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소형차의 흥망성쇠 -1980년대, 소형차의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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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소형차의 흥망성쇠 -1980년대, 소형차의 전성시대-
  • 모토야
  • 승인 2022.05.30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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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차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동차의 보급과 자동차 산업의 육성에 있어 중추적인 역할을 해 왔다. 대한민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은 물론, 자동차의 역사가 시작된 유럽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유럽에서 자동차는 마차와 마찬가지로, 귀족이나 신사 등과 같은 유산계급(有産階級)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전간기에 만들어진 폭스바겐의 카데프-바겐(KDF-Wagen)을 시작으로, 초대 피아트 500, 로버 미니 등의 소형차들 덕분에 유럽 전역에 자동차가 보급될 수 있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도 소형차는 자동차 보급의 첨병으로 활약했다. 소형차는 상대적으로 높은 생산성과 저렴한 가격으로 대한민국의 마이카 시대를 연 중추였다. 하지만 2010년대 후반에 현대자동차의 엑센트, 기아 프라이드, 쉐보레 아베오 등이 줄줄이 단종, 혹은 국내 판매를 완전히 중단되었다. 이로써 국내 시장서 대한민국의 토종 소형 승용차는 완전히 멸종하고 만 것이다. 대한민국 소형차 역사에 이름을 남겼던 차들을 시대 순으로 되짚어 본다. 

현대자동차 포니 2(1982)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계 최초의 독자모델인 현대자동차의 포니(Pony)는 1982년 '포니2'라는 이름으로 페이스리프트가 진행되었다. 현대 포니2는 82년 2월 출시되었으며 후술할 포니엑셀 및 프레스토의 등장 이전인 1980년대 초반까지 현대차의 소형 승용차 시장을 책임지는 모델이었다. 외관에서는 여러모로 현대화가 이루어졌는데, 헤드램프는 사각형의 일체형 헤드램프로 변경한 것을 시작으로 윈도우몰딩, 도어패널 등등 많은 부분이 더욱 세련된 스타일로 변경되었으며, 테일램프 역시 직사각형의 콤비네이션 램프로 변경되었다.

현대 포니2는 5도어 해치백 모델과 픽업트럭 모델의 두 가지 차종으로 생산되었다. 기존 포니에 있었던 3도어 해치백 모델과 5도어 왜건형 모델은 판매량이 적은 관계로 배제되었다. 포니2는 1985년 등장한 포니엑셀과 프레스토가 등장한 이후 승용 모델의 판매가 중단되었지만, 영업용/택시 모델은 1990년까지 생산이 이어졌다. 장장 15년에 걸쳐 국내 소형 승용차 시장을 이끌어 온 포니는 1990년 영업용 모델의 생산이 종료되면서 역사 속에 남게 되었으며, 대한민국의 자동차 산업의 역사를 논함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모델로 남았다.

대우자동차 맵시-나(1983)
소형차 시장에서 시보레 1700, 카미나 등으로 헛발질만 하고 있었던 구 새한자동차는 결국 경영악화로 인해 소형차 시장에서 재미를 못 보고 있었다. 카미나의 후속으로 내놓았던 제미니(Gemini)가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자, 새한자동차는 제미니를 대대적으로 손 본 모델을 내놓았는데, 그 차가 바로 '맵시'다. 우리말로 “아름답고 보기 좋은 모양새”를 의미하는 맵시는 외관 일부를 제외하면 기존에 생산했던 제미니와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 없었으며, 현대 포니 2에게 주구장창 밀리는 신세였다. 이에 새한자동차를 인수한 대우그룹에서 사명을 대우자동차로 변경함과 동시에, 대대적인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내놓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맵시-나'다.

'맵시-나'는 기존 '맵시'의 외관부터 알맹이까지 철저하게 뜯어고친 모델이다. 외관의 경우에는 동시기에 출시한 중형세단 로얄(Royale)의 것과 유사한 전/후면부 스타일을 채택해 세련된 외관을 자랑했다. 또한 1985년 추가한 최고급 트림인 하이-디럭스 모델의 경우에는 최고급 세단 로얄 살롱(Royale Salon)의 것과 유사한 격자형 크롬 라디에이터 그릴과 범퍼 몰딩을 적용해 동급에서 가장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외관을 뽐냈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파워트레인도 갈아 치웠다. GMK 시보레 1700시절부터 성능, 신뢰도, 연비에 이르는 모든 부분에서 혹평을 받았던 CIH 엔진을 버리고, 대우 자체 개발의 직렬 4기통 1.5리터 XQ엔진을 적용했다. XQ엔진은 기존 CIH 엔진에 비해 신뢰성과 성능 면에서 현격한 진일보를 이뤄, 좋은 평가를 받았다. 맵시-나에 탑재되었던 XQ엔진의 최고출력은 85마력, 최대토크는 12.5kg.m로, 경쟁력 있는 성능을 확보했다. 대우자동차의 출범과 함께 등장한 맵시-나는 GMK 시절부터 좋지 못했던 소형급 승용차 시장에서의 인식을 개선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맵시와 맵시-나는 출시 이후 1986년 7월까지 총 42,729대가 생산되었으며, 1986년, 후속 차종인 신형 전륜구동 소형차 르망(Le Mans)에게 자리를 내주고 물러나게 된다.

