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750Li 시승기
상태바
BMW 750Li 시승기
  • 김기범
  • 승인 2012.04.0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새 7시리즈는 압도적인 덩치를 뽐낸다. 휠베이스가 3천210㎜로 이전보다 140㎜나 늘었다. 옆에서 보면 새삼 거대하다. 시원스레 뻗은 뒷도어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차체는 웅장하고 당당하다. 나아가 그린하우스 쪽으로 바짝 당겨 날카롭게 접은 어깨 라인 때문에 유독 우람해 보인다. 시승차로 준비된 롱 휠베이스 모델은 길이 5.2m, 너비는 1.9m가 넘는다.




실 내에 들어서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변화는 한 눈에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우선 스티어링 칼럼에 붙어 있던 변속 레버가 원래 위치로 되돌아왔다. 7시리즈를 냉큼 따라했던 벤츠 S-클래스가 심히 머쓱하게 됐다. ZF제 자동 6단 변속기엔 ‘E-시프트’란 이름이 붙었다. 기계적 연결이 없는 바이 와이어 방식으로 눈부시게 빠른 반응과 영리한 두뇌를 자랑한다.

계기판엔 눈금만 표시되어 있다. 시동을 걸면 그제야 낮엔 흰색, 밤엔 빨간색 숫자를 아로새긴다. 선명하기는 HD급. 경고등은 밤하늘의 별처럼 여기저기 흩어졌다. 타코미터와 속도계 사이엔 각종 정보가 뜬다. 그러나 예의 네모반듯한 틀이 없다. 네 좌석의 온도를 따로 설정할 수 있는 공조장치 또한 새카만 패널에 빨간 글씨만 오롯이 띄운다. 센터페시아의 모니터는 10.2인치로 키웠다. 양쪽 앞좌석의 등받이엔 9.2인치 모니터를 심었다.

이번에 7시리즈는 나이트비전을 개선했다. S-클래스와 종종 비교되던, 조악한 화질을 보란 듯이 업그레이드했다. 나아가 열 감지 기능을 더했다. 28℃ 이하의 기온에서 갓길에 보행자가 있을 경우 경고표시를 띄운다. 크루즈컨트롤 기능은 기본. 그러나 앞차와의 간격을 유지하며 가감속을 하는 액티브 크루즈컨트롤은 빠졌다. 값을 맞추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스티어링 휠은 3스포크. 왼쪽 스포크엔 크루즈컨트롤, 오른쪽엔 오디오와 전화 스위치를 박았다. 림은 꽤 두툼하다. 게다가 엄지 얹을 부분마저 살짝 불거졌다. 스포티한 느낌이 물씬하다. 모양내기보단 기능에 충실한 디자인. 그 위엔 가죽을 팽팽히 당겨 씌웠다. 도어트림은 물론 대시보드의 위쪽까지, 손 뻗어 닿는 거의 모든 곳을 결이 고운 가죽으로 덮었다.




콘 솔에 자리했던 앞좌석 조절 스위치는 상식적인 위치로 돌아왔다. 4세대 때의 실험적 파격을 많이 다독인 셈이다. 시트의 등받이는 어깨 부위만 따로 구부릴 수 있고, 엉덩이 받침은 허벅지 지지대만 별도로 잡아 뺄 수 있다. S-클래스처럼 코너링 때 몸이 쏠리는 쪽의 쿠션을 부풀리진 않지만, 맞춤 조절기능 하난 라이벌 중 누구도 따르지 못한다.

이번 750Li의 심장은 V8 4.4ℓ. 이전보다 배기량이 400cc 정도 줄었다. 하지만 최고출력은 무려 40마력이나 치솟은 407마력. 이율배반적이게도, 연비는 개선됐다. 비결은 여러 가지다. 우선 고압직분사 장치 HPI를 도입했다. 아울러 두 개의 터보차저를 물렸다. 터보차저 두 개와 촉매를 실린더 뱅크 사이에 달았다. 그래서 터보차저와 실린더가 한결 가까워졌다.

BMW는 자연흡기 엔진을 신봉해 왔다. 뜸 들이다 토악질하듯 울컥 파워를 쏟는 터보 엔진이 운전의 즐거움을 해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최근 BMW는 고집을 꺾었다. 적은 배기량으로 큰 힘을 뿜는 터보차저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V8을 얹었던 740Li는 신형으로 거듭나면서 직렬 6기통 트윈터보로 바뀌었다. 연비와 이산화탄소 배출량 때문이다.

