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제왕, 전함 이야기 #5 - 결점투성이, 일본 해군의 전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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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제왕, 전함 이야기 #5 - 결점투성이, 일본 해군의 전함들
  • 모토야
  • 승인 2020.02.12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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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일본제국은 20세기가 막 시작된 이래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1902년 유라시아대륙을 중심으로 세력을 넓혀 나가고 있었던 러시아 제국의 남하를 막기 위해 맺어진 '영일동맹'은 구 일본제국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되었으며, 1904년 러일전쟁의 승리로 '서구 열강으로부터 승리한 아시아 국가'가 된 일본은 포츠머스 조약으로 대한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을 하나둘씩 식민지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 1차세계대전의 발발로 유럽에 군수물자를 수출하며 일본은 또 한 번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으며, 자칭 서구열강의 반열에 끼어 들어가 자칭 아시아의 맹주를 참칭하며 식민지 확대에 열을 올렸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강대한 해군을 건설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이로써 일본은 아시아에서 최초로 전함과 항공모함 등의 대형 함정을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운용한 국가가 되었다. 

일본의 건함(建艦) 기술은 당시 최고의 군함 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던 영국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일본은 영일동맹을 전후하여 전략 무기에 해당하는 전함의 설계 및 건조 기술을 영국에게서 직접 전수 받았다. 이 때문에 일본의 대형 함정(艦艇)은 특히 영국의 함정들과 설계 상 유사한 점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일본은 아시아권에서는 가장 많은 전함을 보유하고 있었다. 제 2차 세계대전기를 기준으로 해도 전함과 순양전함을 포함해 10척 이상의 전함을 보유하고 있었다. 영일동맹의 전성기 시절에 등장한 공고급 순양전함 4척, 이를 확장한 후소급 전함 2척과 이세급 전함 2척, 나가토급 전함 2척, 그리고 마지막으로 건조한 야마토급 전함 2척(3번함 시나노 제외)의 막대한 전력을 보유했다.

그러나 일본의 전함들은 영국이 직접 설계하고 지어 준 공고급 순양전함을 제외하면, 온갖 종류의 트러블에 시달렸다. 여기에는 두 차례에 걸친 군축조약으로 인해 영국과 미국에 비해 항상 적은 수의 함정만을 배정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일본의 사정이 있었다. 일본 해군의 함정 보유량은 영국과 미국에 비해 항상 수적으로 열세였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개개함의 성능이 타국의 군함에 비해 더 우월해야 한다는 '개함우월주의'에 빠지게 되었다. 이 때문에 일본은 타국의 군함에 비해 과도하게 무장을 탑재하는 데 집착했다. 그리고 이것이 일본의 수상함이 가지고 있었던 온갖 트러블의 주된 원인이 된다. 게다가 이를 스스로 해결할 만한 기술적 역량도 미국과 영국에 비해 크게 부족했다.

구 일본 해군은 자신들의 망상 속에서나 실현될 '함대결전'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많은 전함을 보유하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그 많은 전함들은 실전에서 제대로 활용도 못 해보고 대체로 허망하게 최후를 맞았다. 제 2차세계대전기의 구 일본군 전함들을 둘러본다.

공고급 순양전함 – 일본(1913~1945)
공고급 순양전함은 구 일본 해군이 운용한 총 4척의 순양전함들을 말한다. 공고급 순양전함은 1913년, 영국의 라이온급 순양전함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순양전함(Battlecruiser)으로, 영국에서 1번함 공고를 건조하여 직도입하고 나머지 3척(히에이, 하루나. 기리시마)은 일본에서 직접 건조하여 도입하는 방식으로 전력화가 진행되었다. 공고급 순양전함은 이른 바 ‘영일동맹’이 전성기를 맞고 있었던 시기, 영국이 일본에 안겨 준 크나큰 특혜 중 하나였다. 일본이 빅커스사로부터 직접 인도받은 1번함 공고는 후일 일본군의 군함 설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공고급 순양전함은 건조 당시인 1913년도에는 그럭저럭 준수한 성능을 가진 순양전함이었다. 상빕배수량 27,500톤에 총 64,000마력의 출력을 내는 파슨스 증기터빈 2기와 4축 추진으로 27.5노트(약 km/h)의 최고속도를 낼 수 있었으며, 하위함급의 포탄을 방어할 수 있는 203mm의 측면장갑을 가졌다. 무장은 총 8문의 14인치(356mm) 주포로 무장했다.

