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에 사용된 항공기의 기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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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에 사용된 항공기의 기술들
  • 모토야
  • 승인 2020.05.14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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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자동차와 항공기는 서로의 기술적인 공통점이 많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자동차는 지상에서, 항공기는 공중에서의 이동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본질적인 차이 외에도, 서로 사용하는 엔진, 연료, 조종 계통 등에 이르는 많은 부분에서 차이점이 더욱 두드러진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자동차와 항공기는 서로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부터 지금까지도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 받고 있다는 것이다.

동력을 사용하는 초창기 항공기의 역사에서 항공기는 자동차 엔진 기술 덕분에 날아 오를 수 있었다. 최초의 동력 항공기로 꼽히는 라이트 형제(Wright Brothers)의 플라이어 1호(Flyer 1)가 사용한 엔진은 12마력의 수랭식 직렬 4기통 왕복엔진이었다. 물론, 이 엔진은 경량화를 위한 전용 설계가 적용된 엔진이기는 하지만, 그 기술적 토대는 자동차용의 소형 가솔린 엔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이후로 항공기는 오랫동안 자동차와 같은 왕복 엔진을 사용했다.

이후 전(全)금속제 항공기가 등장하고 제 2차세계대전 말기에 제트엔진이 실용화되기 시작하면서 자동차와 항공기의 기술적인 차이점이 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공기와 자동차 사이의 기술적인 교류는 계속되고 있다. 특히 현대로 넘어올수록 항공기에서 자동차로 많은 기술들이 넘어 오고 있으며 이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이번 기사에서는 항공기에서 시작되어 자동차로 넘어 온 기술들을 살펴 본다.

안전벨트
'세계 최초의 안전벨트'라는 말에서 스웨덴의 볼보자동차를 연상할 독자들이 많을 것으로 안다. 하지만 볼보자동차가 1959년 선보인 안전벨트는 엄밀히 말하자면 세계 최초의 '3점식' 안전벨트다. 보다 초보적인 형태의 '2점식' 안전벨트는 본래 제 1차 세계대전 당시의 전투기에서 출발했다. 당시의 전투기들은 지금과 같은 캐노피는 커녕, 바람을 막아 줄 윈드스크린조차 없이, 상부가 완전히 노출되어 있는 구조였다.

이러한 구조로 인해 상황에 따라 비행기를 뒤집어야 하는 격렬한 롤(Roll) 기동 상황에서는 조종사가 좌석에서 떨어져 그대로 추락할 수 있는 위험이 있었다. 이러한 격렬한 기동 상황에서 조종사를 전투기에 붙잡아줄 수 있도록 한 것이 바로 2점식 안전벨트의 시작이다. 최초의 항공기용 2점식 안전벨트는 1911년 경 벤자민 폴로이스(Benjamin Foulois)라는 미국의 조종사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터보차저
최초의 강제흡기(Forced induction) 개념을 처음 고안한 것은 자동차 엔진을 설계했던 고틀리프 다임러(Gottlieb Daimler)와 루돌프 디젤(Rudolf Diesel)이었지만, 이 기술이 처음으로 실용화된 분야는 바로 항공 분야였다. 그 중에서도 배기가스의 에너지를 이용해 터빈을 구동시켜 공기를 강제로 연소실에 밀어 넣는 '터보차저'는 항공기의 왕복 엔진에 널리 쓰였다. 이는 공기의 밀도가 희박한 고고도에서도 엔진이 제 성능을 낼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특히 제 2차세계대전에서 활약한 전투기들의 엔진에는 배기가스를 사용하는 '터보차저(Turbocharger)'와 엔진의 동력을 직접 이용해 공기를 밀어 넣는 '수퍼차저(Supercharger)'를 결합한 형태의 '터보슈퍼차저(Turbosupercharger)'가 널리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 터보슈퍼차저 덕분에 항공기용 엔진의 성능이 크게 향상되면서 1910년대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1천축마력(shp) 이상의 엔진출력과 600~700km/h 이상의 최고속도까지 넘나들 수 있게 되었다. 이 당시 터보수퍼차저 항공기에서 사용된 터보차저 기술은 현재 자동차 업계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알루미늄 차체구조 및 부품
오늘날 항공기 제작에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소재는 바로 알루미늄, 그 중에서도 알루미늄 합금의 일종인 두랄루민(Duralumin)이다. 두랄루민은 알루미늄과 망간, 마그네슘, 크로뮴 등으로 구성된 합금으로, 높은 내부식성과 경량, 고강성을 겸비한 소재로, 20세기 초부터 항공기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두랄루민은 오늘날에도 다수의 항공기들이 사용하고 있으며, 최근에 만들어진 군용 전술 항공기들의 경우에는 CFRP(Carbon Fiber Reinforced Plastic,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를 혼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자동차의 알루미늄 차체구조는 본래 항공기의 동체를 제작하던 기술에서 기반하고 있다.

