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밴, 혹은 MPV(Multi-Purpose Vehicle)는 다인승 수요를 위한 자동차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일반적인 승용 세단은 물론, 크로스오버 SUV를 뛰어 넘는 우수한 거주성과 적재능력은 미니밴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계의 모든 미니밴이 하나의 기준 아래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각 나라는 저마다의 사정이 있고, 그 때문에 관점에 따라 저마다 독특한 구성을 가지게 된다. 세계 미니밴의 이모저모를 알아 본다.
미국의 미니밴
세계의 자동차 업계에서 현대적인 ‘승용형’ 미니밴의 효시를 세운 것은 1984년, 크라이슬러에서 출시한 닷지 그랜드 캐러밴이다. 그랜드 캐러밴은 우수한 거주성, 넉넉한 적재공간 등, 일반적인 승용차에 가까운 조종성과 밴의 공간을 양립하여 큰 인기를 끌었고, 이후로 미니밴은 당당히 하나의 세그먼트로 자리 잡게 되었다. 닷지 그랜드 캐러밴으로부터 출발한 미국의 미니밴 시장은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규모로 손꼽힌다.
미국식 미니밴의 가장 큰 특징은 이름과는 달리 전혀 '미니'하지 않은 몸집과 더불어 6~8인승의 3열 좌석 구조를 갖는다는 점이다. 또한, 대부분 1열 뒤쪽의 좌석을 바닥에서 떼어내거나 바닥 안으로 수납할 수 있는 구조를 채용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는 다량의 짐을 옮길 때 마치 '밴'처럼 활용할 수 있도록 해 주는 미국식 미니밴의 특징이다.
또한 기본적으로 큰 덩치와 넓은 공간으로 인해 탑승 인원 전원에게 거의 동등한 수준의 거주성을 보장한다는 점도 미국식 미니밴의 장점이다. 현재 미국 시장에서 가장 잘 나가는 미니밴 모델 중 하나는 크라이슬러의 퍼시피카가 있다.
유럽의 MPV
유럽에서 만들어지는 MPV는 승용차의 연장선, 내지는 상용 밴을 승용화한 형태에 가깝다. 유럽의 MPV 시장은 미국이나 우리나라와는 달리 상당히 세분화되어 있으며, 통상적인 승용차의 체급을 따라, A세그먼트 기반 모델부터 D세그먼트 기반 모델까지 다양하다. 또한, 유럽의 경우에도 국가에 따라 다인승 차량에 세제혜택을 부여하는 경우가 있어, 여전히 MPV의 수요가 적지 않다.
유럽식 MPV들의 특징 중 하나는 슬라이딩 도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D세그먼트 기반의 대형급 미니밴이면 슬라이딩 도어를 기본으로 적용하기는 하지만, 그보다 한 체급만 작아져도 대부분 컨벤셔널 도어를 사용한다. 물론, D세그먼트 이하의 중~소형급 모델에 슬라이딩 도어를 적용한 모델들이 존재하기는 하다.
현재 유럽의 MPV 시장은 중소형급 크로스오버의 붐으로 인해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유럽식 MPV는 프랑스 제조사의 모델들이 유명하다. 프랑스계 대표 모델로는 르노 에스파스, 시트로엥 C4 스페이스 투어러가 있고, 독일계는 폭스바겐 투란, 메르세데스-벤츠 V-클래스 등이 있다.
대한민국의 미니밴
대한민국의 자동차 역사에서 최초의 미니밴은 1998년 등장한 기아자동차의 카니발을 들 수 있다. 그 이전에는 기아자동차 봉고, 현대자동차 그레이스 등과 같은 1박스 형태의 승합차들이 오늘날의 미니밴과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 1박스형 승합차를 미니밴으로 분류하지 않는 이유는 기초부터 승용차가 아닌, 상용차로서 설계된 차량이기 때문이다.
