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자동차 전문가, 페르디난트 포르쉐의 흑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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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자동차 전문가, 페르디난트 포르쉐의 흑역사
  • 모토야
  • 승인 2020.03.17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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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역사에서 최초로 상용화된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페르디난트 포르쉐(Ferdinand Porsche)가 설계한 '로너-포르쉐 믹스테-바겐(Lohner-Porsche Mixte-Wagen)'이다. 체코(당시 오스트리아 령)에서 태어난 젊은 공학도였던 페르디난트 포르쉐는 이 혁신적인 자동차를 통해 그 이름을 알렸고, 이후에도 그는 끊임없이 전기모터를  활용한 구동방식을 연구했다. 자동차 공학에서 그의 성과는 오늘날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오늘날의 포르쉐AG와 폭스바겐AG의 뿌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의 일생에서 씻을 수 없는 과오가 있다. 바로 나치 독일에 부역했다는 사실이다. 그의 '흑역사'는 대부분 이 때 만들어진 것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2차 대전이 끝나고도 반세기가 넘은 지금까지도 '세기의 자동차 전문가'로 손꼽힌다. 그렇지만 남의 설계를 훔친 적도 있었고, 당시의 기술적 역량으로는 불가능했던 시도를 고집스럽게 밀어붙이기도 했다. 전쟁이 끝나고 그는 나치 독일에 부역한 전쟁 범죄자로 체포 후 수감되었으며, 1949년 보석금을 내고 출소했으나 1951년, 발작으로 세상을 떠났다. 세기의 자동차 전문가, 페르디난트 포르쉐의 '흑역사'를 파헤쳐 본다. 

체코산 설계도로 만들어진 독일의 국민차
그 사례 중 하나는 아돌프 히틀러를 수장으로 하는 나치당 치하의 독일에서 그는 독일의 국민차, '폭스바겐 비틀'을 설계한 것이다. 그런데 이 '비틀(Beetle)'이라는 이름은 1930년대 후반에 이 차가 수출되었던 당시, 영어권에서 사용한 별칭이다. 1938년에 태어난 이 차의 진짜 이름은 '카데프 바겐(Kdf Wagen)'이었다. 이는 당시 나치 독일에서 실시했던 정책 중 하나인 '카데프(Kdf, Kraft durch Freude)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후에 알려진 "3명의 어린이와 2명의 성인이 승차할 수 있을 것", "가격은 1천 라이히스마르크를 초과하지 않을 것" 등의 요구사항이라는 것도 모두 이 카데프 프로그램에서 요구한 사항이었다. 

히틀러의 지시로 만들어진 이 차는 체코의 타트라(Tatra)가 개발한 'T97'이라는 차량의 구동계통과 엔진설계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이는 페르디난트 포르쉐가 같은 오스트리아 출신인 히틀러의 주선으로 만나게 된 타트라 사의 한스 루트빈카(Hans Ledwinka)와의 교류에서 비롯되었다. 히틀러는 당시 독일 상류층에서 인기 있었던 타트라의 세단형 자동차에 상응하는 자동차를 만들어 줄 것을 포르쉐에게 요구했다. 그리고 프로쉐는 타트라 사가 1937년도에 출시한 T97의 엔진과 변속기, 그리고 구동방식을 그대로 베껴 왔다.  

타트라는 카데프 바겐이 껍데기만 약간 다를 뿐, 거의 전적으로 자사의 설계를 무단 도용한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았고, 이 때문에 포르쉐와 폭스바겐을 상대로 특허 침해와 관련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포르쉐는 소송을 받아들이기로 했지만 히틀러가 끼어들어 유야무야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독일이 체코를 침략하면서 없던 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심지어 원본에 해당하는 타트라 T97은 생산이 중단되고 만다.

그리고 체코는 한동안 나치 독일의 조병창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리고 독일 노동자들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하는 카데프 바겐은 나치 독일군의 기동 차량인 퀴벨바겐(Kübelwagen, VW Typ 82)과 수륙양용차 쉬빔바겐(Schwimmwagen, VW Typ 166)의 설계 기반이 된다.

이 도둑맞은 설계에 대한 배상은 전쟁이 끝나고 20년 뒤에야 이루어지게 되었다. 타트라 사는 전후에 폭스바겐을 상대로 다시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1965년 폭스바겐으로부터 100만 마르크를 배상 받았다.

