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하게 알아보는 총기의 역사 - 중편 - "심지를 버려야 한다"
상태바
간단하게 알아보는 총기의 역사 - 중편 - "심지를 버려야 한다"
  • 모토야
  • 승인 2020.08.28 16: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역사 이래 인류는 셀 수도 없이 다양한 종류의 무기를 만들고 사용해 왔다. 그 중에서도 총기의 발명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전쟁은 물론, 마침내 인간을 먹이사슬의 정점에 올리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총기 역사의 초기에는 한 사람이 다룰 수 있는 작은 크기의 화포에서 시작한 총기는 수 백년의 역사동안 끊임없이 진화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총기가 전장의 주역을 꿰어 찬 이래로 총기는 전장과 민간을 아우르는 다양한 요구에 따라 변형 및 발전해 왔다.

총기의 발전사는 '격발 방식'에 따라서 정리된다. 금속제 탄피가 등장하기 전까지의 수 백년 동안 인류는 '화약에 어떻게 불을 붙일 것인가'를 고민해 왔기 때문이다. '뇌관'과 '금속제 탄피'가 일반화되어 있는 오늘날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지만 지금의 형태가 정립된 것은 19세기 후반에 와서야 가능했던 이야기다. 초기의 화약 무기는 탄환과 화약을 총/포구로 장전하는 전장식(Muzzleloader)이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추진용 화약과 점화용 화약, 그리고 탄환을 따로따로 잴 수 밖에 없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대체 이 '쇠 막대기'를 어떻게 해야 '불 막대기'로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과 시행착오, 그리고 혁신에 대한 이야기다.

불 붙은 심지로부터의 해방! - 수발식(Flintlock) 총
16~17세기에는 화승총이 전장을 주름잡고 있었지만 화승총에 대한 불만이 없지는 않았다. 불 붙은 화승(심지)을 항시 휴대해야 하는 화승총의 특성 상 취급이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승총이 전장을 지배하고 있을 무렵부터 유럽은 이 불 붙은 화승을 대체할 격발수단을 찾기 위해 고심했다. 그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지난 기사에서 언급했던 치륜식(Wheellock) 총이다. 하지만 치륜식은 구조가 복잡하고 가격이 비싸 대량보급은 불가능하여 소수의 귀족들과 기병대에서나 주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화승총과 치륜식 총이 공존하고 있었던 이 시절부터 이미 이 두 가지 방식을 모두 대체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식이 개발되고 있었다. 바로 '수발식(燧發式, Flintlock)'총의 등장이다. 수발식은 부싯돌을 이용하여 불꽃을 일으켜, 화약접시에 담긴 점화약에 불을 붙이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불 붙은 화승을 휴대할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치륜식에 비해 구조가 간단하여 생산과 보급에도 유리했다. 하지만 수발식 총은 발명되자마자 널리 퍼지지는 못했다. 기존의 화승총 대비 여전히 생산단가가 높고, 구조도 화승총에 비해 다소 복잡해 당시의 산업 수준으로는 대량생산에 조금 불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발식 총은 화승총을 점진적으로 대체해 나가기 시작했다. 상술한 장점들이 점차 인정을 받기 시작하면서 18세기 초에 이르면 화승총은 전장에서 완전히 퇴출되고, 수발식 총이 그 자리를 대체하게 된다. 수발식 총은 화승총에 비해 사격 절차가 간소화되었다. 불 붙은 화승을 취급하는 절차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 덕분에 취급이 용이하여 일반 보병들의 소총부터 기병들의 카빈(Carbine)총, 그리고 권총에 이르기까지 두루두루 사용되었다. 심지어 영국 해군의 경우에는 수발식 총의 격발장치를 함포에 도입하여 전투효율을 크게 높이기도 했다.

이 수발식 총은 조선에도 전래가 된 바 있다. 기록에 남은 사례로는 1658년 나선정벌 당시 신류 장군이 러시아군으로부터 노획한 수발총 1정을 가져와 조선에 들여 온 것이다. 하지만 조선은 끝내 수발총을 도입하지는 않았다. 조선이 수발총을 채택하지 않은 이유는 용수철과 같은 정밀한 부품을 제작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던 데다, 양질의 부싯돌도 구하기 어려웠고, 무엇보다도 이후로 전쟁이 없어 보급 소요도 없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수발식 총은 19세기 중후반까지 사용되었다가 후술할 '퍼커션 캡(Percussion Cap)'이 등장한 이후 점차 일선에서 물러나게 된다.

'뇌관'이 태어나다! - 퍼커션 캡
나폴레옹 전쟁이 한창이었던 1807년, 조류 사냥을 즐기던 영국인 목사 포사이스(A. J. Forsyth)는 자신의 수발식 머스킷 총에 불만을 느꼈다. 이 당시 그는 격발을 위해 방아쇠를 당겼을 때, 점화약이 타들어가는 소음으로 인해 새들이 먼저 달아나 버리는 것을 경험하고는, 이를 해결하고자 새로운 방식을 고안하게 된다.

포사이스가 고안한 방식은 부싯돌과 화약접시(火皿)를 제거한 대신, 충격에 민감한 '뇌홍(뇌산수은)'을 구리로 된 작은 캡에 넣고, 이 뇌홍을 담은 캡을 꼭지에 씌운 뒤에 공이를 이용해 격발시키는 것이었다. 1990년대 어린이들이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던 '화약총'에 들어가는 화약이 바로 뇌홍이다. 이렇게 되면 뇌홍이 직접 장약을 점화시켜주므로, 방아쇠를 당기는 시점과 실제로 총이 격발되는 시점 사이의 간극이 거의 사라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퍼커션 캡(Percussion Cap)'이다.

퍼커션 캡은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금속 탄피 안에 들어 있는 '뇌관'이 바깥으로 빠져 있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화약접시가 없어지면서 점화약을 담는 절차가 생략되었고 바람으로 화약이 날아가는 현상도 없어졌으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수발식 총에 비해 사격절차가 간소화되어 장전속도도 더 빨라졌다. 그리고 민감한 뇌홍을 사용하기 때문에 불발률이 상당히 줄어들었다는 점도 특징이었다. 게다가 기존의 수발식 머스킷 총을 보완하기 위해 발명된 것이었기 때문에, 구조적으로도 큰 차이가 없어서 기존의 총을 개조해서 적용하기에도 좋았다. 

퍼커션 캡은 개발한 당시에는 크게 주목 받지 못하고 있었지만, 1833년, 미국에서 이 구조를 채용하면서 점차 군대로 퍼지기 시작했다. 1842년에 들어서는 영국군에서 채용했고, 1800년대 중반을 전후하여 각국의 군대에서 도입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수발식 머스킷 총에서 최소한의 개량으로 손쉽게 적용할 수 있었고 전투 효율을 크게 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화약과 탄환을 총구로 장전하는 전장식이었기 때문에 장전속도는 여전히 느렸지만 이것만으로도 상당한 혁신이었던 것이다. 이 퍼커션 캡 방식의 소총이 사용된 전쟁으로는 미국의 남북전쟁과 서아시아에서 벌어진 크림전쟁 등이 있다.

하지만 이 시기부터는 총탄을 더 이상 총구로 장전하는 방식이 아닌, 총구의 뒤쪽, 그러니까 약실에 직접 장전하는 후미장전식(後尾裝塡式, Breech Loading) 소총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기 시작하며, 조금씩 오늘날의 총기의 구조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1836년, 프로이센에서 개발되기 시작해 1841년도에 채용된 혁신적인 소총에 전 유럽이 주목하기 시작한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