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T`라 쓰고 `크로스오버`로 읽는다 - BMW GT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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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라 쓰고 `크로스오버`로 읽는다 - BMW GT 시승기
  • 박병하
  • 승인 2015.09.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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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능`, 혹은 `스포티함`을 표방하는 자동차들 중에는 `GT`라는 이름이 붙는 경우가 많다. 이들 중에는 실제 고성능이거나 그에 준하는 모델도 분명히 존재하기는 하지만, 근래 들어서는 일반적인 승용차에 스포티한 외장 사양만을 적용한 모델에다 가져다 붙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GT의 진짜 의미는 단순히 스포티함을 강조한 자동차, 혹은 맹목적인 고성능만을 강조한 자동차가 아니다. 전통적이면서도 `정론(正論)`적인 관점에서의 GT는 상기한 것과는 성격이 다르다.



정론 상의 GT란, `그란투리스모(Gran Turismo)`, 혹은 `그랜드 투어러(Grand Tourer)`의 약자로서, `장거리를 안락하고 고속으로 운행할 수 있으면서도 넉넉한 공간과 고급 편의장비를 갖춘 고성능 자동차`로 축약할 수 있다. 정론 상의 GT들은 대개 대형이면서 2도어, 혹은 3도어 쿠페 스타일의 차체를 지닌다. 또한, 큰 차체에서 오는 넉넉한 실내 공간 및 트렁크 공간, 그리고 200km/h 이상의 고속 크루징이 가능하면서도 안락한 승차감을 제공해야 한다. 이러한 전통적이고 정론적인 `GT`의 의미에 가장 부합하는 차종들로는 애스턴마틴 뱅퀴시, 페라리 F12 베를리네타, 벤틀리 컨티넨탈 GT, 재규어 XKR 등이 있다.



그렇다면 본 시승기의 주인공인 BMW GT는 정론 상의 GT에 부합하는가? 안타깝게도, 그렇지는 못하다. BMW GT는 전통적인 방식과는 꽤나 다른 형태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BMW는 GT, 정확히는 `5시리즈 GT`의 출시 이후로, 3시리즈에도 GT 모델을 추가하며, GT에 대한 그들만의 정의를 확고히 내리고 있다. 그렇다면 BMW가 주장하는 GT란 어떤 모습일까? BMW 5시리즈 GT를 시승하며 그들이 정의하는 GT가 어떤 것인가를 경험해 본다. 시승한 BMW GT는 30d 럭셔리 xDrive 모델이며, VAT 포함 가격은 8,380만원이다.





전형적인 GT들이 2도어, 혹은 3도어 쿠페형 차체를 갖는다는 것을 상기하면, BMW GT는 외모에서부터 정론 상의 GT와는 완연히 다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GT는 패스트백 스타일의 5도어 해치백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이는 동사의 4도어 쿠페 라인업을 대변하는 `그란쿠페`와도 차별화되는 요소다. 전반적으로 큰 차체를 지니는데, 길이만 5,004mm에, 전폭은 1,901mm, 전고는 1,559mm에 달해, 은근히 껑충해 보일 정도다. 이는 정론 상의 GT에서 `큰 차체`를 보다 대대적으로 부각한 모습이다. 또한, 이러한 형상을 채용함으로써, 후술할 `넉넉한 실내 공간과 적재 공간`을 보다 강화한다.



BMW GT는 본래 `5시리즈 GT`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플래그십 럭셔리 세단인 7시리즈를 바닥에 깔고 있으며, 그 덕에 거대한 차체에 걸맞은, 넉넉하고 시원스런 실내 공간을 자랑한다. 대시보드를 비롯한 실내 전반의 모습은 5시리즈와는 다르며, 보다 고급스런 느낌을 준다.