공고급 순양전함은 운용되는 내내 두 차례에 걸쳐 대대적인 개장 공사를 거쳐, 최종적으로는 만재 배수량 36,314톤급으로 몸집이 불어났다. 일본군은 공고급의 기관부를 대대적으로 뜯어 고쳐 13만 6,000마력으로 출력을 높였고 부무장을 꾸준히 증설하는 등, 지속적인 개량을 가하여 30.3노트(약 km/h)의 전함으로 업그레이드했다. 하지만 태생이 순양전함인 탓에, 장갑만큼은 순양함 등 하위 함급의 포탄을 막아낼 수 있는 정도에 그쳤고, 상대 주력함과의 1:1 대결은 피해야만 했다.

일본에서는 공고급 순양전함에 대해 ‘전함’ 내지는 ‘고속전함’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펼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공고급 전함은 태생부터 순양전함인데다, 최후의 개장 시점까지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태평양 전쟁 당시 가장 노후했던 공고급 순양전함은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해군의 전함 중 '함대결전'을 위한 중요 전력에서 제외되어 다른 전함들이 안전한 후방에 있을 동안 노구를 이끌고 태평양을 종횡무진하며 미 해군과 힘겨운 싸움을 하다가 3척은 전투 중에, 3번함 하루나는 공습으로 인해 격침 되었다. 그나마 제대로 된 실전을 겪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침몰해버린 다른 전함들에 비하면 그나마 이쪽은 군함으로서의 명예는 지킨 셈이었다. 

후소급 전함(1915~1945)
후소급 전함은 구 일본 해군이 건조하고 운용한 총 2척의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들이다. 이들 중 후소급 전함은 순수하게 일본의 기술력으로 설계 및 건조된 최초의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이기도 하다.

후소급 전함은 미국의 뉴욕급 전함에 대항하기 위해 1915년에 취역한 전함이다. 1번함 후소와 2번함 야마시로의 2척이 존재한다. 이세급 전함은 후소급 전함이 취역한 1915년에 기공되어 1917년 완공된, 후소급의 후속함에 해당하는 전함이다. 후소급 전함은 기준배수량 29,326톤의 대형함이었다. 후소급 전함은 일본 최초로 독자개발된 전함으로, 당시 일본 정부의 지대한 관심을 받고 있었다. 함명인 후소(扶桑)가 옛 일본 그 자체를 부르는 말이었던 '부상국(扶桑國)'에서 유래한 만큼, 이 당시 일본의 기대가 얼마나 컸는지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후소급 전함의 실상은 그 기대와는 전혀 달랐다. 일단 기본 구조부터가 공고급 순양전함의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함체는 일본의 기술력 부족으로 인해 공고급 순양전함의 설계를 바탕으로 함체를 조금 더 확대하고 장갑을 조금 더 강화하는 선에서 머물렀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공고급 순양전함의 2연장 포탑을 총 6기나 우겨 넣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당시는 아직 함체 좌우에 주포탑을 설치하는 (상대적으로) 구식 형태의 전함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후소급과 같이 함체 중앙에 일렬로 주포탑 6기를 늘어놓은 방식은 전례가 없는 것이었다.

물론 이 덕분에 후소급 전함은 14인치 함포 12문의 무장을 자랑하게 되었지만 장점은 거기까지였다. 후소급 전함은 함체 중앙에 설치한 주포탑으로 인해 내부 공간에 제약이 컸다. 이 뿐만 아니라 중앙의 주포탑은 사격각도가 제한되는 것은 물론, 일제사격시 함체에 전달되는 진동이 지나치게 커서 좌우 1문씩 교차로 사격을 해야 했다. 게다가 1935년도의 대개장으로 인해 후소급 전함은 엄청난 높이의 함교를 가지게 되었다. 이는 함 내부에 공간이 부족하여 함교에 시설을 몰아 넣다보니 벌어진 불상사였다. 이 때문에 가뜩이나 높았던 무게중심이 더 높아지면서 안정성이 매우 떨어졌다. 

후소급 전함은 등장 당시에는 12문의 14인치 주포를 탑재한 강력한 전함으로 통했으나, 1910년대 이래 기술력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빠르게 구식으로 전락했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기대를 가득 담아 지어진 첫 전함은 빠르게 구식화되는 것도 모자라 성능에도 문제가 많았다. 후소급 전함은 레이테만 해전에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실전을 경험하게 되었으나, 1번함 후소는 구축함의 어뢰공격을 받고 3번 주포탑의 화약고 인화로 인해 폭침했고, 2번함 야마시로는 미 해군 수상함들의 집중공격을 받아 침몰했다.

