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서스 IS F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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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서스 IS F 시승기
  • 김기범
  • 승인 2012.06.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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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F는 렉서스의 이단아다. 어떤 렉서스보다 시끌벅적하고 공격적이다. 엔진은 V8 5.0리터 423마력. 강력한 파워는 자동 8단 기어를 거쳐 뒷바퀴로 전달된다. 성능은 상식을 훌쩍 뛰어넘는다. 어차피 필요충분조건 따위와 상관없는 별종이다. 그러나 운전감각엔 부드러운 감각이 지배적이다. 누구나 쉽게 몰 수 있다. 가격과 연비, 보증기간 또한 라이벌을 앞선다.  




“렉 서스도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렉서스 IS F 개발을 지휘한 야구치 유키히코 수석 엔지니어는 이렇게 털어놨다. 폭탄발언이었다. 기존의 렉서스가 재미없다고 인정한 것과 다름없었으니까. 렉서스의 어떤 담당자도, 이런 이야기를 한 적 없었다. 행여 누군가 렉서스가 재미없다고 하면, ‘빙의’에 걸린 것 마냥 브랜드 철학을 줄줄이 읊곤 했다.

야구치 유키히코 엔지니어만은 예외였다. 그는 솔직했다. IS F는 기존 렉서스의 성격과 대척점을 이룬 별종 중의 별종. 그런데 IS F뿐 아니라 그 역시, 우리가 막연히 떠올리는 렉서스 개발자의 이미지와 한참 달랐다. 역시나 그는 놀라운 뒷이야기를 거침없이 쏟아냈다. 몇 년 전 강원도 태백의 오투리조트에서 열린, 렉서스 IS F 프레젠테이션에서였다.

그는 나고야 공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토요타에 섀시 엔지니어로 입사했다. 동경대를 나와 닛산에 취직하는 것처럼, 지극히 전형적인 코스였다. 그게 벌써 30여 년 전이었다. 그의 첫 작품은 수프라 터보. 당시 일본차의 출력 상한인 280마력을 꽉꽉 채우고 뒷바퀴에서 뭉게구름을 피워댄 스포츠카였다. 그의 훗날에 결정적 영향을 끼칠 운명적 만남이었다. 

하지만 그와 스포츠카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이후엔 줄곧 고급차를 맡았다. 렉서스 LS와 GS, 토요타 크라운 등 ‘품위’와 ‘격조’를 논할 세단이 그의 손길을 거쳤다. 2003년엔 렉서스 개발센터의 LS 치프 엔지니어로 우뚝 섰다. 그러나 수프라를 개발하며 ‘끓는점’을 경험했던 그의 기질은 여전히 꿈틀거렸다. 결국 그는 일을 냈다. IS F 개발을 제의한 것이다.




“안 됩니다.” 회사의 결정은 단호했다. 용기는 가상했으나, 선뜻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다. 공들여 쌓아올린 렉서스의 이미지를 의식한 까닭이었다. 충분히 예상했던 결과였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렉서스에도 이런 성격의 차종이 필요하단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2004년, 회사의 허락이 떨어졌다. 단, 시작차를 보고선 결정하겠다는 조건이 붙었다.

그는 정예 엔지니어 300명을 모았다. 렉서스의 관점에선 이례적으로 작은 규모의 별동대였다. LS의 경우 500명의 인원이 투입됐다. 개발팀은 IS300의 차체에 일본 수퍼 GT 경주차의 V8 5.2L 엔진을 얹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란 각오로 차를 조율했다. 아이디어를 듣고 당혹스러워했던 경영진은, 번듯한 시작차를 보고난 뒤 마음의 문을 열었다. 