스티어링 휠은 직경이 다소 큰 편이지만, 그립감은 좋은 편이다. 가죽으로 마감되어 있으며, 열선 기능을 지원한다. 스티어링 휠의 좌측 스포크에는 스피드리미터와 크루즈컨트롤 조작 버튼이 위치한다. 계기판은 LCD 디스플레이로 만들어져 있으며, 일반 모드에서는 BMW의 전통적인 형태를 따르나, `스포츠 모드`에서는 붉은색의 전용 테마로, `에코 프로 모드`에서는 파란색의 전용 테마로 변경된다. 센터페시아에 배치된 버튼들은 다른 BMW들과 거의 같은 구성을 보이며, 기존에 BMW를 운전하던 운전자에게는 쉽게 적응할 수 있다. 또한, GT에만 있는 센터페시아의 서랍은 매력적인 수납공간. 요금소에서 받게 되는 잔돈이나 고속도로 통행권, 주차권 등은 물론, 휴대전화나 카드케이스 등의 자잘한 물건들을 손쉽게 수납할 수 있다. 바닥이 고무로 처리되어 있어, 달그락거리는 잡소리도 적은 편.



BMW GT는 좌석의 높이가 세단에 비해서도 약간 높은 편이다. 하지만 지붕 역시 높기 때문에 승/하차가 용이함은 물론, 승차한 상태에서의 머리 공간이 월등히 넉넉하다. 안락하고 부드러운 착석감을 지닌 앞좌석은 8방향 전동 조절 기능과 3단계 열선 기능을 갖추고 있다. 또한, 작년에는 없었던 4방향 전동조절식 요추받침이 추가되어, 편의성을 높였다.



또한, 스탠다드 휠베이스의 7시리즈와 같은 휠베이스를 지닌 만큼, BMW GT는 뒷좌석 공간이 넉넉하다. 머리와 어깨 공간은 물론, 다리 공간에 이르는 모든 공간에서, 성인 남성도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뒷좌석은 앞쪽으로 73mm까지 이동이 가능하며 최대 33도까지 각도 조정이 가능한 등받이를 갖춰 더욱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이렇게, 넉넉하게 실내공간을 확보한 면에서, BMW GT가 지향하고자 하는 `GT`의 모습을 유추해낼 수 있다.



BMW GT의 트렁크는 기본적으로 세단에 비해 작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이는 트렁크 바닥이 다소 높은 점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그러나 트렁크의 바닥 아래를 열어보면 두 곳의 수납 공간이 더 나타난다. 전방의 수납 공간에는 트렁크 리드와 뒷좌석 후방에 붙어 있는 선반을 분리하여 수납할 수 있다. 그 뒤의 공간에는 일반적인 사이즈의 카메라용 삼각대를 충분히 수납할 만한 공간이 자리잡고 있다. 또한, BMW GT의 테일게이트는 일반적인 해치도어 형태로 개폐할 수도 있고, 트렁크 리드에 해당하는 부분만 개폐할 수도 있다. 트렁크 리드의 개폐는 키에서 마름모 형태가 새겨진 버튼을 몇 초간 눌러주면 된다.



기본 용량은 440리터를 제공하지만, 선반을 제거한 경우에는 590리터까지 늘어나며, 4:2:4 비율로 접히는 뒷좌석을 모두 접으면 총 1,700리터에 달하는 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 특이한 점이라면 접이식 뒷좌석의 등받이 뒤에 붙는 `격벽`인데, 이 격벽들은 뒷좌석을 접을 때 손이 가게 만들기는 하지만, 트렁크와 좌석 사이를 분리시켜주고 소음 유입을 막아주는 역할을 해 준다. 이렇듯, BMW GT는 트렁크 공간에서도 신경을 많이 쓴 모습을 보이는데, 이러한 점에서 BMW GT가 지향하고자 하는 `GT`의 모습을 또 한 번 유추해낼 수 있다.



시승한 BMW GT 30d 럭셔리 xDrive는 BMW의 트윈파워 직렬 6기통 3.0리터 디젤 엔진과 8단 스텝트로닉 변속기와 xDrive 상시 4륜구동 시스템이 짝을 이룬다. 3.0리터 디젤 엔진은 258마력/4000rpm의 최고출력을 내고 57.1kg.m/1500~3000rpm에 달하는 최대토크를 뿜어낸다. 이 엔진은 2.0리터 4기통 유닛에 비해 전반적인 정숙성과 회전질감이 우수한 편이다. 또한 이 엔진을 보닛 아래 품은 BMW GT는 BMW 모델들 중에서 우수한 정숙성을 보여준다.



승차감은 안락한 느낌을 끌어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면의 잡다한 충격을 부드럽게 걸러주는 것이, 통념 상의 유럽차에 대한 감각과는 사뭇 다르다. 오히려 통념 상의 미국차나 일본차에 가깝게 느껴질 정도다. 요철의 정도에 따라서는 다소 차체가 출렁이는 모습도 보인다. 고속 주행 중의 직진 안정성은 우수하고, 고속에서도 흔들림이 적다.