이세급 전함(1917~1944)
일본은 후소급 전함 2척을 야심차게 건조했으나 그 결과물은 기대 이하의 것이었다. 게다가 당시 일본은 상당한 재정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게다가 후소급 전함이 취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등장한 미국의 네바다급 전함이 현대적인 '집중방어' 개념을 실현함으로써 후소급 전함의 가치는 빠르게 퇴색하기 시작했다. 이에 일본은 본래 4척이 계획되어 있었던 후소급 전함 3,4번함의 건조를 취소하는 데 이른다. 

하지만 1차 대전 이후 또 다시 시작된 건함경쟁으로 인해 일본도 마냥 손을 놓을 수는 없었고, 기존의 후소급에 비해 효율적인 설계를 가진 전함을 원하고 있었다. 이에 후소급 전함의 설계를 바탕으로 타국의 전함 설계를 이리저리 참고하여 만들어진 전함이 이세급 전함이다. 이세급 전함은 후소급 전함이 취역을 시작한 1915년도부터 건조에 착수, 1917년도에 완공했다. 이세급 전함은 후소급에 비해 함체 길이를 더 늘리고 브라운-커티스식 터빈을 도입하여 후소급 보다 0.5노트 더 빠른 23노트의 최고속도를 낼 수 있었다. 또한 중앙 주포탑의 배치를 적층식으로 변경하여 공간을 확보하고 신형의 5.5인치 부포를 채용해 기존 6인치 부포 대비 속사능력을 보완했다. 또한 주포탑을 비롯하여 함의 장갑구조를 더 강화하여 방어력도 향상시켰다.

하지만 역시 원판이 워낙 나빠서였을까. 이세급 전함은 후소급 전함에 비해 몇 가지 사항의 개선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함체 중앙부에 주포탑 2기를 배치한 설계를 따르고 있었고, 이 때문에 여전히 후소급과 근본적인 문제점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는 지속적인 개장공사에도 불구하고 끝내 잡아내지 못했다. 

이세급 전함은 전대미문의 '항공전함(Battleship-carrier)'이라는 괴이한 컨셉트의 군함으로 재탄생했다. 1942년, 이세급 전함 2번함 휴우가가 주포사격훈련 도중 후방의 5번 주포탑이 폭발하는 사고를 일으키면서 5번 포탑을 철거했다. 그런데 사고 이전, 일본이 미드웨이 해전에서 항공모함 4척을 일거에 상실하면서 부족한 항공 전력을 급하게 메우기 위해 후소급과 이세급을 항모로 개조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마침 사고로 5번 주포탑을 잃은 휴우가가 그 실험대가 된 것이다.

이로 인해 휴우가는 가장 먼저 정규 항모로 개조될 예정이었으나 자재와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일본은 궁여지책으로 후방의 5,6번 주포탑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수상기(水上機)나 겨우 띄울 수 있는 수준의 작은 비행갑판을 얹은 전대미문의 항공전함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항공전함은 공간이 부족하여 항공기 운용 능력에서는 경항모보다 나을 것이 전혀 없었고, 기존 12문에서 8문으로 줄어든 화력과 후방의 비행갑판으로 인해 전함으로서의 활용도도 제약을 받게 되었다. 즉, 이도 저도 아닌 배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한시가 급했던 일본은 결국 1번함 이세까지 휴우가와 동일한 항공전함으로 개조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항공전함을 위한 신형 수상기 또한 조달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결국 함재기도 없이 텅 빈 비행갑판만 달고 다녀야 했다. 즉 전술적으로도, 전략적으로도 가치가 심각하게 떨어지는 결함 병기로 추락한 것이다.

나가토급 전함(1920~1945)
나가토급 전함은 세계 최초로 16인치(약 406mm)급 주포를 탑재한 전함으로, 짧은 시간 동안 빠르게 발전한 일본 건함 기술을 상징하는 군함이기도 하다. 나가토급 전함은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이 체결도기 직전인 1920년에 완성되었지만 당대 최강의 화력과 더불어 최상급의 장갑과 속도를 겸비한 전함이었다.

