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보 XC70 D5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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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보 XC70 D5 시승기
  • 김기범
  • 승인 2012.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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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보 XC70 D5는 니치 마켓을 노린 모델이니만큼, 국내외 어디서든 흔치 않은 마이너리티다. 하지만 동시에 왜건과 SUV의 장점을 더하고, 디젤 심장까지 갖춘 스페셜리스트기도 하다. 직렬 5기통 2.4L 185마력 디젤 터보 인터쿨러 엔진과 6단 자동 변속기를 얹고, 0→시속 100㎞ 가속 9.9초, 최고속도 시속 205㎞의 준수한 성능을 뽐낸다.



볼 보 XC70은 ‘왜건 SUV’의 획기적인 컨셉트를 제시한 주인공이다. 물론 SUV도 뒷좌석 뒤로 쭉 뻗은 짐 공간과 해치도어를 갖췄다. XC70 또한 SUV 못지않은 최저지상고를 갖췄다. 하지만 둘 사이엔 엄연한 차이가 있으니 바로 운전감각이다. XC70은 하체는 껑충할지언정, 무게중심이 낮아 승차감과 핸들링이 SUV보다 세단이나 왜건에 가까웠다.

XC70은 어느 날 갑자기 태어난 모델이 아니었다. 사려 깊은 진화 끝에 장점만 추린 ‘왜건 SUV’의 혼혈이었다. 기본이 된 모델은 볼보 850 왜건의 후속으로 1996년 선보인 V70. 같은 해 볼보는 V70 AWD를 선보였고, 이듬해 차체를 띄우고 자잘한 상처에 개의치 않을 무광 플라스틱 몰딩을 두른 V70 XC를 선보였다. XC는 ‘크로스컨트리’의 줄임말이었다.

2000년 V70과 V70 XC는 풀 모델 체인지를 거쳤고, 2002년 XC70으로 이름을 바꿨다. 당시 비슷한 성격의 차는 스바루 포레스터 정도뿐이었다. 여전히 미지의 블루오션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간발의 차이로 아우디 올로드콰트로가 나왔다. 몇 년 후 홀덴 어드벤트라 AWD 왜건과 닛산 스테지아 AWD 등의 ‘따라쟁이’가 선보였지만 별 재미는 못 봤다.

이번 XC70의 생김새는 볼보 가운데 가장 균형미 뛰어난 S80과 판박이다. 이전 XC70은 S60과 닮은꼴이었으니, 풀 모델 체인지와 더불어 자연스레 클래스가 업그레이드된 셈이다. 정갈하게 다듬은 눈매는 ‘액티브 바이제논 라이트’ 기능을 갖췄다. 로와 하이 빔 모두 새야한 제논광선을 쏠 뿐 아니라 코너링 때 좌우 15°까지 희번덕거릴 수 있다는 얘기다.



실 내에 들어서면 뒤돌아보지 않는 한, S80과의 차이점을 찾기 어렵다. 계기판이나 센터페시아의 구성도 똑같다. 내리막 주행제어장치(HDC) 등 XC70만의 부가기능 덕분에 스위치가 더 많다. 시승차의 실내는 화사한 베이지 컬러의 플라스틱과 차가운 느낌의 알루미늄 패널, 짙은 브라운 계열의 가죽 시트로 단장해 기함 S80보다 되레 화려하고 풍요로운 분위기다.

볼 보는 유럽에 둥지 튼 브랜드치고는 디젤에 무심한 편이었다. 물론 1980년대부터 디젤 모델을 팔기는 했다. 그러나 스스로 디젤 엔진을 개발한 건 2001년이 처음이었다. 2005년 볼보는 오랫동안 공들여 개발한 D5 엔진을 얹기 시작했다. 디젤 볼보에 갈증을 느꼈던 소비자의 반응은 뜨거웠다. 단숨에 디젤 모델의 판매비중이 50%로 올라섰다.

D5 엔진엔 볼보의 최신 기술이 망라됐다. 가벼운 알루미늄으로 만들어 185㎏에 불과하고, 가변 흡기 시스템을 달았다. 또한, 연료를 애피타이저·메인디시·디저트의 3단계 풀코스로 뿜는 차세대 커먼레일 시스템을 얹었다. 연료 분사 압력은 500~2천 바(bar)까지 자동으로 조절된다. 그 결과, D5 엔진은 2천~2천750rpm에서 40.8㎏·m의 막강한 토크를 뿜는다.

