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에서 태어난 프리미엄 세단 - GAZ-21 볼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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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에서 태어난 프리미엄 세단 - GAZ-21 볼가 이야기
  • 모토야
  • 승인 2020.05.20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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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 상으로는 모두가 평등한 공산주의 시절의 소련. 소련은 서방 국가들에 비해 자동차 산업이 상당히 낙후되어 있었으나, 자동차 산업을 등한시했던 것은 아니었다. 소련은 다양한 자동차를 개발하여 민간에 공급하고자 했다. 물론 이들 중에는 실용적인 소형 승용차 모델도 있었고, 튼튼하고 험지 돌파력 좋은 SUV 모델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들 중에는 미국 자동차 산업과의 경쟁까지 염두에 둔, 고급 승용차 모델도 있었다. 이 차의 이름은 'GAZ-21 볼가(Volga,  Волга)'다.

GAZ-21 볼가는 러시아의 고르키 자동차공장(Го́рьковский автомоби́льный заво́д, ГАЗ, Gorkovsky Avtomobilny Zavod, 이하 GAZ)에서 1956년도부터 생산하기 시작한 고급 세단형 승용차 모델이다. 이 차는 모국인 소련(러시아)은 물론, 폴란드 등, 동구권을 중심으로 상당한 양이 수출되었으며, 소련에서 만들어진 몇 안 되는 고급 승용차이기도 하다.

이 차의 제조사인 GAZ는 본래 소련군이 기동용 차량으로 사용하는 사륜구동 자동차를 공급하던 곳이다. 이곳에서 1938년 만들어진 'GAZ-61V'는 미국의 지프보다도 이른 시기에 개발된 군용의 양산형 사륜구동 자동차다. GAZ는 이 외에도 소련 시절, 군수용과 민수용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종류의 자동차를 생산했다. GAZ-21 외에 또 다른 대표적인 승용 차종으로는 소련의 고위간부를 위한 최고급 세단, GAZ M13 챠이카(Chaika, Ча́йка)가 있다. 현재는 버스, 화물차 등 상용차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GAZ-21 볼가(이하 GAZ-21)는 GAZ가 1940년대부터 생산하고 있었던 중형세단, M20 포베다(Pobeda)를 대체하는 차종으로 개발되었다. 이 차는 처음부터 수출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승용차로, 미국제 자동차들과의 경쟁을 위해 디자인부터 1950년대 미국 자동차의 스타일을 강하게 참고한 것이 특징이다. 이 차량은 소련에서도 택시로 사용되었으며, 이후의 볼가 시리즈 역시 택시로 상당수가 사용되게 된다. 

이 차가 디자인적으로 참고한 미국의 자동차는 쉐보레 벨 에어(Chevrolet Bel Air), 플리머스 사보이(Plymouth Savoy), 포드 커스텀라인(Ford Customline) 등이다. 자세히 보게 되면, 이 3개 차종의 특징들이 차체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두 개의 원형 헤드램프부터 패스트백형 루프라인, 전면 하부의 대형 크롬 라이데이어 그릴, 그리고 뒤쪽의 핀 타입 테일램프에 이르기까지 아메리칸 스타일을 연출하기 위한 노력이 드러난다. 

물론 러시아에서 만들어진 자동차라는 것을 숨길 수 없는 특징도 나타난다. 그것은 바로 번쩍 들어 올려져 있는 느낌이 드는 지상고를 들 수 있다. 러시아에서 만들어지는 승용차들은 대체로 지상고가 매우 높은 편인데, 이는 러시아의 열악한 도로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오늘날에도 러시아의 자동차 시장은 SUV 및 크로스오버가 인기일 정도다.

GAZ-21은 생산된 연도에 따라 총 3개 시리즈로 나뉜다. 첫 번째 시리즈는 1956년도부터 58년도까지 생산된 차량으로, 포드 메인라인과 쉐보레 벨 에어를 뒤섞은 듯한 스타일이 특징이다. 보닛의 한 가운데에는 자사의 상징인 사슴형상의 후드 탑 엠블럼을 적용했다. 엔진은 포베다에 사용했던 2.4리터(2,432cc)의 플랫헤드 직렬 4기통 엔진을 사용했는데, 이 엔진은 65마력의 최고출력을 냈다. 또한 소련 자동차 최초로 자동변속기를 사용한 모델이기도 하다. 이 차는 프로토타입이 만들어지고 나서 소련 전체를 도는 홍보 투어에 내보내 최대 30,000km에 달하는 거리를 달렸다. 하지만 생산성이 썩 좋지는 못했다. 복잡한 스타일의 전면부 때문에 수작업의 비중이 높았기 때문이다. 이 차는 생산 시기가 매우 짧고, 계획경제 체제 하에서 만들어졌기에 생산량도 많지 않았다.

1958년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두 번째 시리즈는 본격적으로 수출을 위한 차량으로 개량을 거친 차량이라고 할 수 있다. 라디에이터 그릴은 한층 단순한 16-슬릿 디자인으로 변경되었고 새로운 스타일의 휀더를 적용했다. 편의사양도 보강되어, 새로운 타입의 라디오와 윈드스크린 와이퍼가 적용되었으며, 내부 역시 개량을 거쳐 더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낼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수출용 모델 한정으로 80마력 사양의 엔진을 사용했다. 다만 야심차게 도전했던 수출시장에서의 성적은 그리 좋지 못했다. 이 차의 설계는 1950년대에 머물러 있었기에 본격적으로 수출이 시작된 1960년대에는 이미 노후된 설계와 디자인을 가진 차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자유경쟁이 벌어지고 있었던 서방세계에 내놓기에는 너무나도 뒤떨어진 차였던 것이다. 

1962년도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세 번째 시리즈는 두 번째 시리즈 대비 현대화를 이루었다. 라디에이터 그릴은 촘촘한 세로줄 라디에이터 그릴로 변경되었고 범퍼의 디자인도 보다 단순한 스타일로 변경되었다. 하지만 GAZ의 상징물이었던 사슴형상의 후드탑 엠블럼은 완전히 제거되었다. 이는 보행자 안전을 고려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엔진 역시 개량을 거쳤다. 새로운 헤드와 크랭크샤프트를 적용하여 연비가 향상되었으며, 내수용은 75마력, 수출용은 85마력의 최고출력을 낼 수 있었다. 서스펜션 구조 역시 변경하여 승차감을 향상시켰고 스티어링 시스템 역시 새로운 방식을 적용하여 조작감을 개선했다. 이 차는 1970년도까지 생산되었으며, 세단형 외에도 스테이션 왜건형 모델까지 만들어졌다.

GAZ-21은 1970년 최종적으로 생산이 종료되었으며, 동년 등장한 GAZ-24로 완전히 세대교체를 이루었다. GAZ-24는 GAZ-21의 후속차종으로, '볼가'의 이름을 이었다. 그리고 이 설계를 기반으로 사실 상 40년 가까이 기본 설계의 변경 없이 페이스리프트, 혹은 스킨체인지만 반복하면서 판매된다. 가즈의 볼가 시리즈는 소련이 무너진 후 러시아연방으로 전환된 지 20년이 지난 2010년도까지 생산이 계속되었다가 최종적으로 단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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