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엔진은 왜 '수랭식'만 있을까?
상태바
자동차 엔진은 왜 '수랭식'만 있을까?
  • 박병하
  • 승인 2020.08.31 15: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세기 말, 내연기관 자동차의 역사를 시작한 고틀리프 다임러와 칼 벤츠의 페이턴트 모터바겐(Patent Motorwagen)은 수랭식(水冷式, Water-cooled) 엔진을 사용했다. 그리고 1백년이 훌쩍 넘은 지금은 수랭식 엔진이 상식이다. 새롭게 생산되는 양산차들 중에서 공랭식 엔진을 사용하는 자동차는 극히 소규모의 제작사에서 만들어지는 것 외에는 전무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공랭식 엔진이 쓰이고 있는 분야는 소형의 공업용 원동기나 예초기, 그리고 이륜차에 사용되는 경우다.

자동차의 역사가 꽃을 피우게 되는 20세기 초는 온갖 종류의 동력기관들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다. 당시 최신 기술이었던 동력기관은 기성 운송수단이었던 마차에게도 도전을 받았고, 본격적으로 자동차의 시대가 도래하게 되면서부터는 내연기관 뿐만 아니라 증기기관과 같은 외연기관, 그리고 지금과 비교하면 상당히 원시적이기는 하지만 전기차와도 경쟁을 벌였다. 그리고 1920년대를 기점으로 내연기관은 그 안에서도 공랭식(空冷式) 엔진과 수랭식 엔진으로 나뉘어 각축전을 벌였다.

공랭식 엔진은 말 그대로 공기로 엔진의 열기를 식히는 방식을 말한다. 공랭식 엔진은 수랭식 엔진에 비해 여러가지 장점들이 있었다. 일단 공랭식 엔진은 물이 아닌, 공기로 열기를 식히는 방식이기 때문에 수랭식 엔진에 비해 부품 수도 월등히 적어지고, 그만큼 구조가 간단하다. 부품 수가 적고 구조가 간단하다는 것은 신뢰성과 생산성, 그리고 생산 단가에도 직결되는 부분이다. 무엇보다도 동절기에 냉각수가 얼어버리는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웠기 때문에 추운 지역에서도 사용하기 좋았다.

이러한 덕분에 공랭식 엔진은 대중적인 소형차를 위한 엔진으로서 각광을 받았다. 1923년 체코의 자동차 제조사 타트라(Tatra)가 개발한 T11 모델이 대표적인 예시라 할 수 있다. 타트라 T11은 공랭식 수평대향 2기통 엔진을 차체 전방에 실은 형태의 자동차다. 그리고 타트라는 1936년, 공랭식 수평대향 4기통 엔진을 차체 뒤쪽에 설치한 형태의 후방엔진-후륜구동(RR) 소형 승용차 T97을 발표했다. 그리고 페르디난트 포르쉐가 이 설계를 무단으로 도용하여 만든 차가 바로 희대의 성공작 폭스바겐 비틀이다. 폭스바겐 비틀은 21세기의 문턱을 지난 2003년도까지 멕시코에서 생산되었다.

그리고 비틀의 설계자이자, 오늘날 세계 최고의 스포츠카 제조사 중 하나로 통하는 포르쉐AG 역시, 공랭식 엔진의 대표주자'였'다.  포르쉐AG는 첫 차인 356부터 공랭식 엔진을 사용해 왔으며, 1963년 등장한 '911' 시리즈 역시 30년여에 달하는 세월 동안 꿋꿋하게 공랭식을 유지해 왔다. 특히 포르쉐의 열렬한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초대 911로부터 시작된 공랭식 수평대향 6기통 엔진이야말로 포르쉐의 '정수'로서 취급하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서 강화되어가는 환경규제와 연비문제, 그리고 더 이상의 성능향상이 어렵다는 점 등을 이유로, 1997년 출시된 코드네임 996부터는 수랭식 엔진으로 갈아 탔다. 물론 이 과정에서 기존 포르쉐 고객층으로부터 엄청난 반발을 불러왔지만,  지금까지 포르쉐가 생존해 있다는 점에서 비데킹 당시 회장을 비롯한 수뇌부의 판단이 옳았음이 증명되고 있다.

공랭식 엔진을 자동차에 사용한 사례는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에도 있었다. 일본의 초기 경차가 바로 그 예다. 일본의 경차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이륜차의 원동기를 사용하는 초소형 자동차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 당시 이륜차에 사용되고 있었던 원동기는 대부분 공랭식이었기에, 일본의 자동차 시장에서 공랭식 엔진이 상당한 기간 동안 생명줄을 유지할 수 있었다. 적어도 1950~6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의 경차는 공랭식 엔진들이 주류를 이루고 었었다. 물론 경차의 규격이 마지막으로 변경된 1998년 이래로는 배기량 660cc 미만의 수랭식 엔진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공랭식 엔진들은 왜 자동차 시장에서 퇴출될 수 밖에 없었을까? 그 이유는 포르쉐의 공랭식 엔진의 맥이 끊긴 이유와 같은 맥락이라고 보면 된다. 공랭식 엔진은 수랭식 엔진에 비해 성능 향상의 폭이 제한적이다. 수랭식 엔진은 냉각수의 수밀상태만 유지된다면 라디에이터의 용량을 늘리거나 냉각 라인을 최적화하는 등의 방법으로 냉각성능을 비교적 손쉽게 향상시킬 수 있다.

그렇지만 공랭식 엔진은 방식 자체의 한계로 인해 냉각성능의 획기적인 개선이 어렵다. 냉각성능의 한계는 곧 엔진성능의 향상에 장애물로 작용하게 된다. 또한, 공랭식 엔진은 기본적으로 실린더 블록이 바깥으로 노출되어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소음 문제에서 수랭식 대비 자유롭지 못하다. 게다가 공기로 엔진을 식히는 특성 상, 엔진의 냉각이 불균일하게 이루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엔진의 온도 관리 측면에서도 어려움이 있었다. 엔진의 온도 관리는 배기가스 배출량과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날로 강화되는 환경규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그 포르쉐조차 수랭식 엔진으로 갈아 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제 자동차 업계에서 공랭식 엔진은 취미의 영역 외에는 설 자리를 완전히 잃어버린 것과 다름 없다. 수랭식 엔진들의 성능향상이 워낙 압도적인데다 수랭식 엔진들은 꾸준히 단점들을 개선하면서 경차부터 대형차까지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연기관 자동차들의 생명줄마저 위협당하고 있는 지금, 공랭식 엔진을 사용하는 자동차가 부활할 가능성은 사실 상 0%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