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온 옴므 파탈 - 마세라티 기블리 S Q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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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 온 옴므 파탈 - 마세라티 기블리 S Q4
  • 박병하
  • 승인 2016.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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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세라티는 현재 볼륨의 확대를 위해 기블리와 르반떼 등, 신모델을 차례로 내놓고 있다. 그 첫 번째 타자가 기블리이고, 두 번째 타자가 최근 출시된 SUV 모델인 르반떼다. 1967년 태어난 동명의 GT(Gran Turismo)에게서 이름을 따 온 마세라티 기블리는 마세라티 볼륨 확대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며, 마세라티 브랜드에 새로운 국면을 맞게 해 준 모델이다. 마세라티 기블리의 정점에 있는 S Q4 모델을 시승하며 이탈리아에서 온 프리미엄 세단의 매력을 경험해 본다. Vat 포함 차량 기본 가격은 1억3,880만원.

마세라티 기블리의 외관은 일견 거대한 체구를 자랑하는 맏형 콰트로포르테를 앞뒤로 줄여 놓은 듯한 모양새다. 길이는 4,970mm로, 콰트로포르테보다 295mm나 짧지만, 시각적으로 차가 전혀 작아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콰트로포르테보다 불과 5mm 작은 1,945mm의 폭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전고는 20mm 낮아, 낮고 넓은 형상을 이루는 덕에, 차가 더욱 커 보인다.

전반적인 차체 형상은 콰트로포르테를 줄여 놓은 듯한 모양새에 가깝지만, 프로포션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기블리 쪽이 한층 대담하고 스포티하다. 콰트로포르테와 큰 차이가 없는 기나긴 보닛을 가지면서 차체 뒤쪽을 보다 짧게 처리, 쿠페의 정석과도 같은 `롱 노즈 숏 데크` 스타일을 세단의 틀 안에서 절묘하게 구현해 놓았다. 극단적인 쐐기형 전면에서 시작하여 끝부분을 살짝 접어 올린 트렁크리드까지 이어지는 선과 면의 흐름이 특히 인상적. 여기에 차체 전반을 휘감고 있는 근육질의 곡면들이 완성하는 섹시한 몸매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디테일에서는 현행 마세라티의 디자인 언어들을 반영하면서도 기블리의 개성을 살려주고 있다. 특히, 기블리의 얼굴은 그야말로 도발적이고 반항아적인 인상을 지닌 냉미남과 같다. 마치 젊은 시절의 알랭 들롱이나 제임스 딘을 보는 것과 같다. 귀족적인 기품과는 거리가 멀지만 사람의 시선을 잡아 끄는 매력이 있다.

도어를 열고 차내에 들어서면, 외관과 같은 스포티함을 그대로 투영한 듯한 인테리어가 탑승자를 맞는다. 실내는 온통 고급스런 질감의 가죽으로 치장해 놓았으며, 헤드라이닝은 알칸타라로 마무리했다. 그러나 화려한 것은 소재와 형상뿐, 전반적인 마감의 완성도나 인체공학적인 배려는 부족한 편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크라이슬러의 부품을 차용한 곳이 많아서 사람에 따라서 `깬다`고 여겨질 구석도 있다.

