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갓집 맏이의 신언서판 - 지프 그랜드 체로키 3.0 오버랜드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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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갓집 맏이의 신언서판 - 지프 그랜드 체로키 3.0 오버랜드 시승기
  • 박병하
  • 승인 2014.08.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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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로더의 명가, 지프는 제 2차 세계 대전 중에 생산되어 유럽과 태평양 전선을 누빈 윌리스 MB를 시작으로 오늘날까지 그 명성을 이어 오고 있는 집안이다. 이번 시승은 이 뼈대 있는 집안의 장남, 그랜드 체로키가 그 주인공이다. 1991년,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등장한 그랜드 체로키는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맏이의 역할을 수행해내고 있다. 출시 후 지금까지 3번의 풀 모델체인지를 거쳤고, 작년 하반기부터는 2014년식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이 등장하여 판매를 계속하고 있다.





이 종갓집 맏이의 신수를 보자면, 풍채가 육중하고 기백이 있어, 보는 이에게 위압감을 준다. 덩치도 한몫 하지만 무엇보다도, 성형 수술 이전의 그랜드 체로키에 비해 훨씬 공격적인 인상을 가진 얼굴이 이러한 느낌을 주는 가장 큰 요인이 된다. 그와 동시에, 기존의 그랜드 체로키에 비해 훨씬 현대적인 스타일로 일신했다. 이는 테일 램프도 마찬가지.





페이스리프트가 진행되면서 바뀐 점을 짚어 보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헤드램프의 크기가 작아지면서 LED 주간주행등이 들어갔다. 두텁게 발라두었던 크롬 장식들을 크게 억제하여 세련미를 살렸다. 무광 검정 플라스틱으로 마무리했던 차체 하단의 몰딩은 차체 색상과 동일하게 변경되었다. 이러한 변화를 바탕으로, 도심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스타일로 변모했다. 하지만 근래의 크로스오버 SUV들처럼 유연한 인상은 아니다. 든든하고 절도 있는 남성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물론 전통적인 디자인 요소는 건재하다. 이를테면 지프의 상징과도 같은 7슬롯 라디에이터 그릴이나, 사다리꼴 휠 아치 같은 것들 말이다. 또한 전통에 대한 자부심도 살짝 엿보인다. 좌우 헤드램프 내부를 살펴보면, 왼쪽 헤드램프 베젤 내부에 윌리스 MB의 처음 생산연도인 1941년이, 오른쪽 헤드램프 베젤 내부에는 윌리스 MB의 옆모습이 양각되어 있다.



실내는 우람하고 공격적인 외모와는 달리, 차분하고 정돈된 인상을 준다. 전반적으로 단순한 구성의 실내 곳곳에 지프의 사다리꼴 형상을 강조한 디자인으로 악센트를 주고 있다. 특히, 펄이 들어간 메탈그레인과 구리 장식이 독특한 느낌을 준다. 그런데 전반적으로 체감 상의 공간은 덩치에 비하면 크게 넓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그랜드 체로키에 탑재되는 7인치 컬러 멀티-뷰(Multi-View) 주행 정보시스템은 중앙의 액정 디스플레이를 중심으로 좌측에 타코미터, 우측에 수온게이지와 연료게이지가 반원형태를 이루며 배치된 것이 특징이다. 속도계를 아날로그로 설정한 경우, 좌우의 반원에서 이어지는 느낌의 UI 디자인이 눈에 띈다. 하지만 디스플레이 창과의 거리가 다소 떨어져 있어, 억지스런 느낌이 드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깔끔한 폰트와 색 배치로 인해 시인성은 우수한 편에 속한다. 또한 운전자의 필요에 따라, 좌우 상단에 표시할 내용을 고를 수도 있다.



스티어링 휠은 큼직하다. 상단은 유광 우드그레인으로, 중간 이후부터는 가죽으로 마감되어 있고 열선 기능도 적용되어 있다. 굵직한 림은 그립감이 나쁘지 않다. 하지만 손이 작은 여성 운전자들은 불편을 호소할 수도 있다. 스티어링 휠의 좌우 스포크에는 인스트루먼트 패널 컨트롤러, 핸즈프리 버튼, 크루즈 컨트롤 버튼들이 배치되어 있다. 그 뒤편에는 시프트 패들 또한 마련해 두었다.