하이브리드 '전차'에 대한 과도한 집념
포르쉐는 기본적으로 자동차 공학을 본업으로 하는 인물이었지만, 나치 독일에 협력하게 되면서 전차의 설계에도 관여하게 된다. 그가 전차 설계에 뛰어 든 것은 1939년, VK 30.01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부터 준비하고 있었던 독일의 재무장 과정에서 프랑스군이 보유한 중전차(重戰車, Heavy tank)에 대항하기 위한 전차를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리고 이 때부터 이미 포르쉐는 전차에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도입하고자 했다.

여기서 말하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이란, 오늘날 자동차 업계에서 '풀-하이브리드'라고 지칭하는, 엔진과 모터가 동시에 구동을 담당하는 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 선박이나 철도차량에 사용되고 있는 직렬식 하이브리드에 가깝다. 직렬식 하이브리드는 대체로 내연기관은 발전용으로만 사용하고 구동은 전기모터가 전담하는 방식이다. 최초의 양산형 하이브리드 자동차인 로너-포르쉐도 이 방식의 하이브리드 구동계를 사용했다. 오늘날 자동차에 이 방식을 사용하면,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Range Extender)'로 불린다.

로너-포르쉐를 통해 하이브리드 구동계의 가능성을 제시한 바 있는 페르디난트 포르쉐는 자신의 하이브리드 구동계를 전차에도 도입하는 집착을 보였다. 이론 상으로 전기모터는 구동이 시작하는 시점에서부터 최대의 토크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전투 기동 중 신속한 가감속을 요구하는 전차의 심장으로 이상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당시 주로 사용되었던 전기 모터는 지금과 같은 고성능의 유도전동기가 아닌, 브러쉬가 달린 직류(DC) 모터였고, 브러쉬를 자주 교체해야 제 성능이 나왔기 때문에 신뢰도가 낮았고, 동력성능도 부족했다. 게다가 엔진이 생성한 전력을 저장할 배터리도 문제였다. 당시나 지금이나 전차와 같은 전투 차량은 혹한과 혹서에 수시로 노출되기 십상이다. 그리고 배터리는 기온의 변화나 과충전/과방전 등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성능저하를 일으킬 수 있다. 수십톤에 달하는 전차를 혹독한 환경에서 움직이기에는 모자란 부분이 너무 많았다. 전기 모터로 구동하는 지상 전투 차량은 배터리와 전기 모터의 성능이 월등하게 향상된 지금도 연구단계에 있다. 

포르쉐의 하이브리드 구동 시스템을 적용한 대표적인 사례는 흔히 '포르쉐 티거'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VK 45.01(P)'이다. 이 전차는 제 2차세계대전의 지상전에서 연합군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통했던 '6호 전차 티거'의 시제차량 중 하나다. 그리고 이 전차는 위에서 설명한 포르쉐식 가솔린-전기 하이브리드 구동계를 갖췄다. 이는 VK 30.01 프로젝트 참여 당시 내놓았던 프로토타입에 사용한 방식으로, 성공적인 시험 주행을 선보인 바 있었다. 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포르쉐의 시제차량은 최고속도 면에서 헨셸 사의 시제차에 비해 월등한 결과를 냈다. 하지만 가솔린-전기 하이브리드 구동방식의 낮은 신뢰도가 발목을 잡아, 헨셸(Henschel)사의 시제차에 밀려 탈락했다. 헨셸 사의 안은 마이바흐(Maybach)의 가솔린 엔진을 탑재하고 있었기에, 신뢰도 면에서 포르쉐의 안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경합에서 떨어진 차량임에도 불구하고 포르쉐 티거는 90대나 생산허가를 득한 상태였고, 이 때문에 90대분의 차체와 차대가 생산된 상태였다. 그리고 이 갈 곳 잃은 차량들은 당시 급박했던 독일의 사정과 맞물려 '재활용'되었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구축전차가 페르디난트/엘레판트 구축전차였다. 이 외에도 소수의 차체는 구난전차나 연구 목적으로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포르쉐의 하이브리드 구동계는 나치 독일이 만들어 낸 희대의 초중전차(Super-Heavy Tank) '마우스(Maus)'에도 적용되었다. 가솔린-전기 하이브리드의 신뢰도가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방식을 채용하게 된 이유는 '변속기' 때문이었다. 마우스 전차는 전투중량 200톤에 달하는 차량으로, 이를 감당하기 위해 항공기나 잠수함 등에 사용했던 1천마력 이상의 엔진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이를 감당할 수 있는 변속기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방식을 채용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마우스 전차는 그 무지막지한 과체중으로 인해 기동성이 '0'에 가까웠고 극소수의 시제차량만 만들어졌을 뿐, 실전에 사용하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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