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 대형차를 논하다 - 혼다 레전드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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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 대형차를 논하다 - 혼다 레전드 시승기
  • 박병하
  • 승인 2015.10.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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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여러분들은 과거, 대우자동차가 생산했던 고급세단 `아카디아`를 기억하는가? 대우 임페리얼을 대체할 고급 대형 세단으로 출시되었던 아카디아는 당시에 `혼다와의 공동개발`이라는 그럴듯한 문구를 내세웠으며, 뛰어난 성능과 선진적 설계를 자랑했다. 그리고 이 대우 아카디아는 본 시승기의 주인공인 `혼다 레전드`의 머나먼 조상이기도 하다.



당시 대우에서 생산했던 아카디아는 90년도에 등장했던 혼다 레전드의 2세대 모델이었고, 지금의 레전드는 2014년에 출시된 5세대 모델이다. 혼다 레전드는 1985년부터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으며, 혼다의 기술력을 총동원하여 완성한 혼다의 플래그십 세단이자, 북미 시장용 고급 브랜드인 아큐라 브랜드의 플래그십으로서 그 역사를 이어 내려오고 있다. 20년 동안 총 5세대에 이르는 모델체인지를 거치면서 북미 시장에서는 아큐라 레전드, 아큐라 RL, 아큐라 RLX로 이름을 바꿔왔으며, 그 외의 시장에서는 `레전드`의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다. 대한민국에는 2006년도부터 4세대 모델이 혼다코리아를 통해 정식으로 수입되기 시작했으며, 2009년의 페이스리프트 모델까지 수입된 바 있다.



지난 해 11월, 고향인 일본 내수 시장에서 먼저 출시된 혼다 레전드는 `어스드림스(EarthDreams)`직분사 시스템을 채용한 3.5리터의 V6 i-VTEC 엔진과 3기의 전기모터를 조합한 SH-AWD 시스템을 탑재했다. 하지만 국내에 출시된 혼다 레전드는 전륜구동 사양으로 출시되었으며, 4륜 조향 시스템인 P-AWS를 들고 나왔다. 혼다의 플래그십 세단은 어떤 매력을 지니고 있을까? 혼다 레전드를 시승하며 그 진가를 알아 본다. 출시 당시의 국내 판매 가격은 6,480만원. 현재는 개소세 인하로 인해 6,390만원의 가격으로 판매 중이다.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 온 레전드는 외형 상으로 덩치가 부쩍 커진 점이 부각된다. 전장은 에누리 없이 딱 5미터이며, 전폭은 1,890mm에, 전고는 1,480mm다. 사이즈가 커진 레전드는 미국 시장에서도 이미 중형 세단에서 풀사이즈 세단으로 체급이 올라가버렸다. 이전까지 동급으로 분류되었던 BMW 5시리즈나 렉서스 GS, 혹은 인피니티 Q70 등의 준대형 세단들에 비해 한결 커진 `떡대`가 위압적이다.



헤드램프의 벌브는 LED로 만들어져 있으며, 주간주행등을 겸하는 방향 지시등은 범퍼 하단에 길쭉하게 배치되어 있다. 테일램프의 디자인은 헤드램프의 디자인과 개연성 있는 형상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역시 LED로 빛을 낸다. 테일 파이프의 경우, 돌출된 형태가 아닌, 히든 타입으로 되어 있으며, 그 자리에는 굵직한 크롬 테두리를 두른 반사판이 자리 잡고 있다.



얼굴에서는 지난 모델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에서 볼 수 있었던 직선적인 느낌이 더욱 강해졌다. 또한, 곡선적인 차체를 지니고 있었던 지난 모델과는 달리, 차체 전반에 걸쳐 곧고 굵직한 선과 면으로 디자인되어 있어, 한층 조화롭게 보인다. 얼굴에서부터 측면을 지나, 뒷모습까지 그대로 이어지는 직선적인 이미지는 우아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디자인이지만, 레전드의 이미지를 보다 남성적으로 만들어 주는 측면이라 할 수 있다.



묵직한 느낌의 문을 열고 실내에 들어 서면, 듀얼 콕핏 형상을 취하고 있는 대시보드가 눈에 들어 온다. 직선적인 느낌이 주를 이루는 외모와는 달리, 전체적으로 곡선적인 느낌을 주며, 대시보드 전반을 둘러싼 부드러운 가죽 마감이 돋보인다. 이 가죽 마감은 대시보드 뿐만 아니라, 센터페시아에까지 이어져 있어, 감성적인 부분에서의 품질을 높여주는 부분이다.



스티어링 휠은 전작과 달리, 3스포크 타입으로 만들어져 있다. 크기는 다소 큰 편. 부드러운 가죽으로 마감하여, 그립감도 좋은 편에 속한다. 스티어링 휠에 배치된 다수의 버튼과 다이얼은 레전드가 다양한 기능을 지니고 있음을 시사한다. 계기판은 깔끔한 폰트와 명료한 레이아웃으로 가독성이 좋은 편. 기어레버는 손에 쏙 들어 오는 크기로 만들어져 있으며 조작감도 부드러운 편이다. 기어레버의 우측으로는 2구의 대형 컵홀더가 위치하며, 전방에는 벨벳으로 마감된 조그만 트레이와 12V 전원 소켓만이 자리하고 있다. 본래는 재떨이와 시가 라이터가 위치하는 부분으로 보인다.



