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이야기 첫 번째 - `손에 들 수 있는 작은 대포`, 전장의 새로운 바람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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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이야기 첫 번째 - `손에 들 수 있는 작은 대포`, 전장의 새로운 바람이 되다
  • 박병하
  • 승인 2017.04.13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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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라면 누구나 영화를 비롯한 각종 매체를 통해, `총`에 대한 동경이나 환상을 한 번쯤 품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한민국과 같이, 국민개병제를 시행하는 국가의 경우, 남자라면 인생에 있어, 한 번씩은 반드시 취급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또한 미국과 같이, 총기 소지의 자유가 일정 수준으로 보장되는 나라에서는 자기 방어(Self-Defense)나 스포츠 등의 용도로 민간에서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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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는 인류의 발전사에 지대한 공로를 끼친 무기다. 이미 중/근세부터 한계에 부딪힌 창이나 활과 같은 냉병기(冷兵器)에 비해 빠르고 꾸준하게 개량이 이루어진 총기는 그 어떤 야수라도 일격에 사살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로써 총기는 창(槍)의 발명 이래로 먹이 사슬에서 인간이 갖는 위치를 또 한 번 올려, (총기를 가진)인간이 먹이 사슬의 꼭대기에 올라서게 만든 무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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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올려낸 총기는 언제부터 사용되었을까? 총기의 기원은 15세기경에 등장한, `사람이 손에 들고 운반이 가능한 화포`의 개념으로 만들어진 `핸드 캐논(Hand cannon, Handgonne)`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설에 가깝다.

물론, 핸드 캐논 이전에도 화약을 이용하여 탄자를 투사하는 방식의 화약 무기는 그보다 훨씬 오래 전에 존재했다. 12세기경에서부터 사용 기록이 나타나는 중국의 화창(火槍)이나 화전(火箭), 그리고 고려의 주화(走火)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주화나 화전은 총포류보다는 화약 자체의 추진력을 이용하는 로켓 병기에 더 가까웠고, 화창의 경우에는 지향성 폭약을 장착한 창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핸드 캐논은 `화약의 힘으로 가속시킨 탄자의 운동에너지를 이용하여 목표물을 타격`하는, 총기의 기본 원리로 작동하는 최초의 개인용 무기라 할 수 있다. 조선 초/중기까지 주로 사용되었던 승자총통(勝字銃筒) 등이 이러한 형태를 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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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 캐논은 말 그대로, `사람이 손에 들고 운반할 수 있는 작은 화포`로 만들어져, 장전과 격발 방식이 화포와 거의 같았다. 장전은 총구를 통해 장약과 탄자를 장전하는 `전장식(前裝式)`이었다. 근세기를 배경으로 하는 전쟁 영화 등에서 병사들이 꼬질대(Ramrod)를 총구로 밀어 넣어 쑤셔 대는 장면으로 표현되는, 바로 그 방식이다. 다시 말해서, `구식 총`에서 일반적으로 연상되는 작동 방식은 사실 화포에서 이미 사용하고 있었던 방식이라는 이야기다.

