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건, 진정 외면 받아야만 하는가?

2013-12-26     박병하

세상에는 수많은 형태와 쓰임새를 가진 자동차들이 있다. 미국이나 유럽의 도로 위를 누비는 다양한 종류의 자동차들은 세단, 해치백, 왜건, SUV, 밴, 쿠페, 픽업 트럭 등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도로위를 달리는 이에 비해 ‘다양성’이라는 부분에서는 부족한 측면이 있다. 이는 11월 현대자동차의 전체 판매대수를 분석해보면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현대차의 2013년도 11월간 전체 판매대수 약 39,000여대 중 세단 모델의 판매량이 25,000여 대로, 전체 판매의 약 65%에 달하는 비율을 보여주고 있다. 그 뒤를 이은 차종은 SUV차종으로, 약 12,500여 대의 판매량을 보이며 32%에 달하는 비율을 보이고 있다. 그 뒤를 이은 차종은 해치백, 왜건, 쿠페 순이었다.



이들 중에서 왜건의 판매량은 약 30대 내외에 불과하다. 이런 결과를 통해, 한국 시장은 그 만큼 세단의 수요가 쿠페나 왜건에 비해 비대할 정도로 편중 되어있음을 증명할 수 있다. 국내 시장에서 왜건스타일의 모델을 가장 의욕적으로 출시하고 있는 브랜드는 푸조이다. 508과 308을 기반으로 한 508 SW와 308 SW는 대표적인 왜건스타일의 모델들이다. 하지만 푸조는 왜건 대신 ‘CUV’라는 명칭을 택했다. 왜건이라는 이미지보다는 ‘CUV’이라는 컨셉의 이미지가 국내소비자들에게 관심을 끌기에 효율적이라는 판단에서이다.


국내 수입차 판매 1위를 기록하고 있는 BMW도 작년 말부터 자사의 베스트셀러인 ‘5시리즈’ 세단의 왜건 버전인 ‘투어링’ 모델을 들여왔으나, 판매량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여 2014년식부터는 투어링 모델을 출시하지 않았다.‘왜건’은 왜 국내 시장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이번 기사에서는 ‘왜건’을 주제로, ‘왜건’이 한국 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와 함께, 왜건이 갖고 있는 고유의 장단점과 그 가치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왜건, ‘왜’ 안팔리는가?


서두에서 언급하였듯이, 한국은 ‘왜건의 무덤’과도 같은 시장이다. 그렇다면 왜 한국인들은 이토록 왜건을 기피하는 것일까? 왜건이 국내 시장에서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왜건이 갖는 고유의 스타일링 때문이다.


한국인들에게 있어 왜건은 그 어떤 차종보다도 친숙하지 못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왜건은 주로 세단형 승용차의 트렁크 부분을 위로 잡아 늘리게 되는 형태로 제작이 된다. 짐 공간을 극대화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취할 수 밖에 없는 방법이다.



이러한 형태는 ‘생계형 짐차’와 같은 인상을 준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한국인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타입이다. 자동차역사가 짧은 한국은 아직도 자동차를 과시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 유류비와 세제혜택 등의 관련 법규가 전무하다.


현재는 7인승 SUV나 9인승 미니밴들이 세제혜택 대상에서 제외되어 유명무실해진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90년대 까지만 해도 7인승 이상의 자동차를 승합차로 규정하는 법규와 휘발유의 70%도 안 되는 유류비 때문에 디젤엔진을 기반으로 한 SUV와 미니밴 모델들은 소비자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디젤 엔진의 소음과 진동이 극명했던 이 시기에도 유류비와 세제혜택은 소비자들의 관심을 구매로 이어지게 하기에 충분한 매력이 있었다.


기자가 유류비와 세제혜택이 판매에 미치는 이유를 한 단락으로 소비해가며 설명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서 나온다. SUV나 미니밴들은 외모로만 본다면 왜건을 뻥 튀겨 키워 놓은 형태이다. ‘쌍용 무쏘’같은 SUV나 초창기 ‘기아 카니발’을 떠올려 보자. 크게 보면 모두 왜건의 형상을 하고 있다. 허나 그러한 형태의 원류(原流)라고 할 수 있는 왜건만은 앞서 언급한 ‘생계형 짐차’의 형태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제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왜건은 뼈대가 되는 플랫폼을 세단형 승용차와 공유하기 때문에 7인승 왜건만을 위한 별도의 생산라인을 구축하기에는 무리수가 따르는 구조이다. 7인승 승합차로 인가를 받기 위해 추가로 3열 좌석을 배치한다고 해도 쉽지 않았다. 짐을 적재할 수 있는 기본공간이 3열 좌석으로 인해 줄어들면 왜건의 장점인 여유로운 트렁크 공간의 활용폭 역시 큰 폭으로 희생되기 때문이다.