스티어링 휠은 콰트로포르테와 같은 3스포크 타입으로, 직경이 꽤나 크다. 림도 꽤나 굵은 타입이어서 손이 큰 편인 기자의 입장에서는 비교적 좋은 그립감이지만, 손이 작은 운전자에게는 불편할 수 있다. 여기에 형상이 꽤나 미묘해서 온갖 방법으로 조정을 시도해 봐도 스티어힐 휠이 계기판 일부를 가린다. 스티어링 휠 뒤편에는 알루미늄을 통째로 깎아 만든 호화스런 고정식 패들시프트가 장착되어 있다. 와이퍼와 방향지시등을 작동시키는 스티어링 컬럼 레버는 그 뒤쪽에 존재하는데, 중간에 끼어 있는 패들시프트 때문에 스티어링 휠과의 거리가 멀어서 사용하기가 불편하다. 센터페시아 상단에는 마세라티의 로고가 그려진 길쭉한 형상의 아날로그 시계가 자리잡고 있다. 그 아래에는 터치스크린식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자리한다. 이 시스템은 크라이슬러 유커넥트(Uconnect) 시스템에 마세라티의 UI 테마를 입힌 MTC(Maserati Touch Control)라는 시스템이다. 사용 편의성은 크라이슬러 유커넥트와 다르지 않으며, 내비게이션은 지니맵을 사용한다. 플로어 콘솔은 콰트로포르테와 동일하다.

부드럽고 고급스런 질감의 가죽을 듬뿍 사용한 앞좌석은 몸을 부드럽게 감싸주는 착좌감을 지니고 있다. 기블리에게서 그나마 몇 안 되는 인체공학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부드럽고 안락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몸에 감겨오는 착석감이 일품이다. 앞좌석은 양쪽 모두 8방향의 전동조절 기능과 4방향 허리받침, 그리고 2단계의 열선 및 통풍 기능을 제공한다. 운전석은 2개의 메모리 기능이 추가된다.

기블리의 뒷좌석은 등받이의 각도가 다소 서 있는 편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착좌감 자체는 나쁘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공간 설계에 있어서는 차의 크기를 감안하지 않아도 그다지 넉넉한 편은 아니다. 전반적으로 뒷좌석에 할당된 공간이 충분치 않아, 거주성이 부족한 편이다. 뒷좌석은 좌우 양쪽에 각 2단계의 열선기능과 전동식 후방 선 셰이드 등의 편의장비를 제공한다. 두터운 머리받침은 분리형으로 보일 수 있으나, 실제로는 고정식이며, 가운데 머리받침만 분리할 수 있다.

기블리의 제원 상 트렁크 용량은 500리터. 수치 상으로는 넉넉한 편에 속하지만 체감 상으로는 그다지 크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트렁크 리드는 전동 개폐 기능이 적용되어 있다. 또한, 뒷좌석 등받이가 6:4 분할 접이식으로 제작되어 있어, 짐 공간을 더 늘릴 수도 있다.

시승한 기블리 S Q4는 콰트로포르테에도 사용된 바 있는 페라리 F160 AN 엔진을 심장으로 탑재하고 있다. 이 엔진은 3.0리터 배기량의 다운사이징 터보 엔진으로, 410마력/5,500rpm의 최고출력과 56.0kg.m/1,750~5,000rpm의 최대토크를 발휘한다. 엔진에서 생성된 동력은 ZF의 8단 자동변속기를 거쳐, 콰트로포르테를 통해 선보인 마세라티 최초의 상시 4륜구동 시스템, `Q4`를 통해, 네 바퀴에 가변적으로 전달된다.

이 엔진을 얹은 기블리는 정숙성 면에서 앞서 경험했던 디젤 모델에 비해 부족하다. 엔진의 회전 수 상승을 억제하는 I.C.E(Increased Control Efficiency) 모드 하에서도 엔진과 배기 시스템에서 울리는 듯한 소음이 연신 귓전을 자극한다. 어디 그 뿐이랴. 스티어링 휠, 페달, 시프트 레버 등을 통해 전해지는 잔 진동도 그냥 무시하기에는 어렵다.

승차감은 단단한 맛이 있다. 그런데 이 단단한 맛은 독일식의 세련된 맛과는 거리가 멀다. 훨씬 기계적이고 묵직하며, 거칠다. 기본적으로 노면의 요철을 강하게 받아내는 편이며, 노면의 정보를 가감 없이 읽어 들인다. 이 때문에 운전자의 팔과 허리를 통해 전달되는 피드백의 양이 많은 편이다. 마치 상대의 기분 따위는 알 바 아니라는 듯, 처음부터 끝까지 직설적인 화법으로 일관한다. 이러한 탓에 스포츠 모드를 동작하지 않은 상태에서조차 방금 밟고 지나간 것이 자갈인지 돌멩이인지를 허리로 구분할 수 있을 정도다. 운행 중에 느껴지는 차체의 중량감은 아주 무거운 편.