격발은 약실과 연결된 격발용 화약접시에 불씨가 붙은 화승(火繩: 심지)을 가져다 붙여 격발하는 `터치 홀(Touch Hole)`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초기 화포의 방식을 그대로 가져온 것으로, 고정된 목표물을 상대하지 않는 이상, 제대로 된 조준과 적절한 격발 시점을 맞추기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게다가, 발사 시의 반동과 충격을 제어하는 구조가 전무했기 때문에 무기를 고정시킨 상태에서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훗날, 쇠뇌Crossbow)에서 사용하는 방식과 유사한 방아쇠 개념의 도입과 함께, 화승을 고정하는 장치가 발명되면서 후술할 `화승총`으로 발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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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승총은 `화승격발식(火繩擊發式, Matchlock) 총`을 이르며, 방아쇠와 화승 고정 장치가 추가된 핸드 캐논을 그 원형으로 한다. 장전은 여전히 전장식이었고, 격발 역시 붙이 붙은 화승을 이용하고 있었지만, 방아쇠와 연계하여 작동하는 화승 고정 장치를 통해, 핸드 캐논에 비해 격발의 시점을 잡는 것이 훨씬 수월해졌다. 그리고 16세기 중반에 개발된 `개머리판`이 더해지면서 조준이 보다 수월해지는 계기를 마련했다. 화승총의 등장으로 인해, `손에 들 수 있는 작은 대포`는 비로소 제대로 된 `개인화기(個人火器)`의 기본적인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 때 사용되었던 화승총들은 `머스킷(Musket)`과 `아퀘버스(Arquebus)`로 나뉘는데, 머스킷은 약 1.4m 내외의 길이와 7kg 가량의 무게에 75구경(약 19mm) 내외의 탄환을 사용하는 대형 총기를, 아퀘버스는 약 1m 내외의 길이와 5kg 가량의 무게에 50구경(약 13mm) 내외의 탄환을 사용하는 비교적 소형의 총기를 각각 지칭했다. 머스킷은 훨씬 크고 무거워서 별도의 거치대를 사용해야 했다. 아퀘버스는 `구부러진 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손에 들고 사격이 가능했다. 임란 등을 다루는 매체에서 왜군이 사용하는 조총(鳥銃)이 바로 이러한 형태를 띄고 있었다. 탄환으로는 양쪽 모두, 납으로 만든 구슬을 사용했다. 또한, 종류에 따라 스프링 등을 이용하여 화승 고정장치를 장력을 부여하는 경우도 존재했다.

화승총의 보급은 전쟁의 양상도 바꿔 나가기 시작했다. 스페인에서 고안한 `테르시오(Tercio)` 전술의 등장은 화승총의 대량 보급 없이는 불가능했다. 테르시오 전술은 기존의 경무장 보병은 물론, 다수의 장창병과 총병대를 하나의 연대로 꾸려, 각각의 연대가 사격전과 대보병 및 대기병전을 유기적으로 수행하는 군 편제로, 길이만 6m에 이르는 장창(Pike)과 화승총병을 대량으로 밀집운용함으로써 갑옷과 랜스(Lance)로 중무장한 기사(騎士)들을 위시한 기병 부대 및 장창병대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며 16~17세기, 다시 말해, 스페인의 황금기를 대변하는 최강의 전술로 군림했다. 그리고 테르시오의 대두는 중세 시절부터 이어져 내려 온, 갑옷과 랜스(Lance)로 중무장한 기사(騎士)들을 전장의 주역에서 끌어 내고, 보병을 전장의 중심으로 세우는 데 혁혁한 공헌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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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퀘버스와 머스킷은 한 동안 공존을 이루고 있었으나, 후기로 갈수록 아퀘버스는 도태되고, 그 자리를 머스킷이 꿰어 차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아퀘버스의 부족한 위력에 있었는데, 이는 당시에 화승총의 보급과 함께 나타난, `방탄 갑옷`의 등장에 있었다. 방탄 갑옷은 강(鋼, Steel)이 아닌, 철(鐵, Iron)로 만들어졌으며, 전통적인 갑옷에 비해 두께가 두터웠다. 이러한 특성을 이용하여, 납으로 된 총탄의 운동에너지를 흡수함과 동시에, 변형을 일으켜 관통력의 분산을 노렸다. 방탄 갑옷을 위시한 방어구의 진화는, 갑옷으로 중무장한 상대를 확실하게 무력화시키기 어려운 소구경의 아퀘버스의 몰락을 불렀다. 보다 큰 탄환과 많은 장약을 사용하여 확실한 타격력을 보장하는 머스킷의 존재 때문이었다. 용병의 경우, 머스킷을 사용하는 병사가 더 많은 급여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용병들 역시 아퀘버스보다 머스킷을 더 선호했다. 뿐만 아니라, 제련과 야금기술을 비롯한 총포류 제작 기법의 발전에 따라, 머스킷은 종전과 동일한 위력을 유지하면서도, 점차 아퀘버스 수준으로 작고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아퀘버스는 완전히 도태되고 머스킷만이 살아 남아, 18세기 이후의 전장을 책임 지게 된다.

