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대형 세단, 대우 쉬라츠

2017-09-26     박병하

구 대우자동차(이하  대우차)는 예부터 고급 세단에 강했다. 옛 신진자동차 시절부터 '크라운'과 '레코드' 시리즈로 고급 승용차 시장을 선점하는 한 편, 1980년대에는 ‘로얄’ 시리즈를 통해 고급차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특히 로얄 시리즈는 대우자동차의 최전성기를 상징한다. 하지만 현대자동차(이하 현대차)가 미쓰비시와 손잡고 만들어 낸 그랜저에게 결국 시장을  내주면서 대우차의 세단 왕국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대우차는 그랜저에게 밀리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갖은  수를 동원했다. 후륜구동 세단 프린스를 한층 고급화시킨 브로엄을 내놓는 한 편, 혼다와의 기술제휴를 통해 2세대 레전드를 ‘아카디아’라는 이름으로 라이센스 생산하는 등, 잃어버린 세단 왕국의 재건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당시 대한민국의  세단 시장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아 버린 그랜저의 아성을 무너뜨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대우차는 높은 수익을 보장하는 세단 시장을  포기할 수 없었다. 사실 상 경차를 제외한 대부분의 세그먼트에 걸쳐 현대차에 밀리는 상황에서 대우차에  상승기류를 가져다 줄 수 있는 방책은 혁신적인 새로운 고급 세단의 등장이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대우차가  추진한 프로젝트의 결실이 바로 1997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등장한 ‘쉬라츠(Shiraz)’ 컨셉트였다.


대우 쉬라츠 컨셉트는 5m를 약간 넘는 전장(5,007mm)과 1,873mm의 폭을 지닌 대형 세단이다. 차명인 쉬라츠는 고급 레드  와인의 이름 중 하나에서 가져왔다.


디자인의 측면에서는 당시 대우자동차의 시그니처 스타일이었던 3분할 라디에이터 그릴이 강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3분할 라디에이터 그릴은 당시에도 상당히 파격적인 스타일이었지만 이를 대형 세단의 틀에 잘 녹여 낸 느낌을 준다. 아울러 전반적으로 곡선 기조의 단순하고 우아한 차체 형상은 레간자, 누비라, 라노스 등, 당대 대우자동차 모델들의 스타일링 요소를 공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누비라 2의 헤드램프와 휠 디자인이 이 차와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우 쉬라츠의 개발은 대우차가 인수한 영국 워딩 테크니컬  센터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쉬라츠는 아카디아의 설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따라서 구동방식은 전륜구동이며, 엔진을 세로로 배치하게 된다. 당초 계획에는 2.5리터의 6기통  엔진과 새로 개발한 4.0리터의 V8 엔진을 탑재할 계획이었다.


이것이 만일 실현되어 양산에 이를 수 있었다면, 쉬라츠는 현대차의 에쿠스를 제치고 국산차 최초의 V8 대형 세단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견해가 주를 이룬다. 쉬라츠의 구동방식과 엔진 배치 때문이다. 쉬라츠는 아카디아의 설계를  바탕으로 하므로 엔진을 세로로 배치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기에는 아카디아의 엔진룸이 상대적으로 좁았기  때문이다. 2.5리터 엔진은 훗날 매그너스에 처음 탑재된 대우 XK엔진의 2.5리터 버전인 것으로 추정된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는 법이지만, 대우 쉬라츠는 성공적으로 개발이 완료되었다면  대우자동차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카디아의 플랫폼을 바탕으로  했지만 신개발 엔진과 대형 세단의 포로포션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디자인 등을 앞세워 세단 왕국의 재건에 일조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역사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본래 쉬라츠의  양산형의 개발이 완료될 시점으로 점쳐졌던 1997년 12월, 대우차가 쌍용자동차차(이하 쌍용차)를  인수하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대우차가 쌍용차를 인수한 것은 쉬라츠에게 있어서 대재앙이었다. 쌍용차에는 이미 상당한 수준의 상품성을 갖춘 최고급 대형 세단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 차는 바로 ‘체어맨’이다. 그리고 대우차는 아직 개발 도상에 있는 ‘박힌 돌’보다는 이미 완성되어 있는 ‘굴러온 돌’을 선택했다. 이미 생산이 되고 있는 체어맨과 라인업이 겹친다는 이유로  쉬라츠의 개발을 전면 중지시킨 것이다. 이 때문에 쌍용 체어맨은 한 동안 ‘대우 체어맨’으로 팔려야 했다.


대우가 쉬라츠의 개발을 포기한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데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선택은 향후 대우차의 제품  개발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 하나를 버린 셈이 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쉬라츠 이후 GM대우와 오늘날의 한국GM에 이르기까지 야심 차게 출시했던 대형 세단들은 줄줄이 실패를 겪었다. 물론, 근본적인 원인은 제품의 시장성과 시장의 성격과 요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그들의 불찰에 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 모든 차종이 쉬라츠의 후대에 출시된 모델들이라는 점이 기묘하게 작용하여, 인터넷 상에서는 ‘쉬라츠의 저주’라는, 웃지 못할 농담이 떠돌아 다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