레전드의 센터페시아는 전방으로 크게 돌출되어 있는 편이며, 두 개의 이원화된 터치스크린 디스플레이가 특징적이다. 상단의 디스플레이는 차량의 각종 정보를 비롯하여, 내비게이션, 그리고 차체의 전후좌우에 설치된 카메라 화면을 볼 수 있다. 내비게이션에 접근하는 버튼은 센터페시아의 버튼들에 포함되어 있다. 다른 혼다 차종에서 볼 수 있는 별도의 터치패드가 존재하지 않아, 사용이 훨씬 수월하다. 하단의 디스플레이는 오디오를 비롯하여, 공조 장치 등의 기능을 제어할 수 있다. 하부 디스플레이의 하단에 자리한 다이얼과 버튼은 내비게이션을 제외한, 상단 디스플레이의 모든 기능을 제어 가능하다.




레전드의 센터콘솔은 수납공간으로서는 합격점을 주고도 남는다. DSLR 카메라는 물론, 일반적인 사이즈의 태블릿 PC까지 무리 없이 수납 가능할 정도로 널찍한 공간을 자랑한다. 기자 개인 소유의 8인치급 소형 태블릿 정도는 실로 간단하게 수납 가능하다. 콘솔 박스 내부에는 AUX 및 USB 포트, 그리고 12V 전원 소켓이 1개씩 마련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좌/우 양쪽에서 열 수 있는 구조 덕에 운전자뿐 아니라 조수석에 승차한 승객도 용이한 사용이 가능하다.



앞좌석은 허리를 편안하게 감싸주는 착좌감을 자랑한다. 안락하고 부드러운 앞좌석은 장거리 운행에서도 피로감을 덜어 주며, 요추받침 포함 12방향의 전동조절 기능 및 열선/통풍 기능이 적용되어, 쾌적한 운전 환경을 조성한다.




뒷좌석의 착석감은 부드럽고 안락하다. 등받이의 각도도 적정한 편이어서 등과 엉덩이가 자연스럽게 좌석에 밀착된다. 공간은 전방위로 넉넉하다. 전륜구동인데다, 넉넉한 휠베이스를 지닌 혼다 레전드는 대형 세단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여유로운 뒷좌석 공간을 자랑한다. 뒷좌석의 편의장비로는 전용 에어벤트와 열선 기능, 팔걸이 및 컵홀더, 측면 및 후방 선셰이드 등이 마련되어 있다.



트렁크는 바닥이 충분히 깊기 때문에 시각적으로는 그리 좁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수치 상의트렁크 용량은 416리터로, 체급에 비해 그리 큰 수치라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공간 설계가 잘 되어 있어서, 골프백 4개 정도는 충분히 적재할 수 있다. 또한 바닥 아래에 추가적인 수납공간을 확보함은 물론, 스키쓰루 기능까지 지원하여, 유효하게 사용할 수 있다.



레전드의 심장을 이루는 엔진은 혼다의 어스드림스 직분사 시스템을 채용한 3.5리터 V6 i-VTEC 엔진으로, 314마력/6,500rpm의 최고출력과 37.6kg.m/4,500rpm의 최대토크를 발휘한다. 엔진에서 발생한 동력은 6단 자동변속기로 연결되어 앞바퀴에 전달된다. 공인 연비는 도심 8.1km/l, 고속도로 12.6km/l, 복합 9.7km/l이다.



레전드는 혼다, 그리고 아큐라 브랜드의 플래그십 세단이라는 명함에 걸맞은 우수한 정숙성을 선보인다. 시동 초기는 물론, 운행 중에도 부드러운 회전질감과 저회전 영역에서의 낮은 소음, 그리고 전방위로 충실히 이루어진 방음 대책 덕분에 정숙하고 쾌적한 환경을 제공한다. 정숙함의 대명사로 통하는 렉서스가 부럽지 않을 정도. 승차감은 부드러운 느낌이 크게 강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요철에서 오는 충격을 대체로 부드럽게 흡수해낸다. 하지만 요철을 받아내는 과정에서의 동작이 다소 아쉬운 점으로 다가온다. 큰 차체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요철을 넘을 때의 상하 동작과 전후 동작의 양이 필요 이상으로 크고 많은 편이기 때문이다.



