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세단의 품격을 재정의하다 - 메르세데스-벤츠 E400 4MATIC 시승기

2017-07-11     박병하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는 1947년에 처음 등장한 170V시리즈를 시작으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70여년에 이르는 역사를 써 내려오면서 상업적인성공을 거듭한 E세그먼트 세단이다. 지난 해 풀 모델 체인지를거치며 10세대로 거듭난 E클래스는 S클래스로부터 시작된 메르세데스-벤츠의 새로운 기조의 디자인을 입고반자율주행과 같은 첨단 기술을 품었다.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는 출시 직후 선풍적인 인기로 수입차 시장부동의 연간 판매 1위였던 BMW 5시리즈를 제치는 기염을토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새로운 E클래스를시승하며 새로운 시대의 메르세데스 고급 세단의 매력을 직접 경험해 본다. 시승한 E클래스는 AMG모델을 제외한 E클래스모델 중 최상위 모델에 해당하는 E400 4MATIC 이그제큐티브이다.VAT 포함 가격은 9,870만원.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는메르세데스-벤츠 승용 라인업의 허리를 담당하는 모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라인업 내에서 가장 색다른 매력을 지닌 모델이기도 했다. 외모가 특히 그랬다. 다른 모델들이 S클래스 등을 조금씩이라도 닮은 외모를 하고 있는데 반해, E클래스는 메르세데스-벤츠 가의 일족이라는 사실만을알 수 있는 몇몇 디테일을 제외하면, 항상 자기만의 색채가 강했다. 특히7세대(W210)부터 이어져 내려왔던 2연장 헤드램프와 같은 디테일은 멀리서도 단번에 E클래스임을 인식할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나 지난 9세대 모델의 페이스리프트를시작으로 그것도 옛말이 되었다.

그리고 10세대 E클래스는현행 메르세데스-벤츠 모델들과 마찬가지로, S클래스를 쏙빼 닮은 외모를 갖게 되었다. 이전까지의 E클래스와는 전혀다른 느낌이다. 기존에 E클래스가 가지고 있었던 고유의 요소들은완전히 배제되었고 철저하게 S클래스의 디자인을 따른 모습이다. 7세대부터이어져 온 2연장 헤드램프는 두 줄의 LED 주간상시등으로흔적만 남겨 놓았다.

이러한 디자인으로의 변화는 꽤나 오랜 시간 동안 다른 메르세데스-벤츠와는남다른 인상을 주었던 E클래스만의 멋에 매력을 느끼고 있었던 기자의 입장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있다. 확실히 현재의 메르세데스-벤츠가 취하고 있는 디자인 정책, 혹은 기조가 제품 디자인의 통일성을 확보하고 이것이 좋은 방향의 시너지를 이루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종래에 비해 크게 늘어난 판매량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E클래스의 실내도 S클래스를닮아 있다. 특히, 대시보드 주변의 디자인은 그야말로 판박이다. 디지뇨(Designo)트림이 적용된 실내는 고급스러운 질감의 가죽으로휘감겨 있으며, 오선지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패턴의 대시보드 장식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 일조한다. 실내 곳곳의 만듦새 역시 격이 다른 느낌을 준다.

스티어링 휠은 적당한 크기, 적당한 림 굵기, 그리고 우수한 그립감을 지녔다. 좌우 스포크에는 메르세데스-벤츠 최초의 터치패드식 컨트롤러가 탑재되어 있다. 다만 이 같은 장치는사용자에 따라 다소 생경한 느낌을 줄 수 있다. 계기반과 중앙 디스플레이는 하나가 되었다. 12.3인치에 달하는 두개의 디스플레이를 하나의 프레임 안에 배치한 구조는 S클래스에서가져온 것. 하나로 연결된 두 개의 디스플레이는 계기반과 차량 정보 및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의 역할을수행하며, 클래식, 스포트,프로그레시브 등의 전용 테마 또한 마련되어 있다. 커맨드 컨트롤의 사용 환경도 기존에 비해확실히 개선된 느낌이다. 오디오는 독일의 하이엔드급 오디오 제조사인 부메스터의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

앞좌석은 편안하고 부드럽다. 유려한 패턴으로 디자인된 앞좌석은 운전자의등과 옆구리까지 부드럽게 감싸면서도 든든하게 받쳐준다. 시승한 E4004MATIC 익스클루시브 모델에는 다리받침과 4방향 허리받침, 그리고 전동식 머리받침을 포함한 16방향으로 전동조절이 가능하며, 3단계의 열선 및 통풍 기능을 제공한다.