자동차에 알루미늄이 적극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시기는 1990년대 전후라고 볼 수 있다. 이 당시부터 구미권에서 시작된 자동차 환경규제로 인해 수많은 자동차 회사들이 배출가스를 1mg이라도 줄이기 위한 사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당시 가장 각광을 받았던 기술이 바로 알루미늄 합금제 차체구조였다. 이 당시만 해도 엔진 자체의 열효율을 끌어 올리는 것보다는 자동차의 무게를 줄이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루미늄 합금은 특수강에 비해 생산 및 가공이 까다로워 단가가 매우 높았다. 따라서 알루미늄 합금제 차체구조는 고급 자동차에나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엔진이나 서스펜션 등, 부품 분야에서는 비교적 널리 사용되고 있다.

ABS
오늘날의 자동차에는 필수적으로 탑재되는 ABS(Anti-lock Brake System)는 급제동시 바퀴가 잠겨 미끄러지는 현상을 막아주는 고마운 안전장치다. 그런데 이 장치의 기원은 자동차가 아닌, 항공기를 위한 제동 시스템에서 비롯되었다.

유럽 최초로 유인 동력비행에 성공한 프랑스의 항공기 선구자, 가브리엘 브와상(Gabriel Voisin)이 1920년대에 고안한 기계식 제동장치에서부터 비롯되었다. 플라이휠과 유압식 브레이크로 작동하는 이 시스템은 후에 철도차량용 브레이크 시스템으로 발전하였고, 이후 1960년대 말에 등장한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에 세계 최초의 전자식 ABS가 적용되었다. 자동차에 적용되는 전자식 ABS는 1970년대, 크라이슬러가 자사의 대형세단 임페리얼(Imperial)부터 시작되었다.

스포일러
자동차에 적용되는 리어 스포일러(Spoiler)는 자동차의 후면 상단부에 장착되는 날개  형상의 구조물을 주로 일컫는다. 주로 고성능을 표방하는 자동차나 해치백 및 왜건 형태의 자동차에서 사용된다. 스포일러는 본래 고정익 항공기의 날개에서 가져 온 개념이다. 비행기가 착륙할 때, 날개에 달려 있는 여러 장의 판형 구조물이 펼쳐지는데, 이것이 바로 항공기의 스포일러다. 스포일러는 이름 그대로, 공기의 흐름을 망치는(Spoiling) 역할을 한다. 공기의 흐름을 흐트러뜨려서 항공기가 착륙할 때 날개에서 생기는 양력을 억제, 보다 원활한 착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이다.

자동차의 스포일러도 그 단면은 고정익 항공기에 설치된 그것과 유사한 형태를 띈다. 그리고 그 역할도 항공기의 날개에 달린 것과 같다. 공기의 흐름을 흐트러뜨려서 원하는 공기역학적 특성을 얻는 것이다. 자동차의 스포일러는 차량 후부에서 일어나는 유동박리(Flow  Seperation) 현상을 줄이기 위한 것으로, 후부에서의 와류가 심하게 일어나는 해치백이나 왜건형태의 차량에 널리 사용된다.