국산 미니밴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바로 '11인승' 좌석배치를 들 수 있다. 이러한 좌석배치는 대한민국 내수시장용 미니밴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이다. 이는 국내 자동차 세법 상, 10인승을 초과해야 '승합차'로 인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승합차로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세제혜택과 버스전용차로 이용, 승용차 5부제 제외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승합차는 자가용 기준으로 자동차세가 연 6만 5천원에 불과하고, 9인승 이상 좌석에 6명 이상 승차한 경우에 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를 이용할 수 있다. 이 점은 미니밴을 고려하는 중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할 정도로 국내에서는 큰 혜택이다.
국내 완성차 업계에서 생산되는 11인승 미니밴은 2-3-3-3 배열의 좌석을 갖는다. 1열은 좌우 독립식, 2열부터 3열까지는 접이식 좌석이 붙어 있는 좌우 독립식 시트를, 그리고 4열은 벤치형 시트로 11인승을 구성한다. 그리고 버스전용차로 이용 혜택을 노린 9인승 미니밴의 경우에는 통상 2-2-2-3 배열의 좌석을 갖는다.
일본의 미니밴
일본의 자동차 시장에서 미니밴은 경차와 거의 쌍벽을 이룰 정도로 인기 있는 세그먼트다. 일본의 미니밴 시장은 대한민국이나 미국과는 달리, 모델들이 상당히 세분화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일본은 미니밴도 체급에 따라 소형, 중형, 대형급으로 나누는데, 이는 차의 배기량은 물론 크기까지 기준으로 삼는 일본의 자동차 세법으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전반적으로 높은 전고와 낮은 지상고가 특징이다.
소형 미니밴의 경우에는 1.5리터급 엔진에 폭스바겐 투란(Touran)과 같은 유럽식 소형~준중형급 MPV에 가까운 크기를 갖는다. 좌석은 통상 5~7인승 좌석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유럽식 MPV와는 다른 점들이 있다. 바로 높은 전고와 뒷좌석 슬라이딩 도어다. 유럽식 소형 MPV는 컨벤셔널 도어를 사용하지만, 일본의 소형 미니밴은 거의 필수적으로 슬라이딩 도어를 사용한다. 또한 높은 전고로 체감 공간감을 극대화시킨다. 이러한 독특한 구조로 인해 장애인을 위한 복지차량으로도 자주 활용된다.
중형급으로 분류되는 미니밴은 통상적으로 2.0리터급 엔진을 가지며, 길이 4.7m, 너비 1.7m, 높이 2.0m 이내의 크기를 갖는다. 수치가 구체적인 이유는 일본의 자동차 세법 상, 소형차는 배기량 2,000cc 이하에 길이 4.7m, 너비 1.7m, 높이 2.0m 이내에 승차 인원 10인승 이하이기 때문이다. 좌석 배치는 2-2-3 내지는 2-2-2 배열의 6~7인승 좌석이 주류다. 중형급 미니밴은 소형차에 해당하는 세금을 내면서도 가장 큰 크기를 가질 수 있어, 미니밴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기가 좋다. 일본 자동차 산업의 빅3라고 할 수 잇는 토요타, 닛산, 혼다는 모두 중형급 미니밴 모델을 판매하고 있으며, 토요타는 중형급만 3개 차종을 동시에 판매하고 있다.
물론 이보다 더 큰 미니밴도 분명히 존재한다. 상기한 수치에서 단 하나라도 초과하는 순간 통칭 '3넘버(3ナンバー)'로 불리는 보통차로 분류된다. 보통차는 소형차에 비해 세제 부담이 훨씬 크고 유지비도 많이 든다. 따라서 여기에 해당되는 미니밴은 대체로 '고급화'를 지향하는 것이 특징이다. 대형급에 해당하는 일본 내수용 미니밴들 역시 중형급과 동일한 좌석 배열을 가지며, 고급사양의 경우, 하이리무진이 부럽지 않은 좌석과 인테리어가 적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