뒷좌석도 안락한 착좌감과 적당한 등받이 각도, 그리고 기존에 비해더욱 넉넉하게 배려된 공간 설계로 만족감이 높다. 다만, 차급의특성 상, 앞좌석에 비해 편의장비는 약간 부족한 편이다. 트렁크역시, 준대형급의 세단으로서 충분한 수준의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시승한 E400 4MATIC의 엔진은 V6 가솔린 터보 엔진과 자동 9단 9G-TRONIC변속기로 파워트레인을 구성하고, 상시사륜구동 시스템인 4MATIC을통해 네 바퀴를 굴린다. V6 가솔린 터보 엔진의 최고출력은 333마력/5,250~6,000rpm, 최대토크는 48.9kg.m/1,600~4,000rpm에달한다.

E400 4MATIC은 적어도 정숙성과 승차감 면에 있어서는 동급 E세그먼트 비즈니스 세단계의 귀감과 같다. 마치 고급 세단이란 이정도로 정숙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불쾌한 소음은 커녕, 동력 계통에서 오는 진동도 거의 없다시피한 수준이다. 매끄러운 회전질감을지닌 6기통 엔진과 필요할 때 정확한 기어 단수에서 부드럽게 동력을 전달해주는 변속기는 주행 내내 운전자에게어떠한 위화감이나 불쾌함도 일으키지 않는다.

전후륜 모두에 멀티링크를 적용하고 에어 바디 컨트롤(Air BodyControl)까지 탑재한 E400 4MATIC의 승차감은 동급에서 가장 훌륭한 수준이다. 에어 바디 컨트롤은 종래의 에어매틱(AIRMATIC) 서스펜션과는다르게, 다중 챔버(Multi-Chamber System) 개념을채용하여, 공기의 저장량을 확장, 더욱 유연한 노면 대응을구현한다. 안락함은 물론, 시종일관 안정감을 유지한다. 큰 요철을 통과한 경우에도 차체가 출렁거리거나 자세를 바로잡지 못해 허둥대는 모습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어지간한 작은 요철들은 그저 ‘그러한 것이 존재했다’는 정보만 허리로 전달해 줄 뿐이다. 물론, S-클래스의 매직 바디 컨트롤만큼의 신기에 가까운 느낌은 아니지만, E세그먼트세단의 승차감으로서 가장 모범적인 승차감이라고 하기에 충분하다. 고급스러움과 안락함에 초점을 맞춘 정통파고급 세단의 측면에서 더욱 그렇다.

