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자동차의 또 다른 아이콘, 포드 크라운 빅토리아

2017-04-12     박병하

미국은 모터리제이션(Motorization, 자동차화)의 역사가 길고, 그 역사만큼 자동차가 삶에 뿌리 깊게 연관되어 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함께, 특유의 대륙적 기질이 어우러진 미국의 자동차 문화는 세계에서 가장 특색이 짙으면서도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이러한 미국의 자동차 문화를 대표하는 것들은 여러가지가 있다. 풀-사이즈 세단이나 미니밴, 픽업트럭, SUV 등을 들 수 있으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고출력을 추구한 핫로드(Hot rod)나 머슬카(Muscle car), 유럽의 영향을 받은 작은 차체에 미국식 엔진을 접목한 아메리칸 스포츠카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러한 바탕 아래, 미국에서는 수많은 명차들이 등장했고, 그 몇몇은 오늘날에도 명맥을 잇고 있다. `포드 머스탱`과 `쉐보레 카마로`와 같은 포니카는 물론, 머슬카의 아이콘 `닷지 차저`, 아메리칸 스포츠카의 대명사 `쉐보레 콜벳`이나 `닷지 바이퍼`,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자동차인 픽업트럭 `포드 F-시리즈` 등에 이르는 미국의 자동차들은 하나같이 미국의 대륙적인 기질과 함께 그들만의 철학과 감성으로 만들어져 있고, 그들만의 색깔이 살아 있다. 그리고 그 수많은 명차들 중에는 본 기사의 주인공인 포드 `크라운 빅토리아(Crown Victoria)`도 존재한다.




포드 크라운 빅토리아라는 이름은 다소 생소할 수 있다. 이 이름이 생소한 독자라면, 헐리우드 영화에 단골로 출연해 왔던 수많은 경찰차와 뉴욕 옐로우캡(Yellow cab) 택시들을 떠올려 보자. 자신이 미국에서 태어났음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기나긴 차체, 불쑥 올라온 캐빈룸 앞뒤로 대충 붙여 놓은 듯한 기나긴 보닛과 트렁크, 세단 치고는 껑충하게 올라선 지상고와 보수적이고 투박한 외관 디자인을 가진, 정말로 `흔한 미국차` 그 자체인 차. 무수한 헐리우드 액션 영화에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차로 출연하여 허구한날 구르고, 부숴지고, 폭발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도둑 맞기까지도 하던 그 차. 그 차가 바로 `크라운 빅(Crown Vic)`, 크라운 빅토리아다.



이 차는 투박한 외양과는 달리, 20여년간 미국의 경찰과 택시 회사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온 차다. 크라운 빅의 투박한 외모의 뒤편에는 프레임-온-바디 구조에서 오는 강건함과 4.6리터 V8 엔진의 넉넉한 힘, 단순한 설계에서 오는 높은 신뢰성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우수한 생산성에 따른,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표까지 붙어 있었다. 그야말로 `플릿카(Fleet Car, 기업이나 기관 등의 업무용 차량)`로서는 미국의 기준에서 `완전체`에 가까운 차였다.



포드 크라운 빅토리아는 전형적인 미국식 풀-사이즈(Full-size) 세단이자, 오늘날에는 토러스가 계승한 포드의 풀-사이즈 승용차의 계보를 잇는 모델이다. 1991년에 92년식을 달고 처음 등장했다. 이름은 1955년 등장한 페어레인 크라운 빅토리아 스카이라이너, 1982년 등장한 `LTD` 세단의 하위 모델명인 `LTD 크라운 빅토리아` 등에서 가져왔다.



초기 디자인은 포드가 일본계 제조사들의 중형 세단과 경쟁하기 위해 새로이 내놓은 중형/준대형급 세단 포드 토러스와 머큐리 세이블 등이 인기를 끌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과 같이, 라디에이터 그릴이 없는 디자인으로 출시했다. 공기역학적 측면을 강조한 전면 스타일 덕분에 초대 크라운 빅토리아의 공기저항계수는 당시의 미국제 세단으로서는 준수한 0.34를 기록했다. 하지만, 풀-사이즈 세단 시장에서는 이 스타일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중~후기형에서 그릴을 새로 적용하는 페이스리프트를 거쳤다.



우리에게 익숙한 보수적인 디자인과 `플릿카` 이미지의 크라운 빅토리아는 1998년부터 등장한 2세대 모델이라고 볼 수 있다. 2세대 크라운 빅토리아는 머큐리 그랜드 마퀴스와 플랫폼을 공유하는 모델이었고, 그랜드 마퀴스와 거의 동일한 수준의 디자인으로 만들어졌다. 차체 구조는 초대 모델부터 사용했던 프레임-온-바디 방식을 그대로 이어나갔다. 차의 골격을 이루는 프레임은 수압 프레스공법을 도입한 신설계 프레임을 적용하여, 섀시 강성을 크게 올라, 한층 강건해졌다. 또한, 타코미터조차 없었던 초대 모델에 비해 편의장비를 대폭 늘렸다.