스포츠 모드 버튼을 누르고,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ESP가 활성화된 상태에서조차 가열찬 휠스핀이 일어남과 동시에 차체가 경쾌하게 전진을 개시한다. 육중한 덩치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속 때에는 가끔씩 덩치를 잊을 수도 있을 정도로 활기가 있다. 중저회전에서 침묵을 지키던 엔진은 고회전에서부터 자극적인 음색을 토해내기 시작하며 기운차게 차체를 전방으로 내던진다. 1단 출발 후 50km/h에서 2단으로, 2단 90km/h에서 3단으로 넘어가며 100km/h를 돌파한다. 0-100km/h 가속 시간은 6초 중후반대에 마무리한다. 다만, 혈기왕성한 엔진에 비해 변속기의 반응은 다소 무덤덤하다. 스포츠 모드에서의 격렬한 주행에서도 약간 여유를 부리는 느낌이 있다. 고속 주행 상황에서의 안정감은 우수한 편이다. 본격적인 고속에서 스티어링 휠이 약간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차는 올곧게 전방을 향한다.



레전드는 크고 육중한 차체와 부드러움이 강조된 하체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수준의 몸놀림을 보인다. 둔중할 것만 같은 외견에 비해, 운전자가 의도하는 궤적을 곧잘 따라간다. 고속에서의 차선변경에서도, 급격한 곡률을 지닌 램프 구간이나 산악 도로에서도 네 바퀴는 노면을 의외로 든든히 붙들어 맨다. 이는 레전드에 장비된 P-AWS 덕분이다. 자동차의 속도와 진행방향에 따라 뒷바퀴를 조향하는 전(全)륜 조향 장치인 P-AWS는 고속에서의 차선변경이나 코너 구간에서의 조향, 고속 주행 중의 직진성 확보를 적극적으로 돕는다. 레전드가 보인 기대 이상의 몸놀림은 P-AWS의 도움이 크다는 이야기. 그러나 상기한 기본 바탕 때문에 유럽식 스포츠 세단의 타이트하고 공격적인 느낌과는 거리가 있다. 전반적으로 롤링과 피칭이 크게 나타나며, 전술한 불필요하게 큰 동작들이 급기동 상황에서의 안정감을 꽤나 깎아 내리기 때문에 코너링을 즐기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본다. 오히려 P-AWS 덕이 가장 크게 드러나는 부분은 도심이었다. 저속에서 스티어링휠을 조타하면 뒷바퀴를 진행방향의 반대방향으로 조타하여 덩치에 비해 꽤나 적은 회전 반경을 만들어 내, 대형 세단임에도 불구하고 도심지에서 의외의 기민함을 보인다.



이 외에도 레전드에는 `혼다 센싱` 시스템이 탑재되어 있다. 혼다 센싱은 밀리파 레이더와 단안 카메라를 함께 사용하는 예방 안전 시스템으로서 보행자까지 인식할 수 있는 충돌 감지 기능과 긴급 제동 기능은 물론, 모든 속도 대역을 커버할 수 있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차선 이탈 방지 시스템은 물론, 충돌 회피 스티어링 기능을 함께 제공한다. 또한, 기본 적용된 크렐 오디오는 양질의 사운드를 들려주며, 다른 프리미엄 브랜드의 오디오와 비교해도 손색 없는 완성도를 지니고 있다. 레전드의 충실하게 구비된 안전/편의사양은 레전드의 상품성을 크게 올려주는 부분이다.


연비의 경우, 3.5리터급의 가솔린 엔진을 탑재한 대형 세단으로서는 충분한 수준이다. 공인 연비는 도심 8.1km/l, 고속도로 12.6km/l, 복합 9.7km/l. 레전드를 시승하면서 트립컴퓨터로 기록한 평균 연비는 혼잡한 도심에서 5.3km/l, 원활한 교통 상황의 도심에서는 6.9km/l, 고속도로에서는 14.2km/l의 평균 연비를 기록했다. 연비 측정 중에는 급가속과 급제동을 삼갔으며, 각 구간별 규정 속도에 따라 정속 운행하였다. 도심에서는 공인연비보다 낮게 측정되었으나, 고속도로에서의 연비는 공인 연비에 비해 더 높았다.



돌아 온 혼다의 플래그십 세단, 레전드는 기존 모델과는 확연히 다른 성격을 띄고 소비자들 앞에 다시 섰다. 퍼포먼스를 중시한 기존과는 달리, 보다 가족 중심적이고, 여유로운 프리미엄급 풀사이즈 세단으로 변화한 것이다. 물론, 본격적으로 뒷좌석에 힘을 쓰는 프리미엄급 대형세단이라고 하기에는 편의장비 면에서 다소 부족한 점이 있으나, 기존에 경쟁했던 준대형급 세단들과 비교하면 경쟁력 있는 구성으로 볼 수 있다. 심지어 7천만원을 상회했던 과거에 비해 가격도 6천만원대로 낮아져, 더욱 매력적으로 변모했다.


하지만 그 동안 레전드의 경쟁자였던 차들은 연비를 앞세운 디젤 파워트레인의 대대적인 도입이나, 세제에서 유리한 다운사이징 파워트레인 도입, 그리고 큰 폭의 가격 인하를 단행하는 등, 시장에 적응하기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을 취했다. 게다가, 더 윗급을 노리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있다. 격변해 왔던 한국의 수입차 시장에서 레전드의 위치가 꽤나 애매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를 타개하고 흥행을 이루느냐에 대한 가능성은 향후의 마케팅 활동에 달려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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