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이 일본 자동차 업계에 남긴 것, 3대 스포츠카 - 토요타 수프라 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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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이 일본 자동차 업계에 남긴 것, 3대 스포츠카 - 토요타 수프라 하편
  • 모토야
  • 승인 2022.06.21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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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부동산 붐으로부터 시작된 일본의 거품경제가 1990년대 들어 붕괴하면서 일본은 이른 바 '잃어버린 10년'을 넘어, '잃어버린 20년', '잃어버린 30년'이라고 일컬어지는 초장기 경기 침체를 겪고 있다. 

하지만 거품경제가 극에 달해 일시적으로 엄청난 현금을 갖게 되었던 일본의 자동차 업계는 이 돈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참가하는데만 해도 어마어마한 비용이 드는 전세계의 모터스포츠 무대에 거침없이 뛰어 들었고, 1960년대 일본 자동차 산업의 중흥기부터 지속적으로 키워오고 있었던 자국 내의 모터스포츠 기반도 한층 단단하게 다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뿐만 아니라 투자 비용 대비 시장성이 지극히 낮은 고성능 스포츠카의 개발에도 아낌없이 돈을 쏟아 부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차들이, 오늘날에도 JDM(일본 내수차량)을 넘어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일본의 3대 스포츠카들이다. 자동차에 대해 관심이 있으면서도 특히 2000년대 만화 '이니셜D' 시리즈나 영화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초기 시리즈를 보고 자라 왔던 세대라면 적어도 한 번쯤은 눈에 들어 왔을 법한 그 차들이기도 하다. 이번 연작 기획의 마지막 주인공은 일본 3대 스포츠카 가운데 가장 늦게 부활한 토요타자동차(이하 토요타)의 스포츠카, 수프라(Supra)에 대하여 살펴본다.

셀리카로부터 벗어나 독자모델이 되다
지난 기사에서 살펴보았듯이, 토요타 수프라는 본래 스페셜티카(Specialty Car)였던 '셀리카(Celica)'의 고급형 모델로서 시작되었다. 수프라는 당시 미국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었던 닛산의 페어레이디 Z에 대항할, 6기통 엔진의 FR(전방엔진-후륜구동) 스포츠카로 만들어졌다. 셀리카를 기반으로 더욱 대형화되고 고급화된 모델로 개발된 '셀리카 수프라'로 역사를 시작한 수프라는 두 세대를 거치면서 고급스러우면서도 충실한 성능을 갖춘 스포츠카로 캐릭터를 확립해 나갔다.

그러다가 1986년, 수프라는 '셀리카의 고급화 6기통 모델'이라는 정체성에서 벗어나 완전히 독자적인 스포츠카 모델로서 독립을 이루게 된다. 3세대(A70형)에 와서야 수프라가 독립을 맞은 이유는 같은 해 등장한 4세대 셀리카의 설계기반이 기존의 FR 구동계 대신, 코로나(Corona) 등이 사용했던 FF(전방엔진-전륜구동)레이아웃의 토요타 T 플랫폼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토요타로서는 수프라를 셀리카로부터 분리시켜야 할 필요가 있었다. 수프라가 닛산 페어레이디 등의 타사 FR 스포츠카들에 정면으로 대항하려면 처음 태어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직렬 6기통 엔진과 FR 구동계를 사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셀리카는 어디까지나 적당한 가격에 적당한 성능과 스타일을 갖춰야 하는 대중지향적인 스페셜티카 모델이었으나, 수프라는 순수한 스포츠카를 지향하고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이렇게 셀리카의 고급화 버전에서 독자모델로 분리된 수프라는 본격적으로 성능을 크게 증강하기 시작했다. 3세대 수프라는 설계기반부터 남달랐는데, 이는 훗날 '렉서스 SC'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지게 될 럭셔리 쿠페, 토요타 소아라(Soarer)의 플랫폼을 활용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토요타의 최고급 세단 '크라운(Crown)'의 쿠페 모델을 계승한 토요타 소아라는 일본 내수시장에서 닛산 레오파드 쿠페, 마쓰다 코스모 등과 경쟁하는 최고급 GT에 가까운 성격의 차였다.