셋째, 가격이 비싸다.


가격 문제는 스타일링과 함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부분이다. 현대자동차가 출시했던 아반떼 투어링이나 대우자동차의 누비라 스패건 등의 예만 봐도 알 수 있다. 기반이 되는 세단 모델에 비해 항상 가격이 비쌌다. 현재 생산되고 있는 모델에서 예를 찾아볼 수 있다면 현대자동차의 i40가 있겠다. i40 살룬과 i40 왜건 모델의 가격이 적게는 100만원에서 많게는 120만원까지 비싸진다.


수입차도 예외는 아니다. 보면 푸조의 중형 왜건인 508 SW도 동일한 등급의 세단에 비해 140만원에서 200만원까지 비싸진다. 왜건 명가로 이름 높은 볼보도 자사의 왜건 모델에는 기반이 되는 세단형 모델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책정해 두고 있다.



물론 ‘규모의 경제’를 실현시킬 수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세단 모델과의 가격을 동등하게 할 수는 없다. 이는 어느 제조사나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한국 시장에서 세단형 모델에 비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짐차처럼 생겼으나 짐차는 아닌’ 왜건을 구매할 소비자는 많지 않다. 현실적으로 구매자도 극소수에 불과하다.


정리해 보자면 왜건은 그 태생부터가 한국 시장의 입맛에 맞지 않는 자동차다. 세단 이외의 승용 모델들이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비춰보았을 때, 한국 시장에서 왜건의 미래는 아직 어둡기만 하다.


왜건의 장점과 단점


왜건은 한국 시장의 성향에서 바라보면 전혀 매력적이지 못한 장르이다. 하지만 한국 시장의 관점으로 왜건을 무조건 폄하하는 행위는 옳지 못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왜건에게는 세단은 가질 수 없는 고유한 장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동형의 세단보다 넓은 적재공간과 뛰어난 공간 활용성을 가진다.


이 점은 왜건의 생명과도 같은 부분이다. 근본부터 짐을 많이 실으면서도 승용차처럼 편하게 운행할 수 있는 자동차로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똑같이 공간 활용성을 중시하는 해치백보다 더욱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 기본적인 가용 공간 자체가 더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차량 외부에 설치하는 각종 액세서리의 활용성 또한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승용차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다.


왜건은 대부분 기반이 되는 세단(혹은 해치백)의 가지치기 모델로서 생산되기 때문에 승용차의 장점, 주행감, 성능, 승차감, 더 나아가서는 정비 지침까지 거의 그대로 이어받게 된다. 짐을 싣고 다닐 일이 많지만 승용차의 주행 특성과 승차감을 선호하여 SUV의 둔중한 주행 감각을 기피하는 운전자에게 왜건은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물론 이렇다고 해서 한국 시장에서 왜건이 성공치 못하는 요인들을 제쳐 놓고서라도 태생적으로 가지게 되는 단점도 없지는 않다.


첫째, 주차가 세단이나 해치백 등에 비해 어려운 편이다.


C필러 뿐만 아니라 D필러까지 존재하는 차종이기 때문에 후방 시야가 세단이나 해치백보다 좋지 못하다. 하지만 이런 점들은 최근 발전한 주차 보조시스템이나 후방 카메라 등으로 충분히 극복이 가능한 부분이다.



둘째, 승용차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장점으로 언급했던 부분이지만 동시에 단점이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승용차를 기반으로 한다는 이야기는 승용차가 가지게 되는 구조적인 한계까지 그대로 이어받는다는 이야기와 같기 때문이다. 차체에 대하여 설계상의 제약이 다소 적은 편인 SUV나 미니밴에 비하면 왜건은 기반이 되는 승용차의 한계를 벗어난 설계를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SUV나 미니밴 보다 한정된 공간과 장비를 지닐 수 밖에 없게 된다는 점은 명백한 한계다. 하지만 여전히 세단과 해치백에 비해서 훨씬 넉넉한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왜건. 가장과 가족을 위한 최적의 자동차


상술했듯, 한국 시장에서 왜건은 본연의 가치를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하고 여전히 외면 당하고 있는 비운의 장르이다. 하지만 왜건에게도 장점이 있는 것 또한 자명한 사실이다. 또 그러한 점들을 하나 둘씩 추려본 결과, ‘한 대의 차를 구입해야 한다면 왜건은 가장의 자동차로 선택할 수 있는 최적의 장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세단의 특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보다 뛰어난 공간 활용성을 가진 왜건은 가장과 가족 모두에게 최대한의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장르다.



왜건의 무덤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이지만 이 땅의 더 많은 운전자들과 소비자들이 왜건의 가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게 되는 계기가 이 글로써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 끝으로, 한국 시장에 출시되는 매력적인 왜건 모델들을 몇 가지 소개해 보며 글을 마친다.


