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 체어맨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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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 체어맨 H
  • 안민희
  • 승인 2012.06.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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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어맨 H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97년 출시된 체어맨과 만나게 된다. 체어맨을 개발할 때까지만 해도 쌍용차는 무쏘의 성공으로 고무되어 있던 상황이었다. 무쏘를 고급 SUV로 자리매김하며 고급차 시장에 맛을 들인 쌍용은 당시 최상급 세단에 도전한다. 메르세데스-벤츠의 부분 기술 도입에 성공한 쌍용차는 코드네임 W124의 E-클래스 플랫폼을 활용해 체어맨을 만든다.



당시 체어맨은 순식간에 영광의 자리에 올라섰다. 당시 라이벌이던 그랜저, 다이너스티, 아카디아를 순식간에 아래 급으로 만들어버렸다. 디자인 또한 마찬가지였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갈리첸 도르프를 디자인 개발에 불러들였다. 결과는 훌륭했다. 고급스러움은 지키되 다이내믹한 모습으로 권위적인 모습의 라이벌에게 한 방 날렸다.


체어맨의 엔진은 직렬 6기통으로 2.8L, 3.2L의 배기량 차이를 두었다. 2.8L 엔진을 얹은 모델은 500S, 3.2L 엔진을 얹은 모델은 600S로 부른다. 두 모델 모두 국내 최초로 자동 5단 변속기를 달았다. 게다가 메르세데스-벤츠에서 가져온 기술과 E-클래스(W124)를 기반으로 하는 플랫폼은 라이벌과 차원이 달랐다. 라이벌들이 일본에서 가져온 기술로 기함을 만들던 때였다. 때문에 독일차, 그것도 메르세데스-벤츠의 플랫폼과 기술을 깔아놓은 체어맨은 유난히 돋보였다.


체어맨 출시 후 15년이 지났다. 그간 쌍용은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중국의 상하이 자동차에 합병됐지만 기술 유출을 당하고 내쳐졌다. 상하이 자동차는 쌍용차에 제대로 된 투자도 하지 않았다. 때문에 차들은 상품성을 잃어갔고 시장에서 외면당했다. 이 때문에 대량해고 사태까지 겪었다. 이제는 인도의 마힌드라에 합병되어 다시 재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 흔적은 남아있다. 체어맨 H가 그 흔적중 하나다. 쌍용의 기함이었지만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했다.


현재 체어맨의 라인업은 2종류로 나뉜다. 체어맨 W와 체어맨 H다. 체어맨 W는 2008년 완전 신차로 발표된 쌍용의 기함이다. 커다란 차체에 국내 최초 V8 5.0L 엔진에 사륜구동까지 갖췄다. 운전기사를 두고 뒷자리에 타는 차로 기획됐다. 반면 체어맨 H의 기반은 1997년 첫선을 선보였을 때와 변함이 없다.



체어맨 H의 디자인은 매우 고전적이다. 존재감을 더하는 세로 그릴과 L자형 헤드램프로 새롭게 다듬은 앞모습은 과격한 최근 디자인 경향과는 거리를 뒀다. 하지만 옆모습은 원조 체어맨의 자태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차체를 감싸 흐르는 라인과 문의 형상은 그대로다.


반면 실내는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크게 변화를 줬다. 대시보드와 센터페시아 형상을 크게 바꿨다. 대시보드 가운데를 풍선처럼 부풀렸다. 체어맨 W의 디자인을 가져왔지만 솔직히 부담스럽다. 디자인 완성도가 높진 않다. 센터페시아는 수납함으로 바뀌어 빈 듯한 느낌이 든다. 에어컨과 멀티미디어 조작부를 대시보드 가운데에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실내에 무광택 우드그레인을 더하고 볼륨 있는 가죽 시트로 고급스러움을 살리려 했지만, 생뚱맞은 대시보드가 아쉽다. 고풍스러운 외관을 살려 실내까지 다듬었다면 디자인 언어가 빛났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구동계는 그대로다. 모델도 그대로 500S와 600S로 나뉜다. 최고출력은 2~3마력 정도 올라갔다. 500S의 2.8ℓ 엔진은 200마력(6600rpm)의 최고출력에 27㎏·m(4600rpm)의 최대토크, 600S의 3.2ℓ 엔진은 222마력(6600rpm)의 최고출력, 31㎏·m(4600rpm)의 최대토크를 낸다. 라이벌이 출력을 높여 앞서나가는 것에 비하면 이제는 부족한 수치다. 연비는 500S가 8.8㎞/L, 600s가 8.7㎞/L로 별 차이가 없다. 공차 중량 또한 1730과 1735㎏로 비슷한 것은 의문이 든다. 차체 또한 마찬가지다. 휠베이스는 2895㎜로 변하지 않았다.


안전장비는 에어백은 운전석과 동반석의 2개를 기본으로, 앞좌석 사이드 에어백을 30만 원의 옵션으로 갖출 수 있다. 커튼 에어백이 없는 등 요즘 경향에 비하면 부족한 면은 있지만 편의 장비는 제법 늘어났다. 버튼 시동 스마트키, 통풍시트, 열선 스티어링 휠, 에코 크루즈 컨트롤 등 최신 경향에 맞췄다.


가격은 3630만~4630만 원이다. 아무리 체어맨이 벤츠 E-클래스를 바탕으로 하는 고급 세단이라고 해도 신차들의 도전에 초연하기엔 역부족이다. 덩치를 한껏 키우고 출력 좋은 엔진과 날카로운 디자인, 세련된 실내로 단장한 그랜저의 기세는 파죽지세다. 숫자만 놓고 보면 체어맨 H를 추천하는 것이 조심스러워진다.



체어맨 H를 사면 클래식한 메르세데스-벤츠의 뼈대와 엔진, 변속기 모두 상대적으로 저렴한 값에 누릴 수 있다. 또한 국내 실정에 맞게 변화한 승차감은 서스펜션의 상하 움직임이 커 역동적이진 않지만 부드러운 주행감각을 살렸다.


체어맨 H는 홀로 시간 속을 유유자적하는 차다. 본질의 변화 없이 새 단장만 해오며 15년 삶을 지속해왔다. 쌍용이 어려운 시절을 겪지 않았다면 진작 교체되었을지 모른다. 체어맨 H가 쌍용의 미래일 수는 없다. 쌍용의 계획에 따르면 체어맨 W가 분화되어 고객들에게 다가갈 것이다. 하지만 새것에 대한 욕심 없이 차와 함께 유유자적 달리고 싶다면 체어맨 H가 함께할 수 있다.

글 안민희|사진 쌍용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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