이렇게 한층 대형화되고 훨씬 탄탄해진 설계기반을 갖게 된 수프라는 더욱 본격적인 스포츠카로서 진화했다. 하체에는 소아라와 함께, 토요타 차종 중 처음으로 전/후륜 모두에 더블위시본 서스펜션을 적용하고 엔진 역시 초대 모델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1G 계열의 2.0리터 직렬 6기통 엔진과 함께, 성능을 대폭 증강한 신형 3.0리터급 직렬 6기통 엔진(7M 계열)을 채용했다. 변속기는 5단 수동변속기와 4단 자동 변속기를 선택할 수 있었다.

3세대 수프라는 다양한 첨단 장비들도 대거 채용되었다. 당시로서는 선진적인 3채널 ABS와 더불어, 전자제어기구가 내장된 TEMS(Toyota Electronic Modulated Suspension)를 적용하여 운전자의 요구에 따라 두 가지의 서스펜션 감쇠력 설정을 제공했다. 여기에 급제동 및 고속 주행 등의 상황에서 자동으로 스로틀을 완전히 개방(Wide Open Throttle)할 수 있는 기능과 더불어, 7M 계열 엔진의 경우에는 토요타 독자개발의 가변흡기매니폴드 등을 추가해 체감 성능을 더욱 높였다.

또한 당시 인기 있었던 타르가 톱 모델도 존재했다. 3세대 수프라는 1986년 첫 출시 이후부터 단종을 맞는 1993년도까지 내수/수출 모두 포함해 총 24만대가 넘게 생산되었다.

전설로 남은, 순수 혈통의 수프라
국내에 가장 잘 알려진 수프라는 뭐니뭐니해도 영화 분노의 질주 시리즈와 당시 유행했던 다양한 레이싱 게임 등의 매체를 통해 알려진 4세대(A80형) 수프라일 것이다. 이 차는 지난 3세대 모델과 마찬가지로, 최고급 쿠페 소아라(3세대)의 설계기반을 바탕으로 개발되었다. 1989년부터 개발을 시작한 4세대 수프라는 본격적인 대형 고급 쿠페로 거듭나고 있었던 소아라의 플랫폼을 활용하되, 훨씬 컴팩트하게 재설계하여 스포츠카다운 기동성을 확보했다.

4세대 수프라는 외형에서부터 이전 세대 수프라와 완전히 달라진 외관을 가졌다. 직선기조가 중심이었던 기존의 디자인을 벗어나, 공기역학적으로 우수한 곡선형의 실루엣을 가진 것은 물론, 팝업 헤드램프를 버리고, 특유의 일체형 헤드램프를 적용했다. 차량의 크기는 길이 4,520mm, 폭 1,810mm, 높이 1,275mm로, 3세대 수프라 대비 길이는 더욱 짧아진 대신, 더 넓은 차폭과 더 낮은 높이 덕분에 더욱 안정감 있는 모습을 가졌다. 휠베이스 역시 3세대 대비 46mm나 짧은 2,550mm로, 운동성능 향상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설계적 기반이 되는 동시대의 소아라와 비교하면 길이는 360mm나 짧고, 폭은 10mm 더 넓으며, 높이는 75mm나 더 낮으며 휠베이스는 140mm나 짧다.

이러한 대대적인 재설계 작업을 통해 수프라는 3세대보다도 더욱 정통 스포츠카로서의 면모를 강화했다. 먼저, 엔진의 경우에는 새롭게 개발한 2JZ 계열의 직렬 6기통 3.0리터(2,997cc) 엔진을 채용했다. 이 엔진은 자연흡기 사양의 2JZ-GE와 트윈터보를 적용한 2JZ-GTE의 두 가지 사양으로 나뉘는데, 2JZ-GE는 220마력의 최고출력과 29.0kg.m의 최대토크를 냈고, 2JZ-GTE는 321마력의 최고출력과 43.5kg.m의 최대토크를 냈다. 여기에 각각의 캘리퍼가 서로 다르게 제동력을 가할 수 있는 4채널 ABS를 수프라에 적용한 것은 물론, 기존 모델 대비 약 91kg이 더 가벼워져 한층 뛰어난 기동성능을 자랑했다.

