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소형차의 흥망성쇠 -타오르는 마지막 불꽃, 200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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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소형차의 흥망성쇠 -타오르는 마지막 불꽃, 2000년대-
  • 모토야
  • 승인 2022.06.10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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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차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동차의 보급과 자동차 산업의 육성에 있어 중추적인 역할을 해 왔다. 대한민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은 물론, 자동차의 역사가 시작된 유럽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유럽에서 자동차는 마차와 마찬가지로, 귀족이나 신사 등과 같은 유산계급(有産階級)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전간기에 만들어진 폭스바겐의 카데프-바겐(KDF-Wagen)을 시작으로, 초대 피아트 500, 로버 미니 등의 소형차들 덕분에 유럽 전역에 자동차가 보급될 수 있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도 소형차는 자동차 보급의 첨병으로 활약했다. 소형차는 상대적으로 높은 생산성과 저렴한 가격으로 대한민국의 마이카 시대를 연 중추였다. 하지만 2010년대 후반에 현대자동차의 엑센트, 기아 프라이드, 쉐보레 아베오 등이 줄줄이 단종, 혹은 국내 판매를 완전히 중단되었다. 이로써 국내 시장서 대한민국의 토종 소형 승용차는 완전히 멸종하고 만 것이다. 대한민국 소형차 역사에 이름을 남겼던 차들을 시대 순으로 되짚어 본다. 이번 기사에서는 2000년대의 소형차들을 둘러본다.

2000년대 초반, 당시 대한민국의 산업계는 97년 외환위기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수출’에 생사를 걸어야만 했다. 그 중에서도 자동차 산업은 조선업 및 반도체 등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수출역군으로 활약했다. 특히 당시 국내 자동차 업계는 미주지역 외에도 유럽 시장으로의 수출에 힘쓰고 있었으며, 유럽 시장으로의 수출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아예 유럽 시장을 노리고 개발한 전략 모델들까지 개발하면서 국내 소형차 시장의 다양성도 반사적으로 커지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2000년대는 대한민국에서 소형차가 본격적으로 몰락의 길에 접어들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소형차 시장은 1990년대부터 소득의 증대와 함께 소형차를 압도하는 매력을 가진 새로운 세그먼트들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이미 위축되고 있었다. 소형차의 세제혜택에 중형차에 근접한 크기와 공간을 누릴 수 있는 '준중형차'가 나타난 것을 시작으로, 소형차보다 더욱 저렴한 비용으로 획득 및 유지할 수 있는 '경차'가 등장하며 소형차의 입지가 크게 좁아진 것이다. 반면 수출 시장에서 이들 소형차들은 대한민국의 수출 역군으로 활약했다.

현대자동차 베르나(1999)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 경기가 크게 위축됨에 따라 국내 자동차 시장도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불경기로 인해 소형차는 계속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엑센트의 후속작으로 태어난 차가 바로 베르나(Verna)다. 현대 베르나는 당시의 어려웠던 경제 상황과 맞물려 있는 측면이 있는데, 바로 타겟층의 설정에 있었다. 이전까지 소형 승용차는 주로 20~30대 사회 초년생을 타겟으로 했는데, 베르나의 경우에는 타겟층을 40대까지 넓혔다. 이로 인해 엑센트의 파격과는 상반되는 보수적인 스타일링을 가졌으며, 승차감을 중시하여 후륜에 독립식 서스펜션을 적용한 점도 특징이었다.

이 뿐만 아니라 베르나는 당시 수출에 사활을 걸어야 했던 국내 자동차업계의 현실과도 맞물려 있었던 전략 차종이기도 했다. 이에, 현대자동차는 수출 전략의 일환으로서 베르나를 기반으로 한 경주차를 WRC(World Rally Championship)에 내보내기도 했다. 베르나는 4도어 세단형을 주축으로, 5도어 테라스 해치백 모델인 베르나 센스(Sense)와 3도어 해치백 스포트(Sporty) 등의 모델미 판매되었으며, 1세대 엑센트에 이어, 현대자동차의 스테디셀러로 등극했다.

