는 데 일조한다. 강렬한 파란색 색상은 시로코 R의 외양을 더욱 인상 깊게 만들어준다. 시로코 R의 전장X전폭X전고는 4,250 X 1,820 X 1,395 mm다.




실내의 분위기는 골프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하지만 최고 등급의 고성능 모델다운 몇 가지의 구성품이 눈에 띈다. 대표적인 품목이 있다면 두터운 사이드 볼스터를 가진 스포츠 버킷 시트가 있다. 그 외에는 D컷 형태의 스티어링 휠과 메탈 소재의 페달 킷 정도가 눈에 띈다. 그 외에는 특별히 화려한 구석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막상 운전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버킷 시트의 포지션과 착석감에서부터 평범한 놈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두텁고 단단한 사이드 볼스터가 허리부터 대퇴부 바깥쪽까지 꽉 조여주는, 제대로 된 버킷 시트다. 착좌부도 딱딱한 질감을 가지고 있다. 포지션 또한 일반적인 승용 모델보다 반 뼘 이상 더 내려가 있는 듯하다.



D컷 형태의 스티어링 휠 또한 만족스럽다. 직경이 작은 편이고 림의 굵기도 가는 편이다. 손이 작은 운전자에게 좋을 듯하다. 가늘면서도 단단하게 잡히도록 조형되어 있기 때문에 손이 큰 사람에게도 그리 큰 불만은 나오지 않을 듯하다. 기자의 경우는 손이 큰 편에 속하지만 이 스티어링 휠은 꽤나 만족스런 부분이었다. 특히 손에 쏙쏙 들어오는 감촉이 인상적으로 남는다. 스티어링 휠의 버튼 구성은 7세대 골프의 것과 비슷하다. 좌우 스포크 뒤편에는 시프트 패들이 위치해 있다.



시로코 R의 계기반은 다른 폭스바겐 모델들과 비슷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좌우로 스케일이 다르게 표시된 스피도미터, 간소한 중앙 디스플레이 등이 그렇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계기류의 바늘이 푸른빛이라는 점 정도. 편의 장비 면에서도 딱히 부족한 점은 없다. 전자동 에어컨, 2단계 조절 가능한 열선시트, 지니맵 기반의 한국형 내비게이션 시스템 등이 기본 사양으로 제공된다.


시동을 걸고 운행을 시작해 본다. 시동부터 꽤나 힘찬 기운이 느껴진다. 배기음이 큰 편이고 아이들링 소음 또한 작지 않다. 시승차의 컨디션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부밍음을 비롯한 엔진 쪽의 소음이 실내로 유입되고 있는 느낌이다. 엔진 사운드를 실내에 인위적으로 흘려 넣는 사운드 제너레이터가 장착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듯하다. 정숙한 세단들에 익숙한 운전자들에게는 다소 신경에 거슬릴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차의 성격에 비춰봤을 때 이 정도의 소음은 크게 높은 편이라고 판단할 만한 정도는 아니다.



승차감은 고성능 스포츠 쿠페 다운 탄탄함을 숨김 없이 드러낸다. 노면의 요철을 만났을 때의 반응이나 체감 충격량, 그리고 그에 따른 차체의 바운싱까지 어느 것 하나 느슨함을 보여주지 않는다. 댐핑 스트로크도 짧은 데다, 서스펜션의 세팅이 전반적으로 딱딱한 감각이다. 고른 노면에서는 안정적이고 타이트한 느낌을 주고, 그렇지 못한 노면에서는 사정 없이 운전자의 허리를 두들겨 댄다. 사실 이러한 점은 고성능을 지향하는 모델들이라면 으레 가지고 있는 성격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장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R을 위해 만들어진 2.0 TSI 엔진의 최고출력은 6000rpm에서 265마력, 최대토크는 2500~5000rpm에서 35.7kg.m다. 여기에 폭스바겐의 자랑인 6단 DSG 변속기가 합을 맞춘다. 이들의 궁합은 시로코 R의 0-100km/h 가속 시간을 6초 이내로 끊게 만들어주는 주역이다. 게다가 거칠고 열정적인 음색의 배기음 또한 일품이다. 파워풀한 엔진, 영리한 변속기, 그리고 열정적인 사운드의 조화는 시로코 R의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기 어렵게 만든다. 이따금씩 터보 랙이 느껴지기는 한다. 하지만 그 순간의 기다림이 지나고 나면 힘차고 맹렬한 가속력으로 충분히 보상한다.