가속에 있어서는 전통적인 GT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2톤이 넘는 체중에 3.0리터의 디젤 엔진과 상시 4륜구동 시스템을 싣고 있는 BMW GT는 가속 초기부터 둔중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승용차에 가까운 모양새와는 달리, 가속감은 SUV에 가까운 느낌이다. 본격적인 가속이 시작되면, 3.0리터 디젤 엔진의 충분한 추진력으로, 7초가 채 되지 않는 시간에 0-100km/h 가속을 처리한다. 그러나 전형적인 GT가 `항속 주행`하는 속도인 200km/h에 오르는 것은 다소 간의 인내를 필요로 한다. 적어도 엔진 성능 면에서는 전통적인 GT와는 거리가 멀다.


육중한 체중과 함께, 부드러운 서스펜션을 지닌 BMW GT는 코너링에서 강점을 보이거나, 혹은 보였던 BMW의 승용 모델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가속에서 보여준 둔중한 모습이 코너링에서도 여지 없이 이어진다. 스티어링 시스템은 직결감이 좋고 차체 전방의 반응이 빠른 편이지만, 거대하고 무거운 몸집에서 오는 둔중한 발놀림 때문에, 전체적인 기동이 다소 불안하다. 전반적으로 역동적인 주행 감각보다는 안락한 운행에 초점을 맞춘 모습이 드러난다. 이는 전통적인 GT에 부합하는 모습이 아니며, BMW가 본래 추구해왔던 모습과도 거리가 있는 부분이다.


시승차인 BMW GT 30d xDrive의 공인연비는 도심 10.9km/l, 고속도로 14.4km/l로, 복합 12.2km/l다. 시승을 진행하며, 차내의 온보드 컴퓨터를 이용하여 연비를 기록한 결과, 도심 10km/l 초반대의 연비를 기록했고, 고속도로는 16km/l를 상회하는 기록을 냈다. 연비 측정 중에는 `ECO PRO 모드`로만 운행했으며, 각 도로의 규정속도에 맞춰 정속을 최대한 유지하여 운행하였다. 2톤이 넘는 차체에 상시 4륜구동까지 갖춘 점을 감안하면, 고속도로 상에서의 연비는 상당히 인상적인 부분.



BMW GT는 서두에서 언급한 쿠페형 차체를 채용하지 않은 점은 물론, 전통적인 GT카가 요구하는 고속 주행 성능에는 부족한 점이 있는 등, 전통적인 GT의 조건에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GT를 `장거리를 안락하고 고속으로 운행할 수 있으면서도 넉넉한 공간과 고급 편의장비를 갖춘 고성능 자동차`로 정의 내린다면, BMW GT는 여기서 `안락하고 넉넉한 공간`에 크게 힘을 실은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그로 인해, BMW GT는 세단도, SUV도, 하물며 전통적인 GT도 아닌, `애매한` 물건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적어도 `장거리를 안락하게 운행`하는 부분과 `넉넉한 공간`만큼은 확실한 강점을 보이며, 이는 BMW GT 특유의 스타일링과 함께, GT의 가장 큰 세일즈 포인트이자, BMW가 주장하는 GT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전통적인 의미의 GT가 다분히 운전자 한 사람만을 바라보고 있다면, BMW식의 GT는 운전자 한 사람뿐만 아니라, 차에 탄 모든 승객을 고루 바라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보다 가족적이고 보다 다양한 목적에 사용할 수 있으며, 디젤 파워트레인의 채용으로, 장거리 운행에서의 연비까지 챙겼다.


BMW의 GT는 전통적인 GT의 요소들에서 `넉넉한 공간`과 `안락한 장거리 주행`을 크게 강조하여, 정론적인 GT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또 다른 `크로스오버`를 만들어 냈다. BMW GT는 `한 대의 자동차로 다양한 상황과 목적에 대응한다`는 크로스오버의 이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실현,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어쩌면 BMW는 `GT`라는 이름을 일상, 비즈니스, 여가, 운전의 즐거움에 이르는 모든 것을 한 대의 자동차로 대응할 수 있는 `이상적인 크로스오버`로 해석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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