나가토급 전함은 건조 당시를 기준으로 기준배수량만 32,720톤에, 215m의 길이와 29m의 폭을 가진 거함이었으며, 총 8문의 41cm 45구경장 주포로 무장했다. 각 주포는 총 4기의 2연장 포탑에 각각 탑재되었다. 기관부 출력은 8만 마력에 달해, 당시 기준으로 상당한 고속이었던 26노트의 최고속도를 자랑했다. 나가토급 전함의 설계는 영국의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의 설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부포곽과 함체 및 함교의 형상 등에서 상당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나가토급 전함은 전간기 동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전함 중 하나로 그 위용을 자랑했다.

나가토급 전함은 1930년대에 대대적인 개량을 거쳐 배수량이 39,130톤까지 불어났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수중저항을 일으키는 수선하 어뢰발사관을 제거하고 82,300마력을 내는 신형 기관을 도입했으며, 대공포를 크게 증설해 한층 현대화되었다. 나가토급 전함은 태평양전쟁 내내 일본 해군의 상징으로 통했다. 당시에는 야마토급 전함의 존재가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에서는 "나가토와 무츠는 일본의 자랑"이라고 추켜세웠으며, 해군의 위신을 상징하는 총기함의 자리를 맡고 있었다.

하지만 나가토급 전함에도 문제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특히 방어력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기본적인 방어구조부터 당시를 기준으로 이미 구식화되어버린 1차대전식의 장갑구조를 취하고 있었던 것이 문제였다. 가장 두터운 현측장갑이 최대 305mm에 불과했으며, 갑판 장갑 또한 다층식을 사용하여 실질적인 방어력이 낮았다. 물론, 탄약고 등 취약 부위에 추가적으로 장갑을 덧대긴 했지만 이것만으로는 자함이 쏘는 16인치 포탄마저 방어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문제가 생겼다. 즉, 현대적인 전함의 기본 요건인 '대응방어'가 충족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방어력이 취약한 포곽식 부포는 끝까지 해결하지 못했다. 게다가 2차대전기를 기준으로 25노트에 불과한 속력으로 인해 호위함들을 따라가지 못하는 등의 추태를 보였다.

나가토급 전함 1번함 나가토는 일본해군의 총기함으로서 진주만 공습 당시 나구모 주이치의 기동함대에 출격명령을 내렸다. 미드웨이 해전에도 참가는 하였으나 전장에서 상당히 떨어진 거리에 있어 제대로 된 전투는 벌이지 않았다. 나가토는 레이테 만 대해전에도 참가하였으나 당시 벌어진 사마르 해전에서 호위항공모함과 구축함으로 구성된 미 해군 함대가 무모할 정도의 분전을 벌여, 도주하는 추태를 보이고 만다. 나가토는 일본이 항복할 때까지 남아 있었던 일본군의 유일한 전함으로, 패전 이후 미국에 넘어가 비키니 환초에 끌려가 핵실험에 사용되는 최후를 맞았다.

나가토급 전함의 2번함 무츠는 제대로 된 실전에 투입도 못해보고 의문의 폭발사고로 인해 침몰했다. 무츠는 1943년, 히로시마에 위치한 하시라지마의 정박지에서 정박해 있는 도중, 3번 포탑이 의문의 폭발을 일으켜 그대로 침몰했다. 무츠의 침몰 원인으로는 자연발화설, 스파이에 의한 파괴공작설, 그리고 함내의 수병들의 부주의 혹은 고의적인 방화설 등의 가설이 있다. 그 중에서 그나마 유력하다고 할 수 있는 가설은 당시 근무자의 고의적인 방화설이 꼽히는데, 이는 당시 일본군 내에 만연했던 구타 및 가혹행위 등으로 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야마토급 전함(1942~1945)
야마토급 전함은 구 일본 해군이 마지막으로 건조하고 운용한 슈퍼드레드노트급 전함으로, 역사 상 최대의 규모를 자랑한다. 규모와 주포무장만으로는 미국이 건조하고 운용한 최대 규모의 전함인 아이오와급 전함을 뛰어넘는다. 야마토급 전함은  태평양 전선에서의 일본 해군을 상징하면서 일본의 극우세력들에 의해 신격화까지 된 함선이기도 하다.

