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프 랭글러 루비콘 언리미티드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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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프 랭글러 루비콘 언리미티드 시승기
  • 김기범
  • 승인 2012.04.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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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남자라면. 이런 호기를 들쑤시는 존재가 있다. 지프가 딱 그런 경우다.
‘사내대장부에게만 허락된 물건’ 같은, 성차별적 발상이 거리낌 없어지는 차다. 뼛속까지 거친 짚의 성향은, 강하고 싶은 남자의 욕망과 찰진 궁합을 이룬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 짚은 현실과 타협했다. 랭글러만은 예외였다. 지프에게 랭글러는, 정체성을 과시할 최후의 보루였다.

하지만 천하의 랭글러도 세상을 외면할 순 없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ABS조차 없던 랭글러가, 이젠 주행안정장치까지 챙겼다. 아울러 앞뒤 도어가 달린 롱 휠베이스 모델까지 내놨다. 스스로도 고정관념을 깬 게 대견했던지, ‘언리미티드’란 이름을 붙였다. 언리미티드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새빨간 페라리, 샛노란 람보르기니 뺨친다.

쇠의 냉랭한 질감이 선연한 경첩과 볼트, 곧추선 유리창 너머 네모 반듯 펼쳐진 풍경, 무겁게 떼는 첫걸음에서 느껴지는 덩치까지. 랭글러는 전쟁놀이의 아련한 추억, 군대의 뼈아픈 기억을 집요하게 자극한다.

 



2011년형으로 거듭나면서 랭글러의 실내가 한층 고와졌다. 대시보드와 도어트림에 승용차의 감각을 덧씌웠다. 뒷유리도 키웠다. 예나 지금이나, 지붕은 세 조각으로 나눠 훌러덩 벗길 수 있다.

엔진은 2.8L 디젤 터보 그대로지만, 최고출력은 177에서 200마력, 최대토크는 40.8에서 46.9㎏·m로 치솟았다. 신형 그랜드 체로키의 변속기를 물리는 한편 최종감속비도 줄였다. 공인연비도 조금이나마 개선했다. 140만 원 오른 가격이, 딱히 서운하지 않은 이유다.

실내가 다소 뽀얘졌을지언정, 특유의 야성은 여전하다. 스티어링과 엔진의 반응엔 시차와 유격이 두드러진다. 차체는 코너에서 육중하게 기운다.
가속 땐 토크를 매끈히 다듬기 어렵다. 아무리 덤이라지만, 뒷좌석은 생기다 말았다. 승차감과 소음은 트럭 뺨치고, 타고 내릴 땐 바짓가랑이 터질까 두렵다.

랭글러 짝사랑에 빠진 나와 달리, 가족의 반응은 얼음장처럼 싸늘했다. 랭글러는, 갈망하되 쉬 다가설 수 없는 ‘로망’의 자격마저 갖춘 셈이다.  


글 김기범|사진 크라이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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