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했던차]람보르기니 최초의 SUV, LM 시리즈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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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했던차]람보르기니 최초의 SUV, LM 시리즈의 시작
  • 박병하
  • 승인 2020.12.16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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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SUV'라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람보르기니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되어주고 있는 차가 있다. 바로 '우루스(Urus)'다. 람보르기니 우루스는 람보르기니의 슈퍼카를 크로스오버로 번역한 듯한, 강렬한 인상의 외관 및 실내 디자인과 더불어, 막강한 성능의 파워트레인과 사륜구동 시스템으로 주목 받으며 SUV의 전성시대인 오늘날, 람보르기니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기능하고 있다.

하지만 우루스는 람보르기니 최초의 SUV가 아니다. 최초의 '크로스오버'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람보르기니 우루스는 기반 설계부터 전통적인 방식의 SUV와는 거리가 먼, 현대식의 크로스오버형 차량에 훨씬 가깝다. 그렇다면, 람보르기니 최초의 SUV는 과연 어떤 차인가? 람보르기니가 만든 최초의 SUV는 개발 목표부터 남달랐다. 람보르기니가 독자적으로 진행했던 이 프로젝트는 전 세계의 험지를 누비는 '미 육군'의 발이 되는 것을 목표로 개발된 '정통파' SUV였다. 이 차의 이름은 'LM002'다.

'미군의 발'을 목표로 만들어지다
람보르기니 LM002는 최초기형 개발 당시부터 미 육군을 위한 기동차량으로 설계된 진정한 정통파 SUV였다. 정통파 SUV의 원조로 일컬어지는 '지프(Jeep)'가 군용의 기동차량에서 출발했다는 점까지 더하면, 그야말로 정통 중의 정통이라고 할 수 있다. 람보르기니 LM002는 이 당시 만들어졌던 여러 바리에이션 중 민수용으로 제작된 차량으로, 정확히는 'LM 시리즈'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수도 있다.

람보르기니 LM 시리즈의 역사는 19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냉전의 긴장이 한껏 고조되었던 70년대 당시는 방산 분야에서는 매우 크고도 다양한 사업이 추진되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미 육군이 그 동안 사용했던 지프들을 대신하는 새로운 기동차량을 선정하는 '고기동성 다목적 차량(High Mobility Multipurpose Wheeled Vehicle, HMMWV)'사업이었다.

미군은 나날이 첨단화, 전문화되어가고 있었던 자국의 지상군에 대해 보다 '안전'하면서도 확실한 기동성을 보장 받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 까닭은 그 동안 사용해 왔던 지프들에 있었다. 뛰어난 험로돌파능력과 생산성을 우선해 짧은 차체와 높은 최저지상고를 가졌던 탓에, 전복사고가 심심치 않게 벌어졌고, 이로 인한 비전투 손실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또한 전반적인 장비의 노후화까지 겹쳐, 교체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이에 미군은 신규 차량을 선정하는 고기동성 다목적 차량 사업이 진행되면서 미국 내의 여러 회사에서 시제차량을 제작했다. 그리고 그 중에는 '모빌리티 테크놀로지 인터내셔널(Mobility Technology International, 이하 MTI)'이라는 회사에서 제안한 설계안과 시제차량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MTI가 람보르기니와의 설계 분야에서의 협업을 추진하면서 람보르기니 최초 SUV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람보르기니는 BMW의 슈퍼카 M1의 설계용역 계약을 따내면서 획득한 자금으로 이 사업에 뛰어 들었다.

코드네임 '치타(Cheetah)'로 개발되고 있었던 이 차량은 기본적으로 픽업트럭에 가까운 차체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이는 미국의 고기동성 다목적차량 사업에서 요구한 형태로, 기존의 지프 대비, 한층 긴 전장과 휠베이스, 그리고 낮은 무게중심을 구현해 전복의 위험을 최소화하면서도 높은 험로 돌파능력을 모두 얻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개발된 람보르기니 치타는 1977년 3월, 제네바 모터쇼에서 공개되며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익명의 중동 부호들에게 주문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람보르기니 치타는 최초 개발 당시에는 최고출력 180마력의 크라이슬러 5.9리터 V8 엔진을 사용했다. 여기에 운전수 1명과 중무장한 보병 4명이 충분히 탑승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했으며, 다양한 무장과 장갑 키트, 그리고 통신장비를 적재할 수 있었다. 람보르기니 치타에는 TOW 대전차미사일과 미군이 사용하는 무반동총, 소구경 로켓발사기, 중기관총 등의 무장을 탑재할 수 있었으며, 정찰 차량이나 지휘차량, 전투 지원차량 등, 다양한 형태로 활용이 가능한, 군용 차량으로서의 범용성도 갖추었다.

하지만 이 차는 미군의 발이 된다는 당초 목표는 이루지 못했다. 이는 '메이드 인 USA', 즉, 자국산에 집착하는 미군의 성향 탓이 아닌, 차량 자체의 근본적인 문제에 있었다. 미군이 요구하는 대로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군은 디젤 엔진을 원하고 있었는데, 가솔린 엔진을 탑재하고 있었고, 변속기 또한 수동변속기를 사용했다. 게다가 180마력의 크라이슬러 V8 엔진은 장비중량 2톤 남짓의 치타를 움직이기에는 동력성능이 부족했고, 차량의 후방에 무거운 엔진을 탑재한 탓에, 조종성이 심각한 수준이었다. 그래서 미군은 이 차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이 차를 테스트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사업을 통해 채용된 신형 기동차량이 그 유명한 AM 제너럴의 '험비(Humvee)'다. 

치타의 미군 도입이 실패로 돌아가게 되자, 이 차를 설계했던 MTI사는 다른 기업에 합병되어 버렸고, BMW는 이전에 람보르기니에 의뢰했던 설계용역 계약을 파기해버렸다. 이에 람보르기니는 졸지에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이 프로젝트를 어떻게든 되살리려는 궁리를 했다. 그래서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었던 '초호화 SUV'라는 개념으로 이 차를 어떻게든 완성해 판매하고자 했다. 이것이 바로 람보르기니 LM 시리즈의 첫 차, LM001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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