야마토급 전함은 드레드노트급 전함의 등장 이래 열강의 건함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은 '거함거포주의(대함거포주의)'의 절정을 보여 준 전함이라고 할 수 있다. 야마토급 전함은 기준 배수량(만재 배수량에서 연료와 보일러용수를 뺀 배수량)만 6만 5,027톤에, 만재배수량은 7만 1,659톤에 달했다. 길이 263m, 폭 38.9m, 흘수선(선체가 물에 잠기는 높이)은 11m에 달하는 거대한 함체는 410mm에 달하는 측면 장갑과 226.5mm의 갑판장갑으로 보호되며, 함교는 500mm에 달하는 장갑을 둘렀다. 그리고 주포는 세계 최대 구경을 자랑하는 18.1인치, 정확히는 '46cm'에 달하는 45구경장 함포였다. 이 무지막지한 거포는 지금까지 함선에 탑재된 화포 중 가장 거대한 화포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기까지 하다. 야마토급 전함은 이 무지막지한 거포를  포탑 1기 당 3문씩 탑재했고, 이 포탑을 전방에 적층식으로 2기, 후방에 1기를 각각 탑재하여 총 9문을 실었다.

야마토급 전함은 역대 일본군이 지어 올린 전함 중 가장 혁신적인 전함이기도 하다. 그 첫 번째 요소는 '최적화'를 꼽을 수 있다. 일본군은 과도한 자재 소모와 공기(工期) 지연을 막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했다. 그 결과 일본산 전함들의 상징이자 고질병이었던 함교의 높이를 대폭 낮추는 데 성공한 것은 물론, 역대 일본 전함 중 가장 효율적인 설계를 완성했다. 일본군 전함 중 최초로 3연장 주포탑을 채용한 것 역시 이러한 최적화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일본군 전함들 중 최초로 포곽식 부포를 폐지했다. 부포는 모가미급 중순양함의 주포로 쓰인 15.5cm 60구경장 함포 12문을 각 3문씩 4기의 회전식 포탑에 장착하여 탑재했다. 또한 배가 파도를 생성시켜 받는 저항을 줄여주는 구상선수(Bulbows Bow)를 도입했다. 여기에 일본군의 군함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모든 승무원을 위한 선실까지 제공되었다. 개함우월주의(個艦優越主義)에 지나치게 몰입한 나머지, 온갖 과무장으로 군함의 거주성을 엉망으로 만들어 왔던 일본군의 다른 모든 군함들과는 격이 달랐다.

하지만 일본군이 만들어 낸 무기답게, 여러가지 결함들이 존재했다. 가장 큰 결함 중 하나는 속도다. 추진력에 비해, 기관부의 용적이 지나치게 크고, 성능도 비교적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재배수량 7만톤이 넘는 몸뚱이에 비해 기관부 출력이 15만마력에 불과하여 통상 최고 27노트(약 50km/h), 과부하 시 제원 상 29노트(약 53.7km/h)에 불과했다. 타국의 전함이 통상 상태에서 30노트 내외의 최고속도를 기록하고 있었던 데 반해, 야마토급 전함은 발이 느렸다. 전투를 지원하기 위한 레이더 등의 시설도 부족했으며, 그마저도 성능이 나빠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게다가 대공포의 경우는 대공포 자체의 성능 부족과 더불어 대부분의 대공포좌가 노천식인데다, 제대로 된 포 방패도 준비되어 있지 않아 적 함재기의 기총소사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일본군은 막상 야마토급 전함을 짓고 나서도 유지비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 것은 물론, 최후의 '함대결전'을 위해 전력을 보존한다는 명분으로 야마토를 실전 임무에 거의 투입하지 않았다. '해군의 상징' 운운하는 상층부의 작태는 덤이었다. 이 때문에 야마토급 전함들은 기지에서 대기하는 일이 일상이었고, 이 때문에 1번함 야마토는 '야마토 호텔'로, 2번함 무사시는 '무사시 여관'이라며 전쟁 내내 일본군 내에서조차 조롱거리였다.

야마토급 전함은 그 거대한 몸집과 주포로 제대로 된 전과를 올리지도 못했다. 1번함 야마토는 오키나와로 상륙해 오는 미군을 막기 위한 작전에 투입되어 무의미하게 소모되었으며, 2번함 무사시는 시부얀 해전에서 미끼 역할로 소모되었다. 3번함 시나노는 건조 도중 항공모함으로 개조되어 세계 최대 크기의 항모가 되었으나, 취역 후 열흘, 첫 출항 후 단 17시간만에 단 1척의 미군 잠수함에게 발각당해 허무하게 격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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