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이슬러 그랜드 보이저

2012-08-29     안민희

크라이슬러 그랜드 보이저는 미니밴의 터줏대감이다. 1974년 플리머스 브랜드로 보이저란 이름을 달고 등장했다. 1984년엔 미니밴으로 새롭게 단장해 크라이슬러 브랜드로 선보였다. 새로운 세그먼트를 만들어낸 원조다. 그래서 크라이슬러는 그랜드 보이저를 미니밴의 시초라 부른다.



당시 그랜드 보이저의 이점은 확실했다. 풀 사이즈 트럭보다 작은 차체로 여러 명을 실어 날랐다. 또한 승차 공간과 적재 공간을 넘나드는 범용성은 트럭이나 세단에선 맛볼 수 없는 미니밴의 장기였다. 게다가 세단에서 가져온 스타일링은 미니밴을 상용차와 확실히 다른 차로 받아들이게 했다. 그래서 그랜드 보이저는 북미시장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자식교육에 열성인 사커맘의 차로도 인기가 높았다. 작고 효율적인 일본차의 공습이 거셀 때도 그랜드 보이저는 의기양양했다. 크고 여유로운 공간을 자랑했다.


국내에 수입되는 그랜드 보이저는 2008년 선보인 5세대 모델로 2011년 부분 변경을 거쳤다. 그랜드 보이저의 각 세대를 살펴보면, 크라이슬러 디자인의 변천사를 볼 수 있다. 세대를 거듭나며 크라이슬러의 디자인을 오롯이 담아내서다. 5세대는 크라이슬러의 플래그쉽 세단, 300C의 스타일을 품었다. 이전의 둥그런 모습은 쳐내고, 다부지게 다듬었다. 속칭 ‘잘 나가는’ 300C의 스타일을 가져와 덩치를 키웠다. 넓은 실내 공간을 위해서다.



변경을 거치며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것은 실내다. 직선 위주의 딱딱한 디자인이었던 대시보드와 센터페시아를 새로 디자인했다. 흰색 바탕의 계기판은 검게 변해 푸른빛을 머금고 링 안으로 파고들었다. 가운데는 작은 LCD 창을 달아 운행 정보를 살펴볼 수 있다. 오목하게 부풀린 센터페시아 위쪽엔 내비게이션을 달았다. 송풍구 아래 붙은 공조장치 역시 새로 디자인했다. 공조장치 아래엔 멀티미디어 조작부를 달았다. 센터 콘솔엔 컵홀더가 4개다. 숨겨진 컵홀더를 꺼내면 앞좌석에만 6개의 컵홀더가 자리한다.


2 2 3 좌석 구성을 갖춘 실내는 형태가 자유자재로 변한다. ´스토우 앤 고(STOW and GO)´ 시스템 덕분이다. 2열과 3열 좌석을 접어 바닥으로 숨길 수 있다. 다만 좌석을 숨겨 넣을 공간 때문에 발 놓는 바닥 높이가 살짝 높아졌다. 따라서 2열과 3열 좌석에 앉아 다리 공간을 직접 가늠해볼 필요가 있다.



국내에서 판매하는 그랜드 보이저는 최고 288마력의 힘을 내는 V6 3.6L 가솔린 엔진을 얹는다. 자동 6단 변속기와 맞물려 앞바퀴를 굴린다. 연비는 7.9km/L. 유럽형 모델에는 161마력을 내는 직렬 4기통 2.8L 디젤 엔진을 달지만 아쉽게도 국내엔 들어오지 않는다. 유럽 기준 복합 연비가 11.9km/L이니 연비만 생각하면 디젤 모델이 탐난다. 그랜드 보이저를 고를 땐 두 패키지중 하나를 선택해야한다. 패밀리 패키지와 VIP 패키지다. VIP 패키지는 2열의 스토우 앤 고 기능을 없애고 고급 사양의 좌석을 달았다. 풀 사이즈 시트를 달아 장거리 운행을 좀 더 편안하게 했다.


패밀리 패키지는 2열 스토우 앤 고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2열과 3열을 모두 접으면 최대 3912L의 공간이 펼쳐진다. 바이크를 세워 실을 수 있을 정도다. 패밀리 패키지의 센터콘솔은 앞뒤로 움직여 테이블처럼 쓸 수 있고 VIP 패키지의 센터콘솔은 센터페시아와 붙어있다.



다른 편의사양은 같다. 2열과 3열에 각각 하나씩 단 2개의 모니터가 눈에 띈다. 크기는 9인치로 넉넉한 편. 각 모니터마다 입력 단자를 따로 달아 서로 다른 영상을 틀 수 있다. 경쟁자는 갖지 못한 장점이다. 안전장비는 전자제어 주행 안정 시스템(ESC), 브레이크 어시스트(BAS), 타이어 공기압 모니터링 시스템(TPMS)을 달았다. 에어백은 커튼을 포함, 총 6개를 단다. 커튼 에어백은 길이가 길어 3열까지 모두 감싼다. 또한 충격 감지 시 안전벨트를 당겨 탑승자를 보호하는 프리텐션 기능도 더했다.


그랜드 보이저의 가격은 5910만원. 두 패키지 모두 가격은 똑같다. 솔직히 그랜드 보이저의 가격은 비싸다. 디젤 엔진 얹어 더 나은 연비를 자랑하는 카니발이 훨씬 싼 가격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수입 미니밴을 고려했다면, 그랜드 보이저를 염두에 둘 만하다. 토요타 시에나가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을 앞세웠지만, 고급 편의장비는 그랜드 보이저가 앞선다. 단, 7.9km/L의 연비가 발목을 잡는다.


글 안민희│사진 크라이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