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고도 뜨거운 심장, 엔진]혼다 F20C 엔진 편

2017-11-30     박병하

자동차의 엔진은 두 가지의 상반된 속성을 가지고 있다. 한 가지는차가움이고, 나머지 하나는 뜨거움이다. 이렇게 두 가지의상반된 속성을 갖는 이유는 금속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증기기관으로부터 시작된 엔진의 역사이래, 인류는 항상 금속으로 엔진을 만들어 왔다. 최근에는 재료역학의 발달로인해, 금속 외의 다른 합성 재료를 사용하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지만,여전히 지구상의 모든 엔진의 주류는 금속이다. 강철과 알루미늄 등의 금속은 엔진이 잠에서깨어난 시점부터 가동 시간 내내 발생하는 고열과 마찰 등의 모든 부담을 감당할 수 있으며, 대량생산에도적합하기 때문이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차가우면서도 뜨거운 자동차의 심장, 엔진의 세계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본 기사에서 다룰 수많은자동차의 엔진들 중 그 열 세번째 이야기는 혼다가 만들었던 독특한 엔진 중 하나를 다룬다. 이 엔진은단 하나의 차 만을 위해 만들어져 그 차와 함께 최후를 맞이한 엔진이기도 하다. 이 엔진의 이름은 혼다기연공업(이하 혼다)의 F20C 엔진이다.

8,000rpm을 넘나드는 S2000의초고회전 심장

2000년을 한 해 앞둔 1999년, 혼다는 자사의 창사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새로운 스포츠카를 내놓는다. 이 차의 이름은 S2000. S2000의 이름은 혼다의 두 번째사륜 양산차이자 최초로 내놓은 경량 스포츠카인 ‘S500’의 계보를 잇는 모델임을 나타낸다. S2000은 선대의 혼다 경량 스포츠카들이 그러하였듯이, 머리 끝부터발끝까지 철저한 체중감량을 통해 운동성능을 극대화하기 위한 설계 사상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이와 함께주목받은 것은 S2000의 보닛 안에 자리한 F20C 엔진이었다. F20C 엔진은 오로지 S2000만을 위해 개발된 엔진이며 S2000외에 이 엔진을 사용한 양산차는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존재하지 않는다.

F20C 엔진은 배기량 2.0리터의자연 흡/배기 직렬 4기통 가솔린 엔진으로, 혼다 엔진 기술의 자부심인 VTEC(Variable valve Timingand lift Electronic Control) 기술이 적용된 엔진이다. 보어(실린더 내경)는 87mm, 스트로크(행정 길이) 84mm에 압축비는 무려 11.7:1(일본 내수 사양 기준. 미국과 유럽은 11.0:1)에 달한다. 자연 흡/배기가솔린 엔진으로서는 매우 높은 압축비와 빅 보어/숏 스트로크의 실린더 제원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엔진은 양산차 업계에서 손에 꼽는 초고회전형 엔진이다. 실린더블록은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지며, 타이밍 체인을 사용한다.

F20C 엔진의 레드존(엔진의회전 한계)은 무려 9,000rpm부터 시작한다. 통상의 자연 흡/배기 가솔린 엔진들의 레드존 시점이 6,000rpm을 넘기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아무리 고회전 지향의 엔진이라도 8,000rpm을넘기는 경우는 슈퍼카와 같은 소량샌산 차종 이외에는 극히 드물다. 최고출력은 무려 8,300rpm에서 나오고, 최대토크는 7,500rpm에서 나온다. 제원 상 최고출력은 250마력/8,300rpm, 최대토크는 22.2kg.m/7,500rpm에 달한다. 배기량 1리터 당 최고출력 비율은 125마력에 이른다. 이는 최근의 2리터 급 다운사이징 가솔린 터보 엔진이 내는 최고출력과비슷한 수준으로, 과급기 없이 오로지 고회전 자연 흡/배기만으로이 출력을 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날카롭고 즉각적인 응답성으로 대표되는 고회전형 자연흡배기 엔진만이가진 감성을 즐길 수 있는 몇 안되는 엔진이기도 했다.

과급기도 없이 배기량 1리터당125마력의 최고출력을 뿜어내는 F20C 엔진의 성능을 뒷받침하고 있는 기술 중 하나는VTEC을 꼽을 수 있다. 혼다의 전자식 가변 밸브 타이밍및 밸브 리프트 기술인 VTEC은 1989년 4월, 동사의 스포츠 쿠페인 인테그라에 처음 도입된 바 있다. 혼다 VTEC은 별도의 저회전용 캠과 고회전용 캠이 2단으로 구성되어 회전 수에 따라 이를 전환하면서 제어하는 형태(VTEC)와연속 가변 밸브 타이밍의 형태(i-VTEC)가 존재한다. 전자는혼다의 고성능 라인업인 타입-R 모델들에 사용되었고, 후자는오늘날 혼다의 대다수 일반 승용차에 사용되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S2000에 적용된 VTEC은 전자에 해당한다.

이 기술이 적용된 F20C 엔진은 ECU의판단에 따라 통상 6,000rpm 근처에서부터 고회전용 캠이 작동을 시작한다. 이 때문에 S2000이나 같은 계열의 VTEC 엔진을 탑재한 차를 운전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이를 “VTEC이터진다”고 표현한다. 그만큼 엔진의 성격이 크게 달라지기때문이다. 고회전용 캠이 작동하기 시작하면 엔진의 회전 상승이 보다 격렬해지고 비로소 제 힘을 내기시작한다. 하지만 특정 회전수에서부터 엔진의 출력 특성이 급격하게 바뀌는 현상은 코너링이 까다롭다고알려진 S2000의 조종 난이도를 더욱 올리는 원인 중 하나이기도 했다.

F20C 엔진은 2004년부터강화된 환경규제 때문에 북미 시장에서는 더 이상 판매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등장하게 된 엔진이 바로F22C1 엔진이다. F22C1 엔진은 F20C 엔진의 스트로크를 90.7mm로 늘리고 회전 한계를 8,200rpm으로 내리는 한 편, 압축비를 재조정한 엔진이다. 이 때문에 배기량은 2.2리터로 증가한 반면, 최고출력이 242마력/7,800rpm으로줄고 최대토크는 22.5kg.m/6,500~7,500rpm으로 소폭 상승했다. 이 엔진은 초기에는 북미형 S2000에만 탑재되었으며, 2006년부터는 일본 내수용 모델에도 적용되었다. 이 엔진이 탑재된혼다 S2000은 ‘AP2’라는 별도의 섀시코드로 부르며, F20C를 얹은 초기형 S2000과 구분하는 경향이 있다.