1989년부터 개발에 들어간 4세대 수프라는 1993년도부터 시장에 정식으로 시판되기 시작했으며, 2002년 8월 단종을 맞았다. 이 차는 특히 애프터마켓이 활성화된 미국 시장에서 사랑받았는데, 뛰어난 내구성을 가진 엔진과 더불어, 차량의 포텐셜이 높아 튜너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이 뿐만 아니라 수프라는 일본 및 해외의 각종 온로드 레이스에 출전하며 토요타의 모터스포츠 활동을 상당부분 책임졌으며, 이후 영화 '분노의 질주 시리즈'를 통해 대중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최초의 'GR' 모델로 17년만에 다시 태어나다. 그런데...
2010년대 초중반부터 토요타가 BMW와 함께 신형 스포츠카를 개발한다는 루머가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루머는 2019년에 현실로 나타나게 되었고, 그것이 현재의 'GR 수프라'다. 토요타의 이름이 아닌, 토요타의 모터스포츠 및 고성능 자동차 디비전인 '토요타 가주 레이싱(Toyota Gazoo Racing)'의 주도로 개발되어, 전설로 남은 A80 수프라의 단종 이래 17년만의 부활을 맞고 'GR수프라'라는 새 이름으로 거듭났다. 토요타의 양산차들 중 처음으로 ‘GR’ 브랜드가 붙은 모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GR 수프라의 기반은 토요타의 것이 아니다. 현행의 BMW Z4와 플랫폼은 물론, 파워트레인 구동계까지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량의 중추를 이루는 요소들이 자사의 순수 혈통이 아닌, 외국의 혈통을 가져 온 것이다. GR수프라의 개발 책임자를 맡은 ‘타다 테츠야(Tada Tetsuya)‘ 수석 엔지니어는 GR수프라가 이러한 탄생 배경을 가진 것에 대해 아이러니하게도, "선대 수프라의 아이덴티티를 계승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토요타 수프라는 초대 모델부터 4세대 모델까지 일관되게 'FR 레이아웃'과 '직렬 6기통' 엔진을 고수하고 있었는데, 현재의 토요타의 생산 체계 하에서 이를 모두 만족하려면 모든 것을 ‘0’에서부터 새로 만들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곳이 바로 BMW였고, 이들은 수소연료전지 등, 친환경 기술과 관련하여 제휴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Z4와 수프라를 공동으로 개발하는 데 합의했으며, 탐색개발부터 최초 프로토타입의 완성까지 공동으로 개발을 진행했다. 그리고 프로토타입의 완성 이후부터는 양사가 완전히 분리되어 독자적인 개발활동을 펼쳐 완성했다고 토요타 측은 밝히고 있다.

이러한 탄생 배경으로 인해 현재의 GR 수프라는 수프라의 오랜 팬들 사이에서 그 평가가 양극단으로 엇갈린다.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쪽에서는 "우리는 이런 수프라를 원하지 않았다"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이들이 특히 문제 삼는 부분은 독자모델화 이래로 토요타 소아라의 플랫폼을 공유하면서 고급 2+2 쿠페로 거듭났던 차가 2시터 경량 스포츠카에 불과한 닛산 페어레이디 Z와 동급으로 '강등'되어버렸다는 것에 큰 불만을 드러낸다. 그 외에도 디자인 큐가 되었던 FT-1 컨셉트카를 BMW Z4의 자그마한 체구에 우겨넣느라 비례가 깨어진 것은 물론, 현행의 GR 수프라를 "사실 상 "BMW Z4의 2도어 쿠페 버전"이라고 폄훼하는 경우도 있을 지경이다.

반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쪽에서는 "늦었지만 이렇게라도 돌아와주었으니 반갑다"라고 환영하는 한 편, 상품의 측면에 있어서도 닛산 GT-R과 혼다 NSX가 1억이 넘는 가격대의 고가형 모델로 넘어가 버린 데 반해, 상대적으로 높은 접근성과 대중성을 가졌다는 점에서 오히려 좋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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