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바다의 도시 여수 여행기

2017-10-13     김상혁
서울에서 운전대를 잡고 여수로 향했다. 약 4시간에 걸쳐 도착한 여수. 도착한 시간은 해가 지기 직전인 7시 반이었다. 부랴부랴 발걸음을 재촉에 다다른 곳은 여수 여객터미널(전라남도 여수시 교동 682-1)이다. 오가는 여객선과 바다에 비치는 조명들, 그리고 조금은 이른 밤바다를 눈에 담았다.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르던 가수가 담아냈던 그 여수의 밤바다였다.

여객터미널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본격적으로 밤바다 산책에 나섰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이내 이순신 장군의 동상과 거북선 모형이 바닷가 입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가볍게 거북선을 둘러본 후 길을 따라 걸었다. 여객선 터미널과 멀어질수록 터미널의 네온사인은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저 멀리에는 돌산대교가 색색들이 모습을 바꿔댔다. 휘황찬란한 빛을 내며 유람선은 호기롭게 내 앞을 가로질렀고 유람선이 가렸던 시야 뒤쪽으로는 자그만 섬(장군도)이 자리하고 있었다.

장군도 역시 네온사인으로 옷을 둘러 입었고 일정한 간격을 두고 옷 색깔을 바꿔댔다. 분명 여수의 밤바다는 환상만큼 웅장하지는 않았으나 끊임없이 빛을 발했다. 발걸음 내딛는 순간순간마다 바다 냄새가 코끝으로 스며들었고 여수를 찾아든 관광객들의 웃음소리와 현지 사람들의 일상 대화, 거리 곳곳 노래를 전하는 사람들과 북적였다.

20여 분을 걷다가 마주하게 되는 곳은 ‘하멜 등대’다. 등대로 가는 길목은 푸른색 네온이 길을 터주고 있었으며 하멜 등대는 빨간 기둥의 자태를 당당히 보이고 서 있었다. 타 지역의 등대와는 다르게 하멜 등대는 낙서하나 없이 모습을 지키고 있었다. 당당하다 못해 위엄이 있는 모습이었다. 숱한 바닷바람을 맞아가며 버티고 버텨온 세월이 투영됐다. 흡사 이순신 장군, 그리고 이름 없는 일상 속 누군가였을 것이다.

이튿날 일출을 보기 위해 돌산공원 전망대(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돌산로 3600-1)를 찾았으나 지독한 물 안개와 구름으로 붉은 하늘만 바라보고 내려왔다. 일출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벽화마을을 찾았다. 여타 벽화마을처럼 좁은 골목과 80년대를 연상시키는 가옥들, 경사진 언덕과 계단들이 즐비해 있었다. 특색을 갖추기 위함이었는지 여수 벽화마을에는 만화가 허영만 씨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날아라 슈퍼보드’, ‘타짜’ 등의 그림은 물론 허영만 씨 개인의 일상을 그림으로 풀어놓기도 했다.

전라도의 음식이 맛있다는 건 이미 누구나 아는 사실. 특히 여수에서는 간장게장과 돌산 갓김치가 유명하다고 한다. 간장게장 골목(먹자골목 개념)이 있다고 하지만 숙소와 가까운 오동도 근처 음식점으로 향했다. 음식점마다 다르겠으나 게장은 탕과 양념, 간장으로 각 종류가 나온다. 밑반찬도 물론 엄청난 양이 나오는데 1인이 혼자 먹기에는 무리가 있다. 상다리가 휘어진다는 전라도 밥상은 예상이 훌쩍 뛰어넘는다. 다만 아쉬운 게 있다면 게장 정식을 제외하고는 1인 주문이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이다. 여수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이 부분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오동도 역시 여수의 볼거리로 부족함이 없다. 오동도는 멀리서 보면 오동잎을 닮아 오동도라 불리게 됐고 섬 안은 동백나무로 채워져 동백섬이라 불리기도 한다. 울창한 숲 속에 자리한 대나무 터와 깎아지는 절벽들은 말 그대로 절경이다. 홍콩 무협영화가 떠오르는 숲은 발걸음을 거니는 동안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준다. 그러다가도 파도가 바위에 부딪치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면 아찔한 절벽과 푸른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산책로를 따라 만나는 마지막 장소는 음악분수대다. 음률에 따라 물을 뿜어내는 분수 역시 청아한 느낌을 간직하기에 더할 나위 없다.

오동도 음악분수 https://youtu.be/lkPRaq5Lc7M

마지막 종착지는 향일암으로 원효대사가 수행했던 것과 일출로 유명한 곳이다. 지리적으로 돌산도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여수항을 기준으로 약 30km 거리다. 향일암으로 가는 길은 저 멀리 고기잡이배와 지평선이 보여 감성적인 드라이브하기에 적격이다.

향일암(전남 여수시 돌산읍 향일암로 60)에 도착 후 계단을 올라 대웅전을 가리키는 푯말이 나오고 나서야 암자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이 보였다. 대웅전으로 가는 길은 좁은 산길과 바윗길을 거쳐야 하는데 동굴을 지나기도 하고 바위틈을 지나기도 해야 한다. 평소 관광객이 찾는 시간과 상황에 따라 차이는 있겠으나 늦은 저녁에 도착한 향일암은 고요하고 영험한 분위기였다. 또한 한걸음 한 걸음마다 신비함과 신기함이 기다리고 있었으며 인간이 가진 기본적은 본능, 호기심을 이끌어냈다.

마침내 대웅전에 도착했고 인적이 없는 절벽, 고요한 암자에 목탁소리가 퍼져나갔다. 혹여 독경에 방해가 될까 까치발을 들고 이리저리 눈과 발을 옮겼다. 그러다가 원효대사의 좌선 바위를 발견했다. 널찍한 바위 앞으로는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었고 자연스럽게 좌선에 든 원효대사를 투영했다. 저런 곳에 앉아 생각에 잠기면 깨달음을 얻는 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 바위는 부처가 인간에게 내린 깨달음의 선물일지도 모른다. 비록 바위 위에 앉지는 못했으나 바라만 보고 있어도 명상에 잠기게 되는 영역, 그곳에서 아주 잠시 인간을 탈피한 채 세상을 관망하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