시로코 R은 만족스런 추진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보다 더욱 인상 깊게 남는 점이 있다면 바로 그 몸놀림이다. 든든한 섀시와 빈틈 없이 조여진 하체는 영민한 몸놀림을 만들어 낸다. 조향 체계의 반응도 빠르고 앞부분의 움직임이 즉각적이다. 그래서 직선 주로보다는 곡선 주로를 달리는 것이 더 맛깔진 느낌이다.



칼 같은 제동력의 브레이크, 탄탄한 섀시와 하체가 어우러져 코너를 상큼하게 돌아 나간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따금씩 뒷부분이 진행 방향 바깥으로 흐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시로코 R에 갖춰진 전자제어 장치는 이를 잘 다스리는 데 도움을 준다. 전반적으로 역동적인 감각으로 일관하지만 그 아래에는 독일식의 정교함이 가미된 느낌으로 다가온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서 연비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시로코 R의 연비는 운전자의 가속페달 조작량에 반비례한다고 본다. 가속 페달의 조작량을 최소화하고 정속 주행 및 타력 주행 위주로 운행하다 보면 (트림 컴퓨터 상)도심 평균 9.7km/l, 고속도로 14km/l 정도의 연비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가속 페달을 과격하게 조작하기 시작하면 6km/l 아래로 곤두박질 치고 있는 평균 연비를 볼 수 있다.



시로코 R은 일반적인 승용차에 비해 불편한 점들이라 지적되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다. 승하차가 일반적인 승용차들에 비해 불편한 점, 딱딱한 착석감의 스포츠 버킷시트, 그에 못지 않게 딱딱한 승차감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본격적인 스포츠 쿠페들이 갖게 되는 태생적인 특징으로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이러한 점들을 제외해 놓고 보면 일상에서 크게 불편한 점은 없다.



시로코 R은 일반적인 해치백에서 지붕의 높이를 낮추어 만들어져 있다. 따라서 통상의 소형 2도어 쿠페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수준의 넉넉한 공간 구성을 갖고 있다. 작은 차체에서 오는 영민한 기동성도 빼 놓을 수 없다. 이로 인해 복잡한 도심에서의 운행환경에서 이점을 갖게 된다. 주차하기도 쉽고, 좁은 골목길에서도 큰 걱정을 안겨주지 않는다.


폭스바겐 시로코 R은 폭스바겐 AG에서 만들어지는 수많은 골프의 파생 모델 중 하나다. 하지만 골프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고는 수수한 인테리어와 탄탄한 기본 구조일 뿐이다. 일단 5도어 해치백인 골프에 비해 쿠페의 도전적인 스타일을 채용하고 있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또한 그 주행 질감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단순히 골프에서 갈라져 나온 파생 모델 중 하나라고 치부하기에는 남다른 개성과 매력을 갖고 있다. 시로코 R을 경험하며 폭스바겐 엔지니어들이 생각하는 ´퍼포먼스´에 대한 방향성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종합하자면 끓어오르는 열정을 무기로 삼되, 칼날과 같은 냉철함으로 그를 다스리는 느낌이라 할 수 있다. 화려한 익스테리어에 비해 덤덤한 인테리어, 열정적인 파워트레인에 냉철한 섀시와 하체, 그리고 전자장비 등, 열정과 냉정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시로코 R은 확실히 매력적인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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