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의 롤스로이스, GAZ 챠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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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의 롤스로이스, GAZ 챠이카
  • 모토야
  • 승인 2020.03.12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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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산업으로 널리 알려진 국가들은 미국 및 서유럽과 같은 서방국가, 혹은 한국이나 일본과 같은 친서방적인 국가가 대부분이다. 서유럽의 자동차는 그들의 오랜 자동차 역사에서 비롯된 고급 자동차들로 유명하며, 단시간에 가장 빠른 자동차 보급을 이룬 미국은 현대의 자동차 산업에 있어 막대한 영향을 끼쳤고, 지금도 끼치고 있다. 일본의 경우, 동아시아에서 가장 빠른 자동차 도입과 더불어 전후에도 탄탄하게 쌓아 올린 경험을 토대로 전 세계 시장에 뻗어 나갔다.

그런데 중공업으로는 이들 나라에 비해 뒤쳐지지 않는 나라가 한 군데 있다. 지금은 사라진 구 소비에트 연방(소련), 그리고 그를 이어 받은 현재의 러시아가 있다. 러시아는 구 소련 시절, 미국과 대적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국가였으며, 소련의 몰락 이후 러시아 역시, 군사 강국에 소련 시절부터 군수사업과 함께 쌓아 올린 세계적인 중공업 역량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자동차는 서방 세계에는 크게 알려지지는 않았다.

구 소련의 자동차 산업은 서구세계의 자동차 산업에 비하면 20년 이상 뒤처져 있었다. 이는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소련 지역의 열악한 도로 교통 환경과 더불어 ‘필요한 만큼만 생산하여 공급한다’는 계획경제 하에 만들어졌다는 한계가 존재했던 것이다. 물론, 소련 시절부터 서구권과 기술교류도 이루어지고 수출도 진행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민간용 자동차 산업의 발달은 다른 공업 선진국에 비하면 상당히 늦은 편이다. 이는 현재의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소련에서의 자동차 산업은 나름대로의 세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비록 서구권에 비해 기술력은 턱없이 부족할지라도, 노동자 계급을 위한 값싸고 튼튼한 소형 승용차는 물론, 화물용 트럭이나 버스에 이르는 대부분의 차종을 자체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는 국가원수나 노동당 고위 간부를 위한 '롤스로이스급' 럭셔리 세단도 있었다. 이 차의 이름은 ‘M13 챠이카(Chaika)’다.

M13 챠이카는 러시아의 고르코프스키 자동차 공업(Gorkovsky Avtomobilny Zavod, 이하 GAZ)에서 만들어진 최고급 세단이다. 러시아의 GAZ는 소련 특유의 ‘설계국’ 시스템에 의해 태어난 기업 중 하나로, 1938년 지프보다도 빠르게 최초의 사륜구동 자동차, ‘GAZ-61V’를 만들어낸 바 있으며, 다수의 군용차량과 민수용 차량을 제작해 왔다. 차명인 챠이카는 러시아어로 '갈매기'를 의미한다.

가즈 M13 챠이카는 가즈가 1958년도부터 생산을 개시한 리무진 형태의 최고급 승용차다. 이 차는 소련의 서기장을 비롯한 고위 관료들을 위해 만들어졌으며, 전량 소련 정부의 소유였다. M13 챠이카는 당시 소련의 서기장을 지낸 니키타 흐루쇼프(Nikita Sergeyevich Khrushchev, 1894~1971)가 사용했으며, 구 소련의 정보기관인 KGB에서도 일부 사용되었다고도 전해진다. 대부분의 소련 시민들은 돈이 있어도 챠이카를 구입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1958년 생산을 시작한 이래 무려 23년 동안 생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총 생산 대수는 3,179대에 불과했다.

가즈 M13 챠이카의 외관 디자인은 1950년대 크라이슬러의 스타일을 참고한 듯하다. 이는 같은 공산권 국가인 중국의 홍치(Hongqi, 红旗) 리무진과도 어느 정도 상통하는 면이 있다. 고위 관료의 의전용으로 제작된 만큼, 다른 舊 소련(現 러시아)제 자동차들에 비해 유달리 돋보이는 외양을 지니고 있었다. 자본주의 진영의 대척점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의 자동차를 본떴다는 점이 한 편으로는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전장은 5,600mm미터, 전폭은 2,000mm에 달했으며, 전고는 1,580mm였다. 크고 긴 차체와 화려한 디테일과 곳곳에 둘러진 크롬장식들은 50~60년대 미국 자동차의 스타일을 한층 더 과장 시킨 모양새다. 하지만 지나치게 과시적인 것은 물론, 디테일이 부실하여 디자인의 완성도는 상당히 떨어진다.

챠이카는 거대한 리무진 스타일의 차체 덕분에 실내 공간 역시 다른 구 소련제 승용차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넓었다. 좌석은 두 개의 벤치형 좌석이 앞뒤로 나열된 형태였다. 이 외에도 카 퍼레이드와 같은 각종 행사에 사용하기 위한 4도어 컨버터블 버전이 만들어지기도 했으며, 스테이션 왜건 형태의 차체도 만들어졌다. 왜건형의 M13 챠이카는 앰뷸런스나 영구차의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는 과거 우리나라에서 대형 세단 기반의 스테이션 왜건을 앰뷸런스 등으로 사용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가즈 M13 챠이카의 심장은 5.5리터 V8 가솔린 엔진으로, 220마력의 최고출력을 낼 수 있었다. 변속기는 버튼식으로 작동하는 3단 자동변속기를 사용하였다. 구동 방식은 후륜구동계를 사용했다. 하지만 이 런 구동계로 공차중량만 2톤이 넘는(2,050kg) 거체를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최고시속은 99mph(약 159km/h)에 불과하여 성능은 당대 서방권 국가의 동급 세단에 비해 심각하게 모자란 편이었다.

챠이카는 1977년, M14 챠이카로 풀 모델 체인지를 거쳤다. M14 챠이카는 보다 유럽풍의 스타일로 변화된 외관 디자인을 지니게 되었다. 전장은 M13 챠이카에 비해 무려 514mm나 길어진 6,114mm에, 전폭은 20mm 더 늘린 2,020mm에 달했다. 휠베이스도 한층 길어져, 실내 공간을 더욱 키웠으며, 이에 따라 총 3열로 구성된 7인승 좌석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편의장비도 한층 향상되어, 당대 최신의 전자식 장비들을 고루 탑재했고 특별히 설계한 소음 방지 구조로 더욱 정숙한 주행을 보장했다. 하지만 파워트레인은 M13 챠이카가 쓰던 220마력짜리 5.5리터 엔진을 그대로 사용했다. 차체가 비약적으로 커지고 대량의 편의장비 증설이 이어지면서 공차중량이 무려 2,615kg으로 늘어난 데 비해 동력 성능은 거의 그대로였기 때문에 가뜩이나 모자랐던 주행 성능이 더더욱 떨어졌다.

M13 챠이카와 같이, 이 차도 구 소련의 서기장을 비롯한 고위관료를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총 생산 대수는 M13 차이카에 비해 훨씬 적어, 1,114대에 불과했다. M14 챠이카는 11년간 생산되었으나, 이 차는 소련의 마지막 서기장이면서 처음이자 마지막 대통령이기도 한 미하일 고르바초프(Michael Sergeyevich Gorbachev)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에 의해 설계도와 생산설비가 모두 폐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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