E400 4MATIC의 V6 터보엔진은 중저속은 물론, 고속 영역까지 힘차게 차를 밀어 붙여주는 동력 성능을 제공한다. 저회전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강력한 토크와 고회전영역에서 매끄럽게 뻗어 나오는 출력곡선 덕에 영역을 가리지 않는힘찬 가속력을 실감할 수 있다. 다만, 걸출한 동력성능과는달리, 의외로 가속시의 감각은 꽤나 건조한 편이다. 고회전영역에서도 엔진의 소음이 상당히 억제되어 있는 편이며, 9G-트로닉 자동 변속기의 반응이 상당히 절제된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상시로 안정감을 올곧게 유지하는 차체 및 하체 반응 때문에 실제 속도에 비해 빠르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스포츠 모드로 전환해도 그다지 극적인 변화가 와 닿지는 않는다. 빠른시간 안에 원하는 만큼의 속도는 올려주고도 남지만, 감각적인 측면이 억제되어 있는 타입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이러한 모습이 고급 세단으로서의 격식을 지키는 절제된 모습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구불거리는 고갯길에서도 E400 4MATIC은 고급 세단으로서의 모범을보인다. 스티어링 휠을 감을 때마다 아주 적정한 시점에서, 적정한양만큼 정확하게 몸을 비틀며, 운전자가 원하는 경로를 그대로 그려 나간다. 정확하고 분명한 차체 반응과 더불어, 급격한 하중의 이동 중에도안정감을 쉽사리 잃지 않는다. 차체가 작지 않다는 것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지만, 둔중한 기동으로 운전자를 답답하게 하거나 지나치게 신경질적인 반응으로 품위를 손상시키지 않는다. 탄탄하면서도 유연한 느낌을 지닌 섀시와 탄력 있는 하체 덕분에 빠른 페이스에서도 쉽게 자세가 무너지지 않는다. 자극적인 맛은 부족할 지언정, 코너링 자체는 세단으로서 만족하고도남음이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근래 자동차 업계의 거대한 흐름 중 하나인, ‘자율주행’을 선도하고 있는 기업이다. 그리고 메르세데스-벤츠의 허리를 맡고 있는 E클래스에는 업계를 선도하는 메르세데스-벤츠의 기술력을 동원하여 완성한반(半)자율 주행(Semi-autonomousDrive) 시스템이 탑재되어 있다. 이 기능은 선행 차량과의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어댑티브크루즈 컨트롤의 기능은 물론, 고속도로 등, 선형이 완만한도로에서의 제한적인 자율주행 기능을 제공한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의 경우, 설정 속도와의 차이가 큰 상황에서가속을 일부러 서두르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천천히 가속하며, 일정한거리 내에서는 급작스러운 끼어들기에도 어느 정도 대응하는 등, 최상급의 정밀함을 보여준다. 스티어링 휠 조타를 보조하는 기능 역시 선형이 완만한 고속도로에서는 운전자가 딱히 하나하나 보정하지 않아도될 만큼 차선을 잘 유지한다. 물론, 곡률이 조금이라도 커지면, 조향 기능이 제 기능을 하지 않으며, 운전대를 잡으라는 경고 메시지를진동과 소리로 전달한다. 이 기능은 어디까지나 운전자를 `대신`하는 개념이 아닌, 운전자를 `보조`하는 개념이라는 것을 반드시 유념해야 한다.


연비의 경우, 3리터급의 6기통가솔린 터보 엔진과 자동변속기, 상시사륜구동을 사용하는 세단으로서는 크게 부족하지 않은 수준을 보인다. 시승차인 E400 4MATIC의 공인연비는 도심 7.9km/l, 고속도로 11.0km/l, 복합 9.0km/l. 시승 중 트립컴퓨터로 기록한 연비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 도심에서는공인 연비인 7.9km/l를 미미하게 웃도는 8.0km/l의평균연비를 기록했다. 다만, 이는 교통상황이 매우 원활한경우에 한정된 이야기이고, 출퇴근 시간대의 서울역 주변이나 강남의 도심지 일대에서는 그보다  낮은 6.6km/l를 기록했다. 반면, 고속도로에서 100km/h로정속주행을 한 경우에는 12.9km/l의 연비를 기록했다.

어떠한 제품에 대해 소비자가 그것을 선뜻 선택할 수 있게 해 주고, 누구나가그 제품의 가치와 우수함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데에는 기본적인 밑바탕, 기본기가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고급 자동차라면, 오랜 전통과 더불어,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혁신이 수반되어야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또한, 고금(古今)을 막론하고 고급 세단의 가장 중요한가치 중 하나는, 그 차를 직접 타고, 운전해서 내릴 때까지의모든 경험이 통상적인 자동차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수준의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메르세데스-벤츠는 그것을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메르세데스-벤츠 E4004MATIC 이그제큐티브는 이 ‘경험’의 질적인 면을 과거에 비해 한층 향상시켰고, 그것을통해 변화를 실감하게 했다. 새로운 E클래스, 그 중에서도 E400 4MATIC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S클래스를 한 사이즈 축소시켜 놓은 듯한 내외장 디자인도, 첨단 반자율주행 기술도 아니었다. 바로 차가 가진 기본적인 성능과 질감에 있다.

이 우아하면서도 정교하게 마무리된 세단은 완성도 높은 섀시와 힘차고 든든한 구동계통, 그리고 시종일관 편안함을 안겨주는 정숙성과 승차감, 그리고 주행질감이 놀라울 만큼 정교하게 양립하고 있다. 이는 안락함과 품위를 추구하는 고급 세단으로서 마땅히 갖춰야할 것, 그 이상을 보여준다. 여기에 그 품위를 한층 높여주는새로운 외형과 감성품질, 그리고 시대를 선도하는 신기술들이 절묘하게 녹아 든 E400 4MATIC은 이 시대의 고급 세단이 갖춰야 할 미덕과 ‘품격’을 재정의할 수 있는 차라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