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 렉스턴 W 시승기

2012-07-18     김기범

쌍 용 렉스턴은 2001년 9월 데뷔했다. 무쏘 후속으로 개발되었지만 결국 위급으로 선보였다. 당시 모기업인 대우와 밀접한 관계였던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그렸다. 렉스턴은 전형적인 20세기 SUV였다. 사다리꼴 프레임에 차체를 얹고 파트타임 사륜구동을 달았다. 외모는 딴판이었지만 정체성은 1993년 나온 무쏘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렉 스턴은 이후 진화를 거듭했다. 차종이 많지 않은 데서 비롯된 초조함 때문인지 뉴 렉스턴, 렉스턴 Ⅱ와 슈퍼 렉스턴 등으로 매번 이름을 주물럭거렸다. 데뷔 당시 렉스턴은 상위 1%를 위한 최고급 SUV를 표방했다. 미끈한 디자인과 넉넉한 덩치, 푸근한 승차감, 3열 시트 등 국내 소비자가 좋아할 요소를 두루 갖춰 인기가 좋았다.

렉 스턴은 이름 바꿀 때마다 포장과 내용을 다듬어 왔다. 그러나 획기적 변화까진 없었다. 쌍용차의 상황이 여의치 않은 탓이었다. 모기업만 2번이나 바뀌었다. 하지만 골수팬과 보수적 SUV를 원하는 수요 덕분에 장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세대 땐 위기가 왔다. 라이벌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 그러나 쌍용차는 2.0L 디젤 엔진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이 번엔 렉스턴 W로 이름을 바꿔 다시 한 번 수명을 연장했다. 데뷔 무대는 2012년 부산국제모터쇼. 2년 전 소위 한국형 2.0L 디젤 엔진을 처음 선보였던 자리다. 렉스턴 W는 한 두 해 반짝 버티고 사라질 ‘끝물’이 아니다. 현재 쌍용차가 개발 중인 모노코크 뼈대의 차세대 SUV가 선보일 때까지 5년 이상 꿋꿋이 자리를 지킬 전망이다.

변 화는 앞뒤는 물론 옆모습에도 녹아들었다. 가니시를 없애 담백한 멋을 살렸다. 새로운 디자인의 사이드 스텝도 달았다. 실내 역시 큰 틀의 변화는 없다. 센터페시아 디자인과 우드그레인 및 플라스틱 재질을 바꿨다. 그 밖에 뒷좌석 가운데 자리에 3점식 벨트를 다는 한편 유아용 시트를 위한 국제규격의 고정 장치를 단 정도다. 

 


엔 진은 직렬 4기통 2.0L 디젤 터보의 e-XDi200이다. 같은 배기량의 이전 엔진보다 7마력 더 높은 155마력을 뿜는다. 최대토크도 36.7㎏·m로 조금 더 치솟았다. 쌍용차는 이 엔진이 1500~2800rpm의 낮은 영역에서 최대토크를 뿜어 정차와 가속이 잦은 국내 주행환경과 잘 어울린다고 자랑한다. 이 엔진을 설명할 때 ‘한국형’이란 표현을 유독 강조하는 이유다.

 

스 마트키를 쓰면서 이제 시동은 버튼만 눌러 건다. 진동과 소음은 거슬리지 않을 수준이다. 처음 출발할 땐 만만치 않은 무게감이 느껴진다. 가속페달, 엔진, 가속에 짧되 뚜렷한 시간 차이가 존재하는 탓이다. 찰나의 단계를 거쳐 엔진의 회전이 가속에 반영되면, 돌연 저돌적으로 튀어나간다. 시속 140㎞까지는 거침없다가 이후 눈에 띄게 가속이 더뎌진다.


 


엔 진의 힘은 딱히 아쉽지 않다. 하지만 정교한 맛이 떨어진다. 요즘 유행하는 피에조 대신 솔레노이드 인젝터를 쓰는 탓이다. 변속기는 벤츠제 자동 5단. 브랜드의 후광은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다단 및 듀얼 클러치 변속기의 현란한 기교는 기대할 수 없다. 파워 스티어링은 속도 감응식. 고속에선 다소 무거워진다. 그러나 빠듯하게 조인 느낌과 거리가 멀다.

 

승 차감도 나긋나긋하다. 첫 번째 충격을 꿀꺽 삼킨 이후 적당한 여진을 남긴다. 부드러운 하체는 늘 움직임의 여운을 남긴다. 적당히 휘청대고 출렁거린다. 10여 년 전부터 익숙한 렉스턴의 감각 그대로다. 같은 이유로, 스티어링 휠 조작과 앞머리의 움직임 사이엔 예측할 만한 유격이 있다. 따라서 반 박자의 마진을 두고 여유 있게 다룰 때 가장 편안하다.

 

렉 스턴 W는 악착같이 유행을 좇지 않았다. 곳간이 넉넉지 않은 탓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때문에 저만의 색깔과 영역을 지킬 수 있었다. 껑충하고 듬직한 덩치와 푸근한 운전감각으로, 멋 부리기와 숫자 경쟁에 심취한 라이벌과 뚜렷이 구분된다. 파워트레인을 빼면 오랜 세월 검증과 개선을 거친 조합이라는 점 역시 매력적이다. 

글 김기범|사진 쌍용자동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