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제왕, 전함 이야기 #6 - 왕립 해군의 전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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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제왕, 전함 이야기 #6 - 왕립 해군의 전함들
  • 모토야
  • 승인 2020.08.21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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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15세기 초,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의 도래와 함께 건실한 해군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 영국은 섬나라였고, 따라서 제해권의 중요성을 유럽 대륙의 그 어떤 나라보다도 절감하고 있었다. 바다의 중요성을 인식한 영국은 세계 최초로 독립되고 전문화된 해군을 육성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바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왕립 해군(Royal Navy)'이다. 

HMS 넬슨

영국의 왕립 해군은 영국을 지키는 든든한 방패이자, 전세계의 바다에 전개되어 영국이 세계의 패권을 쥘 수 있게 해 주는 동력으로 기능했다. 왕립해군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만드는 기반이 되어 주었다. 프랑스와 함께 세계 각국에 식민지를 전설할 때에도, 나폴레옹이 전 유럽을 집어삼킬 때에도, 양차 세계대전 당사에도 영국의 왕립해군은 영국이 가장 의존하고 있었던 전력이었으며, 현재도 섬나라인 영국을 지키는 최전선에 있는 전력이다.

HMS 퀸 엘리자베스

영국은 이렇게 수 백 년간 전문화된 해군을 운용하면서 쌓아 온 경험을 기반으로 혁신적인 군함을 다수 설계하였다. 특히 전함의 시대라고 할 수 있었전 20세기의 초~중반기 영국이 내놓은 전함들은 당대의 건함 트렌드를 선도하는 결과물들로 태어났고, 진수되는 즉시 주변 열강들의 벤치마크 대상이 되었다. 특히 당대의 열강들이 크게 주목한, 드레드노트급 전함은 물론, 역사상 최초로 '순양전함(巡洋戰艦, Battlecruiser)'의 개념을 정립했으며, 전함의 최종진화형으로 평가 받는 '고속전함(Fast battleship)'의 개념 또한 최초로 제시했다. 물론 아무리 건함 트렌드를 선도한 영국이더라도 실패작들 또한 분명히 존재했다. 영국이 낳은 불세출의 전함들을 한 데 모았다.

 

드레드노트급 전함
HMS 드레드노트(HMS Dreadnought)는 ‘거함거포주의(巨艦巨砲主義)’로 요약되는, 현대적인 전함이 갖춰야 할 상당 수의 요소를 정립했다. 이 전함은 군함이 가져야 할 공격력/방어력/기동력의 3요소를 충실하게 챙긴 전함으로, 현대적인 전함의 효시가 된 기념비적인 함선이다. 기준배수량 18,410톤의 함체에 대구경의 12인치(약 305mm) 주포 10문과 최대 280mm의 장갑, 그리고 22,500마력의 출력을 꾹꾹 눌러 담았다. 

HMS 드레드노트

공격력 면에서는 이른 바 ‘All-big Gun’으로 요약되는, 가용한 최대 구경으로 통일된 주포, 방어력 면에서는 ‘대응방어(對應防禦)’로 요약되는 표준적인 교전 거리’에서 ‘자신의 주포를 방어’할 수 있는 수준의 방어력, 기동력 면에서는 전술적 기동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속도를 달성했다. 드레드노트가 취역한 이래, 열강의 건함(建艦) 패러다임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그리고 기존에 보유하고 있었던 프리 드레드노트급(Pre-Dreadnought) 전함들은 그 전략적 가치를 상실해버리는 지경에 이르렀을 정도였다. 드레드노트급 전함은 전략무기로서, 열강들의 국력을 가늠하는 척도로 통했다. 그리고 이후에는 이를 뛰어 넘는 ‘슈퍼 드레드노트(Super Dreadnought)급’ 전함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간혹 일부 미디어에서 사용되는 초노급(超弩級)이라는 표현이 여기서 온 것이다.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은 영국의 대표적인 ‘슈퍼-드레드노트급 전함(Super Dreadnought)’ 중 하나다.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은 말 그대로 드레드노트급 전함을 뛰어 넘는 전함이라는 의미다. 영국은 드레드노트급 전함의 건조 이래 열강들이 빠른 속도로 드레드노트급 전함들을 건조하는 것을 좌시할 수 없었고, 따라서 이를 뛰어 넘는 대형함의 설계에 들어갔는데 그 결과물 중 하나가 바로 이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이다.

HMS 퀸 엘리자베스

퀸 엘리자베스급은 전함의 설계에서 또 한 번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는데, 그것은 바로 ‘고속전함(Fast battleship)’이다. 고속전함은 전함이 가지는 고화력과 중장갑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고속까지 양립하는 것을 골자로 하며, 전함 진화의 최종 단계로 평가받는다. 기준배수량은 33,110톤의 넉넉한 선체에 75,000마력의 최고출력으로 취역한 1914년 당시 25노트(약 46.3km/h)의 고속을 자랑했다. 당시 영국이 보유하고 있었던 오라이언급 전함(21노트)이나 아이언 듀크(21.25노트)에 비해 월등히 빠른 것은 물론, 당대 미국의 최신예 전함이었던 펜실베이니아급(21노트)이나 독일 제국 해군의 신형함 바이에른급(21노트) 보다 월등했다.

