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자동차의 대형세단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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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자동차의 대형세단 잔혹사
  • 박병하
  • 승인 2020.04.16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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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자동차는 1980년대 중반까지 국내의 고급 승용차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신진자동차 시절에는 토요타의 동명의 세단을 라이센스 생산한 '크라운' 시리즈를, 직접적인 전신에 해당하는 지엠코리아와 그 후신인 새한자동차는 오펠 레코르트(Rekord)를 라이센스 생산한 '레코드 로얄' 시리즈를 흥행시켰다. 그리고 그 로얄 시리즈를 바탕으로 대우자동차는  국내 고급 승용차 시장을 석권했다.

하지만 1986년 현대 그랜저의 등장 이래 대우자동차의 고급세단 라인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내리막길을 걷는 와중에도 대우자동차는 빼앗긴 왕좌를 되찾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대형세단을 개발하여 경쟁자에 맞서려 했다. 하지만 대형세단을 향한 대우자동차의 도전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이 잇단 실패에는 대우자동차가 국내 대형세단 시장의 성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크게 작용했지만 품질 문제로 발목이 잡힌 경우도 있었다. 대우자동차가 대형 세단을 성공적으로 세일즈하고 있었던 시절은 쌍용자동차를 인수하면서 체어맨을 판매하고 있었던 시절 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대우자동차의 대형세단 잔혹사의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는 차들을 시대 순으로 알아 본다.

대우자동차 임페리얼
그랜저의 등장으로 최고급 세단 시장을 빼앗기기 시작한 대우자동차는 로얄 패밀리의 라인업을 정리하는 한 편, 오일쇼크로 인해 접어 두었던 대형 6기통 승용차 프로젝트를 황급히 재가동시켰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는 1989년, '임페리얼'이라는 이름으로 완성되었다. 오펠의 대형 후륜구동세단 제나토르(Senator)를 기반으로 대우자동차의 독자적인 디자인을 적용하여 개발했다. 외관 디자인은 지금까지의 그 어떤 로얄 시리즈보다도권위적이고 화려한 풍모를 뽐냈다. 특히, 수직에 가깝게 떨어지는 캠백(Camback) 스타일의 C필러가 특징적이었다. 내부 역시 송아지 가죽 마감을 사용하는 한 편, 디지털 계기반을 적용해 최고급 승용차의 면모를 강조했다.

하지만 이 차에 사용된 오펠 세나토르의 직렬 6기통 3.0리터 CIH 모트로닉 엔진은 임페리얼의 아이덴티티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임페리얼의 아킬레스건이었다. 이 엔진은 냉각계통이 부실하여 주행 중 과열이 빈번했고 유럽산 엔진 특유의 소음은 당시 고급 승용차 소비층의 취향과는 맞지 않았다. 또한 야심 차게 적용한 캠백/랜도우 톱 스타일 역시 당시 시장에서는지나치게 생소한 스타일로 받아들여져, 그다지 호응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 이 뿐만 아니라, 잔고장이 많고 품질도 좋지 못한 편이어서 고급승용차의 이미지를 스스로 갉아 먹은 끝에, 결국 1993년 단종을 맞았다.

대우자동차 아카디아
아카디아는 1994년, 임페리얼의 후속차종으로서 출시한 모델이다. 이 차는 일본 혼다기연공업의 플래그십 대형 세단 ‘레전드(Legend)’의부품을 수입하여 면허생산한 차종이다. 이 때문에 초도 생산분의 경우에는 스티어링 휠의 경적 패드가 혼다의 수출용 브랜드인 아큐라(Acura)의 로고가 새겨진 채로 출고되기도 하는 등, 국산차가 아닌, 사실 상 수입차에 가까운 모양새였다는 후문이 있다. 물론, 초도 생산분 이후로는 제대로 대우의 로고가 새겨진 부품이 만들어지면서 그나마 국산차로서의 체면치레는 했다.

아카디아는 성능지향적인 성격을 표출하고 있었던 당시 혼다의 엔지니어링이 고도로 반영된 차종이었던 만큼, 당대 국내 대형 세단들 중 최상의 주행성능과 세련된 스타일, 그리고 풍부한 편의장비를 자랑했다. 하지만 가격이 문제였다. 아카디아의 가격은 1994년, 디럭스 트림 4,075만원, 슈퍼 트림 4,330만원에, 로얄 패키지(앞좌석 열선시트, CD체인저, 운전석 메모리 기능이 포함된 파워시트)적용 모델은 자그마치 4,440만원에 달했다. 국산차로서 당대의 상식을  벗어나 버린 가격표가 붙은 아카디아는 단종때까지 저조한 판매량을 보였다. 그리고 대우자동차는 쌍용자동차를 인수하게 되면서 당대 최고로 잘 나가던 최고급 세단, ‘체어맨’을 손에 넣자, 1999년 아카디아를 미련 없이 단종시켰다. 