그랜드 체로키에 탑재되는 8.4인치 유-커넥트 시스템은 한국어 음성인식 기능 및, 내비게이션, 라디오, 공조장치, 전화 기능 등을 한데 모았다. 대부분의 제어를 터치스크린으로 하기 때문에, 조그셔틀 같은 컨트롤러를 쉴 새 없이 만지작거려야 하는 다른 시스템들보다 직관적으로 조작할 수 있다. 하지만 기본으로 설치된 내비게이션 시스템은 UI부터 시작해서 음성 안내, GPS의 정확성 등, 여러 부분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완성도를 보여, 아쉬움이 남는다.




앞좌석은 안락함을 우선한 형태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의외로 착좌감이 은근히 딱딱한 편이다. 뒷좌석도 비슷한 정도의 착좌감이 느껴진다. 착좌감을 조금만 더 부드럽게 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아쉬움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뒷좌석 공간은 차체의 사이즈에 걸맞게 넉넉하고, 등받이의 각도조절도 가능하다. 뒷좌석을 위한 별도의 에어벤트도 적용되어 있고 열선 기능 및 두 개의 USB 포트가 설치되어 있다. 뒷좌석을 접을 때에는 측면 하단의 레버를 사용한다.




그랜드 체로키의 기본 트렁크 용량은 457리터. 뒷좌석을 모두 접으면 1,554리터까지 늘어난다. 덩치에 비해서는 그다지 큰 용량이라 보기 어렵다. 통상 1,800리터 이상의 용량을 확보한 경쟁모델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그랜드 체로키의 트렁크 용량은 다소 납득하기 어렵다. 체감 상으로도 트렁크의 크기는 그다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한국에 출시되는 그랜드 체로키는 두 가지 엔진이 준비되어 있다. 하나는 크라이슬러 그룹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3.6리터 펜타스타 V6엔진이고, 나머지 하나는 VM 모토리의 3.0리터 클린 디젤 엔진이다. 시승차는 3.0 클린 디젤 엔진과 ZF의 자동 8단 변속기가 결합된 모델로서, 241마력의 최고출력과 56.0kg.m의 최대토크를 낸다.


공인연비는 도심 10.5km/l, 고속도로 13.4km/l, 복합 11.7km/l이다. 이 파워트레인 구성은 같은 그룹의 대형 세단인 크라이슬러 300C도 사용하고 있으며, 램 픽업트럭의 선택 사양으로 제공되는 파워트레인이기도 하다. 에코모드를 이용하여 실제 운행 중 기록한 연비는 도심 9km/l대, 고속도로 14km/l대까지 기록했다. 에코모드를 사용치 않고 연비에 관계 없이 운행하다 보면 도심은 7km/l대, 고속도로는 11km/l대를 기록했다.



3.0리터급의 디젤 엔진을 품은 그랜드 체로키는 우수한 정숙성을 지니고 있다. 아이들링 상태는 물론, 주행 중에도 소음이나 진동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체감될 정도로 적다. 꼼꼼하게 배려된 N.V.H 대책 덕에, 정숙성과 쾌적한 운전환경이 조성된다. 엔진의 회전 수가 올라도, 정숙함은 크게 무너지지 않는다. 물론 회전 수가 3,000rpm 이상을 넘기 시작하면 묵직한 음색의 엔진 소음이 실내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랜드 체로키는 다른 SUV들과는 다소 색다른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일반적으로 자동차의 차체 구조는 프레임과 바디가 별개의 구조로 외어 있는 `프레임 온 바디` 구조와 프레임과 바디가 일체형으로 만들어진 `모노코크` 구조로 나뉘어진다.


프레임 온 바디 구조는 모노코크에 비해 구조가 간단하여 정비가 용이하고 강성이 우수하다. 오늘날의 대형 상용차나 랭글러와 같은 정통 오프로더를 지향하는 차종들이 아직도 이 방식을 채용하고 있다. 하지만 중량이 무겁고, 충격 흡수에 불리하여, 승차감과 승객 안전 확보에 불리하다.


모노코크 구조는 프레임 온 바디에 비해 중량이 가벼워, 연비에서 이점을 가지며, 생산성이 우수하다. 또한 충격 흡수에 유리하여 승용차에 주로 사용된다. 하지만 프레임 온 바디에 비하면 강성이 부족하고, 정비성 면에서 프레임 온 바디에 비해 불리한 측면이 있다.