현대자동차 포니 엑셀 & 프레스토(1985)
대한민국 자동차 역사에 길이 남은 포니의 후속작으로 등장한 차는 '포니 엑셀(Pony Excel)'과 '프레스토(Presto)'다. 이 차는 그동안 후륜구동 승용차만 존재했던 대한민국에 최초로 등장한 전륜구동 승용차로, 이후 현대자동차는 전라인업에 걸쳐 전륜구동 체제로의 전환을 시작하게 된다. 포니 엑셀은 5도어 해치백 모델, 프레스토는 세단형 모델의 이름이다. 출시 자체는 포니 엑셀이 더 먼저였는데, 이는 당시 내수 시장에서 포니 시리즈가 다져 온 입지 덕분에 해치백형 승용차의 인식이 나쁘지 않았기에 포니 엑셀을 주력으로 한 데시 기인했으며, 세단형인 프레스토는 파생형 모델로서 약 5개월 뒤에 출시가 이루어졌다.

포니엑셀과 프레스토의 외관은 직선 기조가 강조된 것이 돋보인다. 균형이 잘 잡힌 스타일은 포니를 빚어냈던 명장 주지아로의 손길로 만들어졌으며, 설계적 기반은 당시 제휴관계를 강화해 나가고 있었던 미쓰비시의 소형 승용차, 미라주(Mirage)의 전륜구동 플랫폼을 바탕으로 했다. 엔진은 파워트레인으로는 1.3리터 및 1.5리터 배기량의 가솔린 엔진과 수동 3단 혹은 4단, 자동3단 변속기가 조합되었다. 이 엔진은 미쓰비시의 오리온 엔진이며 전자식 피드백 카퓨레터를 채용하여 당대의 동급 차량에 비해 우수한 엔진 성능과 시동성, 연비를 자랑했다. 또한 이 차량들은 국내에서는 보기 드물었던 플립 프론트 방식의 보닛을 채용했는데, 이 때문에 지금도 포니엑셀/프레스토를 기억하는 이들은 ‘보닛이 앞으로 열리는 차”로 기억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프레스토와 포니엑셀은 대한민국 자동차 수출의 핵심 역군이었다. 1986년도에는 미국 시장으로의 수출이 이루어졌으며, 1년여 만에 16만대를 넘는 판매량을 기록했다. 비록 이후에 사후 서비스 미비와 잔고장 문제로 인해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고 평가되지만, 적어도 미국 시장으로 나아가기 위한 교두보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현대자동차는 고급 옵션과 외장사양을 갖춘 수출형 사양 모델을 AMX라는 별도 트림으로 내수시장에서도 판매했다. 우수한 연비와 안정적인 주행성을 가진 전륜구동 방식의 장점과 당시로서는 오토리버스 기능을 내장한 카세트 오디오와 디지털 시계, 회전계 등의 편의사양을 갖춰, 인기가 좋았다. 하지만 80년대 후반에 들어서 강력한 도전자들의 잇단 등장으로 말미암아 고전을 면치 못했으며, 포니2와 같은 1990년에 단종을 맞게 된다.

대우자동차 르망(1986)
80년대 중후반 3저 호황에 따른 '마이카' 열풍으로 소형차의 전성시대를 지나고 있을 무렵, 대우자동차에서는 맵시-나의 후속작에 해당하는 신차, 르망(Le Mans)을 발표했다. 르망은 대우자동차 최초의 전륜구동 기반 모델이기도 하다. 르망은 GM이 주도한 월드카 프로젝트의 산물로, 디자인과 설계는 독일 오펠(Opel)에서, 생산은 대우자동차에서, 그리고 판매(해외)는 GM에서 각각 담당했다.