크라운 빅토리아의 엔진은 초대 모델부터 2세대까지 4.6리터 배기량과 실린더 당 2밸브 SOHC 구조를 채용한 V8 가솔린 엔진을 사용했다. 1991년 처음 개발되어 오늘날까지 쓰이고 있는 포드 모듈러 엔진(Ford Modular Engine)의 가장 초기형에 해당하는 엔진이다. 이 엔진은 크라운 빅토리아를 비롯하여, 링컨 타운카(Towncar)와 포드의 (준)고급 브랜드였던 `머큐리(Mercury)`의 그랜드 마퀴스(Grand Marquis), 포드 썬더버드, 머스탱 등에 두루 사용된 엔진이다. 초대 크라운 빅토리아의 엔진은 210마력의 최고출력과 37.3kg.m의 최대토크를 냈지만, 2세대부터 꾸준히 개선이 이루어져 최후기형에서는 239마력의 최고출력과 38.9kg.m의 최대토크를 발휘했다.



하지만 포드 크라운 빅토리아의 좋은 시절은 고유가시대의 도래와 도심형 소프트로더(크로스오버SUV)의 대두, 일본계 제조사들의 승용차 시장 장악과 함께 막을 내리고 있었다. 특히, 포드 크라운 빅토리아를 비롯한 정통 미국식 풀-사이즈 세단들은 이미 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하며 하나 둘씩 퇴출되고 있었다. 크라운 빅토리아는 구식 설계와 투박한 디자인, 나쁜 연비 등, 후대로 갈수록 일반 소비자들에게 철저하게 외면 받았다. 실제 크라운 빅토리아는 2011년까지 정식으로 생산되었지만, 포드의 승용차 라인업에서는 이미 2007년부터 제외되어 있었다는 것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포드는 승용차 시장에서 크라운 빅토리아의 자리를 파이브-헌드레드, 토러스에 넘기고 2007년부터는 기존부터 꾸준히 수요가 있어왔던 플릿카 시장에 특화시켰다. 때문에 2007년도부터는 95% 이상의 크라운 빅토리아가 플릿 시장에서만 판매되었으며, 이후 일반 판매는 완전히 맥이 끊겼다. 플릿 시장의 특성 상, 단일 사양의 모델을 대량으로 주문하기 때문에 훨씬 싼값에 판매가 가능하여 획득 단가를 크게 낮출 수 있었던 덕분에 택시 회사와 경찰을 비롯한 기업 및 각종 기관에서 크라운 빅토리아는 명맥을 이을 수 있었다. 그리고 2011년 9월, 사우디 아라비아로 수출될 마지막 1대분의 생산을 끝으로, 크라운 빅토리아는 20여년의 역사를 끝마쳤다.




크라운 빅토리아는 초기부터 미국의 경찰차로 가장 유명하다. 특히, 경찰용의 크라운 빅토리아는 이후에 제품코드 `P71`을 부여 받고 아예 별도의 모델로 분류되었다. 그만큼 경찰용의 크라운 빅토리아는 일반모델과는 다르게 만들어진다. 일례로 서스펜션의 경우, 택시나 일반 판매용의 크라운 빅토리아는 전형적인 미국식의 소프트한 승차감을 지니지만, 경찰용의 크라운 빅토리아는 한층 튼튼한 서스펜션을 사용한다. 이는 상황에 따라 고속 추격전도 소화해야 하는 미국 경찰조직의 요구가 반영된 부분 중 하나다.



파워트레인의 경우, 엔진 배기량은 같지만 더욱 고성능의 파워트레인을 사용하며, 별도의 오일쿨러를 설치하여 냉각효율을 높였다. 여기에 경찰 업무 사용되는 각종 전기 장치가 소모하는 전력을 충당하기 위해, 대용량의 배터리와 발전기가 설치된다. 뿐만 아니라, 사양에 따라서는 총격전에 대응 가능하도록 운전석과 조수석 도어, 연료탱크 등에 12-게이지 산탄총의 탄(슬러그 탄 제외)이나 .308 윈체스터(7.62mm NATO. 한국에서는 M60 기관총 등에 사용)탄까지 방호할 수 있는 방탄 패널을 설치할 수 있었으며, 연료탱크에 자동소화장치를 선택할 수 있었다. 또한, 프레임-온-바디 구조의 강건함을 살려, 불법주차 차량 등을 견인하기 위한 전용 견인장치도 설치할 수 있었다.



프레임-온-바디 구조의 후륜구동 풀-사이즈급 세단인 크라운 빅토리아는 오늘날의 기준에서는 이미 구식 설계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점때문에 미국 경찰들의 미국 경찰의 선호도가 특히 높았다. 프레임-온-바디 구조는 일체형(모노코크) 구조에 비해 튼튼한 데다, 단순한 설계 덕에 신뢰도도 높은 편이다. 유류비만 제외하면, 상대적으로 부품 비용도 저렴하고 수급도 원활하며, 정비성도 높아, 유지관리 면에서도 유리했다.




포드는 이미 20여년에 이르는 세월 동안 미국을 대표하는 특색 있는 경찰차로 활약해 온 크라운 빅토리아를 동사의 대형 세단, 토러스 기반의 신형 경찰차로 대체했다. 이 외에도 자사의 중형 SUV 익스플로러를 바탕으로 하는 SUV형 경찰차량을 내놓았으며, 이 역시 미국 각 주의 경찰 조직에서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동사의 중형 세단, `퓨전`의 하이브리드 모델을 바탕으로 한 `폴리스 리스폰더 하이브리드` 세단을 내놓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