뛰어난 효율성은 빼어난 성능으로 이어졌다. 제원성능을 보니 그 덩치로, ‘제로백’을 5.5초에 해치운단다. 이제 직접 검증할 순서. 시동은 버튼만 누르면 된다. 정숙성은 흡족하다. 보닛 안의 고무 패킹이 엔진룸을 물샐 틈 없이 틀어막아 희미한 소음조차 자취를 감췄다. 가속페달을 밟자 750Li가 미끄러지듯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부드러울 수 없다.

그러나 엔진을 들쑤시면 얘긴 달라진다. 돌연 스티어링 휠 뒤편에서 V8 사운드가 솟아오르면서 손발 저릿하도록 무섭게 뛰쳐나간다. 터보의 굼뜬 반응을 혐오하는 BMW답게, 터보 랙은 자취를 감췄다. 묵직한 액셀을 건드는 즉시, 엔진은 파워를 뻥 터뜨리면서 2톤이 넘는 덩치를 쏜살같이 내던진다. 크고 호화로운 데다 잘 나가기까지 하니 늘 자신감이 넘쳐난다.

가슴 뿌듯한 우월감을 맛보기 위해 액셀을 짓이길 필요는 없다. 그렇게 용쓰지 않아도 750Li는 언제든 벅찬 가속의 쾌감을 버겁도록 안겨준다. V12의 760Li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61.1㎏·m의 초강력 토크를 1800rpm부터 아낌없이 토해내기 때문이다. 고속에서의 안정성은 과연 아우토반 태생답다. 시속 200㎞ 안팎에서도 한결같이 침착하고 듬직하다.

이번 7시리즈엔 속도에 따라 스티어링 기어비를 변화무쌍하게 주무르는 액티브 프론트 스티어링(AFS)을 처음으로 적용했다. 나아가 4WS까지 갖췄다. 뒷바퀴를 시속 60㎞ 이하에선 앞바퀴의 반대쪽, 시속 80㎞ 이상에선 같은 쪽으로 최대 3°까지 튼다.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차를 세워 놓은 채 스티어링을 감으면 엉덩이가 주춤주춤 꿈틀거린다. 

아울러 이전 7시리즈처럼, 롤이 생겼을 때 스태빌라이저 바를 유압으로 비틀어 차체가 기우는 걸 막는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쇠 고유의 탄성을 살린 서스펜션을 고집했던 BMW가 이번 750Li엔 에어서스펜션을 달았다. 감쇠력을 조절할 수 있단 뜻. 기어 레버 왼쪽의 버튼으로 컴포트·노멀·스포츠·스포츠 의 네 가지 모드를 발 빠르게 넘나든다.

각 모드는 이름뿐이 아닌, 명확한 차이를 지녔다. 속도방지턱을 넘을 때 컴포트 모드에선 소음이 뒷바퀴에서 스미는데, 스포츠 모드에선 앞바퀴 쪽에서 충격과 소음이 발생한다. 컴포트 모드에서 부드럽게 압축된 스프링은 요철을 통과하면서 다시 퍼질 때 갑자기 뻑뻑해지면서 진동과 충격을 다독인다. 효과는 탁월한 데 어딘지 인위적인 느낌이 짙다.

이런 기묘한 느낌은 비단 서스펜션뿐 아니라 차의 전반적인 움직임에 스며들었다. 750Li의 몸놀림은 한 마디로 초현실적. 매끄러운 반원을 그리는 고속도로의 인터체인지에서 이런 느낌은 절정에 달했다. 옆구리만 시트에 잔뜩 눌릴 뿐, 차는 섬뜩하리만치 반듯한 수평을 유지한 채 코너를 감아 돈다. 손끝에선 은근슬쩍 바뀌는 스티어링 기어비가 느껴진다.

차선을 가로지를 땐 또 어떻고. AFS와 4WS의 협공작전에 힘입어 믿을 수 없을 만큼 민첩하다. 섀시와 관련된 수많은 첨단 장비는 라이벌이 여전히 연구 중인 초고속 통신망, ‘플렉스 레이’로 묶었다. 그래서 별개의 기능이 찰나의 순간 시너지 효과를 낸다. 이렇듯 정교하게 엮인 첨단 기술은 오너에게 ‘쉽고 즐거운 운전’이란, 명료한 혜택을 안겨 준다.

막강한 가속과 포근한 승차감, 기울임 없는 코너링은 로봇을 조종하는 것처럼 흥미진진했다. 첨단 장비 때문에 다소 인위적이고 어색한 느낌도 존재한다. 그러나 M5였다면 참을 수 없는 ‘참견’이겠지만, 750Li라면 고맙고 세심한‘배려’로 기꺼이 수용할 만하다. 직접 운전대를 쥘 것인가 뒷좌석에 몸을 묻을 것인가. 750Li가 내게 안겨준, 유일한 고민이었다.   


글 김기범|사진 BMW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