대우자동차 쉬라츠 컨셉트
대우자동차는 현대 그랜저를 타도하기 위해 계속해서 신차를 준비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대우자동차는 높은 수익을 보장하는 대형 세단시장을 포기할 수 없었다. 이에 대우자동차는 아직 쌍용자동차를 인수하기 전인 1997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신형의 대형세단 쉬라츠(Shiraz) 컨셉트를 선보였다. 쉬라츠 컨셉트는 5m를 약간 넘는 전장(5,007mm)과 1,873mm의 폭을 지닌 대형 세단이며, 차명인 쉬라츠는 고급 레드 와인의 이름에서 가져왔다.

쉬라츠 컨셉트는 대우 워딩 테크니컬 센터 주도로 개발된 차량으로, 스타일에서는 당시 대우자동차의 시그니처 스타일이었던 3분할 라디에이터 그릴과 더불어 곡선 기조의 단순하고 우아한 차체 형상으로 우아한 분위기를 가졌다. 또한 'XK엔진'으로 추정되는 2.5리터 6기통 엔진과 새로 개발한 4.0리터의 V8 엔진을 탑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대우자동차가 쌍용자동차를 인수하게 되면서 최고의 인기를 구간한 쌍용 체어맨을 손에 넣자, 아카디아와 더불어 이 프로젝트 또한 폐기 수순을 밟게 된다.

GM대우 스테이츠맨
미국 제너럴모터스(이하 GM)가 대우자동차를 인수하고 'GM대우'로 거듭나면서 쌍용자동차는 분리독립했다. GM대우는 대형세단 모델이 부재했고, 이 빈자리를 메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GM대우는 당장 개발하기 어려운 대형세단 모델을 GM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도입하고자 했다. 이렇게 해서 등장한 대형세단이 바로 스테이츠맨(Statesman)이다. 스테이츠맨은 호주 홀덴(Holden)에서 생산하는 대형세단 '카프리스(Caprice)'를 국내 실정에 맞게 현지화한 모델이다.

하지만 그 실상은 달랐다. 우측에 위치한 운전대를 좌측으로 옮긴 것이 '현지화'의 거의 전부라고 봐도 될 정도로 국내 실정에 맞지 않는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그 예 중 하나가 바로 조수석에 붙어 있는 핸드브레이크 레버다. 여기에 오디오 전원 ON/OFF 스위치가 그대로 오른쪽에 배치되어 있었으며, 최고급 대형세단임에도 편의장비가 턱없이 부족했다. 심지어 도어미러는 손으로 직접 접어야 했다. 당시 국내서 기피했던 후륜구동 방식이라는 점도 엉망인 현지화와 더불어 스테이츠맨의 실패에 한 몫했다. 2005년 출시된 스테이츠맨은 부진을 면치 못하다가 2006년을 기해 수입이 중단된다.

GM대우 베리타스
이 차는 스테이츠맨과 마찬가지로, 당장 고급 대형세단을 개발할 여력이 없었던 GM대우가 홀덴으로부터 2008년 도입한 모델이다. 이 모델은 신형의 홀덴 카프리스를 수입한 것으로, 알로이텍 3.6 V6 엔진의 강력한 성능과 스포츠세단 코모도어를 바탕으로 개발된 탄탄한 기골 및 하체에 힘입어 뛰어난 성능을 자랑했다. 그리고 기존의 스테이츠맨 대비 한층 세련된 스타일로 변모한 외관과 함께 그나마 나아진 현지화 등에 힘입어, 적어도 스테이츠맨보다는 나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판매량은 스테이츠맨의 뒤를 이어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오죽했으면 수입차보다 보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베리타스는 2009년 1분기만 해도 성능을 중시하는 소비자를 중심으로 조금씩 인기를 얻고 있었 차였다. 그러나 2009년, 제네시스(BH)의 플랫폼을 기반으로 개발한 완전신형 후륜구동 에쿠스가 등장하면서 판매량이 급감했고, 2010년을 기해 공급이 준단되었다.

한국지엠 이후...
'쉐보레'의 브랜드를 입고 '한국지엠'으로 거듭난 GM대우는 출범 이후 미국에서 높은 인기를 보인 뷰익 라크로스(Buick Lacrosse)를 바탕으로 한 신차를 통해 크게 성장한 국내 '준대형 세단'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게 된다. 이 차가 바로 알페온(Alpheon)이다. 2010년 한국지엠이 출시한 이 차종은 본래 미국서 렉서스 ES, 현대 제네시스 등과 경쟁하는 차종으로, 뛰어난 정숙성과 안락한 승차감, 고급스러운 내부 등을 특징으로 했다.

하지만 한국지엠은 이 차를 그 보다 한 체급 아래인 현대 그랜저에 대응하는 모델로서 판매하기 위해, 가격을 낮추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 현지서 4천만원 이상의 가격대에 판매되던 차량을 3천만원대에 출시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이 차는 변속기의 성능에 문제가 많았고 가격을 낮추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안전/편의장비를 제거한 탓에, 국내 시장에서 외면받았다. 그리고 2015년부터 사전계약을 받기 시작한 쉐보레의 준대형 세단 임팔라는 사전계약 당시만 해도 상당한 실적을 올렸으나, 수요예측 실패로 인한 공급 지연 등으로 인해 대기수요를 고스란히 경쟁사에 빼앗겼다. 그리고 2020년 지금은 더 이상 판매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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