터보차 저는 필요에 따라 배기관의 통로를 좁혀 배기가스의 속도를 높인다. 또한, 엔진을 끈 뒤에도 냉각시키는 기능을 갖춰 고속주행 직후나 주유할 때 바로 시동을 끌 수 있어 편리하다. 아울러 디젤 미립자 필터(DPF)를 통해 배기가스의 분진을 최고 95%까지 걸러낸다. 500~1천㎞마다 20분에 걸쳐 매연 입자를 태우기 때문에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다.

굴림방식은 AWD. 평소 앞바퀴에 95%의 구동력을 전하다 급가속하거나 슬립이 일어날 경우 뒤쪽으로 50%까지 나눈다. 센터 디퍼렌셜은 데뷔 초기엔 비스커스 커플링 방식이었다가 반응이 빠른 할덱스사의 전자제어 방식으로 바꿨다. 좌우 회전차이는 앞쪽은 트랙션 컨트롤, 뒤쪽은 차동제한장치(LSD)로 조율하는데, 앞쪽은 시속 40㎞ 미만에서만 작동한다.

변속기는 기어트로닉 자동 6단. 이전 XC70과 기어비, 최종감속비까지 똑같다. 앞 스트럿, 뒤 멀티링크 방식의 서스펜션 또한 변함없이 이어졌다. 에어서스펜션은 이번 역시 달지 않았다. 키 높이나 감쇠력 조절 등 아기자기한 기능이 없는 대신 내구성이 뛰어나고 고장이 일어날 확률은 아무래도 적으니 ‘구관이 명관’일 수 있다.

아이들링 때 엔진 회전수는 650rpm. 여기서 가속페달을 조금만 건드리면 엔진은 경련을 일으키며 울화통을 터뜨린다. 특히 2천rpm 부근에선 엔진 헤드가 보닛을 뚫고 튀어 오르는 건 아닌지 걱정될 정도로 맹렬히 토크를 분출한다. 이전보다 무게가 200㎏ 이상 늘었지만, ‘실시간 흥분 시스템’은 용케도 0→시속 100㎞ 가속 9.9초의 순발력으로 차체를 퉁겨낸다.

거센 토크는 가속페달 위에 얹은 발가락으로 생생히 느낄 수 있다. 발가락에 힘을 줄 때마다 가속페달은 용솟음치는 토크의 물결로 파르르 떨었다. 가장 가속이 활기찬 구간은 시속 60~140㎞ 사이. 자동차전용도로와 고속도로를 들고 나며, 흐름에 녹아들어 달릴 때의 속도다. 따라서 터무니없는 욕심을 내지 않는 이상 답답하단 느낌은 받기 어렵다. 

기어트로닉 6단 자동 변속기는 울컥 등 떠미는 추진력을 구렁이 담 넘듯 굴곡 없이 잇는다. 고속에서의 안정성도 흠잡을 데 없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면 시속 200㎞도 찍는데, 껑충한 하체를 잊게 만들만큼 안정적으로 달린다. 성능이 최우선인 스포츠카가 아닌 만큼, 볼보 XC70 D5는 80%의 기대치로 80%의 채찍질을 가할 때 가장 만족스러웠다.

XC70 의 핸들링은 적당히 무뎌 안심하고 쓸 수 있는 칼날과도 같다. 다소 유격 있는 스티어링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긴장이 누그러지면서 마음이 여유로워진다. XC70은 몰다보면 신경의 촉수를 곤두세워 코너의 CP를 예리하게 파고들고, 차선을 자로 재듯 가로지르는 것만이 운전의 즐거움은 아니라는 사실을 금세 깨닫게 된다.



볼 보 XC70 D5는 추려 담은 우성형질만큼이나 다양한 가능성을 품은 ‘욕심쟁이’다. XC70 D5와 몸을 섞는 순간, 비즈니스와 레저, 혼자만의 모험, 가족과의 여행 등 막연한 꿈은 현실로 거듭나고, 지루한 일상엔 활기가 깃든다. 새 XC70을 선보이던 날, 볼보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스포츠카의 정의를 새롭게 내릴 때가 되었다고.

글 김기범|사진 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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