르망은 오펠의 대표 소형 승용차 카데트(Kadett) E형을 바탕으로 설계되었다. 이전 세대에 해당하는 제미니(Gemini)의 설계 기반이 오펠 카데트 C형이었으니, 그 손자에 해당하는 모델이라 할 수 있으며, 월드카 개념으로 개발된 것 역시 공통점이다. 실제로 대우 르망은 외부 디자인 일부와 실내 디자인 일부, 그리고 파워트레인 일부를 제외하면 설계 대부분이 오펠 카데트 E형과 큰 차이가 없었다. 차명인 르망은 프랑스 서북부의 페이 드 라 루아르(Pays de la Loire) 레지옹의 사르트(Sarthe) 주에 위치한 도시, 르망(Le Mans)에서 가져왔다. 르망은 세계적인 모터스포츠 대회인 ‘르망 24시(24 heures du Mans)’ 내구 레이스가 열리는 그 곳이다. 드라이버와 경주차 모두 심대한 부담이 가해지는 내구 레이스가 펼쳐지는 장소의 이름을 선정한 이면에는 그만큼 강건한 내구성과 우수한 성능을 겸비했다는 것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르망은 이전 세대에 해당하는 제미니가 그러하였듯, '안전'에 신경을 많이 썼다. 예나 지금이나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국의 자동차 안전 기준에 대응하기 위해 고성능의 브레이크 시스템과 더불어, 높이조절식 안전벨트와 충돌 시 도어가 차체 바깥쪽으로 나가며 뒷좌석 도어의 잠김을 방지하는 설계까지 적용했다. 여기에 오펠 카데트의 탄탄한 기본기로부터 비롯된 우수한 달리기 성능과 승차감, 그리고 정숙성은 동시기의 소형 승용차들 가운데 최고 수준을 자랑했다. 여기에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쐐기형 차체 디자인으로 날렵하고 스포티한 외관으로도 주목받았다.

엔진은 88마력의 성능을 내는 1.5리터(1,498cc) 가솔린 엔진을 주역으로 내세웠다. 이후 96마력의 성능을 내는 1.6리터(1,598cc, 르망 TBI) 가솔린 엔진이 추가되었으며, 88년도에는 컴퓨터제어 연료분사방식인 TBi 엔진을 도입한 96마력 사양의 신형 엔진을 도입했다. 그리고 후대에 등장한 고성능 모델인 르망 임팩트와 이름셔(Irmscher)에는 120마력의 2.0리터 엔진이 탑재되었다. 르망은 당대 국산차들 가운데 가장 빠른 차로 유명했는데, 자기보다 한참 상위급 차종인 현대차의 쏘나타(165km/h)는 물론, 그랜저(162km/h)마저 앞서는 170~180km/h의 최고속도를 자랑했다. 이렇게 모든 면에서 호평을 받은 르망은 대우자동차 역사 상 가장 성공적인 승용차로 평가받는다. 르망은 후속 차종인 라노스가 등장할 때까지 만 10년 8개월 동안 내수 536,254대, 수출 516,099대로, 총 105만 2,353대가 생산되었다.

기아자동차 프라이드(1987)
기아산업에게 있어서 1980년대 초중반은 말 그대로 '고난의 세월'이었다. 신군부정권이 들어서면서 1982년 시행한 '자동차공업 합리화조치'로 인해 피땀흘려 마련한 승용차 라인업을 통째로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아는 제휴사인 마쓰다주식회사(Mazda)로부터 소형 상용차, '봉고' 시리즈를 라이센스 생산하고, 봉고 시리즈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기적적으로 생존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절명의 위기를 넘긴 것을 뿐, 회사를 성장시키는 동력은 되지 못했다.

그러다 1985년, 정부에서 자동차공업 합리화조치를 해제한다는 예고가 나오자, 기아산업은 승용차 시장으로의 재진출을 위해 칼을 갈았다. 프로젝트명 'Y'로 개발이 진행되고 있었던 신차는 마쓰다와 포드가 합작으로 진행하는 '월드카(World Car)' 프로젝트였으며, 설계는 마쓰다가, 생산은 기아가, 그리고 판매는 포드가 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이 프로젝트는 1986년, '포드 페스티바(Ford Festiva)'로 세계에 알려져 시판에 돌입했으며, 기아는 1986년 자동차공업 합리화조치의 종료 이듬해인 1987년도부터 '프라이드(Pride)'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승용차를 내수 시장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기아 프라이드는 민첩한 주행성능으로 유명한 마쓰다의 전륜구동 플랫폼을 바탕으로 설계되어 탄탄한 주행성을 자랑했으며, 파워트레인 역시 마쓰다의 B3 1.4엔진을 사용해 똘똘한 동력성능을 뽐냈다. 가볍고 작은 차체와 똘똘한 엔진으로 무장한 프라이드는 내구성 면에서도 경쟁차종 대비 우수한 모습을 보였다. 프라이드는 5도어 해치백형 모델을 시작으로 3도어 해치백, 4도어 세단(베타), 그리고 5도어 왜건(프렌드)의 여러 바리에이션이 만들어졌으며, 지속적인 상품성 제고를 통해 인기를 이어나갔다.

프라이드의 인기는 식지 않았다. 심지어 1994년도에 후속차종에 해당하는 아벨라가 출시된 이후에도 21세기의 문턱인 2000년도까지 생산이 이루어졌다. 프라이드는 국내 소형 승용차의 전성시대인 1980년대를 넘어, 2000년까지 그 생명력을 이어 간, 국내 최고의 베스트셀러 소형차라고 할 수 있는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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