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했던 차] 현대차의 포니

2017-07-04     윤현수

숙원과도 같았던 럭셔리 브랜드 런칭, 고성능 및 스포츠 디비전인 ´N´의 출범 등 현대자동차는 `현대` 브랜드만의 정체성을 찾고자 여러 가지 시도를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다양한 이미지를 강조하며 브랜드 고유의 가치를 완성하겠다는 의미이다.



더불어 현대차는 최근에서야 `헤리티지(Heritage)`라는 단어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고, 그 결과로 그랜저 디자인에 이러한 헤리티지를 접목시켰다. 현대차를 대표하는 헤리티지는 현대차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 차로부터 시작된다. 주인공은 그들이 최초로 독자개발을 통해 탄생시킨 `포니`다.


70년대 당시, 한국은 자동차 제작에 따른 원천기술의 보유가 전무했다. 따라서 독자 생산이 불가능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외국 자동차를 부품 상태로 국내로 들여와서 조립 이후 생산 및 판매하는 방식을 따라야만 했다. 신생업체였던 현대자동차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현대차는 당시 포드에서 공급받은 자동차를 들여와 `포드 20M`, `코티나` 등을 생산했다.



당시 현대자동차를 이끌던 故 정주영 회장은 이러한 천편일률적 방식을 벗어나고자 했다. 원천기술이라곤 전무했던 신생업체가 독자모델의 생산을 진행한다는 것은 수익과 현실적 측면에서 불가능에 가까웠다. 사내에서도 이러한 방향에 대해 의문을 품고 반대를 하는 사람들도 많았으나, 정 회장은 완고했다. 자동차 제조사라면 언젠가는 시도했어야 할 숙원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당시 정부가 실시했던 자동차 부품 국산화 정책은 이러한 시도를 부추기기도 했다.


현대차는 자사의 첫 독자모델 완성을 위해 일본 미쓰비시와 함께 계획을 진행했다. 플랫폼과 엔진은 미쓰비시 제품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남은 것은 `디자인`이었다. 그러나 디자인 수준이 높지 않아 디자인 역시 해외 업체에게 맡기는 것으로 단락 되었다.




한국 첫 고유모델에는 `조랑말`을 뜻하는 포니라는 이름을 붙였다. 각이 살아있는 디자인은 이탈디자인의 거장, 조르제토 주지아로의 솜씨로 만들어 냈다. 포니는 그가 디자인한 유럽제 자동차와 매우 유사한 모양새를 지녔다. 한국 최초 고유 모델에 폭스바겐 골프, 란치아 델타와 같은 명차의 스타일링이 입혀진 것이다.




미쓰비시의 기술력이 깃들고, 주지아로의 손길로 매만져 탄생한 포니는 1974년, 55회 토리노 모터쇼에서 처음으로 데뷔했다. 이후 포니는 1년 4개월 만에 출시되며 한국 국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시판 첫 해 1만 726대가 판매되며 승용차 연간 판매량 43.5%를 점유했다. 단일 모델로 세그먼트를 정복한 것뿐만 아닌, 말 그대로 한국 자동차 시장을 정복하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특히 당시 한국 자동차 시장을 주름잡던 중형차를 밀어내고 시장의 왕좌를 차지했다는 데에도 의의가 있다. 미쓰비시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FR 소형차였던 포니는 날렵한 몸놀림과 뛰어난 연비를 자랑하며 한국 소비자들을 끌어 모았다.


당시 1,238cc와 1,439cc, 두 가지 배기량의 미쓰비시제 새턴 엔진을 탑재했고, 패스트백 세단 모델을 기본으로 3도어 해치백, 5도어 왜건 모델까지 추가하며 다양한 모델 라인업을 선보였다.



또한 1976년에는 해외로 수출되기 시작하며 `대한민국 첫 수출 승용차`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다섯대로 시작되었던 포니의 수출량은 1978년 1만 2200대 가량으로 늘어나며 외국인들에게도 `조랑말`의 매력을 널리 알렸다. 여담으로, 1976년 에콰도르에 수출되었던 포니가 20년 간 150만km를 주행하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말 그대로 `금의환향`이었다.


넓은 선택폭과 뛰어난 가치는 높은 판매량을 꾸준히 유지시켰고, 1982년에는 후속 모델인 `포니 2`가 출시되었다. 포니 2로 변화를 이루며 종전의 3도어 / 5도어 모델은 판매량의 부진으로 단종되었다. 또한 패스트백 세단 형태였던 차체는 전형적인 해치백 형태로 탈바꿈했다. 전편보다 나은 속편은 없다고 했으나, 포니 2는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1984년, 북미로 수출되기 시작한 포니는 캐나다에서 수입차 판매 1위를 달성하는 쾌거를 보였다.



포니는 그렇게 후기 모델까지 꾸준한 활약을 보이며 현대자동차의 효자모델로 자리매김했다. 판매량 호조는 보다 적극적인 모델 개발을 가능케 했고, 프레스토와 포니 엑셀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명예롭게 시장에서 퇴장했다.



국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덕에 포니는 한국 중장년층을 비롯한 노년층의 추억에 선명히 남은 자동차다.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포니는 보는 이들에게 사실감을 더해주기 위해 자주 등장한다. 상기를 위한 일종의 `오브제`인 것이다. 이런 자동차 문화의 상징성과 역사를 인정받아 포니는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제553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포니는 한국 70년대 당시 한국 자동차 산업의 이정표를 제시한 자동차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과 함께 현대자동차라는 한 기업뿐이 아닌 한국 자동차의 역사에 있어 `기념비`를 세웠다. 수익만을 쫓으려 했다면 포니는 탄생하지 못했다.


포니는 한국 운전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러나 현재는 포니를 길거리에서 만나보기란 굉장히 어렵다. 여러 역사를 세운 기념비적인 자동차가 정작 한국에서 보기 힘들다는 것은 단순히 아쉬움의 표현만으로 해갈되지 않는다. 포니는 그렇게 우리의 추억 속에서 열심히 달리고 있는 특별했던 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