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소형차의 흥망성쇠 -마지막 전성기, 199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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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소형차의 흥망성쇠 -마지막 전성기, 1990년대-
  • 박병하
  • 승인 2022.06.08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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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차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동차의 보급과 자동차 산업의 육성에 있어 중추적인 역할을 해 왔다. 대한민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은 물론, 자동차의 역사가 시작된 유럽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유럽에서 자동차는 마차와 마찬가지로, 귀족이나 신사 등과 같은 유산계급(有産階級)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전간기에 만들어진 폭스바겐의 카데프-바겐(KDF-Wagen)을 시작으로, 초대 피아트 500, 로버 미니 등의 소형차들 덕분에 유럽 전역에 자동차가 보급될 수 있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도 소형차는 자동차 보급의 첨병으로 활약했다. 소형차는 상대적으로 높은 생산성과 저렴한 가격으로 대한민국의 마이카 시대를 연 중추였다. 하지만 2010년대 후반에 현대자동차의 엑센트, 기아 프라이드, 쉐보레 아베오 등이 줄줄이 단종, 혹은 국내 판매를 완전히 중단되었다. 이로써 국내 시장서 대한민국의 토종 소형 승용차는 완전히 멸종하고 만 것이다. 대한민국 소형차 역사에 이름을 남겼던 차들을 시대 순으로 되짚어 본다. 이번 기사에서는 1990년대의 소형차들을 둘러본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의 소형차 시장은 오히려 중형 세단 시장 보다도 경쟁이 치열했다. 특히 1990년대는 소득 증대로 자동차 보급이 가속화됨에 따라 국산차 시장에서 역대 가장 많은 종류의 소형차 신모델들이 등장했던 시절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1990년대까지 소형차 시장에는 다양한 바리에이션의 소형차들이 출시되어 대한민국을 누볐으며, 품종의 다양화로 판매량을 높일 수 있었던, 사실 상 마지막 '좋은 시절'이기도 했다.

현대자동차 엑셀(1989)
1980년대, 강력한 경쟁자들의 잇단 등장으로 인해 포니엑셀/프레스토가 고전을 면치 못하자, 현대차는 1989년, 두 차종을 통합한 형태의 신모델 엑셀(Excel)을 발표한다. 엑셀은 포니엑셀/프레스토의 페이스리프트에 가까운 모델로, 한참 위의 형님인 쏘나타(Y2)를 그대로 닮은 외형으로 인해 '리틀 쏘나타'로 주목받았다. 선대인 포니엑셀/프레스토의 장점은 계승하면서 상품성을 높인 엑셀은 대우 르망과 기아 프라이드라는 두 강자들에 맞서며 현대자동차의 90년대 초반 소형차 시장을 책임졌다.

또한, 당시로서는 선진적이었던 MPI(Multi Point Injection) 방식을 적용된 신형의 1.5리터 미쓰비시 오리온 엔진을 라인업에 추가했다. 이 엔진은 높은 성능과 우수한 시동성을 자랑했다. 엑셀은 출시된 지 2년을 갓 넘긴 1991년 '뉴 엑셀'이라는 이름으로 한 차례의 페이스리프트가 이루어졌는데, 기존 대비 고급화된 내장재와 외장재, 그리고 세련미를 더한 디자인으로 생명을 이어갔으며, 오늘날의 타원형 현대차 엠블럼이 처음으로 적용되기 시작했다. 엑셀은 1994년 엑센트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단종을 맞게 된다.

현대자동차 엑센트(1994)
엑셀의 후속작으로 등장한 엑센트(Accent)는 현대자동차가 1994년 처음 선보인 소형 승용차로, 현대자동차에게 있어서 그 의미가 각별한 차다. 엔진은 물론, 변속기, 그리고 플랫폼과 차체 설계 등에 이르는 모든 부분에서 순수하게 현대자동차의 자체 기술력으로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국산차’에 가까운 첫 차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올 라운드 클린 바디’라는 컨셉트로 완성된 엑센트의 디자인은 당시 승용차 시장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고, 국산 소형차 최초로 ABS 및 에어백을 선택사양으로 마련하고 전동 조절식 사이드 미러를 도입하는 등, 격이 다른 상품성을 지녔다. 또한 엑셀을 통해 먼저 도입하고 스쿠프를 통해 검증한 현대차 독자개발의 알파 엔진을 주력으로 했는데, 알파 엔진은  당대 소형차 시장에서 톱 클래스의 성능을 발휘했다. 이를 통해 엑센트는 기아 프라이드와 대우 르망이 지배하던 소형차 시장을 단숨에 휘어잡으며 소형차 시장의 주도권을 가져왔다.

기아자동차 아벨라(1994)
포드-마쓰다-기아 3사의 월드카 개념으로 만들어진 프라이드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던 가운데, 이 성공을 이어 갈 후속 프로젝트로서 개발된 차가 바로 아벨라(Avella)였다. 이 차는 당대의 트렌드를 반영해, 곡선 위주의 스타일링을 가졌으며, 프라이드가 그러하였듯이, 해치백 모델로 먼저 선보였다. 그런데 아벨라는  국내시장 한정으로 데뷔 때부터 프라이드의 후속이 아닌, 준중형차인 세피아와 소형차 프라이드의 사이에 위치하는 애매한 포지션으로 첫 발을 내딛었다. 기존에 생산하고 있었던 프라이드의 판매량이 계속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애매한 퐂지션과 더불어, 아벨라는 출시 초기부터, 기존 프라이드에서는 크게 나타나지 않았던 품질 문제와 더불어, 프라이드 대비 차체는 훨씬 크고 무거워졌음에도, 파워트레인은 기존 프라이드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는 바람에 동력성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물론 기아자동차는 세피아에 사용했던 엔진까지 끌어오면서 동력성능 보완에 나섰지만, 당시 소형차들은 1.3리터급 엔진이 주류였기에, 근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고, 후에 델타(Delta)라는 이름의 세단형도 추가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아벨라는 프라이드를 완전히 대체하지 못한 채, 1999년, 신차 리오의 등장과 더불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대우자동차 라노스(1996)
현대 엑센트로 인해 소형차 시장의 판도가 크게 바뀌기 이전부터 GM과의 결별을 선언한 대우자동차는 착실하게 독자기술의 확보에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1996년, 프로젝트명 T100으로 개발중이었던 소형차를 시장에 내놓게 되는데, 그 차가 바로 라노스(Lanos)다. 차명인 라노스는 라틴어로 ‘즐거운’을 뜻하는 ‘Latus’와 ‘우리’를 뜻하는 ‘Nos’를 합쳐, ‘우리를 즐겁게 하는 차’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차는 기존에 생산하고 있었던 르망과 씨에로를 모두 대체했다.

주지아로가 맡은 외관 디자인은 곡선 기조를 취하면서도 대우차를 상징하는 특유의 3분할 라디에이터 그릴과 더불어 큼직한 눈망울과 군더더기 없는 디테일 등, 당시 국산 소형차종 중에서는 독보적인 세련미를 자랑했다. 여기에 성능을 크게 개선한 신형 엔진을 도입하고 당대 소형 승용차 중 가장 풍부한 안전/편의사양을 적용했을 뿐만 아니라, 가격 또한 경쟁사 대비 낮게 책정하여 높은 경쟁력을 가져, 출시 초기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르망의 영광을 재현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 대우그룹이 위기에 직면하면서,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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