헤드-업 디스플레이
고급 승용차를 위한 장비로 출발하여 현재는 대중차에도 적용 폭이 넓어지고 있는 헤드업디스플레이(Head-Up Display, 이하 HUD)는 본래 군용 항공기에 사용되었던 기술에 착안한 것이다. HUD는 수많은 계기류와 마주하게 되는 조종사에게 항공기의 조종에 꼭 필요한 정보들(고도, 속도, 받음각, 침로 등)을 전면에 그대로 투사함으로써 전방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안전하게 조종할 수 있으면서도, 전투 시 표적를 정확하게 타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항공기용 HUD는 지상타격 임무를 맡는 '공격기'에 먼저 도입되었다. 이는 지상을 타격해야 하는 공격기의 특성 상, 조금이라도 전방 주시에 소홀하게 되면 추락할 수 있는 위험성이 크게 높아지기 때문이다.

군용의 공격기에 먼저 도입되기 시작한 HUD는 이제 전투기는 물론, 대부분의 군용 항공기에는 필수로 장착된다. 자동차용으로 만들어진 HUD는 미국 올즈모빌이 출시한 5세대 커틀러스(Oldsmobile Cutlass)모델에 적용된 것이 최초다. 한편,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최신형의 전투기들은 아예 조종사용 헬멧의 바이저(Visor) 직접 조사하는 방식의 헬멧 마운트 디스플레이(HMD)를 도입하고 있는 추세다.

밀리미터파 레이더
밀리미터파(Millimetre Waves)를 사용하는 레이더는 극고주파(Extremely high frequency, EHF) 레이더의 일종이다. 인접한 두 표적 사이를 분리하여 구별할 수 있는 '분해능(Resolving Power)'이 높아 탐색 및 공격 임무를 맡는 군용 항공기에 주로 사용되고 있다. 오늘날 최강의 공격헬기라고 불리는 미국의 AH-64D 아파치에 탑재된 롱보우(Longbow) 레이더가 대표적인 군용 밀리미터파 레이더로, 7km 이상의 지상 탐색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 레이더와 아파치의 화기관제 시스템을 통해 총 1,000개 이상의 표적을 탐지하고 이들 중 256개를 추려서 가장 위험한 16개 목표를 동시에 공격 가능하다. 

밀리미터파 레이더는 라이다(LIDAR, Light Detection And Ranging)와 더불어 오늘날 ADAS(Advanced Driver Assistance System, 첨단 주행 보조 시스템)와 자율주행 자동차를 실현시키는 데 핵심적인 기술 중 하나다. 군용과는 그 성능도, 늑성도 상당히 다르기는 하지만, 탐지 기능과 분해능이 중요한 자율주행 시스템의 특성 상, 성능 좋은 레이더의 존재는 필수불가결이기에, 자동차용 레이더 시장은 성장 가능성이 높은 분야이기도 하다.

블랙박스(?)
오늘날 널리 사용되고 있는 자동차용 블랙박스는 항공기의 블랙박스를 그대로 적용했다기 보다는 그 '개념'만을 차용한 형태에 가깝다. 본래 블랙박스란, 해당 항공기의 항적(이동경로)을 기록하는 비행기록장치와 사고 당일의 교신내용을 모두 담아 두는 조종실녹음장치 등으로 구성되어, 항공사고시 사고 경위를 조사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증거품이다.

자동차에 사용되고 있는 블랙박스는 엄밀히 말하자면 항공기용의 블랙박스와는 기본 개념부터 다른 물건이다. 물론 사고시의 영상자료를 기록하고 이것이 사고 경위를 밝히는 중요한 증거품 중 하나로서 작용한다는 점에서 블랙박스와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장치는 사고 당시의 영상만을 기록하는 장치다. 영어권에서는 자동차용 블랙박스를 '대시보드 카메라(Dashboard Camera)', 혹은 줄여서 '대시캠(Dashcam)'이라고 부르는데, 이 명칭이야말로 이 장치의 본질에 부합한다. 오히려 항공기용 블랙박스의 개념에 더 가까운 장치는 차량의 에어백 전개 여부나 방위각, 엔진 ECU 상태 등을 기록하는 EDR(Event Data Recorder)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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