기아자동차 리오(1999)
기아자동차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아그룹이 부도와 함께 해체되는 과정에서 현대자동차에 인수되는 등, 대우자동차 못지 않은 평지풍파를 겪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가운데 1999년 하반기 새로운 소형 승용차를 내놓게 되는데, 이 차가 바로 리오(Rio)다. 기아 리오는 세피아, 크레도스 등과 더불어 기아자동차/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소형 승용차 모델이었다. 직선기조를 강조한 현대 베르나와 달리, 리오는 직선과 곡선을 적절히 혼합해 역동적인 스타일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며, 동급 소형차 대비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디자인으로 눈길을 끌었다.

리오는 4도어 세단 모델 외에도 RX-V라는 별칭이 붙은 5도어 '해치백' 모델을 내놓았는데, 이 모델은 해치백이 아닌, 사실 상 왜건형 모델이다. 이는 내수시장에서 왜건에 대한 인식이 나쁜 탓에 억지로 해치백이라고 주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그 덕분에 리오 RX-V는 동급의 해치백형 소형차들 가운데 월등한 적재량을 지닐 수 있었지만, 세단형에 비해서는 인기가 많이 떨어졌다.

기아 리오는 2002년, '리오 SF'라는 이름으로 페이스리프트가 이루어졌는데, 이 때 호불호가 크게 갈렸던 전면부가 무난한 스타일로 바뀌고 2005년도까지 판매가 이루어졌다.

현대자동차 클릭(2002)
클릭은 처음부터 철저하게 유럽시장 공략을 위해 만들어진 소형차다. 그 중에서도 C세그먼트와 더불어 가장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었던 B세그먼트 시장에 투입하기 위해 만들어진 차다. 즉, 이 차는 르노 클리오, 푸조 206, 폭스바겐 폴로, 스코다 옥타비아, 오펠 코르사 등, 유럽의 쟁쟁한 차들을 상대해야 했다는 이야기다. 이 차는 외관부터 실내까지 당시 유럽 B세그먼트 시장의 트렌드를 철저하게 분석하여 만들어졌다. 직선기조를 강조한 외관과 실내는 국내 자동차 전문매체 등지에서 '지나치게 독일식'이라는 평가가 있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균형이 잘 잡혀 있는 외관을 가져,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 않는 디자인으로 평가받는다.

현대차는 클릭을 젊은 세대에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차명인 클릭부터 마우스 버튼을 누르는 행위를 말하는 그것에서 가져왔는데, 이는 ‘N’세대라 불렸던, 컴퓨터와 인터넷 등에 익숙한 당시의 청년 세대에 어필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80~90년대를 전후하여 소형차 시장의 주류가 세단으로 고착화됨에 따라, 많은 판매량을 기록하지는 못했다. 내수 시장에서의 판매량은 9년간 총 8만 4천여대에 그쳤기 때문이다.

반면, 메인 타겟으로 삼은 유럽시장에서는 약 118만대가 팔려나가며, 대한민국 자동차 수출의 효자노릇을 했다. 이 외에도 클릭은 국내 최초의 원메이크 레이스에 동원된 차량으로, 국내 모터스포츠 저변 확대에도 일익을 담당했다. 클릭은 국내서는 직계후손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졌지만, 유럽에서는 i20가 그 혈통을 잇고 있다.

GM대우 칼로스(2002)
대우자동차는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었다. 대우그룹이 해체되어 매물로 나와버린 것도 모자라, 대규모 정리해고에 반발하는 노동자들의 파업 등으로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혼란한 2001년도에 새롭게 발표된 소형차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칼로스(Kalos)였다. 그러나 칼로스의 생산은 GM대우가 출범하고 나서야 이루어지게 된다. 이 차는 현대 클릭과 마찬가지로, 유럽 시장 수출을 위한 전략모델로서 개발되었으나, 라노스의 노후화로 인해 라노스를 대체하는 후속차종으로 노선을 바꾸어 완성했다.

칼로스는 본래 해치백 형태로 만들어진 차량이었지만, 라노스의 후계자 역할도 해야 했던 데다, 국내 소형차 시장이 날이 갈수록 해치백을 외면하게 되면서, 세단형도 함께 만들어졌다. 해치백형 모델은 칼로스V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다. 여기에 당시 유럽식 MPV들에서 착안한 하이루프 스타일로 만들어져, 유난히 껑충한 전고를 갖게 되었는데, 이 때문에 내부에서의 개방감과 거주성은 수준급이었다. 하지만 대우계열 차종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함께 마티즈의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부실한 차체 구조 설계, 1.5리터 SOHC 엔진의 좋지 못한 연비,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디자인 등으로 인해 단 3년여 만에 단종을 맞이하게 된다.