그 즈음, 그의 ‘절친’이었던 또 다른 엔지니어는 수퍼카 개발을 제안했다. 그 결과 두 개의 프로젝트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시작됐다. 그 수퍼카가 바로 지금의 LFA였다. 한편, IS F 개발팀은 지구촌 곳곳을 제 집처럼 누볐다. 세계적인 서킷이라면, 어디든 IS F의 테스트 무대가 됐다. 차체와 섀시는 토요타 테크노크래프트, 엔진은 야마하로 역할을 나눴다.




유 키히코 엔지니어는 갑자기 설명을 멈추더니, 한 편의 동영상을 틀었다. 안전지대를 빨갛고 파랗게 물들인, 프랑스의 폴리카드로 서킷이 나왔다. 토요타 F1 머신의 테스트장이기도 했다. 위장막 씌운 IS F는, 아우디 RS4와 BMW M3, 포르쉐 911과 정밀 비교시승에 나섰다. 이들을 따라잡기 위해서가 아닌, 이들과 다른 IS F만의 개성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운전기량에 상관없이 누구나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고성능 차. 그가 밝힌 IS F의 컨셉트였다. 레이서 뺨치는 운전 실력의 백만장자를 노린 한정판 수퍼카 LFA와는 성격이 달랐다. 그는 거듭 강조했다. IS F의 정숙성이 아닌 사운드를. 다음날이면 IS F의 실체를 서킷에서 확인할 참이었다. 묘한 흥분과 긴장감에 잠을 뒤척이는 사이, 태백의 밤은 깊어갔다.

다음날 아침, 서킷에서 IS F와 마주했다. IS와 확연히 다른 ‘포스’가 느껴진다. 아가리를 쩍 벌린 범퍼와 한껏 낮춘 서스펜션 때문이다. 콧잔등엔 격자무늬 그릴을 씌웠고, 휠 아치는 부풀렸다. 보닛 역시 큰 엔진을 담기 위해 야트막히 솟았다. 때문에 두 가닥 주름이 끄트머리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꽁무니엔 위아래 한 쌍을 이룬 네 가닥의 머플러를 심었다. 




도 어를 열자 낯익은 풍경이 펼쳐진다. 촘촘히 엮은 카본 패널과 곳곳에 붙은 F 엠블럼에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서렸다. 시트는 골이 깊다. 앉으면 몸을 꽉 붙든다. 그러나 벤츠 C 63 AMG처럼 숨이 턱 막힐 정도까진 아니다. 계기판은 전혀 다르다. 한 가운데 큼지막한 타코미터를 박아 넣었다. 상대적으로 앙증맞은 속도계의 끝자락엔 300이 선명히 각인됐다.

시동버튼을 누르는 순간, 자극적인 포효가 귓전을 때린다. 꽁무니에 불꽃이 이는 느낌이다. IS F의 엔진은 V8 5.0L. 렉서스 LS600hL과 기본적으로 같다. 그러나 차체가 잔뜩 쪼그라든 만큼, 동력성능은 왕창 부풀었다. LS460의 엔진을 쓸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저속토크를 높이기 위해 배기량을 5.0에 맞췄다. 가변밸브 타이밍 기구인 VVT-iE도 얹었다. 

LS 가 그렇듯, 흡기 포트와 실린더 양쪽에서 연료를 뿜는 듀얼 분사방식(D-4S)이 기본이다. 연료 뿜는 곳은 상황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바뀐다. 공회전 땐 실린더에서, 흡기를 빨아들일 땐 포트에서, 강력한 토크가 필요할 땐 양쪽에서 동시에 뿜는다. 실린더 직분사로 효율을 높이되 포트 분사로 저회전 토크를 살찌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기술인 셈이다.




IS F의 최고출력은 423마력, 최대토크는 51.5㎏·m. 출력만 봤을 때 캐딜락 CTS-V(556마력)이나 메르세데스-벤츠 C 63 AMG(457마력)보단 낮고, BMW M3(420마력)은 웃돈다. 그러나 마력 당 무게 비는 4.05㎏으로 동급 라이벌 가운데 가장 뒤쳐진다. 그러나 작은 차이인데다, 수치의 우열과 운전의 즐거움이 꼭 일치하진 않는다. 이제 직접 확인해볼 차례다.