헌데 그랜드 체로키의 경우는 이 두 가지를 합친 구조를 사용한다. 지프에서는 이를 `유니프레임`이라 부른다. 유니프레임은 모노코크 구조의 차체에 프레임의 구조를 응용하여 만들어진다. 특히 바닥과 기둥 등, 차체의 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부분들을 프레임과 유사한 구조로 설계하여, 강성을 끌어 올리는 것이다. 이를 통해, 온로드에 비해 훨씬 가혹한 노면환경이 지속적으로 강요되는 오프로드 환경에서 모노코크 구조에 비해 더 높은 신뢰성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때문에 그랜드 체로키는 덩치에 비해 다소 좁은 실내와 트렁크, 그리고 2.4톤에 이르는 몸무게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구조를 가진 그랜드 체로키의 승차감은 한 마디로 정의 내리기 어렵다. 특유의 차체 구조와 육중한 체중, 댐핑 스트로크가 긴 오프로더 스타일의 서스펜션 등이 뒤섞여서 너무 단단하지도, 그렇다고 마냥 무르기만 한 것도 아닌 느낌이다. 작은 요철은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겨버리지만, 큰 요철은 튕겨내듯 반응한다. 정통 오프로더인 랭글러에서 느낄 수 있었던 하체의 반응과 부분적으로 공통점을 보인다.



가속감은 공차중량만 2.4톤에 달하는 대형 SUV로선 활력이 있다. 맹렬한 토크의 물결과 함께, 2.4톤짜리 쇳덩어리가 힘차게 노면을 박차고 나간다. 회전 수가 오를수록, 묵직하고 고동감 있는 음색의 엔진 소음이 차내를 휘감는다. 촘촘한 기어비를 가진 8단 변속기는 바쁘게 움직이면서 그랜드 체로키의 속도를 단계적으로 높여간다. 40km/h 근방에서 2단으로, 60km/h에 못 미쳐서 3단으로, 80km/h 언저리 즈음에 4단으로 넘어가고 나서야 비로소 100km/h에 도달한다. 0-100km/h까지 기어가 3단이나 올라간다. 하지만 순발력이 좋은 변속기 덕에 0-100km/h 가속은 8초에 처리해낸다.



초반 가속에서의 맹렬한 활기는 고속으로 넘어갈수록 점차 반감되지만, 180km/h까지는 크게 답답하지 않다. 물론 그 이후부터는 더 이상의 가속이 괴로워진다. 고속 주행에서의 안정감도 대형 SUV로서는 상급에 속한다. 든든하고 균형감 있는 차체와 자동 차고 조절 기능의 에어로 모드가 고속주행에서의 안정감을 살려준다. 코너에서는 무거운 몸무게가 발목을 잡지만, 큰 욕심만 내지 않는다면 구불거리는 곡선 주로 상에서도 큰 부담 없이 운행이 가능하다. 같은 엔진을 쓰는 300C 디젤 모델과도 같은 묵직한 맛이 있다. 앞부분의 반응이나 회전을 할 때 나타나는 차체의 거동도 비슷한 느낌을 준다. 자세제어장치나 전복방지장치와 같은 전자장비들도 안정적인 곡선 주로 운행을 적극적으로 돕는다.



그랜드 체로키의 콰드라-드라이브 시스템은 오프로드 주파를 위한 저속 트랜스퍼 케이스까지 준비된 물건이다. 저속 트랜스퍼 케이스를 사용하려면, 기어를 중립에 둔 상태에서 4WD LOW 버튼을 눌러주면 된다. 또한 셀렉-터레인 지형 반응 시스템은 자동/모래/눈길/진창길/바위 의 5가지 모드를 제공한다. 일반도로 주행 중에는 자동 모드를 사용하면 된다. 각 모드마다 가속 페달 조작에 때른 스로틀 개도량, 토크 분배 등을 실시간으로 조정하여 주행에 반영한다. 중간에 바퀴가 뜨게 되는 경우에도, 노면에 접촉한 나머지 바퀴에 착실하게 구동력을 배분한다. 때문에 접지력이 현저히 낮은 오프로드 환경을 안정적으로 헤쳐나간다.



뿐만 아니라, 그랜드 체로키는 독자적인 차고 조절 장치인 콰드라-리프트 시스템을 이용하여, 4단계로 차고를 조절할 수 있다. 그랜드 체로키는 제원 상, 통상 상태에서 26.3도의 접근각과 26.5도의 이탈각, 그리고 18.8도의 브레이크 오버각(ramp break over angle: 주행 중 전륜이 타고 넘은 요철(또는 둔덕)이 하체 밑과 접촉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한계 각도)을 가지고 있다.