화승총은 당시 전쟁의 양상을 바꿔버릴 정도로 근세 유럽의 전쟁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핸드 캐논이 총기의 초안을 제시했다고 한다면, 화승총은 이것을 한 사람이 휴대하며 사용할 수 있는, 정석적인 `개인화기`의 개념을 구체화시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화승총은 같은 투사무기인 활에 비해 취급이 용이한 데다, 훈련량은 활에 비해 현저히 적으면서도 위력은 확실하게 보장되었기 때문에, 각국은 화승총병을 적극적으로 양성했으며, 화승총의 생산에도 열을 올렸다.

하지만 화승총에는 여러가지 단점들도 존재한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화승을 이용한 격발 방식이다. 방아쇠의 채용으로 인해, 초기의 핸드 캐논보다 월등한 사격 능력을 확보했으나, 불이 붙은 화승을 상시로 휴대해야 한다. 이 때문에 화승의 불 관리는 물론, 화승의 불똥이 개인이 소지한 화약이나 화약고에 튀지 않게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또한, 화승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입김을 불어서 불을 살리거나, 항시 여분의 화승을 팔 등에 줄줄 감아둬야 했다. 그리고 화승이 탈 때 나는 불꽃과 연기는 화승총을 매복이나 경계 임무 등에 사용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즉응성(卽應性)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급습 등의 긴급한 상황에 대응하기에도 어려웠다는 이야기다. 좁은 공간이나 지근거리에서 사용할 것을 전제로 만들어진 권총의 경우는 이 문제가 더 심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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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당시에도 화승총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시도는 있었다. 화승총과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치륜(톱니바퀴)격발식(齒輪擊發式, Wheellock, 이하 치륜식) 총이 바로 그것이다. 치륜식 총은 불이 붙어 있는 화승 대신, 작은 톱니바퀴와 부싯돌 간의 마찰에서 발생되는 불꽃을 이용하여 격발용 화약접시에 점화하여 격발을 유도한다. 이는 일회용 라이터에서 볼 수 있는 방식과 유사한 개념이다. 치륜식 종의 톱니바퀴는 사격 전에 미리 스패너나 렌치 등을 이용하여 톱니바퀴에 연결된 용수철, 혹은 태엽을 감고, 방아쇠를 당기면 감아두었던 용수철, 혹은 태엽이 풀리면서 순간적으로 점화가 이루어졌다. 불이 붙은 화승을 휴대할 필요성을 제거한 치륜식 총은 화승총이 가지지 못했던 `즉응성`과 `은밀함`을 모두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위 두 가지 사항 때문에 화승총을 투입할 수 없는 임무에 투입되며 꾸준히 사용되었다. 뿐만 아니라, 치륜식 총이 지닌 장점들은 마상에서 화승의 불씨를 유지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웠던 기병들도 화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는 단초를 마련했다.

하지만 치륜식 총은 화승총만큼 널리 사용되지는 못했다. 무엇보다도, 화승격발식에 비해 그 구조가 상당히 복잡하다는 점이 발목을 잡았다. 치륜식 총의 복잡한 구조는 수공업으로 제작되던 당시의 산업 구조 상, 생산성이 크게 떨어지며, 그 때문에 가격도 화승총에 비해 훨씬 비쌌다. 또한, 복잡한 구조로 인해 신뢰성이 떨어지는데다, 유지 및 관리가 까다로웠다. 이 때문에 치륜식 총은 화승총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했다. 따라서 치륜식 총은 화승총을 사용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17세기 말엽부터 새로운 방식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화승총은 전장에서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이 새로운 방식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기사에서 이어진다.

사진 출처: 체코 조병창(Česká zbrojovka)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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