드 로틀을 활짝 열자, IS F의 폭력적인 가속이 시작됐다. 가슴 먹먹한 가속G는 둘째 치고, 귓속을 파고드는 사운드가 압권이다. 밖에서 들을 때보다, 실내로 스미는 음색이 한결 극적. 저회전에서의 굵직한 배기음은 3,600rpm에서 자극적인 흡기음으로 갈아탔고, 5,000rpm을 넘어서면 강렬한 엔진 사운드로 승화됐다. 어떤 영역에서건 짜릿짜릿하긴 매 한 가지였다.

변 속기는 시작부터 록 업 클러치가 톱니를 꽉 깨무는 스포츠 다이렉트 시프트 자동 8단. 변속에 걸리는 시간은 0.1초. 눈 깜빡할 시간과 정확히 포개진다. 자동변속기 가운덴 최고수준이다. 패들 시프트도 갖췄다. 하지만 굳이 쓸 필요를 느낄 수 없었다. 변속기가 워낙 영리하게 기어를 갈아타서다. 엔진은 회전수를 가리지 않고 되알진 토크를 푸짐하게 뿜었다.




코 너의 정점을 벗어나는 순간, 뒷바퀴에 토크를 걸었다. 강력한 추진력이 아담한 차체를 사정없이 떠민다. 스티어링은 격한 상황에 동요하지 않은 채 묵직한 답력을 유지한다. 적당히 걸러진 피드백과 더불어, 손아귀에 축축한 진땀대신 상큼한 자신감을 불어 넣는다. 서스펜션은 단단하되 차분하다. 중첩된 꼬부랑 코너에서 몸을 뒤챌 때도, 위엄을 잃지 않았다.

브렘보 기술로 완성한 브레이크는 믿음직스러웠다. IS250은 이 서킷에서 채 일곱 바퀴를 내리 돌기 어려웠다. 한 바퀴 당 2번씩, 총 14차례의 급제동만으로, IS250의 브레이크 오일은 끓어오를 조짐을 보였다. 늑대의 탈을 쓴 양이었다. 그러나 IS F에선 어림도 없는 이야기. 이미 몇 세션을 치른 상태였지만, 브레이크는 갓 구운 크루아상처럼 바삭바삭했다.

IS F는 뇌리에 아로새겨진 렉서스의 고정관념을 시원스레 날렸다. 가장 소란스럽고 공격적인 렉서스였다. 감칠맛 나는 사운드와 ‘제로백’ 4.6초의 가속, 초강력 제동성능은, 시종일관 가슴을 뒤흔들었다. 그러나 ‘자극’이 IS F의 전부는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고 IS F가 손에 익기 시작하면서, 그 심연에 침잠한 렉서스의 DNA가 피부에 와 닿기 시작했다.




엔 진회전수 보상기능을 갖췄지만, 적절한 타이밍까진 ‘삐빅’ 경고음을 울리며 다운시프트를 거부했다. LFA를 빼면 렉서스에서 주행안정장치를 완전히 끌 수 있는 유일한 모델이지만 이때조차 꽁무니를 시원스레 날리긴 여의치 않았다. 시뻘건 파워가 용솟음쳤지만 운전감각의 모서리는 매끈하고 둥글었다. 강력하되 부드러운 이율배반적 감각이 지배적이다.

가장 조용한 차를 만드는 회사에서 가장 즐거운 차를 꿈꿨던 한 엔지니어의 꿈은 현실로 거듭났다. IS의 차체에 강렬한 성능을 담았다. 하지만 누구나 쉽고 안전하게 즐길 수 있다. 나아가 라이벌 가운데 가격이 가장 저렴하다. 파워트레인의 보증기간도 가장 길다. 심지어 연비마저 가장 좋다.  

글 김기범|사진 렉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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