이 상태에서 차고를 최대로 올리면 최대 35.8도의 접근각과 29.6도의 이탈각, 그리고 23.5도의 브레이크오버각을 지니게 된다. 동사의 정통 오프로더인 랭글러 언리미티드(5도어) 루비콘 모델은 44.4도의 접근각, 40.5도의 이탈각, 그리고 20.8도의 브레이크 오버각을 가진 것과 비교하면 다소 부족한 수치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도심형 SUV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랜드 체로키의 접근/이탈각 확보는 준수한 편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차고는 총 4단계로 조절 되며, 주차(가장 낮음)-일반-오프로드 1단계-오프로드 2단계 순으로 차고가 조절된다. 차고 조절 중에 문을 열거나 하면, 즉시 차고 조절을 중지하며, 문을 닫으면 차고 조절이 재개된다. 에어로 모드는 주행 중 가속 페달의 조작량이나 속도를 감지하여 자동적으로 적용되는데, 일반 모드에서 15mm 정도 차고를 낮춰준다.



유명산 인근의 임도, 논길, 그리고 자갈길 등의 여러 조건에서 그랜드 체로키는 만족스런 능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든든한 차체는 가혹한 오프로드의 노면에서도 불안한 느낌을 주지 않고, 댐핑 스트로크가 긴 서스펜션은 대부분의 굴곡들을 무리 없이 소화해 낸다. 저속 트랜스퍼 케이스가 준비된 콰드라-드라이브 시스템, 차고 조절이 가능한 콰드라-리프트 시스템, 그리고 지형 대응 장치인 셀렉-터레인 시스템은 그랜드 체로키의 오프로드 성능을 완성한다. 무엇보다도, 운행의 편의성과 오프로드 성능 모두를 평균 이상으로 양립시킨 점이 인상 깊게 남는다.


(연출된 이미지입니다)


(연출된 이미지입니다)


국내에서 그랜드 체로키는 3.0 디젤 리미티드, 시승차인 3.0 디젤 오버랜드, 3.6 오버랜드, 3.0 오버랜드 서밋의 총 4가지의 모델로 운영된다. VAT 포함 가격은 각각 6,890만원, 7,490만원, 6,690만원, 7,790만원이다. 크라이슬러 코리아의 파블로 로쏘 대표가 직접 경쟁상대로 지목한 BMW X5나 폭스바겐 투아렉, 랜드로버 디스커버리4와 비교하면 비교적 낮은 가격을 제시하고 있다.


(연출된 이미지입니다)


그랜드 체로키는 별도의 견인장치를 설치한 경우, 기본 6,200파운드(약 2.8톤), 최대 7,200lbs(약 3.2톤)의 트레일러를 견인할 수 있다. 사진의 카라반은 독일 뷔스너 사(社)의 프리미오 395TS로, 740kg에 불과한 기본중량을 가진 중소형 카라반이다. 기본 견인 중량만 2.8톤에 달하는 그랜드 체로키는 유럽제 카라반은 물론, 보다 대형이고 중량도 높은 미국제 카라반도 충분히 견인 가능하다.



지프의 플래그쉽 SUV 그랜드 체로키. 이 종갓집 맏이의 신수는 우람하고 기백이 있다. 남성적이고 도전적인 인상과 함께, 가문의 정체성이 충만하게 드러난다. 온로드에서는 필요한 만큼의 성능을 내주고, 오프로드에서는 적절한 판단력으로 상황을 읽어내는 재능이 있다. 트렁크 공간이 다소 부족한 점은 지적받을 수 있으나, 이 정도의 신언서판(身言書判)이면 종갓집 맏이로서 충분한 역량을 지니고 있다고 봐도 좋을 듯하다.




미국 오프로더의 종가, 지프의 맏이 그랜드 체로키는 가문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에 더하여, 다양한 편의사양은 물론, 일상에서 사용하기에 적합한 주행질감 역시 빠지지 않고 갖췄다. 무엇보다도, 효율이 우수한 유럽 태생의 파워트레인을 적용했으면서도 라이벌들에 비해 낮은 가격을 만들어낸 것이 큰 강점이라 볼 수 있다. 굳이 유럽의 브랜드 가치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이 종갓집 맏이는 가족과 가장을 위한 이상적인 SUV가 되어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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