하지만 스포츠 모드와 가변 배기 시스템을 작동시키고 가속 페달을 카펫의 너머로 내리 밟는 순간, 차가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특히, 가변 배기 시스템을 작동시키고 나면 그 동안 막혀 있던 무언가가 뚫리는 느낌에 가까운, 또렷하고 시원스러운 음색을 내뱉기 시작한다. 이 상태에서 가속 페달을 세차게 내리 밟으면 그르렁거리는 `소음`은 돌연 박력 넘치는 `소리`로 변신한다.

이 때부터 기블리는 사정없이 귓전을 두들겨대는 맹렬하고 자극적인 공연을 시작한다. 시작은 묵직하지만 박력이 있으며, 탄력을 받은 순간부터는 고회전 영역을 향해 짜릿하게 뻗어 나가는 배기음의 맛이 각별하다. 그런데 이 짜릿하고 시원스럽게 뻗어 나가는 사운드와는 달리, 차체의 움직임은 시종일관 묵직하기 그지 없다. 속도계가 올라가는 속도는 결코 느리지 않건만, 체감 상의 중량감 때문에 발이 다소 느리다는 기분이 든다. 시승한 기블리의 제원 상의 0-100km/h 가속은 4.8초로, 같은 엔진과 구동방식을 사용하는 콰트로포르테 S Q4에 비해 0.1초 바르게 표시되어 있지만, 체감 상으로는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렵다. 이 미묘한 언행불일치의 내막에는 파워트레인을 사용화는 콰트로포르테보다 150kg이나 더 무거운 중량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한다.

다만, 감각적인 부분에서의 미묘한 언행불일치를 제외하면, 가속 성능은 준수한 편이다. 제원 상으로 0-100km/h 가속 시간은 5초 이내고, 실제로도 그와 근접한 기록을 내주었기 때문이다. 고속 주행을 하는 데 있어서 부족한 점은 찾아볼 수 없으며, 오히려 고속 주행 중에는 더 좋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통 알루미늄을 깎아 만들어, 차가운 금속의 질감이 물씬 풍기는 패들 시프트는 방아쇠 같은 손맛이 있어, 가감속을 더욱 즐겁게 만들어 준다.

기블리는 콰트로포르테보다는 작은 세단이지만 무게가 더 무겁기 때문에, 의외로 둔한 느낌을 받게 된다. 하지만, 조종 감각의 면에서는 굉장히 기계적이고 단순하며, 아날로그적이다. 근래에 보기 드문 유압식 스티어링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는데, 감도가 묵직하면서도 좋은 직결감이 인상적이다. 전동식 스티어링에 익숙한 운전자에게는 다소 투박하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으나, 아날로그적인 조종성을 원하는 운전자에게는 선물과도 같다.

급격하게 꺾여 들어가는 코너에서의 움직임은 2톤을 살짝 넘는 차체로서는 수준급의 몸놀림을 보인다. 묵직한 중량으로 찍어 누르듯 돌아 나간다. 덩치에 비해 기계적이고 직관적인 편에 속하는 조향 감각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페이스를 높일수록 조종의 난이도는 뚜렷하게 상승한다. 기본적인 하드웨어 자체가 운전자에게 그리 친절한 타입이 아니다. 독일식 세단이 운전자를 주인으로 모시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양면으로 끊임없이 정교하게 보좌한다면, 기블리는 운전자에게 일대일로 맞붙으려 드는 느낌이다. 상시 4륜구동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위안이기는 하지만, 무거운 몸무게와 큰 덩치, 그리고 전자장비의 양념을 쏙 뺀 `날 것`에 가까운 감각이다. 운전자가 시키는 대로 따라주는 충견과는 거리가 멀다.