매력적인 왜건들 BEST 5


왜건은 한국에서 좋은 대접을 받고 있지는 있지만 시장에는 매력적인 왜건 모델들이 많이 포진해 있다. 여기 소개된 모델들의 순서는 순위와는 관계 없다. 각 제조사의 특색과 개성이 강한 매력적인 왜건 모델들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①현대자동차 i40


현대자동차의 i40는 i30CW 이후로 현대가 오랜만에 내놓는 왜건이자 국내 유일의 왜건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독일 러셀하임 스튜디오에서 디자인된 i40는 쏘나타를 기반으로 하지만 플랫폼과 인테리어만 공유할 뿐, 나머지는 새로 설계하여 만들어진 유럽 전략형 모델이다. 왜건형의 i40는 자사의 특허 기술이 적용된 러기지 레일 시스템을 비롯, 유럽 시장에 맞춘 다양한 사양들이 적용되어 있다. 파워트레인은 1.7 U2 VGT 디젤 엔진과 2.0 누우 GDi 엔진에 현대파워텍의 6단 자동변속기로 구성된다. 가격은 2.0 GDi PYL이 2,715만원, 2.0 D Spec이 3,025만원에 책정되어 있고, 1.7리터 VGT디젤 엔진을 고르면 170만원이 추가된다.



②푸조 508 SW


508 SW는 현대적이고 스타일리시한 508 세단의 외관과 왜건의 실용성을 모두 품고 있는 매력적인 모델이다. 프랑스식 미학과 합리주의가 그대로 녹아 든 이 정통 유러피언 왜건은 스타일과 실용성 외에도 루프의 대부분이 한 조각의 통유리로 만들어진 푸조의 시엘 루프 덕에 뛰어난 개방감을 만끽할 수 있다. 파워트레인은 1.6 eHDi 엔진과 6단 MCP 변속기, 2.0 HDi 엔진과 일반적인 6단 자동변속기 구성이 준비되어 있다. 가격은 모두 VAT포함하여 1.6 eHDi가 4,390만원, 2.0 HDi 알루어가 4,890만원이다.



③볼보 V60 D5 R-Design


보통 ‘볼보’하면 ‘안전’이라는 키워드만 떠올리게 되는데, 사실 볼보는 안전한 차 이외에도 ‘열혈남아’스러운 고성능 모델을 꾸준히 선보여 왔다. 850R, S60R 등의 모델명 뒤에 ‘R’자가 붙는 차들이 그것이다. 현재는 ‘R-Design’이라는 스포츠 패키지가 그 명맥을 잇는 중. V60 D5 R-Design은 2014년을 맞아 더욱 듬직하고 세련되게 바뀐 프론트 마스크와 함께 R-Design만의 전용 바디킷, R-Design 전용 휠, 전용 스포츠 서스펜션으로 무장했다. 파워트레인은 볼보의 직렬 5기통 2.4리터 디젤엔진으로, 215마력의 최고출력과 44.9kg.m에 달하는 열혈남아스러운 토크를 뿜어내고, 개선된 성능의 볼보 기어트로닉 변속기가 매칭되어 7.7초의 0-100km/h 가속 시간을 보인다. 가격은 VAT포함 5,790만원이다.



④BMW 320d 투어링 M 스포츠 패키지


이 스포츠 왜건은 3시리즈 세단과 비교해도 크게 차이가 없는 뛰어난 성능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320d 투어링의 파워트레인은 184마력의 최대출력과 38.8kg.m의 최대토크를 뿜어내고 0-100km/h 가속 시간이 7.1초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것도 모자라서 남자들의 심장을 자극해 줄 ‘M’ 스포츠 패키지로 무장하고 있다. 여기에 실용성을 충분히 챙길 수 있는 왜건 바디는 일상과 가족을 위한 배려가 충분하다. 320d 투어링 M 스포츠의 가격은 VAT포함 5,800만원이다.



⑤메르세데스-벤츠 CLS250 CDI 슈팅브레이크


왜건이 ‘짐차’같다고 해서 품위가 떨어진다고 주장하는 이들이여, 이 차를 보라. 이 CLS는 자신을 ‘슈팅브레이크’라 불러 달라고 한다. ‘슈팅브레이크’라는 말은 19세기 영국 귀족들이 사냥을 다니면서 사용하던 고급차에서 기인한다. 어원 자체를 ‘짐마차’로 두고 있는 ‘왜건’과는 격을 달리 하고 있는 것. 차 전반을 아우르고 있는 분위기부터 색다른 우아함을 뽐낸다. 고급스런 분위기의 메르세데스를 원하면서도 실용성을 추구하는 이들이라면 노려볼 가치가 있다. 가격은 VAT포함 8,740만원이다.


글: 박병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