기아 프라이드(2005)
현대자동차와의 합병이 이루어진 지 약 6년을 지나고 있었던 2005년, 기아차는 새로운 소형차를 발표한다. 이 차의 이름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선대의 이름을 따, 프라이드로 명명되었다. 이 차는 족보 상으로는 리오의 2세대 모델이었고, 수출 시장에서도 리오라는 이름으로 판매가 되었지만, 국내에서는 프라이드라는 이름을 달게 되면서 뉴 프라이드, 혹은 프라이드 2세대 모델로 통하게 된다.

새롭게 태어난 기아 프라이드는 세련된 외관과 인테리어, 그리고 기존 리오 대비 월등히 향상된 성능과 상품성을 등에 업고,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비록 고속주행 안정성이 불안하고 방음처리가 부실하다는 평가가 있었으나, 뉴 프라이드는 2000년대 중후반의 국내 소형차 시장을 제패하게 된다. 2009년도에는 기아자동차의 특징인 호랑이코 그릴을 적용한 스타일로 마일드한 페이스리프트가 이루어져 판매되었으며, 2011년도에 3세대로 세대교체된다.

현대 뉴 베르나(2005)
2005년도 상반기에 등장한 프라이드가 소형차 시장을 휩쓸고 있을 무렵, 동년 하반기에는 현대자동차에서 새로운 베르나를 내놓았다. 2세대 베르나는 직선적인 디자인을 가졌던 선대와는 달리, 1세대 엑센트를 연상케 하는 곡선 위주의 스타일을 가졌으며, 프라이드 대비 더 깔끔한 인테리어와 다양한 편의사양 등을 내세웠다. 또한, 이 차량은 동년 상반기 출시된 기아 프라이드와 동일한 플랫폼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파워트레인도 동일한 것을 사용했다.

하지만 2세대 베르나는 출시 초기부터 혹평에 시달렸다. 특히 세단 모델의 외관 디자인에서 혹평이 줄을 이었다. 두루뭉술한 인상의 얼굴과 더불어 껑충해 보이는 차체 형상, 그리고 이상할 정도로 바짝 올려 놓은 도어 사이드 몰딩 때문에, 모 매체에서는 "바지를 억지로 올려 입은 것 같다"는 평마저 나왔을 정도다. 이렇게 악평을 받은 외관과 더불어, 높은 전고와 토션빔으로 변경된 후륜 서스펜션 등으로 승차감과 주행성능 면에서도 평가가 좋지 못했다. 2009년도에는 '베르나 트랜스폼'이라는 이름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내놓았는데, 이 마저도 곤충을 연상시킨다는 혹평에 시달렸다. 뉴 베르나는 2010년, 신형 엑센트의 등장과 함께 강판된다.

GM대우 젠트라(2005)
야심차게 준비한 칼로스가 내수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 GM대우는 칼로스의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던 부분들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개량에 들어간다. 먼저 혹평을 받아야만 했던 세단 모델의 디자인을 대대적으로 뜯어 고치는 한 편, 내장재의 고급화 등을 적용하여 이미지 변신을 꾀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차가 바로 젠트라(Gentra)다.

젠트라는 처음에는 세단형 모델만 출시가 되었다. 그러면서 해치백 버전이었던 칼로스V는 원래의 이름인 칼로스로 이름을 고쳐 병행 판매되었다. 젠트라는 GM대우의 1.2리터 SOHC 엔진의 뛰어난 연비와 고급감을 키운 실내, 그리고 칼로스로부터 물려 받은 우수한 거주성으로 초기에는 이전의 칼로스 시절보다 나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2007년도와 2008년도에 '젠트라X(Gentra X)'라는 이름으로 5도어 해치백 모델과 3도어 해치백 모델이 각각 출시되었다. 하지만 이들 차종은 모두 칼로스의 스킨체인지 모델에 지나지 않았기에,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했으며, 그 때문에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2011년, 쉐보레 브랜드의 출범과 함께 신형의 아베오로 교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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