3.0리터 가솔린 터보엔진과 상시 4륜구동계, 그리고 2톤이 넘는 공차중량을 가진 기블리 S Q4의 공인연비는 도심 6.3km/l, 고속도로 10.0km/l, 복합 7.6km/l다. 시승을 진행하며 기록한 구간 별 연비는 전반적으로 이보다 약간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혼잡한 출퇴근 시간대의 강남 일대에서는 5.3km/l를 기록했고, 교통상황이 호전된 경우에도 공인 연비인 6.3km/l이상을 넘기기 어려웠다. 고속도로에서 100km/h로 정속 주행한 경우는 9.8km/l로, 이 역시 공인연비인 10.0km/l에 약간 못 미친다. 성능을 본위로 하는 강력한 3.0리터 터보 엔진과 상시 4륜구동, 그리고 2톤 남짓한 몸무게 등, 연비에 불리한 요소가 많은 차로서는 그나마 납득해줄 수 있는 연비라고 할 수 있다.

전세계 유수의 자동차 제조사들은 날로 높아져만 가는 고급 세단 시장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자동차 자체의 총체적 성능 향상과 더불어 한층 손쉬운 운전, 편안하고 세련된 승차감과 정숙성의 향상에 몰두해 왔다. 그러면서도 남과 다른 것을 원하는 이 깐깐한 소비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입이 떡 벌어질 만한 최신예 기술들을 강박적으로 개발하고 도입해 왔다.

특히, 이러한 방면에 가장 강박적으로 몰두해 왔던 메르세데스-벤츠, BMW, 등의 독일계 프리미엄 브랜드였고, 이들의 고급 세단은 현재 대한민국의 수입차 시장을 꽉 틀어 쥐고 있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차의 광고 카피는 120%의 프라이드로 채워져 있지만, 막상 실제로 접하게 되면 대다수는 자기 목소리를 잘 내지 않는다. 항상 차에 타는 사람을 우선으로 반응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항상 대접받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첫 만남에서부터 그 이후까지 항상 고개를 숙이고 차에 타는 사람을 맞는다. 그래서 독일식 세단에 오르게 되면, 첫 만남에서부터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대하게 된다.

하지만 마세라티 기블리는 전혀 그러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섹시하고 수려하기 짝이 없는 외모를 지니고 있건만, 강렬하고 차가워서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타입이다. 화려하게 치장하고는 있지만, 그것은 타는 사람을 위해서가 아닌, 자기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함에 더 가깝다. 하늘도 뚫을 것 같은 프라이드 덕에 타는 이를 배려하는 측면도 찾기 어렵다. 처음부터 끝까지 고개를 숙이지 않으며, 이 때문에 차에 타서 내릴 때까지 주종(主從)의 관계가 아닌 대등한 관계에서의 직접적인 교감, 혹은 운전자가 차에 맞춰지게 된다. 이 때문에 독일식 세단들의 무한한 호의와 대접에 익숙해진 이들에게 기블리는 교양이 없고 퇴폐적으로 비춰질 여지가 있다.

하지만 기블리, 그리고 마세라티 모델들의 이러한 특성은 마세라티가 가진 독보적인 스타일링의미학을 비롯하여, 독일계와는 전혀 다른, 그들만의 감성설계가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다. 이는 퇴폐적이고 반항아적인 인물에게 이끌리는 느낌과도 같다. 마세라티는 볼륨 확대를 위해 기블리를 내놓았지만, 그 중에서도 기블리 S Q4 모델은 대중성보다는 확실히 그들만의 개성으로 점철시킨 모델이다. 그래서 기블리와의 만남은 흔하디 흔한 고급 세단과는 확실하게 다른 경험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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