HMS 워스파이트

여기에 15인치(약 388mm)에 달하는 대구경 주포와 더불어 뛰어난 방어력을 갖춰, 왕립해군에서 가장 오랫동안 활동한 전함들로 남았다. 특히 2번함 워스파이트(Warspite)는 양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하며 왕립해군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무훈함으로 손꼽힌다.

 

HMS 후드
순양전함은 드레드노트급에서 제시된 공격력과 방어력, 기동력의 3요소 중 ‘방어력’을 희생하여 기동력을 크게 끌어 올린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장갑을 덜어낸 자리는 기관부를 증강하여 고출력을 확보하고 여기에 선체까지 길고 뾰족하게 설계하여 수중저항을 줄인다. 이를 통해 빠른 속도의 순양함에 버금가는 고속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순양전함의 이론에 가장 충실한 함선이 바로 순양전함의 원조인 영국에서 건조된 애드미럴급 순양전함(Admiral-class Battlecruiser), HMS 후드(Hood)다. 

HMS 후드

HMS 후드는 47,430톤의 배수량을 갖는 거함이었다. 여기에 퀸 엘리자베스에서부터 사용한 강력한 15인치 주포로 무장하고 144,000마력의 최고출력으로 1920년 취역 당시 최고 32노트에 달하는 고속을 자랑했다. 방어력은 하위 함급의 무장만 견뎌낼 수 있을 정도로 간소화되었지만 그 엄청난 덩치와 화력 덕분에 HMS 후드는 이른 바 ‘무적의 후드(The Mighty Hood)’라고 불린, 왕립 해군을 상징하는 순양전함이었다. 특히 후드는 제 1차 세계대전 이후로 어드미럴급 순양전함의 추가건조가 취소되면서 자매함 없이 유일하게 혼자 함적에 남았는데, 이 때 워싱턴에서 열린  해군 군축조약에서 후드는 수많은 주력함들이 폐함을 면치 못하는 가운데에서도 살아 남았다.

그런데 이 HMS 후드는 역사 상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순양전함이기도 하다. 덴마크 해협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독일 전함 비스마르크에게 '한 방'에 격침되었기 때문이다. 독일 함대와의 교전 중 후드에서 발생한 작은 화재를 포착한 비스마르크가 곧장 후드에 포격을 가했고, 이 때 비스마르크가 발사한 15인치 철갑탄이 후드의 얄팍한 갑판쪽 장갑판을 그대로 뚫고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이 탄이 작렬하면서 화약고 유폭으로 인해 영국에서 가장 거대한 전함은 순식간에 두 동강이 나며 격침되었다.

 

넬슨급 전함
순양전함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고안한 영국은 후드가 침몰하기 전부터 순양전함의 약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영국은 이미 제 1차세계대전 당시 벌어진 유틀란트 해전으로 순양전함들이 "망치를 손에 쥔 계란"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 이후로 기존 전함의 방어력을 높히는 방향으로 선회하게 된다. 하지만 뭐든지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한 법이다. 그리고 이를 잘 알려주는 사례 중 하나가 바로 넬슨급 전함이다. 1927년 취역한 넬슨급 전함은 35,000톤의 기준배수량 안에서 16인치 주포 9문의 화력과 자함주포에 대응할 수 있는 방어력, 그리고 당초 계획대로라면 G3급 순양전함의 설계를 전용하여 속도도 나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HMS 넬슨

하지만 고작 35,000톤의 배수량 안에서 위와 같은 사항을 모두 구현한다는 것은 기술을 선도하는 영국에게도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넬슨급 전함은 모든 주포탑을 함체 전면에 몰아 넣은 설계가 가장 큰 특징이다. 이렇게 전면에만 집중된 방식의 주포 배치는 주로 전간기 이후 프랑스에서 지어진 전함들에서 나타나는 특징인데, 이는 화약고 등, 바이탈파트의 면적을 최소화하여 장갑에 쓰일 배수량을 절약하기 위한 것이었다. 주포는 강력한 16인치(약 406mm) Mk.I 함포를 3개 포탑에 각각 3문씩, 총 9문을 탑재했다. 또한 함체에는 최대 14인치(약 356mm)의 장갑판을 18도의 경사를 주어 적용했고, 기관부에도 13인치의 장갑을 둘러, 당대 가장 방어력이 뛰어난 전함으로 손꼽혔다.

넬슨급 전함 2번함 HMS 로드니

하지만 넬슨급 전함은 공격력과 방어력을 위해 기동력을 희생한 설계라는 한계가 있다. 넬슨급 전함은 35,000톤급의 거함임에도 능파성이 나빠 원양항해능력이 뒤떨어지는 것은 물론, 속도 또한 퀸 엘리자베스보다 느린 23노트에 불과해, 항상 함대의 최후미에 배정되었다. 반면 전함으로서의 역할은 제대로 수행했다. 넬슨급 전함은 비록 기술적으로는 뒤떨어지는 부분이 많았지만 전략무기가 가지는 '억지력'으로서 충분히 기능했고, 2번함 로드니(HMS Rodney)의 경우에는 후드의 복수를 위해 비스마르크 추격전에 나서, 비스마르크에게 16인치 주포 세례를 퍼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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